[리뷰] 아프고 웃기니까 사람/연극/애인이다 : 극단 애인 <고도를 기다리며>

2011. 12. 19. 11:08Review


아프고 웃기니까
사람/연극/애인이다
 
<고도를 기다리며> 애인 극단


글. 정진삼
  

1. 애인의 연극 

 애인의 공연을 보러갔습니다. 여기서 애인은 극단 이름입니다. 애인. 이름 참 예쁘지요. 아마도 그들을 호명하는 어떤 말에서 앞 글자를 빼고 지은 듯합니다. 그러니까 장애인 말이지요. 극단 애인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별할 것 없이, 연극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든 극단이라고 합니다. 창단한지는 4년 되었고, 얼마 전에 끝난 제7회 나눔연극제에서는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그 작품이 바로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입니다.
 
잠깐 원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 작품은 현대 부조리극의 대표작입니다. 한국에서도 산울림극단 등 여러 기성극단의 공연으로 수차례 상연되고 있지요. 예전만큼은 못하지만 인기는 여전합니다. 아마도 다양한 의미 해석을 내재하고 있는 텍스트의 매력 때문이겠지요. 전문가는 물론이고 초보자들도 호기심을 가지고 그 풀이 가능성에 동참하기에 그렇다고 봅니다. 물론, 사람들은 점점 다른 연극들을 접하면서 <고도...>에게서 받은 인상과 관심을 점차 거두게 됩니다. 신기한 현상이지요. 모호함이 가득한 부조리극의 형식이 허세처럼 느껴지고, 반복적이고 허무한 내용이 무대의 역동적이고 환상적인 느낌을 해쳐서 그런 걸까요.
 
다시 애인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고백하자면, 애인의 공연이라서 조금 무서웠습니다. 무대 위의 그들에게 어떤 시선을 주어야할까, 하는 동정어린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만약에 울게 되면 구질구질하지 않게, 그리고 이참에 좀 많이, 울어보자는 심보였습니다. 그러나 이게 웬걸. 잘 보고, 잘 웃고, 잘 느끼고, 잘 생각하다 보니 공연은 끝났습니다. 눈물 같은 건 끼어들 여지가 없었지요. 애인고도를 상연한다는 이중의 선입견은 관객에게 거리를 두게 만드는 요인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연극은 그런 걱정들을 하나씩 불식시키고, 풀어나간 흥미로운 무대 만들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재밌고, 웃기고, 좋다! 정도로 충분히 설명가능하단거죠. , 그럼 구체적으로 애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2. 아프지만 웃긴, 무대

  성미산 마을 극장의 무대는 심플했습니다. 대신 강렬한 인상의 나무들이 있었지요. 천장에서 아래로 뻗친 나무와 몸체가 잘려 밑둥만 남은 나무가 있었습니다. 고꾸라진 나무줄기는 마치 뿌리처럼 느껴집니다. 그칠 줄 모르고 뻗어나간 자의식의 뿌리처럼 말이지요. 허나, 여기는 잎이 싹트는 지상입니다. 그러니까 이 식물은 몸체가 굽고 뒤틀린 나무인가 보군요. 나무도 무대 위의 인물들을 닮은 셈이지요.
  무대에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중절모를 쓰고 검은 양복을 차려입은 블라디미르(백우람 분)와 에스크라공(한정식 분). 디디와 고고는 특별했습니다. 비틀거리는 몸이었고, 어눌한 말이었습니다. 고고는 천천히 말을 이었고, 디디는 느릿느릿 몸을 움직였습니다. 일반 연극배우들이 감정을 강조할 때 얼굴을 구기거나 큰 표정을 짓는 모습이 이들에겐 평범하게 느껴집니다. 디디는 계속 찌푸린 인상과 돌아간 입으로 연기를 했고, 고고는 반박자 늦게 대사를 주고 받습니다. 이런 모습이 바보 같아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바보 같을 수 있습니다. 어쨌든 <고도...>는 바보같은 광대들의 놀음이니까요.
 
얼핏 보기에는 언어로 이루어진 의사소통이 미숙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대사 주고받기는 독특한 희극적 리듬을 만들어냅니다. 곱씹어서 말하는 디디의 대사는 충분히 의미를 생각하게 해주고, 뒤늦게 반응하는 고고의 맞장구는 웃음을 유발합니다. 이들은 끊임없이 코믹한 제스처를 이어나갑니다. 이를테면 고고와 디디는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으냐며, 곧 고도가 온다며 호들갑을 떱니다. 이들은 숨을 죽이며 기다립니다. 아무런 일도 없습니다. 당연히 포조일줄 아는 관객의 기대를 무너뜨리며, 아무 소리도 안들리네, 하고 원래대로 돌아갑니다. 엄청 웃깁니다.
 
초반이 지나면 그들의 앙상블은 차분한 몰입을 이끌어 줍니다. 알고보니 원작의 어려운 말들은 쉽게 정리되었습니다. '기다림' 이라는 목적 아래 행해지는 놀이들은 간편한 형태의 야구놀이, 허그 등으로 변화됐구요. 그러다보니 무대의 발화와 객석의 수신은 안정감이 있었습니다.


  그러고보면, 부조리극에서는 언어를 매우 중시하고 있습니다. 소통의 어긋남을 통해 부조리한 상황을 전달하는데, 그 불통은 개개의 배우들의 언어적 전달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발생합니다. 이러한 무대 위 불통이 관객들에게 중개되는 것이지요. 인위적 의도 아래 세세하게 조작된 불통을 이 작품은 어떻게 형상화했을까요. 애인의 <고도...>는 장애인들이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불안한 언어전달 상태를 이해하고, 이를 최대한 보완하고자 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동시에 언어해석적인 장면들, 과다한 침묵과 사이, 거대하고 왜소한 존재들의 대비는 새롭게 삭제되거나 정리되었습니다. 관념성 대신 실제성이 강화된 것이지요. 그도 그럴 것이 이들에게 신발을 벗고 신는 행위는, 그 자체로도 힘든 일로 느껴집니다. 말과 말 사이의 정지는 어떤 의미를 주기위한 울림이 아니라, 다음 말을 잇기 위해 기다려야 하는 당연한 상황이 되는 것이지요. 원작에 없지만 추가된 장면은 고고의 잠()과 디디의 환상입니다. 같은 시간 속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두 존재의 서로다른 상황은 그들의 공포와 외로움을 표현해 주었습니다. 장애인의 시선을 의식한 이 연극은 원작을 재맥락화하면서 관객들을 배려했습니다. 긴 공연 시간은 압축되었고, 지루하지 않은 템포로 전개되었습니다. 배우와 관객의 적극적인 만남을 위해 텍스트를 조정한 것은 미학적 타협이 아니라 도전이기에 배우들의 오랜 연습과 연출의 노력을 짐작케 했습니다

  한편, 어떤 대사들은 더 귀에 들어왔지요. 아픔과 결부된 원작의 말들입니다. 고고가 하는 마늘은 신장이 안 좋아서 먹는 거야.” 와 같은 대사들은 고통을 의거하고 있기에, 흘려듣기 어렵습니다. 고통스런 말의 마디마디, 배우들은 아픈 표정을 하고 말합니다. 그 순간, 관객들에게 배우들의 연기는 연극과 삶이 겹쳐서 보이게 됩니다. 굉장한 체험입니다. 모호함의 영역으로 치부했던 베케트의 언어가 지금, 여기 새로운 해석력을 갖는 것이지요. 따라서 단순히 목매달아 죽겠다는 극중 대사도 웃기게만 듣기 어렵습니다. 목매달면 오줌이 줄줄 샌다는 원작의 표현도 실재감과 진정성을 더하는 것이지요

원작 <고도...>에서 포조의 등장이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내듯 이 작품도 그러했습니다. 휠체어를 밀면서 등장한 포조(강희철 분)는 극에서 가장 화술이 좋은 배우입니다. 실제로 방송출연도 한 연극인이라고 합니다. 그는 고고와 디디가 만들어 놓은 인상적인 캐릭터 구축에 한 자리 보탭니다. 마법사 같은 의상을 걸치고 나와 궤변을 늘어놓지요. 거만하고 탐욕스러운 캐릭터가 잘 형상화되었습니다. 물론 럭키를 부려먹는 행위를 적절하게 함으로서 말이지요 객석 2층에서는 하얀 옷을 입고, 고고와 디디를 내려다보던 소년(하지성 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짧지만 이 소년의 존재감도 대단합니다. 순진함과 불쌍함의 경계에서 애처로움을 담아서 말하는데, 굉장히 코믹합니다. 관객들은 소년의 발뺌과 디디의 버럭, 그리고 화를 꾹참고 하나하나 일러주는 디디의 대사에 웃음을 터뜨립니다. “너 어제도 왔잖아!”, “오늘 처음인데요...”, “...우리가 왔다고 꼭 전해라.”, “...” 우물쭈물, 울먹거리면서 말하는 소년의 모습이 잊어지지 않습니다. 이들은 어느순간, 제대로 된 희비극을 보여주고 있었던 거죠


3. 아파도 웃는, 객석 

 
나는 기쁘다.”, “우리는 기쁘다”, “기쁘니까 뭘 하지?”, “고도를 기다려야지.”“....” 

 객석에선 폭소가 터집니다. 실은 조금 어리둥절하기도 합니다. 저게 왜 웃기지? 원래 웃긴 대사였나? 영문도 모르게 되는 상황은 한 두 번이 아니니 익숙해지시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웃는 타이밍은 관객들과 어긋났습니다. “춤을 춰라.” 포조의 말에 럭키(장진석 분)는 구부정한 손발을 편 채 자리에서 한번 도는 데, 이번엔 웃어야지 싶어서 막 웃었습니다. 이번엔 저 혼자만 웃었지요. 멋적었습니다. 눈치를 보니 관객들은 다들 심각한 표정이네요. 참고로 관객들의 반수는 장애인들이었고, 반수는 비장애인들이었습니다. 앞자리를 차지한 장애인 관객들은 이제야 비로소 환대받은 손님들처럼 시끌벅적 즐거워했습니다. 그러한 반응들이 이 공연을 완성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요. 기억에 남는 장면은 포조가 닭다리를 꺼낼 때 좋아하던 관객들의 모습입니다. 아마도 그 관객들은 무대 위에서 음식을 먹는 행위가 참으로 연극적이고, 감각적이라는 것을, 그러니까 쉽게 말해 엄청 재미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지요. 포조가 퇴장할 때 고고와 디디는 한 목소리로 안녕히가세요를 말합니다. 갑자기 대사를 하던 톤에서 일상의 어투가 나오니 객석에는 웃음이 번졌습니다. 그들에게 안녕히 가세요, 는 아마도 연기할 수 없는, 연기로 고치기 어려운 습관의 영역이었나 봅니다. 그러한 솔직함과 감출 수 없는 연기가 있다는 사실이 묘한 감동을 안겨 주었습니다

인상적인 관객 반응을 하나 더 소개할까 합니다. <고도...>를 몇 번 이상 보았지만, 처음으로 럭키의 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었지요. 럭키는 원작에서 짐승을 연상시키는 형상으로 기억되는 존재입니다. 이 공연에서 럭키는 불편한 몸으로 큰 봇짐을 짊어지고 나왔습니다. 서있는 것도 매우 힘겨워 보이지요. 디디는 포조에게 단호히 말합니다. “부끄럽다. 사람을 저렇게 다루다니. 너무하다.” 무대 위에서 발화된 이 대사는 관객들에게 대단한 울림을 줍니다. 원작에선 그저 한줌의 정의 정도로 받아들여졌던 고고의 대사는 신체 부자유한 존재와 이를 강제하는 존재가 사람임을 일깨워 주었던 것이지요. 물론, 인상적이 관객 반응은 그 다음입니다. 포조는 디디에게 럭키가 왜 짐을 내려놓지 않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보라고 반문합니다. 그러한 질문은 고스란히 객석에 가 닿습니다. 그제야 관객들은 한마음으로 그 말을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 럭키는 짐을 내려놓지 않을까, 저렇게 힘든데... 고민 중에 "쓸모없어지면 팔아버린다" 는 포조의 말이 이어집니다. 울음을 터뜨리는 럭키. 관객들은 애통한 사유를 이어나갑니다

그러고보면 <고도...>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 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고고와 디디럭키와 포조고도와 소년기이하게도 2부에서 포조는 장님이 되어 나타납니다이젠 노예 럭키가 그의 길잡이가 된 것이지요이러한 상황도 극중 맥락으로 해석되는 것이지요불가피한 속박관계보호자를 동반해야만 영위할수 있는 삶주인과 노예같은 우리들의 삶주종관계의 역전 등등... 이처럼 이 공연은 원작에서 느껴보지 못한 의미들을 파생시키고사유를 확장시키는 묘한 매력을 가졌습니다무대 위 존재가 가지고 있는 아픔을 회피하지 않고그 시선으로 응시하는 방식이었기에 가능했나 봅니다연극과 실상이 서로 어울려 지금 여기’ 에 다시 자리할 때관객들은 연극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되니까요특수한 누군가의 신체적 고통이나 심리적 고난이 아니라나의 어렸을 때 모습내가 아팠을 때 모습그리고 늙어서의 내 모습을 마주하게 되는 거지요우리도 몸을 제대로 가눌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고또 다가오고 있으니까요.

4. 애인 만세

   애인이 했던 <고도를 기다리며>는 그간 알지 못했던 대사들의 발견과 미루어 두었던 해석의 여지들을 풀어나가는 재미를 관객들에게 안겨주었습니다. 물론, 극중에서 장애인의 고통이나 애환을 강조한 것은 별로 없습니다. 희망 같은 것도 함부로 말하지 않았구요. 그저 상황에 맞게, 기다리다가, 아픔을 이야기하고, 외로움을 달래고, 그래서 놀다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떠나보내고, 다시 놀다가, 아프고, 그리고 길을 떠나자고 다짐하는, 연극이었습니다. 어려운 말 대신 쉬운 말로, 허무개그가 아닌 상황개그로, 초라한 인간이 아니라 힘겨운 인간으로 생동감을 더 해준 무대였지요. 그래선지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닌, 우리네 삶과 밀접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아프고 웃긴것이 바로 희비극!’ 이라는 공감가는 제시도 가능했지요.
 
어려운 시대, 작은 연극의 기능은 아마도 이런 것일 겁니다. 웃음을 통해 아픔도 나눌 수 있다는 것. 그러고 보니 <고도를 기다리며>는 몸이 아픈 사람들의 연극이었네요. 신체 부자유자, 지적 장애자, 시각 장애자 등등이 출연자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고도도 아파서 오지 못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어디에선가 열심히 비틀거리며 더듬더듬 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알만 한 사람은 아는 에피소드이지만 <고도를 기다리며>는 감옥에서 상연했을 때 비로소 반향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애인 극단의 <고도를 기다리며>도 많은 관객과 만나면 더 큰 의미를 가지리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시간을 조금씩 나누면 그들이 노력한 시간들이 더욱 값진 것이 될 것입니다. 다행히 이 공연은 썩 괜찮으니 그 시간이 더욱 의미 있어질 것입니다. 후불제 공연이라고 하니까, 공연에서 보고 느끼고 즐긴 만큼 그 가치를 지불하기 바랍니다. 애인이 하는 연극, 아프지만 웃기니까 괜찮아, 연극 만세!

 

극단 애인 <고도를 기다리며>

 


장애인들만의 움직임과 언어로 재해석된 작품

<고도를 기다리며>는 모든 인간이 가지는 고독, 되풀이되는 일상의 괴로움, 그 속에서 꿈꾸는 희망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극을 통해 각자에게 있어, 그리고 이 시대의 구원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다 한다. 


일시 : 2011.12.14(수)~12.25(일) *12.20 공연 없음

          평일 8시 (화요일 공연 없음) / 토요일 3시, 7시 / 일요일 3시
장소 : 성미산마을극장 

티켓 : 후불제
 
공연문의 : 010-7734-7841 (극단 애인, 강예슬)
공연정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