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아비뇽페스티벌 _ 거리여행의 기록

2012. 9. 12. 19:34Review


아비뇽 페스티벌 

거리여행의 기록 _ 아직 극장에 도착하지 않았다 한들,


리경 

 

아비뇽 페스티벌.

축제로 향하는 이 마음, 여행을 떠나요.

 

축제에 간다 할 때에는 일상에서 가는 공연관람과는 또 다른 마음이 된다. 어느 공간으로, 일상에서 조금 빗겨난 장소로, 간다는 그 설렘과 기대는 분명히, 어느 여행을 가는 마음 못지않다.




 

나는 파리에서, 아비뇽으로 향한다. 파리 리용역에 출발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도착한다. 잘 모르는 길이고 꼭 가야한다는 불안감에서였는지.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 속에 나는 그들 중 하나이자, 그들을 바라보는 방관자로 앉아있다. 홀로 혹은 무리를 지어 다니는 여행객들은, 어디론가 간다는 그 기분(이 무엇이든)에 차있는 점에서는 전형적인 연기를 하는 배우들 같다. 나는 기차에 오른다. 바깥 풍경은 낯설다는 매력으로 오래 나를 잡지는 못하고 이내 심심함을 주어 나는 책을 읽을까하지만, 도무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자꾸만 내가 걸었던 파리의 거리가 떠오른다. 벌써 그립다.




파리에서 5시간 정도 떼제베로 달려 아비뇽 센터역에 도착한다. 내리니 파리의 광경과는 사뭇 다르다. 남쪽이다. 그리고 페스티벌. 사실 페스티벌 외에 관광할 게 많지 않은 도시이기에 역에서 부딪히는 대부분이 페스티벌을 보러 온 사람들일 것이다. 역 건너편에 바로 페스티벌 입구가 있다. 성곽 밖에 숙소를 정한 나는, 버스를 타고 숙소에 들러 짐을 놓는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페스티벌 거리의 입구에 선다. 




티켓을 사러 간다. 여행을 하고나면 많은 티켓들이 남기 마련인데, 공연 페스티벌에서의 티켓은 방문자에게 이 공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주는 무엇이기도 하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여러 사람들과 얼만큼의 시간을 보낸다는 계획이 서고, 그 계획이 적힌 티켓은 방문의도를 표시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티켓을 산다는 건, 낯선 페스티벌공간에서 이방인이 안정감을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첫 번째 행위이기도 하다. 나는 밤 열시, 교황청에 머무는 티켓을 얻는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수의 공연을 한다는 사실과, 겪어왔던 것보다 더 흥미로운 공연 홍보를 본다는 사실은, 여행에서 일어나는 큰 사건에 비해 그리 대단한 변수는 아니다. 다만 더 골라야하고 더 마주해야한다는 에너지가 쓰이게 하는 것이다. 그 에너지를 쓸지 말지는 내가 결정하기 나름인데, 프랑스 아비뇽이라는 곳, 여기까지 오게 된 과정을 더듬으면 왠지 무어라도 더 얻어가야할 것 같아 내 마음은 에너지를 내라고 나를 조금씩 보채기 시작한다.

 



아직 며칠이 더 있으니 여유를 내자하고 오프 공연 (아비뇽페스티벌 참가작은 오프와 온 공연으로 나눠져 있다) 몇 개에 대강 동그라미를 치는 사이, 거리로 귀가 간다. 날씨는 좋고 사람은 많다. 성곽 안은 보여주려는 사람들과 보려는 사람들, 우리 차지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지만 비슷한 관심사로 비슷한 심정으로 여기에 있을 거라는 무의식적인 추측 때문인지 이 공간에서 마음은 열린다. 그러기에 거리는 신나는 기운에 차고 박수소리는 세다.    




한참을 이리저리에서 구경과 관람 어느 쯤을 오가다, 무언가 보여주려는 준비를 해온 사람들로부터 잠시 눈을 쉬게 한다. 그리고 그저 거리를 본다. 성곽에 들어서면 일자로 쭉 뻗어있는 중앙도로, 그 끝에 있는 교황청 옆 광장을 지나  구 교황청에 다다른다. 나는 그 곳에서 열시에 약속이 있다. 이곳은 아홉시가 넘어야 해가 진다. 긴 낮만큼 긴 걸음을 거쳐 약속 장소에 온다. 역에 도착했을 때의 그 설렘이 다시 인다.

 



해가 지고 다리를 쉬러 교황청 한 귀퉁이에 오른다. 사람들이 멀어진다. 사람들 무리에서 멀어지며 한 사람을 보게 된다. 그는 나일지도 모른다. 나는 저 무수한 사람들 속을 걸어다니며 누군가에게 당신이 여기에 있음, 있어도 됨,을 증명해주는 사람이 된다. 페스티벌은 초대자가 있고 방문자가 있다. 초대자는 방문자의 존재로 자신을 확인하고, 방문자는 초대자를 보며 자신을 확인한다. 또 방문자는 서로를 보며 이 공간을 긍정한다. 그러한 확인의 과정으로 하루가 간다. 




이제 거리의 공연과 사람들에게서 눈을 떼어 멀리 노을을 본다. 조금 후면 약속 장소로 들어갈 것이다. 나는 그 약속 때문에 여기에 왔다, 라고 생각하니 뜻모를 어색함이 든다. 아직 극장에 도착하지 않았다, 한들 지금까지의 시간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이상이다. 오늘 밤의 공연은, 거리의 그 모든 생동함을 바다로 삼아 그 위에 떠 있는 배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아비뇽 페스티벌의 거리가 거는 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