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타인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방법 - 서울프린지페스티벌

2012. 9. 13. 13:21Review

 

 

2012년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참가작

<타인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방법>

바뀔 수 있는 인생, 바꿀 수 없는 관계

 

 글_영균

 

지난 서울프린지 페스티벌을 통해서 극단 백야의 연극 <타인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방법>을 만났다. 전 주에 비해 눈에 띠게 짧아진 해는 공연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종종거리게 했다. 산울림 소극장을 찾은 관객들이 하나 둘씩 지하의 극장으로 줄지어 들어가자 선선한 바람도 함께 밀려든다. 고정형의 좌석에 사람들이 자리를 잡는 동안, 짱구이마처럼 앞이 둥그런 무대에선 한 남자가 기타를 치며 나지막한 노래를 불렀다. 남자가 노래를 멈추고 조용히 떠난 뒤 무대가 어두워진다.

벽면을 스크린 삼아 ‘우주와 지구’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영사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청바지에 검은 운동화 차림의 한 소년이 흥미로운 듯이 영상을 시청한다. 언뜻 보아 철학 또는 문학에 관련된 인문 서적들이 주-욱 나열된 테이블이 정면에 보이고 청년(그러나 소년으로 보이는) 하나가 신문을 읽는다. 청년의 시간으로 한 사람이 뛰어드는데 그의 형이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이 이 연극의 등장인물의 전부다.

형, 형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남들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사회에 지치고 질린 그는 충동적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그 길로 집으로 돌아와 동생 앞에 선다.

 

 

“이젠 네가 내 대신 일을 해”

집으로 돌아온 그는 동생에게 ‘생활’과 자신의 ‘삶’을 바꿀 것을 요청한다. 동생이 누리는 여유로운 오전과 할 일 없는 오후를 자신의 바쁘고 치이는 하루와 바꾸길 원하는 것이다. 동생의 삶은 달랐다. 형의 희생 덕분에 동생은 본인이 원하는 것들을 시도해볼 수 있었고, 시도가 가능했던 것처럼 포기 또한 가능했다. 수차례 몇 갈래의 길을 오가며 방황하던 그는 결국이 사회에서는 본인이 추구하는 것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책 속으로, 우주와 지구의 신비 속으로 숨어들게 되었던 것이다.

다소간의 실랑이가 끝나고, 동생은 형 대신 일자리를 찾아 나서지만 “이 회사를 위해 자네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 이 자리를 양보 하겠다”고 답하는 그에게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러 차례의 실패가 반복된 후에야 그는 일자리를 얻었고, 형은 뛸 듯이 기뻐한다. 형과 동생의 바뀐 생활이 이어진다. 형은 할 일 없는 오전을 즐기고, 꽃과 나무에 물을 주며 여유로움에 행복하다. 반면 밤늦게야 귀가하는 동생은 형이 차려주는 밥을 먹는 것이 또 다른 기쁨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자신에게 시작된 삶의 변화에 완벽하게 적응하지는 못한다. 익숙하지 않은 삶을 살아나가며 자기 자신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두 사람. 그 간극으로 고민과 갈등이 파고든다.

사실 이 연극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한 작품이다. 인간의 노력은 세상을 바꿨지만, 인간의 삶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 양면에 놓인 형과 동생의 모습을 통해서, 왜 인간이 만든 세상이 모두를 즐겁게 하지 못하는지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한다. 가족을 위해서 애썼던 형의 노력이 어째서 가족의 삶을 변화시킬 수 없었는가? 왜 정작 본인의 삶을 행복하게 꾸려나갈 수 없었는가? 그리고 동생은 왜 결국 책 속으로 숨어들게 되었는가?

이 작품은 이 두 형제의 삶에 물음표를 던지며 그 원인으로‘사회 구조’를, 더 자세히는 ‘결과 위주의 경쟁’이 굳어져 버린 이 사회의 풍토를 지적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연출적 장치들이 이용되는데, 강렬한 영상의 사용이 대표적이다. 우주와 지구의 신비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시작으로, 여러 차례 영상을 이용하는데 노동과 착취에 관한 뉴스, 소비와 경쟁위주의 사회 분위기를 보여주는 짤막한 영상들이 편집되어 쓰인다. 그 가운데는 ‘형’을 맡은 배우가 등장해 피를 토할 듯 한 기세로 성공을 위해 희생과 인내를 감수하기를 강요하는 연설도 있었다. 클로즈업 된 형의 얼굴 뒤에는 경제발전에 정신이 없던 2-30년 전의 대한민국의 산업현장이 스쳐지나간다. 무대 앞에는 세 개의 흰 큐브가 놓아져 있는데, 이곳에 올라서거나 하면서 형과 동생은 번갈아 연극 속에서 나와 독백을 하기도 한다.  

 

 

다양한 형식상의 시도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꿈’의 사용이다. “회사에 다녀온 동생은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고, 그 날 꿈속에서 나폴레옹을 만났답니다."라는 형의 대사로 관객들은 동생의 꿈속으로 이끌려 들어갔다.

동생은 영토 정복을 나선 나폴레옹을 만난다. 앞으로 정복할 땅을 보며 벅찬 승리의 감정을 느끼고 있는 나폴레옹은 자신의 기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동생을 의아하게 여긴다. 나폴레옹은“내가 훌륭하지 않느냐? 내가 하는 일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묻고 동생은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저도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 라고 대답한다. 함께 떠나자는 나폴레옹의 제안을 거절하고 동생은 도리어 묻는다. “정복하는 것 지겹지 않으십니까? 정복을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고통 받고 있습니다.”라고. 이에 나폴레옹은 죽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게 되기 때문에 정복을 멈출 수 없다며 절규한다.

정복에 정복당한 나폴레옹의 모습은 현실속의 우리들의 뼈를 시리게 하는 부분이 있다. <타인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방법>은 두 형제의 삶이 엇갈렸다 다시 풀어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라는 꽤 지독한 질문을 관객에게 꽃아 댄다. 몇몇 부분에 있어서는 그에 대한 답까지도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연극의 마지막은 두 형제의 일상을 제자리로 돌려놓으며 끝을 맺는다. 형은 다시 사회로 돌아가게 되고, 동생은 책 속으로 숨어들기 그 이전의 꿈꾸던 삶, 혹은 그 책 속에서 만난, 책이 일러준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선다. 사막으로 떠나는 동생의 모습이 영상으로 등장하고 형의 내레이션으로 장면이 설명된다. 소년의 얼굴을 가진 그 배우가 현실의 무대 위를 떠나서 영상 속으로 들어갈 때, 형의 역할을 맡은 배우가 관객석 아주 가까이에서 마지막 대사를 읊을 때 이 연극의 메시지는 고스란히 전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단 한가지 풀리지 않는 궁금증은 남아있는데, <타인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방법>은 대체 어떤 의미로 붙여진 제목이란 말인가.

 

 

**** 사진제공 : 서울프린지페스티벌2012

 

필 자_ 영균

소 개_ "영균아 넌 천사야, 아주 많이 웃긴" 이라는 말이 세상에서 들어본 칭찬중 가장 좋았다고 생각하는 사람

 

 <타인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방법> 아티스트명 극단 백야

일 시 2012-08-27, 28 / 장 소 소극장 산울림

기획의도 _ 인간은 늘 일을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일할 것이다. 그 노력이 세상을 바꿔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삶이 즐겁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모든 인간의 바람과는 달리, 그들이 바꾼 세상은 그들 모두를 즐겁게 해주지 못한다. 이 공연은 그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인간은 왜 일을 하며, 무엇을 위해 일을 해야 하는 것인가? 한 형제의 모습을 통해 그 해답을 찾고자 한다.

시놉시스 _ 어느 낡은 집. 오랜 시간을 사색과 공상에 잠겨 지낸 한 남자가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형이 갑작스럽게 그를 찾아온다. 형은 자신이 밖에서 겪어온 모든 일의 대가로 스스로에게 휴가를 선포하고, 동생에게 사회로 나가 일을 할 것을 강권한다. 동생은 그 제안이 영 마뜩치 않지만 마지못해 수락하고, 그렇게 형제는 각자 자신에게 익숙치 않은 삶을 살아나가기 시작한다.

스탭

출연 : 서연우 /형, 정원창 /동생

연출 : 박도현

무대 : 오은영, 나성길

조명 : 정유석

영상 : 권준엽, 이용묵

아티스트소개

극단 백야 (http://club.cyworld.com/theatre-baekya)

극단 '백야'는 2012년 젊은 청년예술가들에 의해 결성된 신진 극단이다. "문화생활에 목말라 있는 사회인에게 일회적인 재미만을 제공하며 공연을 지속하는 연극 풍토에 질려,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자 극단을 결성했다"고, 극단 '백야'는 당당히 밝힌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인간의 삶과 세상에 대해 탐구하고, 재미있되 난잡하지 않으며 진지하되 지루하지 않은 형식으로 관객에게 다가가려 한다. 궁극적으로는 현대의 공연 예술을 단순한 일회적 오락 혹은 장식품이 아닌, 인간의 문화적 삶을 고양시키는 예술로서 자리매김하게 하는 것이 극단 백야의 목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