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를 가다] 부산 제로페스티벌 2012

2012. 9. 3. 17:42Review

다시 ‘0’에서 출발하는 부산 청년문화축제의 신호탄!

- ZERO Festival 2012 "Start From Zero"

 

장현정

 

최근 몇 년, 부산에서는 청년문화와 관련된 괄목할 만한 움직임들이 많았다. 한국 독립문화의 상징이었던 홍대 앞이 자본과 시류에 밀려 예전 같지 않단 말이 회자되는 동안, 부산에서는 약 3, 4년 전부터 오히려 ‘지역’ 과 ‘청년문화’ 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역동적이고 활발한 네트워크와 기획들이 시도돼 온 것이다. 게다가 예전에는 ‘인디(indie)가 뭐지?’ 수준이었던 공무원이나 재단 등의 태도도 상당히 바뀌었다. 그 결과, 부산문화재단이 지원하고 부산 지역 청년문화를 중심으로 기획된 공공예술프로젝트였던 ‘회춘프로젝트’ 는 2011년 전국 공공예술프로젝트 평가에서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물론 숫자로 드러나는 평가결과나 순위가 중요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만큼 부산 청년문화인들의 아이디어와 시도가 전반적으로 현재 우리 사회 문화 판에 여러 모로 참신한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올해는 그 여세를 몰아 ‘청년문화수도프로젝트’ 등 역시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그런데 사실, 최근 이런 움직임들이 가능하게 된 건 이전부터 오랫동안 부산에서 돈 안 되고 힘들고 별로 알아주는 사람도 없지만, 때 묻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에너지로 세상에 자신들의 존재를 선언하려는 많은 작가들과 기획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단체 중 하나가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한 ‘대안문화행동 재미난복수’ 다. 바로 그 재미난복수가 10주년을 맞아 그 간의 네트워크와 노하우를 바탕으로 기획한 또 하나의 재미난 축제가 지난 달 8월 10일부터 12일까지 3일 간, 부산대학교 일원에서 펼쳐졌다.

 

‘ZERO Festival 2012’ 란 이름으로 펼쳐진 이 축제는 원래 ‘부산독립예술제’ 란 이름으로 기획해오던 축제였다. 부산대학교 정문 앞 광장을 중심으로 온천천 야외 공간 및 부산대 주변 클럽 및 문화 공간 등 모두 11개의 실내외 공간에서 70여 개 팀, 210여 명의 출연진과 23개의 협력단체가 함께 진행한 이번 행사는, 재미난복수가 10주년을 맞이하며 지난 10년을 되돌아보고 다시 처음의 마음으로, 즉 제로에서 시작해보겠다는 의미를 담아 새로운 이름으로 기획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축제이름의 부제도 ‘start from ZERO' 다.

그동안 재미난복수와 함께 했던 공간 및 단체, 예술가들의 자율적 참가를 기본 원칙으로 진행된 이번 축제의 면면을 보면, 그 간 재미난복수의 활동이 장르나 지역을 가리지 않고 그야말로 전방위로 이루어져왔음을 느끼게 된다. 도쿄, 홍콩 등 외국에서 8개 팀, 회기동단편선과 야마가타트윅스터 등 타 지역에서 22개 팀, 부산 지역 40개 팀 등이 참여했고 재미난복수 외에도 화가공동체 민들레, 갤러리 소라, 생활기획공간 통, 극단 자갈치, 인문학카페 헤세이티 등 부산대 인근의 문화단체 및 공간들도 대거 참여해 함께 축제를 진행했다.

 

 

한편 모든 공연과 전시가 무료로 진행됐으며, 자율 기부를 원칙으로 공연을 본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공연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도록 한 것도 특징이었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기부금은 전액 참여 아티스트들에게 지급했다고 한다. 또한 준비과정에서부터 참여할 아티스트 및 공간과 단체들이 상시적으로 만나며 함께 했다고 하는데, 선명한 전략을 가지고 잘 다듬어서 보여주기 위한 축제도 좋지만 그보다는 참여자가 우선 즐겁고, 또 참여하는 모두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를 지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바로 이 점이 ‘ZERO Festival 2012’ 이 부산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른 여타의 청년문화기획들과 가장 큰 변별력을 갖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부산의 최근 상황을 보면, 서울이나 외국에서 활동하다 다시 부산으로 온 기획자나 작가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이들의 좀 다른 방식의 경험과 역량들은 그 간 지역 문화계의 타성에 젖은 분위기를 어느 정도 환기시켜주고 있다. 더불어 장르예술이나 청년문화라는 틀에서 벗어나 창조도시, 생태, 사회적기업 등과 융복합하며 보다 합리적인 프로세스와 체계를 가진 기획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런 흐름은 세련되고 프로페셔널한 기획이라는 장점과 동시에 애초 가지고 있던 약간 모자란 듯한,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가능한 날 것의 에너지를 거세하는 모순된 효과를 낳는다. 이런 측면에서 10년이란 역사를 가지고 이제는 어느덧 전국적으로도 이름이 알려져 자칫 무게 잡고 뭔가 판을 키워볼 수도 있을 재미난복수가 오히려 다시 날 것의 에너지와 좌충우돌의 판 깔기로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더욱 선명하게 내세웠다는 점은 사뭇 인상적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자칫 자기들만의 파티처럼 보일 위험도 있지만 준비과정에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네트워크를 더 끈끈하게 하고 행사와 공연을 스스럼없이 즐기는 모습은 이 축제가 3일 동안 반짝하고 사라질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이후의 일상 속에서 단단하게 이어지며 다음을 준비하게 되리란 확신을 갖게 만들었다.

 

축제 첫 날인 8월 10일 오후 5시, 도시철도 장전역에서 출발한 일본의 ‘Clown Army’ 팀의 퍼레이드와 함께 시작한 제로페스티벌은 이후 부산대 정문 앞 광장에서 14팀의 공연과 라이브 페인팅 그리고 참여단체들의 부스가 진행됐고 다음날인 8월 11일 토요일에는 부산대학교 정문 앞 광장에서 전국의 다양한 단체들의 부스운영과 공연, 그리고 온천천 야외광장에서의 퍼포먼스와 5개의 실내 공간에서의 공연, 독립영화상영, 전시가 진행됐다. 마지막 날인 8월 12일 일요일 역시 토요일과 같은 방식으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진행됐다.

전반적으로 야외행사는 개선의 여지가 좀 있어보였다. 아무래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불특정다수에게 노출되는 야외공연이나 행사들은, 청년문화가 가지고 있는 일종의 폐쇄적이고 마니악(maniac)한 특징들이 단점으로 작용하게 마련이다. 물론 그럼에도 청년문화의 패기와 에너지를 평소 잘 접할 기회가 없던 사람들에게 노출시키고 함께 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역시 의미가 있겠다 싶지만 그럼에도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기획이니만큼 보편성에 대한 고민, 즉 골목에서 광장으로 나가는 것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하지만 역시 주특기랄 수 있는 실내행사들은 예상보다 훨씬 성공적으로 치러진 느낌이었다. 공간마다 컨셉들도 잘 잡혔고 실험적이며 전위적인 공연들이 각 공간마다 뜨거운 호응 속에서 진행됐다. 재미난복수 10년 활동의 노하우와 엑기스를 가감 없이 보여준 행사들이었다. 3일 내내 부산대 인근에서는 어느덧 클럽과 공간들을 이동하는 라인이 형성됐고, 외국과 다른 지역에서 온 예술가들이 스스럼없이 여러 공간들을 돌아다니며 서로 교류했으며 전혀 특별하다거나 일정 등에 쫓기는 느낌 없이 늘 그랬던 것처럼 편안하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지속됐다.

 

 

타성에 젖어 진부해진, 여기저기서 비슷하게 행해지는 여러 축제나 행사 등에 대한 전반적 정리는 여전히 요원한 시점이지만 모두가 서울이나 외국으로 떠나야만 성공할 거라 생각하는 부산 문화 판에서 참 우직하게, 한편으론 장난스럽게 지역에 남아 진짜 문화란 게 어떤 건지, 나아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뭘 할 수 있을 건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이들의 축제는 말 그대로 ‘사심 없이’, ‘제로’ 의 상태에서 즐길 수 있어서 특별했다.

내년, 내후년에도 또 ‘제로’ 라는 이름을 붙일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생기와 활력은 언제나 그 곳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사심 없는 제로의 상태에서 함께 할 수 있도록 이끌 것이다. 웰메이드보다는 날 것 그대로의, 젊음 특유의 다소 거칠지만 그래서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그 문화적 활력을 내년에도 기대해본다.

 

참조: http://blog.naver.com/zerofestival, www.agit7436.com

 사진출처 : 부산제로페스티벌 2012 사무국

 

  

필자소개 _ 98년, 홍대 앞을 중심으로 한국 인디1세대 록밴드 앤Ann 보컬로 활동. <소년의 철학>(“2010 학교도서관저널 추천도서”) 등 몇 권의 책을 썼고, 현재 지역문화지 <안녕광안리> 편집장, 사회적기업 <부산노리단&달록>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 중이다. 사회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문화사회학을 강의 중이며 경남MBC에서 4년째 매주 주말 비주류 음악들을 소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