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free)뷰] 우리 동네 이야기

2013. 2. 21. 19:33Feature



우리 동네 이야기


글_성지은


- 제가 사는 동네는 서울 어드메입니다. 이곳에는 젊은 직장인들과 신혼부부들을 위한 원룸과 작은 빌라가 있고, 이곳에서만 30, 40년을 살며 자식들을 키워낸 어머니, 아버지들이 구석구석에 살고 계십니다. 아주 작은 재래시장도 있고 오래된 동네에서나 볼 수 있는 이발소나 양장점도 보입니다. ‘동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려지는 이미지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곳이 우리 동네가 되기까지에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여기에는 동네 친구도 없었고 동네 단골 슈퍼나만의 아지트도 없었으니까요. ‘동네라는 말은 원래 자기가 사는 집의 근처라고 합니다. 이 동네는 분명 내 몸이 사는 곳, 내가 사는 집의 근처입니다. 그렇지만 내 마음이 사는 곳이 되어, “이곳이 우리 동네야라고 말하기까지에는 마음이 이곳에 좀 더 익숙해져야 했습니다. 마음은 이사를 한다고 해서 그렇게 쉽게 옮겨지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오히려 한동안 저에게 우리 동네는 홍대 앞 이었습니다. 지금은 클럽과 카페, 맛집으로 가득 찬 관광 명소가 되어버렸지만, 10년 전, 20년 전만 해도 젊은 예술의 거리였던 홍대는 지금보다 작고 조용하고 낮았습니다. 즐겨 찾는 카페, 공연장, 갤러리가 있었고, 지나가다 한 번 씩 꼭 들르는 옷가게나 놀이터가 있었습니다. 홍대 앞이라는 동네 밖에서는 언제나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걸어야 했지만, 그 안에서는 아무런 이유 없이 거리를 걷고 멈추고 바라보아도 괜찮았습니다. 나 이외에 다른 사람들도 느릿느릿 걷고 있었고, 커피를 마시며 공상을 하고 있었고,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비록 그곳이 내가 사는 곳은 아니었지만 내 마음이 머무를 수 있는 곳이었고, 그래서 참 자주 찾았던 것 같습니다. 나와 비슷한 모든 사람들에게 그곳은 우리 동네였을 것입니다.

홍대 앞 동네의 결말은 다들 아시겠지요. 너무 뻔한 동네가 되었다는, 뻔하디 뻔한 결말입니다. 아기자기한 분위기는 상업화의 도구가 되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작은 카페는 유명 카페가 되었고, 이어서 큰 카페나 술집에게 먹혔습니다. 홍대 앞을 우리 동네로 만들었던 가난한 사람들은 집값이 싼 곳을 찾아 합정, 상수, 망원, 연남동 등지로 퍼져나갔고, 이제는 홍대 주위의 그 동네들이 우리 동네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지금의 홍대는 아주 재미있는 우리 동네일수도 있습니다. 화려하고 매끈한 인테리어의 가게들, 고급스럽고 맛있는 음식들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이니까요.

그렇다면 나는 왜 이전의 홍대 앞을 더 좋아하는 것일까 생각해봅니다. 그것은 아마도 예술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특이한 동네 분위기 때문일 것입니다. 미술대학과 인디음악씬 덕분에 자유로운 예술가들이 모이게 된 홍대 앞에서는 여러 부류의 재미있고 반짝이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고, 그들과 함께 유유자적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 덕분에 홍대 앞에서 <거리미술제>, <독립예술제><프리마켓>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예술은 이윤이나 효율성, 빠름 같은 목표가 아니라 상상력으로 가득 찬 삶을 꿈꾸고, 예술을 즐기는 사람들도 다 함께 꿈을 꿀 수 있도록 해 주니까요.



▲ 1998년 첫번째 독립예술제 포스터


- 10년 전 홍대 앞의 꿈꾸는 예술가들은 자본의 힘 앞에 동네를 떠나야 했지만, 오늘 상수, 망원, 연남의 꿈꾸는 예술가들은 자본보다 한 발 앞서 자신들의 동네를 만들고 지키고자 합니다. 벌써 세 번이나 진행된 <상수, 당인 아트 훼스티발>(공식블로그 blog.naver.com/somedayfesta)이 그 예입니다. 이전에 홍대 앞 예술공간들을 엮었던 <홍벨트 프로젝트>동네보다는 창작공간에 주안점을 두었다면, 이 훼스티발은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동네 주민들도 끌어안으려 합니다. 그래서 통장님, 부녀회와 함께 운동회, 영화상영회, 공연을 열고, 음식을 만듭니다. 그렇게 해서, 상수에서 살다시피 하는 이상한 예술가들과 정말 상수에서 살고 있는 평범한 주민들은 서로 점차 친해졌을 것입니다.

예술과 동네의 통합은 비단 홍대 앞에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홍대가 변질된 이후 소위 색다른 공간의 후속주자가 되어버린 이태원, 한남동 일대에서도 아직 남아있는, 또는 새로 생겨나는 다채로운 공간들을 중심으로 <사이사이 프로젝트>(홈페이지 saisaiya.co.kr)가 열렸습니다. 인쇄물과 체험 행사 등으로 다양하게 진행된 이 프로젝트에서는 한남동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작은 창작공간뿐만 아니라 그 곳 토박이인 슈퍼 주인아저씨처럼 동네의 오랜 역사를 경험하신 분들도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사생대회나 백일장 등을 통해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좀 더 동네와 친해지고 자기 마음에 동네를 담을 수 있었습니다.


▲ 제3회 섬데이훼스타 <와글와글 활력운동회> 포스터


▲  사이사이에서 그린 한남동 지도


▲  사이사이 매거진에 소개된 한남동 합덕수퍼


- 서울에는 이 외에도 고유한 특색을 가진 많은 동네들이 있습니다. 홍대 앞이 미술이나 인디음악 등 독립예술의 색깔을 가지고 있고, 한남동이 그 바통을 물려받은 동시에 디자이너 사무실이나 빈티지 샵, 외국인 거리 등 조금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 대학로는 전통적으로 연극인들의 동네였고, 인사동은 순수미술의 동네였습니다. 이렇게 동네에서 머무르고 있는 각각의 예술 덕분에 그 동네는 다른 곳과도 구별되는 자신만의 분위기를 갖게 되고, 또한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가지각색의 작품들로 다양한 색깔을 띄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으니, 모두 시간이 갈수록 점점 다채로운 빛깔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홍대 앞이 상업화되어 온갖 프랜차이즈 카페와 술집으로 넘쳐나듯, 대학로도, 한남동도, 인사동도 서로 비슷한 모습이 되어 갑니다. 이런 흐름은 그 동네에서 만들어지는 예술에도 영향을 끼친 듯합니다. 동네가 예전보다 유명해진 만큼 예전보다 많은 수의 음악, 연극, 그림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렇지만 잘 팔릴 만하게 포장되어 서로 비슷해 보이는 음악, 연극, 그림이 만들어지고 보여집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이름만 북카페인 카페를, 소재만 다르지 온통 신파 일색인 연극을, 비슷한 색깔에 비슷한 구도를 가진 그림을 봅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느꼈다고 뿌듯해하며 나서지만, 사실 정말로 무엇을 느꼈는지, 무엇이 나의 마음을 두드렸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야말로, 그 동네의 판이 넓어져 우리가 갈 곳은 많아졌지만, 실상 우리가 마음을 둘 판은 좁아진 것과 같습니다. 그곳에 마음 둘만한 곳이 없어졌다면, 과연 그곳을 우리 동네라고 불러도 되는 것일까요.


▲ 대학로 위성사진 (http://map.naver.com/index.nhn?pinTitle=%EB%8C%80%ED%95%99%EB%A1%9C&pinType=site&pinId=13491247&mapMode=1)


- 한남동에서 일어나는 외계인의 습격을 다룬 김이환 작가의 <동네전쟁>에서는 그 동네에서만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어 외계인을 무찌릅니다. 싼 값에 반지하에서 살고 있는 남자, 한남동에서 슈퍼를 하는 부모님을 둔 토박이 여자, 아프리카와 인도에서 돈을 벌러 온 이주 노동자들, 온갖 멸시와 오해를 받는 트랜스젠더, 이슬람 모스크 근처에서 부모님과 함께 사는 무슬림 여자아이, 그리고 골목 구석구석을 점령한 길고양이와 동네 강아지들입니다. 이들은 어쩌면 평소에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이유 때문에 한남동에서 살게 되었지만, 같은 동네 주민이기 때문에 서로 알게 모르게 연결되어 있고 결국은 외계인을 무찌르는 데에 각자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 소설에서 나온 한남 동네의 모습은 언젠가 찾았던 한남동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었습니다. 친구와 함께 이슬람 모스크를 찾아 나선 길에는 트랜스젠더바와 게이클럽들이 대낮의 낯선 모습으로 늘어져 있었고, 모스크 근처로 갈수록 한국말을 쓰지 않는 이슬람 음식점들이 나타났습니다. 이국적인 거리를 걷다보니 어느새 다시 한국의 평범한 동네가 시작되었는데, 그곳에는 어릴 때에 보던 것과 같은 시장 치킨집, 피아노 학원, 미장원 등이 나란히 서 있었습니다. 그 사이사이에서 재치있는 이름의 카페, 아기자기한 디자이너 샵, 사무실 등을 발견하고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모습에 눈길을 떼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어딘지 모를 한남 동네를 한참동안 지나다니다 큰길을 찾아 나왔더니 한남 오거리 정류장이었습니다. 몇 시간동안 발로 밟은 거리를 마음 속에 그려보니 모자이크처럼 재미있는 풍경이 되었습니다. 서로 다른 모습들이 절묘하게 맞아 들어가고, 그 안에서 하나의 동네가 되는 것이 보였습니다.


▲ 내가 그린 한남동 지도


예술이 만들어주는 우리 동네의 모습도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다른 사람들이고 때로 서로에게 무관심하지만 그러한 다른 모습들을 인정하고 지켜봐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 그리하여 내 몸과 마음이 머물러 있을 만한 곳. 예술이 다채로움을 끌어안아 동네들을 만들었듯이, 앞으로는 그러한 다채로움으로 동네들을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렇게 우리 동네들이 더 많아지고 넓어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