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극단 동 ‧ 무의식 제스처 연기 기술 공연&워크숍

극단 동 월요연기연구실

무의식 제스처 연기 기술 공연&워크숍

-제스처를 통한 인간 이해

 

제스처의 대물림

글_김해진

두 명의 배우가 대화를 나누며 제스처에 대한 발표를 한다. 손에는 대본이 들려있다. 미리 계획된 대화이다. 팸플릿에 그려진 굴삭기와 사람의 그림을 언급하기도 한다. 그림 속에서 굴삭기와 사람은 따로 서 있다가 점차 하나가 된다. 각 그림 아래에는 제스처는 무엇인가? 제스처는 어떻게 실행되는가? 제스처를 어떤 의미로 읽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차례로 적혀있다. 그렇다. 그 질문들에 간략한 답을 하듯이 남녀 배우는 서로에게 묻고 답한다.

미국의 리얼리티 쇼 피어 팩터(Fear factor)’에 등장하는 여자의 동영상도 보여준다. 화면 안에서 여자는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벌레를 먹는다. 찡그린 표정, 웅크린 어깨, 경직되어 굽은 손가락들……. 벌레 먹는 여자의 제스처다. 끔찍이 싫으면서도 상금을 타겠단 일념 하에 생겨난 희한한 제스처 되시겠다. 성적인 매력이 풍기는 풍만한 몸매의 여자가 남자를 유혹하는 몸짓도 보여준다. 어깨와 엉덩이의 움직임이 과장돼 있다. 뒷걸음질 치면서도 시선으로는 사람을 당기는 듯하다. 유혹하는 여자의 제스처다. 발표하던 남녀 배우는 화면 속의 여자가 몸으로 남자를 유혹한 경험이 많을 것이라고, 그래서 어쩌면 지식을 쌓을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까페에서 화장을 하는 여자의 모습도 보여준다. 타인의 시선에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면서 전화통화도 하고 콘칩 과자도 먹더니 남자 종업원의 얼굴을 보고 난 후에는 목소리도 자세도 몸짓도 바뀌었다. 외부 자극에 의해서 제스처가 바뀌었다는 것에 발표자들은 주목했다 

공연을 보기 전에는 관객들이 함께 몸을 움직여보는 연기 워크숍인 줄 알았다. 그래서 일부러 바지를 챙겨 입고 갔었는데 그런 워크숍은 아니었다. 관객들이 객석에 앉은 채로 대화에 참여하는 방식이었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관객들이 모둠을 지어 대화를 나누고 한명씩 대표로 나가 모든 사람들 앞에서 공연에 대한 생각 혹은 자신의 생활 속 제스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들 스스럼없이 즐겁게 말했다. 나는 호감을 가진 남자와 즐겁게 대화한 다음날 나도 모르게 차갑고 경직된 표정으로 그 남자와 다시 마주쳤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편안하고 즐겁게 웃고 얘기하던 몸짓이 다소 쌀쌀맞아 보일지도 모르는 몸짓으로 바뀌었던 건 그날의 내 머리스타일이나 입고 있던 옷, 화장 등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그러니까 타인의 앞에서 취하게 되는 내 제스처에는 타인이 나를 이렇게 볼지도 모른다는 의식 혹은 무의식이 깔려있었던 것이다. 더 추적해서 들어가자면 타인의 시선(외부 자극)과 타인이 자신을 이렇게 볼지도 모른다는 짐작 혹은 두려움(내부 자극 1)과 은연중에 자기 자신을 평가하는 시선(내부 자극 2)이 뒤엉켜서 (사람들 앞에서 말하진 않았지만, 게다가 그 남자 옆에는 어떤 여자가 함께 서 있었다!) 황금같은 마주침의 순간(?)을 망치고야 말았던 것이다. 흠흠, <무의식 제스처 연기 기술 워크숍>을 들으며 내 속에서 호출된 이야기는 이쯤 하고 이번에는 공연 <소녀>(원작 전성태 낚시하는 소녀, 유은숙 각색연출)에 대해 적어보자 

사실 공연의 내용이 당혹스러웠다. ‘제스처를 통해서 인간을 이해해보자는 의도’(2부 워크숍 중에 배우에게서 들었다.)와는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 속에서 쉬이 접할 수 있는 제스처가 깃든 내용일 거라 예상했지만, 공연의 내용은 성매매를 하는 여자와 그녀의 딸, 여관을 운영하는 엄마와 그녀의 딸의 이야기이다. 네 인물들은 서로 얽혀 있다. 그런데 제스처를 환기시키기에는 극의 내용이 너무 강하게 도드라져서 공연은 전체 구성에서 마치 독립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만약에 공연만 따로 보았다면 전혀 다른 경험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배우들의 몸짓은 적나라했는데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성매매 전에 여자가 팬티를 벗는데 피가 흥건하게 묻어있다. 그 전에는 음부를 오랫동안 긁었는데 치마 속에서 손을 빼자 역시 피가 묻어 있었다. 여관집 딸내미는 성매매 중 후배위를 하는데 호흡과 신음소리, 몸의 흔들림이 (배우는 상대 배우 없이 혼자서 연기한다.) 정교하고 사실적이다. 이 밖에도 자신을 정화시키려는 듯 음부에 햇빛을 쬐는 여자. 그런 엄마에게 사랑을 받고 싶지만 매번 거절당하는 아이. 다 큰 딸의 수저에 김치를 얹어주는 또 다른 엄마. 그런 애정이 갑갑해서 노이로제에 걸린 딸. 모든 인물들을 형성하는 이유가 분명하고 또 그에 따르는 제스처도 밀도가 높다. 인물들의 행동을 보며 알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거나 더럽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성매매의 행위가 주요하게 등장하고 이때 몸은 도구화되기 때문이 아닐까. 인물들은 자신의 몸을 타자화 혹은 객체화하고 있다. 이것이 무의식 제스처 연기를 함께 이야기하려는 전체 구성에서는 다소 빗겨난 맥락이라고 생각했던 것인데…….

가만, 몸이 도구화된다고? 다시 팸플릿에 그려져 있던 굴삭기와 사람의 그림이 떠오른다. 처음에 굴삭기(도구)는 사람과 떨어져 있었지만 점차 서로 붙더니 합체가 되어버리지 않던가? <소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렇다면 원래는 가지고 있지 않았던(혹은 분리돼 있던) 몸의 습관을 자신에게 붙여버린 건가? 여기에 심리적인 원인이 본드처럼 가세해서 아예 찰싹 달라붙어버린 것인가

 

 

그래서였을까. 공연을 보는 중에는 마음이 무거워지고 답답했는데 공연이 끝나갈 무렵에는 중요한 한 가지를 발견한 것 같아 고개가 끄덕여졌다. 심리적(무의식) 제스처가 <소녀>의 인물들 사이에서 대물림되고 있는 상황을 보게 된 것이다. 물론 작품에서 소녀가 남자에게 유인당해 엄마가 누웠던 자리에 눕게 되는 건 사건을 통해 벌어지는 상황이지 (당연히) 유전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들의 생활 반경 안에서 어떤 제스처와 가까워지기 쉬운지에 대해서는 워크숍에서 이야기해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비록 그때는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라 지금 글로 적고있지만 말이다.

인상적이었던 건 딸이 (폭력적으로) 섹스를 경험하고 난 후 엄마가 그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엄마와 딸 사이에 일어나는 터치이다. 엄마는 이전에 아이의 터치를 귀찮다는 듯 거절했었다. 아마도 원치 않는 임신을 통해 낳은 아이인 것 같았다. 아이의 치마를 들쳐본 후 절망하고 화를 내고 울부짖는 듯한 몸짓을 보이는 엄마에게 아이는 다가가서 얼굴을 문댄다. 모녀의 터치인데 묘한 분위기가 풍긴다. 애무 같기도 하고 애증 같기도 하다.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의 몸짓에서 처절함이 보이기도 하고 성적인 느낌이 비치기도 한다. 복합적인 감정들이 이들의 제스처에 섞여 있다.

여관집의 밥상 풍경도 기억에 남는다. 딸의 수저에 김치를 얹어주는 엄마의 몸짓과 눈빛은 따스하다기보다는 집착으로 보였다. 그런 엄마의 시선을 느끼면 딸의 몸은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음식을 삼키지 못하고 체한 것처럼 낯빛이 흐려진다. 목이 막혀 기침을 한다. 여관을 운영하는 터라 엄마는 딸을 더욱 단속하지만 역으로 딸이 해방감을 느끼는 건 성매매 행위를 통해서다.

2부 워크숍을 진행하는 동안에 내가 속한 모둠에서는 배우들은 무의식적으로 공연했나라는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물론 배우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배우들이 철저히 의식적으로 연구했던 시간을 공유한 자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들은 공연의 내용보다는 인물들의 몸짓과 액션과 리액션의 역학관계에 주목해주기를 바라는 눈치였지만 실은 좀 어려운 일이기는 했다. <소녀>의 원작인 낚시하는 소녀를 쓴 전성태 작가가 관객으로 공연을 보러 왔는데, 자신의 작품은 이보다는 밝다면서 관객들을 웃게 했다. 타로 강사로 활동하신다던 또 다른 관객은 ‘<무의식 제스처 연기 기술 공연&워크숍>이라는 형식이 무척 신선하고 근사해 보여 찾아오게 됐는데 예상과는 다르다.’면서도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해 묘하게 활기찬 기운을 이 공연에 불어넣었다

 

**** 사진제공_극단 동

김해진_ haejinwill@gmail.com

 판단하기보다는 경험하기 위해 글을 쓴다. 공연예술을 보며 한국사회를 더듬는다.

 2013년에는 인천아트플랫폼에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