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도시횡단프로젝트 광주

 

<광천시민아파트로 가...><유랑축제-광주 침묵의 시간들’>

- 2013년 광주에서 1980년 광주를 바라보다

 

글_전강희

도시횡단프로젝트 광주<광천시민아파트를 가..><유랑축제-광주 침묵의 시간들’>이 공연되는 장소는 나의 유년시절의 배경화면 같은 곳이다. 첫 번째 장소인 광천동은 중학교 3년 내내 버스를 타고 등하교 하면서 매일 바라보았던 곳이고, 두 번째 공연 장소인 금남로는 고등학교 시절 3년 동안 걸어서, 또는 버스를 타고서 지나던 곳이었다. 그시절 그 장소들이 나에게 기념할 만한 강렬한 추억거리를 남겨주지는 않았다. 두 장소 모두, 버스가 그곳을 지나가면, ‘곧 학교다. 내릴 채비를 해야한다.’ 정도였다. 평범한 일상 속에 붙박이처럼 항상 있는 곳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모습을 조금씩 바꿔 가기는 했지만, 지도의 표기를 바꿔야 할 정도로 급격하게 변화를 맞은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이 장소들이 사라지면, 내 유년의 소소한 기억들도 사라질 것이다. 버스를 타고 창밖을 바라보다 무심하게 유년시절을 추억하는 호사는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닐 것이다.

 

<광천시민아파트를 가..><유랑축제-광주 침묵의 시간들’>은 개인의 기억을 넘어, 805월에서부터 시작된 광주의 기억을 다루고 있다.

 

<광천시민아파트를 가..>

 

23일 두시 반에 시작한 공연인 <광천시민아파트를 가..>는 광천동 성당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성당은 당시 노동자들과 가난한 학생들이 공부를 하던 들불야학이 있던 곳이다. 그때 공부했던 어린이들이 현재의 시간 속에 모습을 드러낸다. 새로 오는 선생님을 마중나가려고 모인 것이다. 선생님을 보러 관객에게 함께 가자고 외치듯 노래를 시작한다. 관객이 아이들을 좇아 좁을 골목들을 비집고 들어가면, 어느새 광천시민아파트 다동에 이르게 된다. 광천시민아파트는 625 피난민과 농촌실향민 들이 모여살던 판자촌이 있던 자리에 69년에 지어진 공동연립아파트이다. ‘들불야학은 성당의 교리실 이외에도 이곳에서 방을 빌려 학생들을 가르쳤다. ... 세 동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곳은 오랜 세월의 흔적 탓인지 직사각형 시멘트 건물이라기보다 넓은 마당이 있는 마을 회관같은 느낌이다. 아마도 아파트 화단에서 장에 내다 팔 채소를 기르고 있는 나이든 아주머니 때문일 것이다. 아파트 화단이라기 보다 마을 옆에 있는 텃밭이라고 하는 게 더 옳은 표현일 것 같다. 그녀는 이곳에 사는 주민으로 분한 배우 이당금이다.

 

 

배우는 실제 나동에 살고 있는 어르신의 이야기를 대신 들려주고 있다. 이웃들 이야기, 채소를 팔아가며 아이들을 키워 학교에 보낸 일, 그리고 그 아이 중 하나가 군인에게 끌려가던 일까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숨박꼭질 하듯 아이들을 따라오며 잠시 동심의 세계에 빠져 있던 관객들은 공포스러운 5월의 한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군인들에게 빌며 쫓아 가는 어머니의 뒤를 따라가다 이번에 닿는 곳은 다동이다. 관객들은 다동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다. 실제로 사람이 사는 방, 예전의 모습을 간직한 방, 이곳 사람들의 역사를 전시한 방 들을 거쳐 옥상으로 올라가면 국악 연주회가 열린다. 과거와 현재의 공간들을 지나 옥상에 다다르면 전통적인 가락과 현대적인 가락이 어우러진 음악소리가 들린다. ‘높은 곳을 향하여’, ‘새로운 문’, ‘배띄워라등의 퓨전 음악들이다.

 

 

공연이 끝나고 다시 마을의 광장으로 내려가면, 과거의 한 장면처럼 이수일과 심순애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실제 동네 어르신들과 같이 한참을 웃고 떠들다 보면, 다시 5월의 어느 날로 돌아간다. 그때 사라진 이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어르신 두분이 고도를 기다리며의 도도와 디디처럼 정면을 응시한 채 나동의 발코니에 서있다. 그들의 기다림 때문이었는지 사라진 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등불야학의 선생님이었던 김영철이다. 살아있었다면 그의 시간이었을 날들을 덤덤하게 보여준다. 8명의 예술가들과 예술감독이 함께 만든 이 공연은 연극, 전시, 음악회라는 각각 독립된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이질적으로 튀어나오는 공연은 없다. 공연의 모든 이야기가 광천아파트에서 흘러나온 것과 같이, 이들이 보여주는 예술의 결도 그 곳이 담고 있는 이야기와 조화로운 소리를 낸다. 이들의 고민과 의지가 엿보여 감동이 배가 된다. 공연의 동선은 다음과 같다.

 

 

이 공연의 마무리는 아파트의 주민들이 맺어주었다. 마침 이날이 보름이었던 것에 맞추어 공연팀에서 음식을 준비했고 주민들은 기꺼이 동참해 주었다. 어르신들이 음식을 먹고 마시며, 웃어 주셨을 때, 그들의 아픈 사연을 몰래 엿들은 것 같은 불편함과 죄책감이 안도로 바뀌었다. 관객도 함께 웃으며, 먹고, 마셨다. 5월의 아픈 기억들을 제의를 치르듯 모두가 함께 나누었다.

 

<유랑축제-광주 침묵의 시간들’>

사진: 최옥수, 제공: 도시횡단프로젝트 광주

 

이 공연은 같은 날 8시 금남로 전일빌딩에서 있었다. 광천아파트가 광주 최초의 아파트라면, 전일빌딩은 최초로 엘리베이터가 있던 건물이다. 이 건물은 머지않아 허물어진다.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는 것이 아니라, 도시 계획에 따라 녹지나 주차장이 될 예정이다. 초등학교 때 이곳에서 열렸던 합창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동상을 차치했었다. 그 후에도 또 나간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유치원때 이곳에서 열렸던 그림그리기 대회에도 나갔던 것 같다. 이 기억이 나에게 특별한 것이 아닌 이유는 광주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있는 일반적인 기억이기 때문이다. 뭔가 튀지 않는 외형에 회색빛인 건물은 기억에 강렬하게 각인되지 못했다. 그 건물은 그냥 그렇게 언제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건물은 전라남도 도청을 마주하고 있다. ‘화려한 휴가모래시계에 나오는 시민군의 저항이 있던 곳이다. 전일빌딩은 튀지 않는 평범한 얼굴, 바로 모두의 얼굴로 그날의 일을 지켜보았다.

공연은 전일빌딩 1층에 모이는 것으로 시작한다. 명단에서 이름을 확인하면 마스크를 착용하고, 소형라이트를 들고서, 열 명씩 조를 나누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어떤 층으로 올라간다.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바퀴벌레들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배터리로 움직이는 작은 모형들이지만, 길을 막고서 자신들이 건물의 주인양 사람들의 발길을 다른 곳으로 향하게 한다. 벌레를 피해 다른 방향으로 몸을 틀면, 먼지 위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물건들과 물이 새는 음침한 화장실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다 자동차 앞에 서 있는 한 여인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벽면에 투영된 아름다운 열대섬을 바라보며 서있다. 하지만 그녀가 벽면의 야자수 나무를 모두 찢어 놓았을 때 관객이 목격하는 것은 그날의 도청이다. 시민군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치듯 벽면에 투사된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지 못하는 그녀의 고통이 전해진다. 사라져가는 그녀를 따라 다른 방으로 들어가면, 또 다른 여자를 만나게 된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이다. 이 신부는 이미 백발의 노파가 되어 버렸다. 자신처럼 시든 부케, 낡은 와인잔, 깨진 촛대 등을 가지고 아직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의 괴기스러운 인형같은 모습은 심각한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게 작은 웃음을 자아낸다. 슬픈데도 웃음이 나는, 무어라 명명할 수 없는 감정은 그녀가 오월의 행진곡을 피아노로 연주할 때에는 온전히 서글픈 것으로 변하게 된다. 피아노 소리는 총소리가 나고, 핏빛 종이 조각이 화려하게 공중 위에서 떨어질 때 끝이 난다. 바닥에 그녀의 웨딩드레스가 끌려나가는 영상이 투사된다.

 

사진: 최옥수, 제공: 도시횡단프로젝트 광주

 

전일빌딩은 그날의 아픔에 대해서 침묵할 것을 강요받은 개인들의 고통을 드러낸다. 이 공연은 전화벨이 울리고 건물이 무너지니 밖으로 나오라는 말과 함께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공연의 공간이 무대에서 공공역역으로 확대된다. 전일빌딩과 도청 사이에 놓인 도로와 광장이 새로운 무대가 된다. 건물 밖으로 나오면 침대 하나가 높이 솟아있고, 어떤 여인이 잠에서 깨어나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 공연에 참가하지 않은 일반시민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녀는 과거에서 낯선 곳, 현재로 공간 이동을 한 것이다. 과거를 정리하지 못한채로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왔다. 그녀가 느끼는 당황스러움은 그녀를 바라보는 모든이들의 것이기도 하다. 그녀를 쫓아가다보면, 장난감 탱크로 시민들에게 비비탄을 발사하는 청년을 만난다. 그가 조정하는 장난감 탱크는 돌연 방향을 바꾸어 그 청년을 향한다. 탱크가 방향을 바꾸어 그 청년을 다시 조준하는 광경은 우리의 과거가 곧이어 도래할 미래를 만나는 장면이다. 그 장면 넘어 폭죽이 터지는 불꽃놀이 장면도 우리의 아픈 과거이면서, 동시에 빛나는 미래가 될 것이다. 퍼포머들은 한 사건, 한 공간 안에 과거와 미래를 병렬 시킨다. 과거와 미래 사이의 현재를 채우는 것은 지금, 여기를 살아가고 있는 관객들이다. 과거를 기억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을 치러내야 하는 것은 관객/시민의 몫이다. 갑자기 큰 폭발음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 전일 빌딩의 옥상을 바라보면 그곳에 한 사람이 서 있다. 그는 마치 건물의 일부인 것처럼 우아하게 하강한다. 관객은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목격한다. 그 무너져내림은 슬프지도 아프지도 않다. 그저 아름다울 뿐이다. 한 시대가 막을 내리는 것을 슬퍼하기보다는 앞으로 나아가야 함을 말하기라도 하듯이 아름다운 곡선으로 활강한다.

 

사진: 최옥수, 제공: 도시횡단프로젝트 광주

 

관객인 우리는 슬픔에만 잠길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전일빌딩의 파편에 새겨진 기억1처럼, 바퀴벌레처럼 오래도록 살아 남아야 한다.

 

 

<광천시민아파트를 가..><유랑축제-광주 침묵의 시간들’>은 기획자와 예술가 들이 함께 만든 작품이다. 이들은 공연이 완성되는 마지막 퍼즐 조각을 관객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들은 관객의 자리를 보는자가 아닌 참여자의 것으로 남겨 놓았다. 보는자로서 함께 할 수 있는 집단적인 경험이 참여자로서 누리는 사적인 체험으로 확장된다. 과거와 미래 사이, 현재를 채워 넣어야 하는 임무는 공연이 끝난 후에도 지속된다. 관객은 예술가들이 담당했던 창작자의 몫을 넘겨 받게 된다. 작품의 공동저자가 된것이다. 2013년에서 바라본 1980년의 광주는, 2013년 이후, 그 다음 시간 속에 놓여있을 광주를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야 하는 가에 관해서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보는자가 아닌 참여자로서 공연의 일부가 된 관객은 시간이 흐른 후에도 오늘/과거를 기억하며 계속해서 작품의 여백을 채워나갈 것이다.

 

**본 리뷰는 전방위 문화잡지 <칸투어Contour> 5권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