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2013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를 다녀오다

2013. 6. 5. 09:14Feature

 

퀴어문화축제 the QUEER, "우리가 있다"

 "퀴어 퍼레이드" 를 기다리며

@ 홍대앞 걷고싶은거리 

 

글_정진삼

 

게이라서 행복해요! 거리를 가득 메운 수많은 퀴어들이 외칩니다. 함께 참여한 일반인(?)들도 목소리를 높입니다. 레즈라서 행복해요!! 즐거워서 어쩔 줄 모르는 예쁘고(!) 멋있고(!!) 특이한(?) 옷차림과 얼굴들. 여기는 홍대 앞 ‘걷고 싶은 거리’. 퀴어문화축제의 퍼레이드가 진행되고 있는 현장에서 호들갑 리포터가 축제의 열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퍼레이드를 떠난 무리를 기다리면서 부스를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수의 퀴어들을 만나본 적은 처음인데요, 내 안에 부족한 다양성 에너지가 한꺼번에 충전된 느낌입니다. 퀴어‘봐’서 행복해요!!

이 곳은 한국의 퀴어를 대변하는 여러 갈래의 그룹과 커뮤니티들이 줄지어 부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활동을 알리고, 작품을 전시하며, 입법을 위한 청원 사인을 받는 등의 모습이네요. 걷고싶은 거리의 끝에는 무대가 마련되어, 퀴어들의 퍼포먼스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코스프레(?)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의상과 분장을 한 캐릭터들이 거리를 누비고 있구요. 그러나 이들은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현실에 엄연히 존재하는, 인물들이라는 것!

 

 

무대 위의 드랙(drag : 여장남자)은 곱상하고 요염한 포즈로 걸그룹의 노래에 맞춰서 안무를 행합니다. 이들은 관객들에게 변장으로 인한 웃음을 주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실제로 자신의 개성과 매력을 발산하기 위해 무대에 선 것이기에 다소 진지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합니다. 퀴어들은 섹시(sexy)함을 강조하는 걸그룹의 댄스음악을 전유하여, 그들의 여성성을 드러내는데 사용합니다. 일부 관객들에게서 나타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그 난감함이 실로 재미있습니다. 퀴어한 액션에 따르는 퀴어한 리액션이 필요할 때!

 

 

퀴어queer는 사전적 의미로 ‘이상한, 괴상한, 수상한’ 이라는 풀이를 갖고 있습니다만, 이제는 주로 동성애자를 칭하는 명사로 사용됩니다. 퀴어무비, 퀴어소설, 퀴어만화 등등 대중문화에서 동성애 코드를 다루는 말을 떠올려보면 되겠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퀴어’ 는 ‘동성애자’ 보다는 ‘성(性)의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 라는 표현이 적합하겠지요. 게이, 호모,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드랙퀸, 바이섹슈얼 등등 다양한 성적 존재들을 아우르는 표현입니다.

 

 

‘퀴어’ 는 페미니즘+철학자 주디스 버틀러에 의해 적극적으로 사용되었답니다. 인간의 성이 모호하고 다양하며 변화무쌍하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성적 이분법에 의해 희생되고 있는 성적 소수자들의 존재방식에 힘을 실어주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지요. 주디스 버틀러는 인간의 성(역할)은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적극적으로 수행함으로써 나타나는 것이라고 하면서 동성애자와 양성애자, 복장도착자 등을 설명해냈답니다.

 

 

한국에서는 전통적인 가부장 이데올로기를 타파하고자, 1990년대부터 퀴어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 혹은 전략적으로 - 받아들였는데요, 기존 질서에 대한 대항담론으로 수용된 탓인지 본의 아니게 퀴어의 존재들이 정치적으로 과격하거나 혹은 특이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허나 퀴어는 당연하게도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존재들이지요. 다만 그 숫자가 ‘소수’ 일뿐. 물론 이번 축제에서는 자신들의 존재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한껏 멋을 부리고 예쁘게 치장했답니다. 축제의 주인공이 바로 이들이니까요.

호들갑 리포터는 지금 퍼레이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게이 퍼레이드로 알려진 이 대규모 퍼포먼스는 유럽과 북미, 그리고 남미의 도시를 중심으로 시작되었고, 이제는 호주와 아시아의 대도시에서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다문화적 이벤트가 되었지요. 앗, 이제 퍼레이드가 도착합니다.

 

 

축제에 모인 퀴어들은 존재(의 행복)론을 설파하는 동시에 정치적인 메시지 또한 함께 전합니다. 자기 자신을 변화시킨 경험을 지니고 있는 퀴어들은 이제는 세상을 바꿈으로써, 더 큰 행복을 나누고자 합니다. 나를 인정하라는 구호와 세상을 바꾸자는 외침이 강한 어울림이 되어 들려옵니다.

아마도 이러한 선언적인 의식은 기존 사회의 가치들을 재배분하고 통합을 중개하는 '의사당' 식 정치가 아니라, 가치의 가짓수를 늘리고 그 양을 확대시키는, 그리하여 화합이라는 미명아래 소외되었던 가치들을 다시 불러내는 ‘데카당’ 식 정치라고 할수 있겠지요. 따라서, 여러 목소리로 제각각의 주의주장을 펼치면서, 참여자의 숫자를 불려서 앞으로 나아가는 행진은 ‘퀴어’ 의 본질과 정신이 ‘외화' 되어 나타난 액션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홍대에서 벌어진 이번 축제에서는 상당수의 외국인들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 어느 장소보다도 외국인이 많은 홍대 앞이지만, 이번엔 그 성격이 조금 달랐다고나 해야 할까요. 번화가 명소를 둘러보기 위해 방문한 관광객이나 불금, 불토를 즐기기 위해 기웃대는 외국인이 아니라, 진정한 ‘퀴어’ 로 자발적으로 참여한 축제인의 인상이 강했습니다.

따지고보면 ‘인터내셔널’을 표방하는 수많은 예술축제에서 이보다 많은 그리고 이보다 열정적인 외국인 관객들을 마주할 수 있을까요. 이들은 여기에서만큼은 이방인-손님이 아니라 현지인-주인같은 모습이었답니다. ‘퀴어’ 그 자체가 축제의 콘텐츠가 되니 소수자들은 아무런 진입장벽없이 함께 어울릴 수 있었지요. 어떤 작위적인 연출이나 강조 없이도 열린 공동체를 구현해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축제에 나온 사람들은 앞서 언급한 성소수자와 외국인 그리고 일반인만은 아니었답니다. 휠체어를 밀고 나온 신체 장애인들과 반려동물을 데리고 나온 사람들, 현재진행형의 투쟁을 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여성문제를 주장하는 페미니스트 등등, 기득권-남성-가부장의 저편에 있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홍대 앞 거리를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홍대 앞에서 발견하는 홍대 앞다운 모습이었습니다.

한편으로 홍대 앞이 예술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공간이었 ‘었구나’ 하고 과거형으로 회상하게 되는 점이 참 애석합니다. 지역+예술+운동이 결합된, 그리하여 아름답고 활기찬 독립-예술-씬들이 태동하고 만개했던 - 불과 몇 년 전의 - 홍대 앞이 이런 식으로 그리워질 줄이야. 홍대의 열기와 에너지는 이제 불금과 불토에 클럽과 고깃집에서만 나타나는 줄 알았는데.

 

 

한편으로는 서울을 제외한 지역에서 살고 있는 성소수자들의 사정이 궁금합니다. 이태원과 홍대 앞이라는 공간조차 없는 곳에서 퀴어들은 어떻게 그들을 드러낼까요. 타인의 부자연스러운 시선이 굳건히 존재하는 이 땅에서, 그들은 아마도 퀴어의 존재성을 가상세계(온라인)를 통해서만 드러내거나, 혹은 원치 않는 장소에서 은밀한 만남을 행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달리 말하면, 바로 이러한 소수자의 고민을 드러낼 수 있는 자리로써 ‘축제’ 의 존재와 그 기능은 더욱 중요한 것이겠지요. ‘대낮’ 과 ‘거리’ 라는 시공간을 확보한 ‘축제’ 야말로 이들의 존재를 인증하는 공식적인 자리니까요. (참고로 이 행사는 서울에 이어 대구에서도 벌어진다고 하네요)  

 

 

성소수자들의 ‘표현의 자유’ 는 예술가의 그것과 닮았습니다. 과거보다는 미래를 기획하고, 사상적 금기에 도전하고, 새로운 미(美)의식으로 무장하는 것이 그러하지요. 그러고 보면 입장도 참 비슷합니다. 자기가 좋아서 한다는 점. 수행 행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는 점, 그리고 평가받기에 앞서 존재성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점. 이러한 점들로 인해 퀴어 축제는 그 어떤 예술축제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의 관객참여와 다문화성과 그리고 축제성을 달성해냈다고도 볼 수 있겠지요.

 

 

오랜만에 홍대앞-스러운 모습에 과한 호들갑을 떨었나 봅니다. 오늘의 퍼레이드와 파티로 로 인해 14회 퀴어문화축제는 거진 다 흘러갔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올해는 공공지원금 없이 순수 ‘민간’ 축제로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발력있고 짜임새있는 진행을 보여준 것이 놀랍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축제다운 축제를 외면해버린 정부기관의 무관심이 더 놀랍습니다) 아무래도 그것은 ‘퀴어’ 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 를 비롯한 지금, 여기의 가부장들이 조금 더 ‘퀴어’ 해질 때까지!! 남은 축제의 행사와 앞으로 펼쳐질 사진 축제들을 기대하고 응원합니다. 퀴어, 만세!

 

***본 기사의 사진은 개인의 초상권 보호를 위해 당사자 및 관련자의 요청에 의해 삭제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인디언밥은 퀴어문화축제 사무국에서 제시한 촬영 및 취재 준수사항을 숙지하였습니다. 

 

 

 the queer by you. 성소수자는 학교를 다니고, 직장에 근무하며, 사회를 살아갑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당신의 옆에는  언제나 성소수자가 있어왔습니다.

 the queer with you. 성소수자는 학교의 친구이고, 직장의 동료이며, 사회의 구성원입니다. 성소수자는 지금을 살아가는 모든 당신과 언제나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the queer in you. 우리 학교, 우리 회사, 우리 동네, 우리나라의 안에는 성소수자가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며 당신이 속해지는 모든 ‘우리’의 안에는 언제나 성소수자가 존재할 것입니다.

 the queer far from you? 1993년,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하였습니다.초동회가 시작되고 이후 친구사이와 끼리끼리가 시작되며 음지에 묻혀 사회에 속해 있지 못한 존재로 인식되었던 성소수자들이 스스로의 권리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2013년, 그로부터 20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배제와 소외를 겪기고 하였고, 차별을 경험하기도 하였으며,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고,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의 존재가 부정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선데이서울의 가십으로, 다큐멘터리의 소재로, 연예인의 커밍아웃으로, 인권단체의 행동으로, 스스로의 당당한 목소리로 성소수자는 이 사회에 꾸준히 그 존재감을 알려왔습니다. 성소수자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성소수자는 언제나 당신의 옆에 있어왔고, 언제나 당신과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언제나 당신들의 안에 존재할 것입니다.

 

 

 2013 퀴어문화축제 초대의 글

2000년 시작된 퀴어문화축제가 14회를 맞이했습니다. 퍼레이드의 참여인원이 비교할 수 없게 늘었고 영화제, 각종 관련 전시, 파티 등의 프로그램도 다양화되는 등 지난 13년간 순수 민간참여 축제로서 대견하게도 성장해왔습니다.

매해의 축제가 쉽게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올해의 축제는 유난히도 어렵고도 힘든 과정을 거쳤습니다. 민간단체의 행사개최에 있어 큰 힘이 되는 기금에 선정되지 않아 예산상의 어려움을 겪었고 행사장소 섭외의 어려움이 유난히 커 행사 일정의 확정에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사회는 변화하고 발전해 가고 행사의 규모는 날이 갈수록 커지는데 우리의 환경은 그에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에 우울하기도 하고 행사의 존폐기로에 대한 위기감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굴해 좌절하고 포기할 수는 없기에 2013년에도 어김없이 퀴어문화축제는 개최됩니다.

비록 2주간의 짧은 기간이지만 우리의 자긍심은 마천루에 비할 수 없으며, 행복한 참여의 기억은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힘이 될 것입니다. 축제의 개최를 위해 십시일반 도움을 주신 모든 후원자 여러분과 마음 깊이 응원해주시는 이 땅의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여러분을 퀴어문화축제로 초대합니다. 즐겁고 행복한 기억을 가득 가져가실 수 있을 것입니다.

 조직위원장 : 강명진

 조직위원 : 김조광수, 김현구, 박성준, 한채윤

 퍼레이드 기획단 : 강진하, 레나, 리인, 서섬, 엔지, 현주, 홍기훈

 파티 이벤트 기획단 : 류시형, 마리나, 성규, 새로, 우야, 인디, 조앤, 칼로

 사무국 : 신군

 홈페이지 : 경민

 포스터/편집디자인 : 안지

 자원활동가 : 혜진, 봄, 한혜인, Dreamer605, 현아, 임미정, 전석지, 말글, 유서진, 설지은, 곽수진, 쟆, M.T.I., 준량, 어레스트, Leah, Young, 김도영, 김고기, 박정은, 강송욱, 이비, 김지현, 임정은, 마로, 오엘, 양소영, 날들, Crystal, 초코버리, 정도형, 레기, 김연경, 안송이, JUDE, 이은지, 정다슬

 서울LGBT영화제

 집행위원장 : 김조광수 | 프로그래머: 김승환, 홀릭 | 초청팀: 이지연 | 사무국: 유오남

 퀴어문화축제 웹페이지 바로가기 >>> http://www.kqcf.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