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연극 <베를린 알리바이 - ‘나는’ ‘베를린에’ ‘있다’

2013. 9. 17. 08:56Review

[2013 서울프린지 페스티벌 자유참가작]

 

‘나는’ ‘베를린에’ ‘있다’

- 연극, <베를린 알리바이>

 

글_유햅쌀

어쩌면 이 글은 베를린을 경유하는 존재의 투어 일지입니다. (* 시티 투어의 장소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이름들을 굵게 표시했습니다.)

2013년 9월, 베를린. 투어가 시작됩니다. 우리는 여기에 있습니다. 베를린이라는 무대 위에는 4개의 기둥, 두 개의 상자가 있습니다. 우리의 투어가이드는 이 도시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유학생 정시호 씨입니다. 그가 우리를 이끌고 투어를 하는 여행의 안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베를린에서 생활하는 초등학교 동창 미술작가 이부희 씨 입니다. 시호 씨는 부희 씨가 많이 그립나보네요. 전화하고, 약속하고 또 전화하고 약속하는 과정이 계속해서 반복됩니다. 이 모든 것은 부희씨가 일방적으로 약속을 미루거나 취소하는 탓입니다. 시호 씨는 자기의 마음을 몰라주는 그녀 때문에 초초해 보입니다. 그의 불안이 관광객에게도 느껴졌달까요.

저는, 아니 우리는 베를린에 있습니다. ‘포츠다머 플라츠’, ‘소니 센터’를 지났습니다. ‘브란델부르크 문’과 ‘필하모닉’도 구경했어요. 그리고 베를린 장벽에 다다랐습니다. 무대 위를 채우던 4개의 기둥은 조각 조각 부서진 베를린 장벽이 되어 우뚝 솟아 있습니다.

 

 

아,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여기는 이부희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는 전시회장입니다. 저기 큐레이터가 걸어오네요. 이부희 작가의 ‘현존재’라는 작품을 설명하는군요. 컴퓨터 속의 친구들과 당신, 다시 말하면 작가의 온라인 친구들과의 관계를 여러 개의 구와 선으로 연결시킨 일종의 미디어 아트, 그런 셈이죠. 저도 이부희 작가(facebook.com/buhee.le)와 페이스북 친구가 되었습니다. 다른 관객들도 스마트폰을 켜고 바로 친구를 맺습니다. 세계와 개인들은 그렇게 관계를 잇습니다. 아, 스크린 너머로 ‘현존재’가 움직이고 있네요. 참여하는 관객들이 늘어날수록 ‘현존재’는 계속해서 복잡해지고 커다랗게 변화합니다. 관계맺기를 통해 무한히 확장되고 확대될 수 있습니다. 공연장, 아니 베를린, 아니 이 커다란 우주에서 말이죠. 저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이라는 작품도 보이네요. 4개의 기둥이 이부희 작가의 작품으로 변신합니다. 기억과 이미지들이 이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다시 작품으로 재탄생시킵니다. 아, 저기 스크린에 이부희 작가가 나오네요. 그녀는 오직 스크린 속에만 존재합니다. 전시장에는 직접 나타나지를 않아요. 아마도 자신의 존재를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 탓이겠죠.

베를린 어느 술집. 시호 씨와 친구가 맥주 한 잔 걸치고 있네요. 시호 씨 고민이 많군요. 초등학교 시절 유일하게 그의 존재를 발견해 준 친구는 부희 씨 였답니다. 이를테면 첫사랑 같은 거네요. 그런데 그녀는 시호 씨 앞에 도통 나타나지 않습니다. 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어요. 9개월 동안 38번, 매달 4번꼴로 약속을 바꾸니 말이죠.

시호 씨 친구의 의심. 어쩌면 모든 답은 온라인 안에 존재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부희 씨에 대한 의심은 그녀의 페이스북과 말들의 행적을 거꾸로 밟는 것으로 바뀝니다. 부희 씨의 페이스북에는 베를린에서 지내는 그녀의 일상 사진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녀의 ‘현재’를 시점으로 하는 글과 사진들이 왜곡되고 조작되어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어린 시절 희경이라는 이름을 썼던 그녀가 부희로 이름을 바꾼 것처럼, 시간과 공간을 표현하는 언어들을 태그하는 간단한 방법을 통해 부희 씨의 ‘지금 여기’는 통째로 바뀌어버립니다. 그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베를린에 말이죠. 그런데 그녀는 존재하고 있습니다. 페이스북 베를린 태그 안에요. 부희 씨는 계속해서 자신이 베를린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자주 간다는 도시의 카페는 공사가 한창이고, 그녀가 찍었다고 말하고 있는 사진들은 구글 검색만으로 쉽게 얻을 수 있는 화질이 낮은 것들뿐인데도 부희 씨 주변 사람들은 그녀가 베를린에 산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습니다.

시호 씨 친구의 말처럼 부희 씨는 어떤 이야기를 겨냥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나는 베를린에 있다’라는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말이죠. 작가에게 ‘어디’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물리적 시공간을 초월한 관계들로 이뤄지기도 하고, 작가의 그림처럼 내면에서 이뤄지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부희 작가에게는 작품이 설치되는 장소보다 작품을 보여준다는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그녀는 오직 영상통화와 스크린이라는 가상에서만 자신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물리적 ‘만남’에 쉽게 응할 수 없으며 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지요.

 

 

시호 씨의 방. 이제 커다란 논쟁이 시작됩니다. 부희 씨와 시호 씨, 전화통화가 한창입니다. 다툼이 있습니다. 경험적이고 느낄 수 있는 것과 실존 사이의 대립일지도 모릅니다. 부희 씨가 말하는 흄의 철학과, 시호 씨가 공부하는 하이데거 철학의 말들이 이 둘의 상황으로 전개됩니다. 부희 씨의 세계관은 그녀가 언급한 대로, 흄의 그것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경험론자인 흄에 의하면 개별적 현상과 자기 자신이 사고하는 인과관념은 이질적인 것입니다. 흄은 인과관계에는 필연성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부희 씨의 페이스북을 통해 그녀가 베를린에 있다고 믿는 지인들처럼, 사람들은 인과관념에 필연성이 있다고 믿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어떤 체계(지식, 학문)가 완성되는 것이지요. 마치 부희 씨가 ‘나는 베를린에 있다’가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말이죠. 한편으로 하이데거를 공부하는 시호 씨에게 존재란, 하이데거의 세계 안에서 실존하는 것입니다. 하이데거가 언어를 개인의 내면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닌 존재의 바탕이자 근원이라고 본 것처럼 언어는 존재를 표현하는 발화된 것입니다.

여기서 <베를린 알리바이>는 묻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한 개인은 어느 시간과 공간에 실재하는가.” 그리고 그 질문은 부희 씨가 베를린에 거주하는가, 아닌가를 넘어 베를린에 실재하는가, 아닌가의 차원으로 확대되기에 이릅니다. 감정적 혹은 감각적으로 아는 것, 관계 맺는 것, 그리고 온라인 공간에서 클릭 한 번으로 맺어지는 관계들은 개인의 선택이 아닌 ‘그럴 것이다’라는 인지로 이어집니다. SNS에는 또 다른 ‘나’가 수도 없이 존재합니다. ‘보여 주기’와 ‘보기’가 혼동되어 어떤 사람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죠. 우리는 이제 실재와 실존의 형태를 알 수 없지만 아는 것으로 만들어냅니다. 어쩌면 그것이 현대 사회 ‘현존재’의 형태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앞선 질문들은 시호 씨와 부희 씨의 유럽 장학생 선발 면접 자리에 잠시 들렀다가 다시 전화통화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뒤이어 부희 씨의 아픈 상처(아버지의 재혼), 과거와 함께, 베를린에 거주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맙니다.

 

 

그리고 투어의 마지막 종착지,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에는 이야기의 마지막이 담겨 있습니다. 이 공간에서 드디어 베를린 시티 투어는 끝이 납니다. 시호 씨는 하이데거 공부 대신 경험론을 더 공부하기 위해 영국 유학을 결심하게 됩니다. 부희 씨는 장학생이 되고요. 두 주인공의 영원히 팽팽할 것 같은 ‘개인의 실존’에 관한 논쟁들은 ‘언제 ’, ‘어디’라는 질문 보다는 ‘왜’라는 질문을 던져야만 하는 당위, 혹은 그 질문을 생각하는 과정을 지시하면서 다차원적인 사고로 확장됩니다.

이즈음 4개의 기둥이 유대인 박물관으로 변합니다. 박물관 안 홀로코스트 타워는 역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공간에서 용서와 망각과 기억은 교차하지 않습니다. 이부희 작가는 이 공간과 관련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가스실로 들어가는 유대인들이 저항하지 않은 이유는 ‘보복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고통의 순간을 견딜 수 있는 방법’이 그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더 넓고 밝은 미래를 본 것이라고.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폭력적인 상황에 대한 대처 방법으로 환원시킵니다. 어쩌면 폭력에 대한 기억은 유대인들의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것이기도 하며, 전쟁 당시 독일의 것이기도 하며, 박물관을 방문한 관광객의 것이기도 하며, 미래의 것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시간과 공간을 선택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이제 그것들은 결코 절대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시간은 과거에 사람들이 믿었던 것처럼 결코 선형적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공간을 이제 그 물리성을 차츰 벗어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 시공간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연극 <베를린 알리바이>는 기술의 발달해도 존재가 망각되기보다는 오히려 인식과 경험에 의한 새로운 존재가 탄생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존에 대한 연극적 실험을 통해 ‘당신은 어디에 있나요?’라는 질문은 베를린이라는 공간의 기억 혹은 망각, 폭력, 실존의 문제로 환원됩니다. 마지막 이야기의 봉합, 최종 목적지에는 이런 말이 떠돕니다. ‘언제 어디에 있는 지보다는 왜라는 질문이 중요하다는 울림’ 말입니다.

 

*사진제공 : 서울프린제 피스티벌 / 사진촬영 : 가림토 (김명집) 

  필자_유햅쌀

  소개_시트콤같은인생살이를위해, 재미진무언가를찾습니다. 인간은유희적동물이니까요.  

  

 

 기획의도

 현대 사회에서 한 개인은 어느 시간과 공간에 실재하는가. 소셜 네트워크와 모바일 기기의 발달로 개인은 시시각각 본인의 위치와 생각을 공유하고, 업로드되는 내용을 통하여 주변 지인들은 한 개인을 인지하고 관계하게 된다. 이는 더이상 개인의 선택이라기 보다는, 극단적으로는 지인들의 감각적인 인지와 무비판적인 인정을 통하여 개인의 존재가 정의되기도 하는 재미있는 현상이다. Project HaVokA는 이러한 현상에 착안하여 이번에 무대를 베를린으로 옮겨 재미있고 독특한 실험을 진행하여 실재하는 개인에 대한 새로운 물음을 제시하고자 한다.

 

 작품설명 "Ich bin ein Berliner.(나는 베를리너입니다.)"

 독일의 베를린. 독일의 철학과 유학생 정시호는 베를린 생활 중 우연히 자신의 초등학교 동창인 미술작가 이부희가 베를린에 와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호는 어린시절의 그리운 친구를 십수년 만에 만날 수 있다는 기대에 가득차지만 계속되는 부희의 일방적인 약속 취소 때문에 9개월 동안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 페이스북과 영상통화를 통해서만 부희와 대화해오던 시호는 결국 부희의 말들과 온라인에 업로드되는 내용들에 의심을 품게 되고, 여러가지 정황들을 조사하다가 부희의 과거와 가족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독일로 초대되어 시내를 투어하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이부희의 개인전이 열리는 미술관과 시호의 방을 오가며 시호와 부희의 이야기를 감상하게 된다. "베를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출연진/제작진

 작_김재동 / 연출_장병욱 / 이부희_은혜정 / 정시호_이현응 / 태정+큐레이터+목소리_ 윤현종

 미술감독_김지연 / 음악감독+연주_윤현종 / 조명디자이너_김재원

 영상디자이너_서상욱 / 그래픽디자이너_최지영 / 무대제작_이미연 / 스텝_최미라 /  조연출_송현희 

 

 아티스트소개 “해보카 프로젝트”

 'HaVokA'는 '파괴자'라는 의미로 기존의 정형화된 형식이나 틀을 깨고 창조적 파괴를 통하여 새로움을 추구하는 크리에이티브 팀으로 "우리가 세상을 한번 바꿔볼까?"하는 야심차고 진취적인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서울대 출신의 젊은 연출가와 기획자를 주축으로 하는 HaVokA Project는 Project-base로 참신한 스탭과 배우를 구성하여 새로운 형식과 내용의 실험을 진행합니다. 2013년 초 후원금 모금을 통해 진행된 첫 프로젝트 연극<다음 방으로>의 성공적인 실험극을 시작으로 이제 막 공연예술계의 첫 걸음을 출발한 HaVokA Project는 이번 공연 <베를린 알리바이>를 통해 더욱 진취적인 실험을 진행할 예정이며, 향후 작업이 더욱 기대되는 단체입니다.

 2012. 7. HaVokA Project 결성

 2012. 10. 연극 <다음 방으로> Project 프로덕션 구성

 2013. 1. 연극 <다음 방으로> 공연 / 소아암환우돕기 기부 (후원금 일부)

 2013. 8. 연극 <베를린 알리바이>

 홈페이지 바로가기 : https://www.facebook.com/havoka.pj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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