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삶은, 죽음에 대하여 노래하고, 죽음은 삶에 대해서 노래한다.’ - 영걸즈

2013. 9. 27. 19:56Review

 

서울프린지페스티벌2013 <튼삶, 영걸스럽게.>

삶은, 죽음에 대하여 노래하고, 죽음은 삶에 대해서 노래한다.’ - 영걸즈

 

_ 곽준성

이번 2013년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자유참가프로그램 중 음악 부문에서는 25개의 공연이 있었고, 나는 그 중에서 영걸즈<튼삶, 영걸스럽게.>를 찾아갔다. 영걸즈는 신미(shinmi)와 히나인(heenain)이 결성한 싱어송라이터 여성 듀오 그룹이다. 사실 클래식 음악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같은 날 공연되었던 서정적 전위, <피아노 프리즘>이 더 구미가 당기는 프로그램이긴 했지만, 내 선택은 영걸즈였다. 사실 그 이유가 음악적인 것은 아니었다. 영걸즈의 음악을 들어본 적도 없었고(이번 공연이 영걸즈라는 이름을 내건 프로젝트로는 최초의 것이었다), 섣불리 그들의 음악이 어떠한 것이라고 재단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 선택의 근거는 순전히 그들이 명시한 기획의도에만 있었다.

 

                              

 

인간의 욕망 그리고 유혹, 체념이 빚어진 삶이란. 그로 얻어지는 기쁨과 슬픔, 고통과 쾌락이 만들어내는 것 모두 삶 아니겠는가. 삶이란 뭘까. 삶은 계란처럼 어디서나 깨지기 쉽다. 사람사이에서도 그렇고 막연히 꿈으로만 간직하던 희망이 그렇다. 깨져버린 약속이나 기대에서 겪는 이중성에서도, 순수했지만 간사해져야 살아질 때 역시 자신을 깨버려야 자기파괴가 된다. 사람은 늘 자신이 깨어 있음을 알아야 하지만 가슴을 흔드는 좋은 글귀나 미사여구는 동네 전단지의 광고문구로 전락한지 오래, 진정으로 도움 될 만한 것 들은 우리 주위에서 쓰레기가 되었다. 실타래와 같이 얽히고 섥힌 LIFE를 주제로 인생의 ---[희로애락]을 찾으며. (<튼삶, 영걸스럽게.> 기획의도 전문)

 

싱어송라이터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음악을 세상에 내놓을 때, 그들이 취해야 할 포지션은 무엇일까. 다른 대중가요가 으레 채택하는 사랑이나 일상의 이야기는 너무 가볍고 식상하다. 혹은 보다 거창한 의도를 가지고 음악으로 세상을 바꾼다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면, 청중들이 부담스럽게 느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은 어떤가. 인생에 대한 성찰, 회고 - 사실 이 주제야말로 다른 예술 분야가 아닌 음악이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전문 분야다. 작품에서 주어진 내용을 수용자들이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음악이라는 예술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만의 세계로 들어가도록 한다. 그러므로 만약 영걸즈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다시 말해 그들의 음악을 통해 우리가 잠시 멈추어서 삶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할 수 있다면, 이 공연은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프로그램은 희노애락이라는 시놉시스에 따라 Intro, , , , 락의 5가지 곡이 준비되었다. 그러나 실제 공연에서는 4곡만 연주된 것으로 느껴졌다. Intro‘Keyboard solo’라고 명시되어 있는데, 연주할 때는 키보드 솔로가 어느 정도 이어지다가 중단 없이 합주로 이어졌다. 명백한 종결 이후의 곡은 였기 때문에, 아마 Intro와 희가 이어졌던 것으로 예상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앵콜에서 영걸즈는 를 들려주겠다고 하고 키보드 솔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이 부분은 다소 혼란스러운 점이 있다. 이런 부분을 차치하면, ‘는 분명 즐거운 곡이었다. 다만 이 즐거움이 끝없는 환희나 열광의 감정은 아니었고, 영걸즈의 말을 인용하자면, ‘소탈하면서도 편안하다’. 가장 중심이 되는 멜로디도 복잡하지 않게 으뜸화음의 동기를 활용하여 소박한 울림을 남겼다. 다르게 말한다면 그만큼 충격적인 부분은 없었다. 그 곡이 관객들에게 인생의 기쁨이란 과연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숙고할 만한 인센티브가 되지는 않았다.

 

                 

 

에서는 키보드를 치던 히나인이 무대 뒤로 가서 실루엣만 보이면서 춤을 췄고, 신미는 베이스의 저음역대를 오가면서 둔탁하면서도 거친 음표들을 연주했다. 그리고 에서도 마찬가지로 히나인은 여전히 춤을 췄고, 신미는 우쿨렐레를 집어들었다. 사실상 의 구분은 신미의 악기에 의존했다. 분노의 감정은 사랑의 아픔과 그리움 등을 기반으로 했고, 슬픔의 감정은 우쿨렐레의 본고장인 하와이의 과거사 - 우리의 일제식민통치 시절과 마찬가지로 식민지의 아픔을 겪었던 국가로서의 역사 - 를 연상케 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미리 유심히 확인하지 않았다면 차이를 발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악기의 변화를 통해 주위를 환기시켰다는 점은 퍼포먼스의 측면에서 괜찮은 판단이었다.

 

를 마치고 나서 약간 길게 느껴지는 휴식 이후에 으로 이어졌다. 슬픈 음악 다음에 바로 밝은 음악으로 넘어가기에는 충분한 휴지가 있어야 한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퍼포먼스를 하느라 고생한 히나인이 물 한 모금 마실 여유는 있어야 했다. ‘에 들어서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람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음악은 제법 흥겨웠다. 키보드는 경쾌한 동기를 지속적으로 연주했고, 다소 몽환적인 느낌의 독특한 화성 진행들이 이어졌는데, 이는 히나인이 자신에게 감명을 주는 예술가로 인상주의 음악의 거장인 드뷔시를 거론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물론 이러한 분위기가 곡 전체를 지배하진 않았고, 말 그대로 즐거울 락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음악을 들려주었다. 하지만 뭔가 보컬이 시원하게 고음을 불러줄 것 같았지만 결국 중저음역대에서만 머물렀다는 점은 아쉬웠다.

 

공연이 길진 않았다. 예상 러닝타임은 40분으로 되어 있었지만 거의 30분 정도로 해서 끝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걸즈는 자신의 기획의도를 찬찬히 설명하고(다만 그 내용들은 프로그램에 이미 명시되었던 내용이긴 했다), 앵콜로 다시 한 번 연주하는 것으로 공연을 마쳤다.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마쳤으니,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야겠다. 우리는 이들의 공연을 통해 인생의 희로애락을 생각할 수 있었는가? 이에 대해서는 제한적으로는 그랬다고 대답해야겠다. 분명 프로그램의 곡들이 개별적으로는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그렇지만 도대체 이 곡들이 어떻게 '희로애락'이라는 대주제로 연결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었다. 대개 이러한 모음곡의 컨셉에서는 외적 유사성과 내적 유사성을 지적할 수 있다. 외적인 것은 음악이 얼마나 동질적으로 들리는지, 전체적인 형식에서 통일성을 찾을 수 있는지의 문제 등이며, 내적인 것은 기획 의도에서의 구조적 유기성이나 음악에 담겨있는 사상의 유사성 문제 등이다. 여기에서는 그 어느 것도 찾을 수 없었다. 이를테면 에서 로 갈 때, 그들의 음악은 그저 ’ - 성냄, 분노와 ’ - 슬픔, 고뇌의 분위기를 내는 듯한 두 곡을 병치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요컨대 튼삶, 영걸스럽게.’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음악을 기억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제시한 기획 의도와 공연이 충분히 부합하지 않았다는 점이 이들의 음악을 평가하는 유일한 잣대가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사실 영걸즈라는 이름의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고, 신미와 히나인 둘은 원래 각각 독자적인 아티스트였음을 생각해본다면, 이들의 행적을 추적하여 그 기록의 어떤 부분에서 이번 공연과의 연관성을 지적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신미에 대한 자료는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반면 히나인은 2007년에 데뷔한, 상당히 그 활동의 기간이 오래된 아티스트였다. 그래서 나는 히나인의 작업 중 몇 가지를 여기로 불러내서, 그것들이 이번 공연, <튼삶, 영걸스럽게.>에 미친 영향을 확인하는 일을 하고자 한다.

 

                     

 

먼저 이번 공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히나인의 실루엣 댄스 퍼포먼스는 201112월에 발표한 싱글 아니야의 뮤직 비디오에서 이미 선보인 바가 있었다. 이 노래의 가사는 사랑을 잃은 여자의 처절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으며, 이는 분명히 와 연결된다. 다만 이 공연을 봤을 때는 이런 점을 의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니야의 뮤직 비디오의 안무와 이번 공연의 안무가 실제로 어느 정도까지 유사한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두 번째로는 20124월에 발표한 싱글 ‘I'm OK’. 이 곡에서 드러나는 밝은 정서는 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I'm OK’의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하강형의 동기가 에서 훨씬 단순한 형태로 활용된다는 점은 이 두 곡의 분위기를 구조적으로 유사하게 느껴지도록 한다. 다만 에서 가장 아쉽다고 느껴졌던 보컬의 시원스러운 고음의 부재는 ‘I'm OK’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노래의 키는 대단히 낮게 책정되어 있었고, 음역대는 알토의 것을 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공연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팻두(Fatdoo)와의 합작 앨범, ‘팻두천사와 히나인요정의 이야기나라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앨범의 전체적인 구성과는 별개로, 가장 인기를 얻은 곡은 일종의 번외곡이라 할 수 있는 죽은 친구와의 전화. 이 곡의 가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 ‘인간은 죽음의 노예다 결국 사라진다, 그래도 열심히 꿈을 꾸면서 살아간다’ - 이는 <튼삶, 영걸스럽게.>의 시놉시스인 삶은, 죽음에 대하여 노래하고, 죽음은 삶에 대해서 노래한다.‘와 대단히 유사하다.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필멸의 존재지만, 어쨌든 살아간다’. ‘죽은 친구와의 전화에서는 이 살아간다를 죽음에의 대척점으로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갔다면, 이번 공연에서는 그 살아간다를 희---락이라는 프레임으로 풀어서 말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정리하면서, 예술인이, 특히 젊은 싱어송라이터가 자신의 테마로 을 다루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가 너희가 인생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래?’라고 질문한다면, 어찌 되었든 답변하기는 껄끄러울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연장자들의 이야기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그들이 지금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면서 같은 고민을 하지는 않으니까. 결국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과거에 어떤 이들이 이미 충분히 풀어놓았다 하더라도, 지금 이 시대에, 바로 우리 세대의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해야 한다.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했는데, 나는 영걸즈가 그 일을 했다고 평가한다. 그들이 이후에 어떤 음악을 우리에게 보여줄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들이 <튼삶, 영걸스럽게.>의 이름으로 했던 고민들을 잊지 않고, 보다 다듬어진 형태로 그 이야기를 우리에게 다시 한 번 들려주기 바란다.

 

 

   2013 서울프린지페스티벌 <튼삶, 영걸스럽게.>

공연장소 및 시간  2013-09-11 19:30 요기가 표현갤러리    2013-09-12 19:30  요기가 표현갤러

출연진/제작진

작편곡,연주,퍼포먼스 / 히나인
작편곡,연주 / 신미

 

아티스트소개

  아티스트명 : 영걸즈
  홈페이지 : http://blog.naver.com/0girlz

영걸스 (0girls)
영걸스런 젊은 여자 둘.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인간의 영들이 모여 혼 빠지도록 하는 음악이 영걸스의 음악이다. 락큰롤의 기반을 토대로 프로듀싱과 작편곡, 연주와 퍼포먼스등 유쾌하지만 고독하기만한 감성 그대로를 표출해 내고자 하는 음악적 지론을 가지고 메세지의 전달과 실험적 연출을 모색한다. 신미(shinmi)와 히나인(heenain)은 음원 발매를 통한 지속적 음악 활동과 오랜 연주생활에 덛붙여 후배양성에 힘 쓰고있으며 알다가도 모를 세상 안에서 순수의것들을 지키고자 맞서는 젊은 청춘, 두여자 영걸스이다.

 

기획의도

인간의 욕망 그리고 유혹, 체념이 빚어진 삶이란. 그로 얻어지는 기쁨과 슬픔, 고통과 쾌락이 만들어내는것 모두 삶 아니겠는가. 삶이란 뭘까. 삶은 계란처럼 어디서나 깨지기 쉽다. 사람사이에서도 그렇고 막연히 꿈으로만 간직하던 희망이 그렇다. 깨져버린 약속이나 기대에서 겪는 이중성에서도, 순수했지만 간사해져야 살아질때 역시 자신을 깨버려야 자기파괴가 된다. 사람은 늘 자신이 깨어 있음을 알아야 하지만 가슴을 흔드는 좋은 글귀나 미사여구는 동네 전단지의 광고문구로 전락한지 오래, 진정으로 도움 될 만한 것 들은 우리 주위에서 쓰레기가 되었다. 실타래와 같이 얽히고 섥힌 LIFE를 주제로 인생의 喜-怒-哀-樂 [희로애락]을 찾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