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단상들] 청소년 리뷰 2 - 햄스터 살인사건

2013. 11. 13. 23:33Feature

청소년 리뷰 -2

<햄스터 살인사건> 리뷰

 

글_이효정

1025,26일 아리랑아트홀에서 '제1회 청춘나눔창작연극제' 대상 수상작 <햄스터 살인사건>이 공연되었다. 연극에는 단 다섯 명의 인물만이 등장한다. 자살을 하기 위해 연극의 배경인 모텔을 찾은 남학생과 여학생.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학생들에게 대우를 바라는 배관공과 학생들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주인아줌마. 그리고 단지 경찰이 아닐 뿐인 의경. 이 공연은 부조리극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창문 밖으로 떨어진 여학생은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오고 소파에 뿌린 사과 껍질은 다 타버리고 아침에는 아빠가 창문에 서린 김으로 머리를 감는 끔찍한 일 때문에 남학생이 괴로워한다. 연극이 끝나고 나서 어린 관객들은 그게 무슨 뜻이야?’라는 말을 반복했다. 사실 이 부조리한 이야기들은 모두 숨겨진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 부조리한 대사를 애써 이해하려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이 대사를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남학생은 집안이 발칵 뒤집힌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어른들의 세상은 청소년들에게 이 대사만큼이나 이상하고 부조리하며, 어른들에게 청소년은 이 대사처럼 이해할 수 없고 이해 해보려하지 않은 대상이다.

이 연극의 가장 큰 특징은 빛과 그림자를 적절히 활용했다는 것이다. 창문 밖으로 떨어졌다 돌아온 여학생은 주인아줌마에게 자신의 엄마를 닮아 기분이 나쁘다며 장도리를 들고 한 대만 때리게 해달라고 달려든다. 이 때 남학생이 손전등으로 여학생이 든 장도리에 빛을 비춰 무대의 어두운 벽에 그림자가 생기게 만든다. 장도리의 그림자가 커지고 작아지며 여학생과 주인아줌마의 난투극은 긴장감을 더한다. 객석에서는 작게만 보이는 장도리가 그림자에서는 사람보다도 크게 그려지며 연극에서는 볼 수 없는 클로즈업의 효과까지 가져다준다. 또한 이 그림자는 경찰청장 아들이라는 수식어에 이름을 잃은 남학생의 모습과도 비슷하다. 최성호라는 이름을 어둡게 그림자로 가려버리는 경찰청장 아들이라는 수식어는 남학생에게 장도리만큼이나 위협적이다.

극의 후반에서는 인물들이 자아를 잃고 방황한다. 처음에는 남학생이 배관공의 목소리를 내며 배관공과 자신이 대화를 하더니 배관공과 주인아줌마는 경찰 옷을 입고 나와 경찰행세를 한다. 그리곤 다시 여학생이 주인아줌마로 빙의해 등장한다. 여학생과 배관공으로 빙의한 남학생은 대화를 주고받다 어느 순간 다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온다. 배관공과 주인아줌마는 경찰이 되었고 두 학생은 배관공과 주인아줌마가 되었다. 이 시간에 어른들은 다른 어른이 되고 아이들은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이 자아 체인지의 시간에 어른들은 아무도 청소년이 되지 않았다. 이는 지금 어른들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도 결국엔 그와 똑같이 청소년들을 이해해보지 않으려는 어른이 되고, 그런 어른들은 절대로 청소년을 이해해보려는 마음을 가지지 못한다는 뜻이다.

어른으로 빙의를 했던 학생들이 다시 자신의 자아를 찾았을 때 모텔은 극이 시작할 때처럼 둘밖에 없는 고요한 공간이 된다. 둘은 처음처럼 자살할 방법을 찾는다. 여학생은 목을 매기로 하고 남학생은 총을 머리에 쏘기로 한다. 둘이 자살을 결심한 후 주황 색 조명이 켜진다. 마치 하루가 끝나는 무렵 지는 노을을 연상시키는 이 빛은 관객들의 마음을 울컥하게 한다. 너는 죽으면 무엇이 되고 싶은가 하는 물음에 남학생과 여학생은 창문, , 마루가 되고 싶다고 한다. 많은 청소년 관객들이 연극에서 이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말한다. 창문, , 마루는 서로를 물어뜯지 않는 것들이다. 사실 이 연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남학생이 키우는 다섯 마리의 햄스터이다. 극의 후반에서 경찰로 빙의한 배관공은 햄스터우리를 보고는 끔찍하다고 말한다. 서로 물고 뜯고 있는 것이 징그럽다며 구역질을 한다. 햄스터가 서로 물고 뜯으며 잡아먹는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연극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사람들도 햄스터들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외국인학교에 부정입학을 해 인터넷에서 유명인사인 남학생의 정체가 밝혀지자 배관공과 주인아줌마는 남학생을 앞에 두고도 부정입학에 관한 이야기들을 서슴없이 한다. 남학생은 자신을 경찰청장님 아드님이라고 부르는 경찰에게 화를 내며 자신은 자신의 이름이 있다고 소리친다. 철학자 사르트르는 이런 말을 했다. 유대인은 타인들이 유대인으로 여기는 사람이다. 남학생은 다른 사람들로 인해 자신의 이름을 잃었다. 여학생은 자살하기 전 엄마에게 햇빛이 따스하다고 마치 하느님이 나에게 내미는 손 같다고 의미심장한 문자를 보내지만 돌아오는 답장은 날씨도 좋은데 그냥 콱 죽어버려이다. 여학생은 죽기 전 자신을 한 번 돌아봐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여학생의 엄마는 마지막으로 내민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이처럼 여학생과 남학생은 자살을 선택하지만 사실은 같은 우리 안에 사는 사람들에게 햄스터처럼 잡아먹히는 것이다. 이것이 이 연극의 제목이 햄스터 살인사건인 이유이다.

필자_이효정

소개_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해보고 싶은 것에는 꼭 도전해 보아야 하는 성격. 현재 안양예술고등학교 연극영화학과 연출전공 1학년 재학중.  

 

 

<햄스터 살인사건>

일시: 2013. 10. 25. 금. 8시/ 10. 26. 토. 3시. 7시

장소: 성북구 아리랑아트홀

작품소개

청소년을 위한 시

극은 작은 모텔 방에, 이곳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고등학생 두 명이 등장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어린 학생들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죽음을 위해서다. 처음부터 모텔, 자살 같은 극단적인 말과 장면이 펼쳐지지만, 씁쓸하게도 낯설지 않다. 청소년들이 왜 죽으려 하는지 이유를 들어보지 않아도 그 이유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성적, 친구들, 가족들, 또 경제적인 문제 등 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는 어른들이 청소년들을 마음 깊이 이해하고 있어서가 아니다. 청소년이라는 이름으로 사회 속에 새겨진 이미지가 몇 개 안되기 때문이다. 최근에 자살이 하나 더 보태졌을 뿐이다. <햄스터 살인사건>도 이런 결말을 벗어나지 않는다. 처음 공연이 던져주는 강렬한 죽음 이미지가, 무대 한 쪽에 놓인 햄스터 우리를 발판 삼아 극 전체를 관통한다. 하지만, 불편하게도 이 작품을 보는 내내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극이 진행될수록 불편한 마음이 사라진다. 작가가 포착해내는 청소년의 예측할 수 없는 행동, 재기 넘치는 말이 보는 사람을 안도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매스컴에서 만나는 어른의 시선으로 편집된 청소년이 아니라 내 옆집에 사는 평범한 그 아이를 떠오르게 해준다. 텍스트가 무대 위 공연이 되면서, 불편한 감정이 미안함으로, 연민과 사랑으로 치환될 수 있는 여지를 곳곳에 만들어 주고 있다. 톡톡 튀는 대사와 아름다운 움직임이 기묘한 조화를 이루어내면서, 무거운 주제가 무거운 뉴스가 아닌, 울림을 주는 한 편의 시처럼 무대 위에 펼쳐진다.

_허선혜

연출_최여림

배우_배소현, 이현석, 이다영, 박알렉스, 설재영

예술감독_최영애

예술교육감독_황하영

음악감독_노선락

조연출_문올가, 송재영

무대디자이너_노민석

조명디자이너_조철민

의상디자이너_홍문기

무대감독_송재영

그래픽디자이너_박찬미

예술교육팀_박지혜, 이소선

조명오퍼_홍유정

음향오퍼_임지윤

기획_이가영, 박지명

객석감독_신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