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단상들] 청소년 리뷰 3 - 햄스터 살인사건

2013. 11. 14. 00:12Feature

청소년 리뷰 -3

청소년 연극 <햄스터 살인사건> 리뷰

 

글_정은호

 

여기 햄스터가 있다. 근본적으로 나약한 이 동물은 극 중 어른의 무책임한 발길질 한 번에 죽음을 맞는다. 극의 서사가 진행되면서 긴장감이 고조되어도, 이 불쌍한 짐승의 주검은 소외당한다. 연극 속에서도 마임처럼 배우의 연기로 대신 될 뿐, 인형이나 어떤 소품으로도 햄스터는 극 중에 등장하지 않는다. 일차적으로 이 작은 설치류들은 미약한 존재들이다. 허나 역설적이게도, ‘햄스터 살인사건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햄스터에 대한 이야기다. 가장 미약한 것이 주인공이 되었을 때 일어나는 아이러니가 연극 전체를 관통한다. 이 연극의 주인공은 5인의 등장인물 중 그 누구도 아니다. 바로 햄스터다.

남학생과 여학생이 햄스터 우리를 들고서 함께 모텔에 들어온다. 자살하기 위해서 그들은 모텔을 찾았다. 둘은 자살 방법을 두고 고민하기 시작한다. 어떤 것이 멋진 죽음일지를 고민한다. 마치 자살이 세상에 대한 통렬한 복수라도 되는 양 행동하는 그들의 모습에는, 삶의 결정권이 처음으로 부모나 다른 어른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졌음을 느끼는 청소년의 해방감도 포함되어 있다. 태어났을 때부터 현재까지 타인에 의해서 조종되어온 삶이 처음으로 주체적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안타까운 점은 그 아름다운 순간이 바로 자살이라는 것이다. 둘에게는 신났을 그 죽음의 분위기가 깨지는 순간도 결국 금방 찾아온다. 화장실 청소를 위해 그들의 방을 찾은 배관공때문이다. 그는 어른의 위상을 둘에게 확실히 각인시킨다. 고객인 둘에게는 옳은 서비스를 취해야함에도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업무를 게을리 하는 등 어른의 권위를 들먹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리다는 것은 약한 것이라고 못 박는 태도가 그들에게는 습관화되어있다. 참지 못한 여학생은 모텔의 여주인을 부르지만, 어른인 그녀도 배관공과 동일한 자세를 취하는 것은 같았다. 청소년은 어른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 거기에는 나이를 더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본인의 일방적인 편의를 합리화하려는 어른들의 비겁함이 깔려있을 것이다. 두 학생과 두 어른은 이제 본격적으로 서로의 권리를 주장하며 대립하기 시작한다. 조심해야 할 것은 이런 서사의 진행 속에서도 우리가 햄스터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청소년과도 동일시될 수 있는, 햄스터는 소외당해있다. 치열한 청소년과 어른의 공방 속에서 소외당해있는 햄스터는, 청소년도 누군가에게는 어른일 수 있고, 어른들도 누군가에게는 청소년일 수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기도 한다. 힘의 논리에 따라 복종만이 있을 수밖에 없는 햄스터의 현실은 씁쓸하다.

 

 

이후 극은 파격적으로 흘러간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 극 내부 인과의 흐름이 교란되는 지점도 이때부터다. 두 어른과의 싸움 속에서 분노한 여학생은 창문으로 몸을 던져 자살하고, 남학생은 그녀의 자살에 경악하는 어른들 틈에서 무슨 말이냐며, 애초부터 자신은 혼자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후 남학생이 퇴장한 사이 그녀가 창문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는 경찰이 들이닥친다. 어른들은 그녀의 죽음을 없었던 일이라며 해명하고 사체가 없다는 것을 빌미로 귀신에 홀린 것이라고 미숙한 경찰을 속이는 데 성공한다. 이후 햄스터 우리를 실수로 열어버린 그들은 달아나는 햄스터들을 잡다 그 중 한 마리를 실수로 밟아죽이고 만다. 남학생은, 목숨같이 아끼던 햄스터의 시신을 발견하고는 분노하여 가방에서 갑자기 경찰이었던 아버지의 총을 꺼내든다. ‘이라는 힘의 상징 하나에 어른들과 그의 권력관계는 단숨에 역전된다. 나이를 도구로 학생을 지배하려던 어른들은 총이라는 현실적 무기 앞에서 무기력하다. 남학생은 의 위치가 되었고 어른들은 이제 이 되었다. 그가 가장 분노하는 부분은 그저 한 마리 햄스터 죽은 것 가지고 왜 그리 분노하냐고 얘기한 배관공의 말이었다. 남학생 자신 또한 그저 한 아이일 뿐이었기에, 소외에 있어서 그 어떤 것도 사소한 것일 수 없었다. 남학생은 예민하게 그것을 파악했을 것이다. 그에게 햄스터는 고작 햄스터 한 마리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그 또한 세상에게 본인이 고작 청소년 한 명이 아니었음을 바랐을 것이다.

이후 죽은 줄 알았던 여학생은 다시 무대에 아무렇지 않다는 듯 등장한다. 왜 죽었는지, 왜 다시 등장하는지에 대해서도 이유는 일절 나오지 않는다. 인과의 구멍이 숭숭 뚫린 이런 서사구성이 이 연극에서는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극을 보게 되면 그것은 우리에게 의문이 아닌 상상의 여지로써 다가온다. 이제, 다시 한 모텔 방에서 학생 둘과 어른 셋이 대치한다. 하지만 이제 힘을 가진 건 학생들 쪽이다. ‘은 어른과 청소년에 대해 어떤 윤리적 규범도 들먹이게 할 수 없게 만드는 강력한 힘의 상징이다. 논리가 통하지 않는 무조건적인 지배야 말로 사실 못난 어른들이 가장 잘 이용하는 방식이 아니던가. 총은 그들에게 잠시나마 그런 어른의 지배력을 부여한다. 총을 가진 학생들이 어른들을 농락하는 과정은 관객들에게 묘한 쾌감도 느끼게 한다. 이후 여학생은 또 다시 사라지고, 어른들은 남학생의 명령에 따라 죽은 햄스터의 제사를 지내기에 이른다.

 

 

이 연극의 결말은 명쾌하게 정리되어 끝난다고는 볼 수 없다. 오히려 여러 의문의 여지를 남겨둔 채 끝난다. 왜 죽은 여학생은 다시 살아난 것인지도 알 수 없다. 극의 최종부에서 무대에 혼자 남은 남학생의 일인다역 연기를 보고 있자면, 이 모든 소동이 결국 정신병에 걸린 한 소년의 망상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에 까지 이르게 된다. 모두가 퇴장하고, 암전된 무대에는 마지막으로 작은 빛이 들어온다. 햄스터 우리를 비추는 그 빛 옆에는 싸늘하게 죽어 있는 동물의 사체가 있다. 사건 현장을 찾은 경찰이 햄스터의 시신을 목도하며, 극은 마지막으로 간다.

분명 청소년 극임에도 굉장히 기괴한 이 연극은 사실 스릴러라고 봐도 무방했다. ‘청소년 스릴러 연극이라는 장르를 붙여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이 극은 기본적으로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소외당하는 것들이 어떻게 죽음에까지 이르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은 꾀나 잔인하다. 박수와 눈물로 마무리되는 감동어린 청소년 극과는 멀리 떨어진 위치를 점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 연극의 힘은 바로 그 지점에서 나온다. 차가운 감성은 따뜻함이 할 수 없는 예리함을 가진다. 청소년의 입장에서 연극을 감상하며 나는 여러 번 이 날카로운 극의 분위기에 베였다. 난해하게 진행되는 서사는 오히려 우리의 진짜 삶 또한 이렇게 인과에 맞춰 딱딱 진행되기 보다는 복잡하기 그지없지 않느냐고 질문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햄스터에 대한 스릴러이자 모든 청소년에 대한 스릴러였다. 모든 연극이 끝났을 때, 내 머릿속에는 그저 햄스터 한 마리가 또렷하게 남아있었다.

 

 

필자_정은호

소개_고등학교 1학년 시절 동네 책방에서 무협을 읽다 엉뚱하게도 문학에 빠져버렸습니다. 여전히 SF를 읽고 만화와 B급 오락영화들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쓰고 싶은 글은 동시에 깊이 있는 문학 소설입니다. 어느 경계에도 얽메이지 않고 자유로운 글쓰기를 하고 싶은 청소년입니다.

 

<햄스터 살인사건>

일시: 2013. 10. 25. 금. 8시/ 10. 26. 토. 3시. 7시

장소: 성북구 아리랑아트홀

작품소개

청소년을 위한 시

극은 작은 모텔 방에, 이곳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고등학생 두 명이 등장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어린 학생들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죽음을 위해서다. 처음부터 모텔, 자살 같은 극단적인 말과 장면이 펼쳐지지만, 씁쓸하게도 낯설지 않다. 청소년들이 왜 죽으려 하는지 이유를 들어보지 않아도 그 이유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성적, 친구들, 가족들, 또 경제적인 문제 등 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는 어른들이 청소년들을 마음 깊이 이해하고 있어서가 아니다. 청소년이라는 이름으로 사회 속에 새겨진 이미지가 몇 개 안되기 때문이다. 최근에 자살이 하나 더 보태졌을 뿐이다. <햄스터 살인사건>도 이런 결말을 벗어나지 않는다. 처음 공연이 던져주는 강렬한 죽음 이미지가, 무대 한 쪽에 놓인 햄스터 우리를 발판 삼아 극 전체를 관통한다. 하지만, 불편하게도 이 작품을 보는 내내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극이 진행될수록 불편한 마음이 사라진다. 작가가 포착해내는 청소년의 예측할 수 없는 행동, 재기 넘치는 말이 보는 사람을 안도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매스컴에서 만나는 어른의 시선으로 편집된 청소년이 아니라 내 옆집에 사는 평범한 그 아이를 떠오르게 해준다. 텍스트가 무대 위 공연이 되면서, 불편한 감정이 미안함으로, 연민과 사랑으로 치환될 수 있는 여지를 곳곳에 만들어 주고 있다. 톡톡 튀는 대사와 아름다운 움직임이 기묘한 조화를 이루어내면서, 무거운 주제가 무거운 뉴스가 아닌, 울림을 주는 한 편의 시처럼 무대 위에 펼쳐진다.

_허선혜

연출_최여림

배우_배소현, 이현석, 이다영, 박알렉스, 설재영

예술감독_최영애

예술교육감독_황하영

음악감독_노선락

조연출_문올가, 송재영

무대디자이너_노민석

조명디자이너_조철민

의상디자이너_홍문기

무대감독_송재영

그래픽디자이너_박찬미

예술교육팀_박지혜, 이소선

조명오퍼_홍유정

음향오퍼_임지윤

기획_이가영, 박지명

객석감독_신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