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고성오광대 <잠자는 말뚝이를 깨워라 ‘생생’>

2014. 6. 23. 14:56Review

 

고성오광대 <잠자는 말뚝이를 깨워라 ‘생생’>

고성오광대가 인형이 됐다!

글_김해진

 

 

경상남도 고성의 오전 10시. 50명에 이르는 거류초등학교 학생들이 고성오광대 전수교육관으로 줄지어 들어선다. 나는 아이들을 뒤따라 들어간다. 본 공연을 보기 전에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몸과 마음을 여는 앞풀이 시간이 있었는데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얌전하게 줄서 있던 아이들이 흥분하기 시작한다. 오랜만의 놀이에 아이들이 신났나 보다. 교육관이 아이들의 목소리로 들썩인다. 혹시 하품을 하고 있었을지 모를 중요무형문화재 제7호 고성오광대가 그렇게 깨어난다. <잠자는 말뚝이를 깨워라 ‘생생’>(조정일 작, 김서진 연출, 박영주 교육감독)이라는 제목이 그래서 절묘하고 반갑다. 이 작품은 고성오광대 전수자들이 고성오광대를 인형극으로 되살려 2013년부터 공연하고 있다.

아이들은 양반이 머리에 쓰던 정자관을 쓰고 공연이 펼쳐질 공간으로 이동했다. 나무로 만들어진 인형극 무대에 ‘강물 노래’가 적혀있다. 무대 왼편에서 악사들이 쇠, 장구, 북, 징과 다양한 악기를 연주한다. 양반이 된 아이들은 연희자의 큰 목소리를 따라 “말뚝아, 이놈 말뚝아~” 하고 외친다. 또 연희자가 이끄는대로 굿거리 장단에 맞춰 비가 오고 강물이 넘친다는 내용의 노래도 부른다. 강물을 표현하는 커다란 천을 연희자들이 양끝에서 잡고 어린 양반들의 머리 위를 훑고 나면 무대에 궤짝이 하나 나타난다. 아이들의 시선이 궤짝에 모인다.

이제 극은 말뚝이가 이끌어 가는데 그동안 보아왔던 말뚝이의 모습과는 다르다. 짚신 대신에 빨간 줄무늬 양말이 눈에 띄고 패랭이 대신 페도라, 채찍(말채) 대신 총채가 보인다. 검은 더그레와 붉은색 허리띠는 같다. 서양 광대(clown)와 고성오광대의 말뚝이가 합쳐진 모습이 엉뚱하면서도 재미있다. 이 말뚝이는 탈을 쓰지 않고 공연을 이끌어 가면서 필요할 때 이야기에 직접 관여하기도 한다. 이어서 등장하는 흥미로운 인물은 꼭두쇠 아저씨인데 말뚝이가 궤짝에서 꺼낸 탈을 쓰며 황봉사, 선녀, 양반이 된다. 볼에 연지가 찍힌 선녀 탈을 들고서 ‘고성오광대 미의 기준은 바로 여기에 있어.’라고 재담을 펼칠 때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인형극 무대에 문둥이가 나타났다. 저렇게 작아진 문둥이는 처음 본다. 사람들이 문둥이에게 돌을 던지고 동네 아이들도 문둥이를 놀리고 아기를 안은 아낙은 비명을 지른다. 심지어 개도 짖는다. 문둥이가 작은 인형이 되어서 그런지 더 불쌍하다. 인형이 서럽게 울며 여러 번 앞으로 고꾸라지는 것만으로도 문둥이의 마음이 아프게 전해져왔다. 왁자지껄하던 아이들도 인형극을 보느라 조용하다. 나무로 만든 작은 프레임으로 무대가 좁혀져 크기에 변화가 생기자 오광대의 전혀 다른 가능성이 열렸다. 그간 오광대가 야외 마당에서 크고 넓게 에너지를 풀어냈다면 인형극은 문둥이의 서러움을 응축시킨다. 관객은 생명이 없는 인형이 살아나는 과정에 몰입하면서 인형들이 겪는 감정에 동참한다. 바로 이때 실제 사람 오광대가 인형극 무대 앞으로 나와 문둥북춤을 춘다. 문둥이는 뭉툭한 손끝으로 겨우 소고를 잡는다. 인형이었던 문둥이가 사람으로 커진 것이다. 응축됐던 서러움이 춤사위로 풀려나간다.

인형이어서 표현하기 좋은 것들이 있다. 선녀들이 ‘나랑 놀~아~요~’ 유혹하며 자신의 얼굴을 봐달라고 하자 스님 인형이 눈을 ‘번쩍’ 뜬다. 색에 눈을 뜨는 순간이 단번에 표현된다. 또 인형과 마찬가지로 작게 만들어진 절과 탑이 공간을 만들어준다. 멀리서도 절 안에 앉아계신 부처님이 보인다. 악사들은 이 장면에서 새소리와 목탁 소리를 들려주며 인형극에 야외마당의 운치를 불어넣는다. 이밖에도 청색,황색,백색,적색,흑색의 얼굴을 한 양반들이 나란히 붙어 등장해서 사람 말뚝이를 놀릴 때는 양반이라는 패거리가 재미있게 형상화됐다. 또 제밀주 마당에서 사람 큰어미가 객석의 아이들 사이에서 영감을 찾아 헤매다가 무대 뒤로 들어간 후 연이어 인형 큰어미가 등장할 때는 역시 크기 변화로 인해 관객의 집중력이 높아졌다.

 

 

큰어미는 첩에게 받혀 죽은 후 작게 만들어진 상여에 실려 인형극 무대에서 빠져나오는데, 이때 말뚝이가 붉은 기를 든 채 앞서고 연희자 둘이 작은 상여의 앞 뒤를 들고 걷는다. 악사가 상여소리로 길을 낸다. 장면 전체가 퍽 귀여우면서도 슬프다. 특히 큰어미가 죽었을 때 사람 말뚝이가 인형에게 인공호흡을 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사람이 죽은 인형을 살려내기 위해 애를 쓴다. 아이들은 인공호흡인 줄 알면서도 ‘뽀뽀한다’ ‘막장 드라마다’며 소리를 지른다. 이 장면뿐만 아니라 사람 말뚝이가 문둥이를 괴롭히는 개를 물리쳐주는 등 인형들의 세계에 도움을 주려할 때 나는 이야기에 더욱 빠져들게 됐다.

마지막으로 뿔이 나고 이가 삐죽 나온 비비가 등장한다. 용을 비롯한 여러 가지 동물이 합쳐진 듯한 얼굴이다. 먼저 비비 인형이 등장하고 나중에 연희자가 커다란 비비탈을 쓰고 나타나 양반을 잡아먹겠다며 객석으로 달려든다. 아이들은 이리저리 몸을 피한다. 양반을 잡아먹겠다고 하니 눈치 빠르게 얼른 정자관을 벗는 아이도 있다. 공연이 끝나고 아이들은 앞풀이를 했던 곳으로 자리를 옮겨 직접 탈을 만들고 또 고성오광대의 기본 춤사위를 배우는 시간을 이어갔다.

 

 

이 공연은 현재 교육 체험 프로그램의 외양을 띠고 있는데 탈춤과 인형극을 아우르는 본 공연이 독립된 공연의 형태로 커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탈춤과 인형극이 긴밀히 합쳐진 형태의 이 공연은 관객과 직접 호흡하는 마당극과 작은 프레임 안으로 주의를 집중시키는 인형극을 넘나든다. 두 차원을 원활하게 오고가는 데에서 극의 힘이 생겨나는데 때로는 즉흥연기와 재담을 주고받느라 몰입이 필요한 순간으로 들어가는 전환점이 흐릿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극을 크고 활기차게 풀이할 때와 작게 응축해 들어갈 때의 대비를 분명히 하면 작품의 극적 고저와 감정의 변화가 더 잘 보일 듯 하다. 공연장의 배경색이 검은색이거나 조명에 적극적인 변화를 줘서 실내 분위기를 전환시킨다면 위에서 말한 대비의 효과가 커질 거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또한 마당에 있던 사람이 인형극 무대로 들어가 작은 인형이 되고, 작은 인형이었던 것이 마당으로 나와 크게 움직이는 이런 재밌는 변화가 되도록 시간차 없이 연이어 보이도록 하면 어떨까. 지금은 연희자의 등퇴장이 공연 진행상의 여건 때문인지 객석 뒤에서 이루어질 때도 있고 무대쪽에서 이뤄질 때도 있는데 관객의 시선이 분산된다. 연희자의 등퇴장과 인형의 등퇴장이 같은 장소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면 크기의 변화가 극의 재미로 바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나는 인형극을 보며 각 과장을 이어가는 이야기의 흐름을 기대하게 됐다. 고성오광대의 각 과장은 독립적인데 말이다. 5과장이 가지는 독립성과 관객이 인형극을 보며 기대하게 되는 이야기의 흐름은 서로 상충하는데 <잠자는 말뚝이를 깨워라 ‘생생’>은 그 간극에 춤과 음악, 말뚝이의 안내를 배치해 공연의 균형을 맞춘다. 고성오광대의 특징을 잘 축약한 이야기와 더불어 정자관, 인형들, 작은 집과 절, 탑, 상여, 또 은색 천둥번개와 문둥이를 향해 짖는 개의 얼굴 등 아기자기하면서도 색이 고운 무대미술도 공연의 균형키가 되어준다. 앞으로 공연을 거듭하면서 그 균형을 넘어서는 지점에서 더 즐겁게 놀이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고성오광대 보존회는 <잠자는 말뚝이를 깨워라 ‘생생’>에 이어 또 다른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돌아오는 7월 30일부터 8월 3일까지 경남 고성의 당항포대첩축제에서 조정일 작, 한혜정 연출의 <산들바다 월이>가 고성오광대 전수자들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 고성의 역사와 전설을 풀어낼 이들의 새로운 시도를 응원한다.

 

 

 필자_김해진 haejinwill@gmail.com

 소개_ 1979년 서울 생. 제4회 플랫폼문화비평상 공연 부문 당선.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문학․비평․ 연구 부문 4기 입주예술가. 최근 글로 <회화는 움직이고 배우는 멈춘다> <차가운 시선> 희곡 <마지막 짜지앙미엔>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