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지에서 만난 시선 둘, 플레이위드 그리고 작은신화

2009. 4. 10. 14:1107-08' 인디언밥

프린지에서 만난 시선 둘, 플레이위드 그리고 작은신화

  • 김민관
  • 조회수 504 / 2008.08.25

주목할 만한 시선들  '플레이위드' 그리고 '작은 신화'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 개막한 이후, 매일 실내공연예술제의 공연 두 편 정도를 봐 왔다. 프린지를 찾는 사람은 아무래도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재단되지 않는 신선한 감수성과 의지, 젊음의 생동감과 재기발랄한 시선 정도를 기대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계속해서 볼 수 있거나, 너무나 완벽히 정제되거나, 돈 들인 테가 나는 공연은 주류 내지, 일반화된 레퍼토리 공연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더 말 할 나위 없을 것이다. 즉, 어디서 본 듯한데 하는, 또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라면 굳이 프린지에 가지 않을 것이다. 유사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기존의 관습적 예술에 자신도 모르게 물들어 있어, 그것을 버릴 수 없다거나 내지 그것을 좇아가는 것을 말함이다. 그렇다면 자신만의 시선에 더해, 의도적으로 기존 질서에 반하는 노력을 기울이거나 아님, 지금 여기에서 초라하거나 소소한, 그렇지만 거창하고 진정 어린 자신의 삶에서부터 출발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시선을 제시한 공연이라 생각되는 몇 편의 작품을 주목해 본다.


플레이위드햄릿4-나를 찾는 여행(플레이위드)

 

‘단 하나밖에 없는 그들의 남김 없는 독백’

 연극에서의 독백을 주요한 진행 방식으로 쓰고 있는 가운데, 마치 연극의 경계를 무너뜨린다는 의식이 들 정도로 이들은 직접적으로 말을 걸고 있다.

 


<사진:플레이위드 '플레이위드 햄릿4-나를 찾는 여행'  제공:서울프린지페스티벌 사무국>

 

 밥 딜런을 동경하며, 무대에 자연스레 무뚝뚝한 노래들을 펼쳐 놓는 ‘정도원’, 극 바깥으로 오필리아의 삶을 끌어 내 그녀의 불쌍한 처지에 심히 몰입하며, 한편으로 사랑하는 꼬맹이에 대한 기억에서 번민하는 ‘최지숙’, 게이 햄릿 배역을 맡은 적이 있었으나 거꾸로 게이가 아님을 항변하며 실제 연출에게 하소연하는, 그러면서도 햄릿과는 크게 상관없는 연극임을 관객에게 주지시키며, 앙상할지 모르는 연극의 외피를 솔직히 드러내는, 그러면서 연극과 연극 밖의 현실에, 또 무대와 관객 사이에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하는 ‘전석호’, 이 세 명은 각각 꿈과 이상, 과거의 아픔, 현재에 위치하며 각기 실제인지 아닌지 의구심을 들게 할 만큼의 자신의 이야기들로 말을 건넨다.


 태국으로 떠난 여행은 이러한 고민의 연장선상으로 비춰지며, 영상으로 그것의 흔적을 군데군데 뿌린다. 한 명의 독백 이후, 태국에서의 사건이 재현되는 순간, 나머지 둘은 그 상황에 있는 사람이 되어 재치 있게 사건을 구성한다. 이러한 무대 내 관계 맺음은 커다란 무대 전환 없는 임기응변식 대처인 것처럼 보이기에, 딱딱하지 않아 현실적으로 보이고, 또 가벼우면서도 친근하다. 그리고 마치 별책부록처럼 태국에서 이상한 동물을 만났을 때의 대처법을 여행의 실제 팁을 더하는 식으로 극 속에 어설프게 잠깐씩 집어넣어, 신선하게 극 속에 생기를 불어 넣는다.

 이들의 미덕은 바로 그러한 솔직함과 진실함을 자연스레 표출하면서, 이것들을 가지고 자신들만의 텍스트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연극인으로서의 현실을 일상의 삶과의 거리, 재현된 텍스트의 재생과 현실의 고민과의 괴리를 ‘비현실의 연극’으로 정의해 본다면, 이들은 적어도 충분히 삶의 역량을 연극에서의 충만한 에너지로 화할 가능성, 그리고 셋의 동등한 관계로서의 무대 내 자기 발언, 연출까지 수평적인 시선으로 무대로 끌어 내리는 가운데, 계속해서 자신들의 집단 공동의 움직임을 자연스레 가지고 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해보는 것이다.


진흙(극단 작은신화)

 

<사진:극단 작은신화 '진흙'  사진제공:서울프린지페스티벌 사무국>

 

 집 안에 틀어박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셈과 문자 읽기를 하지 못하는 로이드는 성적 장애를 겪지만 보건소에서의 치료를 거부하는 현실 바깥의 성숙치 못한 무능한 자아에 스스로 갇혀 있다. 반면 글을 읽지 못하지만 메이는 다림질을 하고 학교를 다니며 삶을 일구고, 현실에서의 떳떳한 위치를 꿈꾼다. 그녀의 동경은 자연 글을 읽을 줄 아는 제법 논리적인 헨리에 대한 성적 구애로 나타난다. 그것이 받아들여지고, 메이는 두 남자와 동거하게 되지만, 사실상 두 남자는 그녀의 집에서 기생하는 것이다. 로이드가 보건소에 가서 약을 살 돈이 없자, 이것을 소심하게 칭얼대듯 헨리에게 말을 꺼내지만 들어주지 않자, 그의 돈을 가져  가고, 이것을 헨리는 전혀 용인하지 않는다. 그 뒤에 이어지는 물속에 돌다리를 건너다가 미끄러져 불구가 된 헨리 사건이 언급되고, 일종의 극적 장치로서 지식을 가진 우월한 위치에서 조금의 연민도 이해도 허락지 않은 냉혹한 자의 가혹한 처단이 내려지는 것이지만, 이는 메이의 꿈과는 또 한 발 멀어지는 것이다. 


 마지막에 메이는 처치 곤란한 두 남자를 버리고 자신의 삶을 찾아 가겠다며, ‘인형의 집’ 노라의 전철을 밟지만, 공황상태에 빠진 두 남자 가운데 로이드가 총을 들고 간 채 그녀를 그득그득 온 힘을 담아 소리를 계속해서 질러 본다. 어느덧 그녀의 죽음이 눈앞에 왔음에 불안해진다. 그녀의 시체를 안고 들어오는 순간, 이상하게도 그녀의 희망은 마지막으로 두 남자의 그녀에 대한 사랑일 수 있었음을 애타고 모든 것을 잃은 절망적인 상태의 두 남자의 표정에서 읽혀지며 완전한 비극으로서의 끝을 맺는다.


 학습이나 언어 이전의 인간의 원초적 본성, 문명인의 외피 뒤에 가려진 위선, 부조리한 환경을 탈피하려는 불가능한 노력과 동경, 이 작품에는 과거의 어느 한 때를 상정하지만, 현재의 비상식적으로, 힘든 현실에서 발버둥치거나 그것을 의식치 못하는 소시민적 삶을 대입한다면 그것의 쓸쓸함과 피폐함은 조금 더 안타깝게 다가온다. 세 명의 배우의 연기는 모두 안정적이었고, 우물쭈물 더듬거리면서도 자기방어적인 기제로 단어들을 쏟아 내는 로이드(안성헌), 적당히 젠체하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헨리(서광일), 삶의 짜증과 어둠을 감내하면서도 그것들이 섞여 들어오는 메이(김선영), 세 명의 캐릭터에 적합한 발성을 내뿜고 있었는데, 무엇보다 스테이지가 백스테이지가 되는 순간으로서, 이 작품이 드러내는 초라한 외피로서의 연극의 뒷모습은 특기할만한 방식이었다.


 암전 대신 조명이 밝아지는 것으로 처리해, 연기의 몰입에서 순간 깨어나는 장면을 목도하게 하고, 다음 장면을 위한 무대 세팅 및, 연기의 이어감에 따르는 표정과 몸짓을 미리 지정해 두고 있다. 그리고 조명이 다시 어두워지면, 영화촬영에서 스탠바이가 내려지듯 연기를 시작한다. 이것은 수시로 장면 전환을 가능케 하며, 무대 전환이 어려운 무대예술로서의 특성에 하나의 대안적 접근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었다. 장면 전환의 암전 처리가 적당한 환기의 기능으로 생각할 시간을 주는 대신, 어둠 속에 무대를 준비하는 분주한 움직임은 보지 못한다. 거기에 더해 어둠의 환기는 생각과의 시차를 가져오는 순간도 왕왕 있다. 즉, 어둠은 원초적인 두려움 혹은 연극의 관습적인 차용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을 줄 때가 있다. 그런 면에서 연극은 곧 연극임을, 진지한 장면 뒤에 연극이 구성되는 소소한 방식들을 노출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다음 장면을 준비하는 비장하거나 조심스러운 인물의 옷 입기의 배우로서의 마음가짐과 사명이 읽혔다.


극단 움틈의 '브리튼을 구출해라!', 문화공동체 여인숙의 '즐거운 여행 되세요' 등, 이번 프린지에서도 유독 더 많은 가짓수를 차지하는 것 같은 몇 편의 비극을 보며, 비극은 지금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을 던져 보게 된다. 적어도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문제의식을 우직하게 떠안고 그것을 연극을 통해 해결해 보겠다거나 또는 삶은 근원적으로 절망임을 고임을 인지하고 삶의 진실을 우두커니 밝혀 보겠다거나, 어쨌든 대중 코드에 영합한 적당한 즐거움의 소구적인 성격을 띠는 연극이 아니라는 점에서 또한 고유한 연극정신의 발현이라는 점에서 역으로 비극 속 절망 아닌 희망을 본다.



보충설명

*플레이위드 "플레이위드햄릿4-나를 찾는 여행"
일시-2008년 8월 16일~17일
장소-소극장 예

*극단 작은신화 "진흙"
일시-2008년 8월 19일~21일
장소-떼아뜨르 추

필자소개

김민관 mikw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