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젖은잡지 Vol.3 "젖거나 젖지 않거나"

2014. 12. 29. 09:19Review

 

젖거나 젖지 않거나

― 《젖은 잡지 Vol. 3》 리뷰

 

글_김종우

 

이 잡지, 그러니까 《젖은 잡지 Vol. 3》의 가격은 9000원이다. 배송료 3000원을 포함한 가격은 12000원*이다. 이렇게 서두부터 이 책의 가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아주 단순한 이유에서다. 그것은 이 잡지가 과연 그 가격을 주고 살만한 것이냐는 것,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그만큼의 값어치를 하고 있느냐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이 잡지가 독립출판을 통해서 유통된다는 것, 그러므로 이 잡지의 출판이 지속 가능한지를 검토하고 싶기 때문이다. 일단 필자를 포함하여 이 잡지에 대해 잘 모를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 책의 맨 뒤쪽에 실린 이 잡지의 창간의도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젖은잡지 Vol.3 표지 이미지

 

기존의 도색잡지나 포르노도 성욕을 돋구는 기본적인 기능은 하지만, 때론 시시하고, 역겹거나, 그저 예쁘지가 않다. 허겁지겁 정크푸드를 먹고 난 뒤엔 그런 걸로 배를 채운 스스로를 환멸하며, 음식물 쓰레기 분리도 하지 않고 한꺼번에 쓰레기통에 쳐 넣는 기분은 이제 싫다. 그래서 우리가 직접 만들기로 했다, 야하고, 노골적이고 음란한 것. 현자타임이 와도 꼴 보기 싫지 않은, 사정이 온 후에도 계속 지니고 싶은 무언가를. (밑줄은 필자)

이 잡지가 창간의도에 부합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따지기 전에, 필자가 이 잡지를 처음 받아들었을 때의 인상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우선, 잡지는 아주 작고** 얇았다. 배송되어온 봉투를 뜯어보지 않고도 필자는 그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봉투를 뜯자마자 책의 앞표지가 보였다. 거기에는 검은색 망사팬티를 입은 여성이 뒷짐을 진 채 베이지색 로프에 묶여있는 사진이 전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얼굴은 나오지 않고 엉덩이와 등의 일부분 그리고 묶여있는 팔만이 나온 사진이었다. 뒤표지에는 커다란 복고풍 1인용 의자에 앉은 한 여성이 교복을 연상시키는 체크무늬 미니스커트를 입은 채 (물론 교복은 이것보다는 더 길지만) 흰 양말을 신고 있는 사진이 있었다. 표지는 전체적으로 세련되어 보이지는 않았고, 일부러 도색잡지라는 말이 갖고 있는 키치적인 느낌을 부각시키려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도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잡지를 넘기자 무언가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잡지의 부록 같았는데, 명함의 두 배 정도 되는 크기의 한 장짜리 2015년 1월 달력이었다. 총 두 개였는데, 그 중 하나에는 세일러복을 입은 한 여성이 창가에 앉아 자신의 허벅지에 검정색 끈을 묶고 있는 사진이 실려 있었고, 다른 하나에는 같은 여성이 속옷처럼 보이는 핑크색 민소매 티셔츠에 짧은 회색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침대에 누워 한쪽 다리를 쭉 뻗고 있는 사진이 실려 있었다. 실제로 본 적은 없었지만, 마치 7,80년대의 이발소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달력의 모양을 흉내 낸 듯 보였다. 하지만 이 달력을 필자가 실제로 사용하게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젖은잡지 Vol.3 부록, 2015년 달력

 

<젖은 잡지 Vol. 3>은 일단 잡지답게 절반이 넘는 페이지가 사진이미지로 채워져 있었다. 이번 호에서는 긴박(緊縛) 또는 본디지(bondage)에 관해 주로 다루고 있었는데, 표지에 나온 결박된 여성의 뒷모습은 아마 이번 호의 주제를 반영한 것 같았다. 다양한 방법으로 묶여있는 여성의 사진이 잡지 안에 나온 이미지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인 것 같았다. 역시나 ‘A BEGINNER`S GUIDE TO ROPE BONDAGE’라는 제목의 글이 잡지의 첫 번째 챕터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거기에서는 본디지 플레이를 하기 전 유의할 사항과 몇 가지 실제적인 결박법이 설명되어 있었다.

필자는 이러한 취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잡지가 도움이 될 수 있는가를 고민해 보았다. 그들이 12000원을 주고 이 잡지를 구매할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려면 우선 잡지에 나와 있는 본디지 플레이에 관한 정보가 희소성이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알아야 했다. 때문에 인터넷 검색창에 ‘본디지 플레이’, ‘결박법’ 등과 같은 단어들을 검색해 보았다. 만약 인터넷 상에서 이보다 훨씬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이 잡지를 구매할 이유가 없어질 테니 말이다. 필자의 검색능력이 떨어지는 건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행히도 그에 관한 자세한 정보가 인터넷 상에 나와 있지는 않았다. 몇몇 글들이 보이기는 했지만 단편적인 정보나 설명에 그치기만 했다. 그렇다고 이 잡지에 실린 본디지 플레이에 관한 정보가 완전한 희소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에는 곤란한 부분이 있다. 왜냐하면 결박법에 대한 내용이 글로만 나와 있었고, 사진이나 그림을 통해서 상세히 설명되지는 않았으며, 인터넷에 나온 정보보다 자세하기는 했지만 글만 보고는 쉽게 따라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였다. 필자는 (페이지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결박된 여성이 야릇한 포즈를 짓고 있는 사진을 조금 줄이고 실제적인 결박법에 대한 사진을 싣는 것이 이 잡지를 더 희소성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젖은잡지 Vol.3 잡지에 나온 ‘결박법’

 

본디지 플레이에 관한 부분 다음에는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짤막한 야설이 실려 있었다. 이 부분은 별로 언급하고 싶지 않지만, 굳이 언급을 해야 한다면, 야설이라는 것의 목적도, 제목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풍자성도, 문장의 완결성도 전혀 달성하지 못한 글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야설을 실은 목적은 이해하겠지만, 야설 자체의 내용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의도를 모르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할 말 없지만 말이다)  

필자가 이 잡지에서 가장 흥미롭게 여겼던 부분은 바로 그 다음에 있었다. 거기에는 한 HIV에 감염된 한 게이 청년의 인터뷰가 실려 있었다. 어찌 보면 불편할 수도 있는 인물과 주제에 대해 다루고 있었고, 실제 필자가 읽으면서도 조금 불편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지만, 묘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내용들이었다. 그것은 인터뷰의 내용이 좀 더 내밀하고 개인적인 것에 초점이 맞춰져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식 : 그러고 보니 나의 성생활에 대해 묻는 사람은 없었어요. ‘그래, 너 HIV환자로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건데, 뭘 어떻게 표현하고 싶은데?’ 그 정도의 질문밖에 없었던 거죠.

   임 : 저희가 아까 말한 게 그거예요. 사회적이나 정치적인 질문밖에 안 했을 것 같아서요. 우리는 성생활이나, 이 사람은 뭘 좋아하고, 어떤 것을 원하는지 그런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그 다음 챕터에는 한국인 게이와 FtM(***) 인 프랑스인에 대한 인터뷰, 그리고 직업이 누드모델인 BDSM(****)성향자의 짤막한 인터뷰가 실려 있었다. 둘 모두 굉장히 흥미로웠지만, 내용이 짧아서 아쉬웠다.

그 뒤로는 한국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희귀한 물품들을 구비해놓았다는 한 성인용품점의 소개 코너와 파트너를 찾는다는 독자들의 구인광고 코너가 있었다. 성인용품점의 소개는 산만했고, 독자들의 구인광고는 실효성이 없어 보였다. 두 코너 모두 이 잡지를 사기 위한 동기로는 부족해 보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이 잡지를 9000원(배송료를 포함하면 12000원)이나 주고 구매할 의향은 없을 것 같다. 만약 5000원이나 6000원쯤 되면 구매할지도. 그렇더라도 새로운 호가 나오면 계속해서 구매하게 될지는 의문. 그렇게 생각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젖은 잡지 Vol. 3》가 일반적인 잡지가 가지고 있는 속성, 이를테면 가벼운 읽을거리를 통한 시간 때우기나 관심사에 관한 구체성 있는 정보전달이라는 목적에 충실하지 않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먼저 잡지에 실린 사진들은 다른 도색잡지에 비해 야하고, 노골적이며, 음란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필자는 일련의 사진들을 보며 ‘낸 골딘’이나 ‘노부요시 아라키’ 같은 사진작가의 작품들이 떠올랐다.) 그런데 이것은 앞서 인용한 창간의도 중 밑줄 친 부분, ‘그래서 우리가 직접 만들기로 했다, 야하고, 노골적이고 음란한 것. 현자타임이 와도 꼴 보기 싫지 않은, 사정이 온 후에도 계속 지니고 싶은 무언가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젖은잡지 Vol.3 잡지 이미지

 

한편으로 필자는 이 잡지를 이루는 이미지가 다분히 ‘키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키치는 저급하고 진부한 예술을 지칭하는 데에 사용되는 단어였지만, 6,70년대를 지나면서 기존의 가치나 이념과 같은 진지한 것을 거부하는 태도를 지닌 예술작품의 특성을 나타내는 단어로 쓰이기도 했다. 그러나 21세기를 살고 있는 이 시점에 더 이상 키치가 아닌 것이 있을까. 넓은 관점에서 키치는 문화의 모든 측면에 깔려 있고, 팝아트가 등장한 이후 미술에서도 키치는 이미 진지한 주류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키치에 관한 모든 것이 역전되고 규정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 키치적인 이미지가 과연 이 잡지에 적절할까? 필자는 아니라고 본다. 키치는 기존에 있던 키치적인 것을 비꼬거나 풍자하는 데에 사용되거나, 키치 그 자체를 통해서 키치적인 것의 극단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 그럼으로써 진지한 아름다움에 대항할 수 있을 때에만이 그 가치가 있다. 그러나 이 잡지에 나온 키치적 이미지는 그 중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았으며, 그저 키치함의 포즈만을 취하고 있는 듯 보인다. 마치 그렇게 하는 것이 남들과 다른 자유롭고 과감한 태도라는 듯이.

이 ‘젖은 잡지’라는 잡지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좀 더 잡지 본연의 속성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도색잡지라는 말 그대로 이미지는 더욱 노골적이어야 하고, 정보는 구체성을 띠어야 하며, 인터뷰 또한 더 길고 더 적나라하게 구성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젖은 잡지’는 본래의 창간의도에 더 부합할 수 있을 것이며, 젖지 않는 독자들 또한 서서히 젖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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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웹사이트 ‘www.your-mind.com’에서 주문하였다.

** A5정도의 크기에 표지를 제외하고 총 68페이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 (Female to Male. 남성이 되고자하는 여성 또는 남성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여성

**** BDSM은 인간의 성적 기호 중에서 기학적 성향을 통틀어서 말하는 것이다. B: bondage, D: discipline, S: sadism, M: masochism ― 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wiki/BDSM

+ 구매안내_: www.thebooksociety.org (더북소사이어티) / www.your-mind.com (유어마인드)

  

 필자_김종우 (gusukzine@hanmail.net)

 소개_진지하지만 무겁지 않고, 놀지만 취하지 않으며,  나이가 들어도 아직 중2병인 대한민국 남자, 글쓰는 사람입니다. 

 

젖은잡지 vol.3

발매국 :한국 / 출간일 :2014년 

 

목차

- A Beginner's Guide To Rope Bondage

- 화보

- 아프니까 청춘

- 이정식 인터뷰

- 잭♥콕스

- 한 BDSM 성향자의 상황 - 레즈비언 스위치의 경우

- 선릉 오마이토이 방문기

- 젖은 구인

 


"여성이 만드는 에로 아트북"을 표방하며 지난해를 뜨겁게 달군 젖은잡지가 돌아왔다. 이번 3호에서는 SM과 LGBT를 다루며 보다 더 선명한 금기의 영역에 발을 디뎠다. 젖은잡지는 아마도 현 시점에서 가장 큰 논란을 제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이미 모든 이들의 머릿속이나 환상 속에는 이미 있었다는 것이다. 젖은잡지는 기억의 구멍에서 욕망을 끄집어 낸다. 더 이상 네트워크의 어딘가를 헤맬 필요가 없다. 인터넷의 뒤안길에서 춥게 웅크린 독자들을 위한 젖은잡지는 물기 흠뻑 머금은 손길을 부드럽게 내민다. 자기 전에 봐, 젖은잡지.

참여자 기획 / 두리 편집장 / 안악희 에디터 / 칠월 인턴 / 임정원 컨셉디렉터 / 긴박사 사진 / 임영웅, 배선영(본디지)
안젤라 (인터뷰)  야설 / 아메리카노 

인터뷰 참여 
이정식, 잭, 콕스, 칠월, 오마이토이 사장님 기타 구인광고 참여자

 

*본문 사진 및 내용 출처_서점 유어마인드 웹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