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교역소 좌담회 <안녕2014, 2015안녕?>에 대한 회고(回顧)

2015. 1. 13. 17:41Review

 

헤픈 엔딩이 아니라, 뜨거운 안녕(을 위하여!)

교역소 좌담회 <안녕2014, 2015안녕?>에 대한 회고(回顧)

 

글_배세은

 

지난해 말 12월 28일 상봉동에서 ‘안녕 2014, 2015 안녕?’이라는 타이틀을 건 좌담회가 있었다. 필자는 이 행사의 소식을 SNS를 통해 접하게 되었다. 이 자리에서는 “2014년을 마무리하며 최근에 새롭게 탄생한 공간 운영자 및 기획자들이 미술 작업과 제도에 관해 이야기를 주고받을 예정이며, 2015년을 향한 젊은이들의 ‘입장표명(?)’이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덧붙여, 자세한 의제에 대해서는 차후에 다시 공지하겠다고 밝히며, 참여 패널의 라인업을 공지했다. 이 소식보다 먼저 시간과 장소만 미리 공개되었던 것도 같고, 어찌 되었든 자리가 준비되고 진행되는 과정이 조금씩 SNS로 노출/홍보되는 모습이 약간 즉흥인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서 더 호기심이 생겼다. 이런 식의 자리는 생소했다. 보통은 행사의 틀이 짜여 있어 주최와 장소로 그 자리의 성격을 가늠할 수 있거나, 프로그램의 주제와 초대된 발제자들 통해 내용을 예상할 수 있었다면, 이 행사는 어느 쪽도 아니었다. 그들이 내세우고 있는 것은 참석자의 라인업이었는데, 유능사(최정윤, 안대웅)가 주최하고, 참여패널로 유능사를 포함해 교역소(김영수, 정시우, 황아람), 시청각(현시원), 커먼센터(함영준), 반지하(돈선필, 박현정), 케이크갤러리(윤민화)가 참석하며, 임근준이 사회를 맡았다. 패널은 대부분 80년대 초반에서 후반생으로 미술계에 등장한 젊은 층의 기획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 대안공간들의 송년 좌담회 <안녕>패널들 ⓒ교역소

 

새롭게 등장한 공간들의 청년 주인장들

처음 듣는 곳이었기 때문에 주소를 검색해 찾아간 좌담회 장소는 1층에서는 자전거 판매점을 운영하는 신축 건물의 2층이었다. 매장을 통과해 계단을 올라가자 아직 인테리어 공사가 덜 끝난 듯 정리되지 않은 공간 내에 백 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젊은이들이 빽빽하게 앉아 있었다. 서울의 외곽 후미진 동네에 이렇게 많은 수의 젊은이들이 모여있는 모습을 보니 놀라웠다. 좌담회는 패널들의 활동 소개로 시작했다. 먼저 이 장소에서 <상태참조>라는 행사를 진행했던 ‘교역소’가 팀의 결성 계기와 활동을 소개했다. 김영수, 정시우, 황아람 세 사람은 이곳에서 4일간 총 33개 팀이 공연과 상영, 강연 등을 진행하는 프로그램 <상태참조>를 열었다. 이 명칭은 보드게임에서 사용하는 단어로, 상태와 상황을 기반으로 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는 자신들을 위한 전시 공간을 갖기 어려운 현실적인 여건에서 주어진 공간과 시간, 경제적인 제약을 활용해 최선을 택하려는 노력을 의미하기도 했고, 한편으로 이 행사에서 그들이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전제 조건이기도 했다. 이어 패널들도 자신들이 스스로 공간을 열게 된 계기와 그간 활동 내용을 설명했다.

2013년 8월 경복궁 지역 한옥 건물에 문을 연 ‘시청각’, 2013년 11월 영등포 낡은 4층 건물에 문을 연 ‘커먼센터’, 2014년 황학동 벼룩시장 중앙상가 건물 내에 시작한 ‘케이크 갤러리(그 전신으로 2013년 솔로몬 아티스트 스튜디오라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운영됨)’, 2012년 6월 상봉동 주택가 건물 말 그대로 반지하에 위치하며 작업실과 전시장의 중간쯤의 성격을 갖는 ‘반지하’, 이 공간들은 모두 각자 선택한 장소의 위치와 활동 방식에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상황과 선택의 부분에서 신기하게도 비슷하게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본인들이 원하는 전시 혹은 작업 활동을 하고자 공간들을 찾아다녔으나 기존의 전시 공간에서 할 수 없었거나, 공간이 적당하지 않아서(자발적 혹은 타의적으로) 새로운 공간을 찾기로 하게 되었고, 그렇게 유휴 공간 혹은 저가 공간을 이용해 독립 공간을 새로 열면서 그 공간에 맞는, 자신들만의 행사들을 기획하고 꾸려오게 된 사연들이었다. 요는 이 새로운 청년 세대에게 새로운 형태의 공간과 새로운 관계 맺기가 필요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각자 문제 해결의 방식으로써 기회 특정적 공간과 기획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패널들의 활동에 대해, 사회를 맡은 임근준은 “2014년 청년들의 여러 프로젝트가 등장해서 이전 세대들이 보여줬던 방식과는 다른 작업과 방식으로 작가들과 관계를 맺는 새로운 미술 경험의 인터페이스를 만들어냈다.”고 말하며, 2014년을 미술계의 새로운 변화가 일어난 매우 특별한 해로 평가했다.

이어 참석자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한 해 동안 미술계의 행사들을 돌아보는 쪽으로 이야기를 옮겨갔다. 이 중 가장 먼저 이야기의 도마 위에 오른 평가 대상은 유능사가 기획한 <청춘과 잉여> 전시였고, 다음으로 69명의 작가가 참여해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한국 회화를 총망라하는 커먼센터의 공식 개관전 <오늘의 살롱>에 대한 평가도 있었다. 또한, 올해 열린 개인전 가운데 기억에 남는 신인을 꼽아달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윤향로, 조현아, 강정석, 이자혜, 이상훈, 이수성, 김민애, 박경근와 같은 작가들이 거론되었고, 그들의 작업이 갖는 공통적 특징, 특히 우리 시대 공통된 영상 어법의 특징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이 좌담회에서 사회자 임근준의 역할은 매우 독특하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솔직하면서 정곡을 찌르는 특유의 입담으로 그는 홀로 과거 세대를 대표하면서 다수의 젊은 세대 패널과 관중 앞에서 청년 세대의 특징을 정의하고, 그들에게 의미와 동기를 부여하며,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필자는 혹시 여기 모인 군중의 다수가 어쩌면 그를 추종하는 팬덤층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기도 했다. 어찌 됐든 타 예술가의 작업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안전한 태도를 보이면서 최대한 두루뭉술하게 의견을 표현하는 대화보다 더 건설적인 자리였으며, 행위의 주체들이 모여 서로의 활동에 대해 가감 없이 평가하고 그것의 의미를 부여해주는 모습은 근자에 보기 드문 실체가 있는 비평의 자리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 대안공간들의 페이스북 ‘좋아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청년관을 신설하자?!

이날의 논의는 2014년 새롭게 등장한 청년 미술계가 주류 미술계에 어떠한 개혁상, 어떤 프로그램을 요청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마치 이제 긴 서론을 마치고 본론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임근준은 현재 주류 미술계, 그중에서도 개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전시들을 지적하며, “서도호 작가의 거대한 인스톨레이션 작업, 장영혜 작가의 프로젝션 작업, 최우람 작가의 작업 등이 청년시대에게 유용한 형식인가, 신자유주의 시대에 맞게 거대 공간으로 미술관이 진화하고 거기에 맞춰 대형 작업을 전개할 수 있는 작업들이 탄생했는데 그런 종류의 대형작업을 하는 작가가 앞으로 계속해서 청년 세대에 등장해야 하는가, 그게 진보인가?” 라고 질문하며, 참석자들의 의견을 물었다. 참석자들은 갑자기 거리감 있는 화제에 답을 주저했지만 이내 각자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최정윤은 “대형 작업을 하기 위한 조건인 자본력과 대형 작업실을 갖고 있지 않은 청년 작가들에게 초대의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고 답했다. 또, 초대형 미술과 초대형 미술 공간의 탄생 사이 상관성을 지적하며, 대형 공간 공간을 작은 형태로 나눌 수 있는 공간적 변화의 가능성, 그리고 젊은 작가에게 쿼터를 줘서 자본력을 제공해 줄 수 있는 환경의 지원 가능성을 제안했다. 함영준 역시 대형 전시 공간은 2014년의 미술의 특성과는 유리되는 지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시간이 갈수록 분위기는 고조되었고, 그 열기를 모아 “청년관을 위한 예술 행동”이라는 협회(?)를 결성하자는 의견이 모아지기에 이르렀다. 그 협회의 목적은 말 그대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청년들을 위한 프로그램, 기본적인 쿼터를 요구하고, 청년 작가들을 위한 프로젝트 스페이스를 마련하기를 촉구하는 것이었다. 사회자 임근준에 의해 제기된 이 주장은 갑작스러웠지만 고무적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청년 세대의 활동과는 별개의 공간으로 느껴지던, 그저 멀리 있는 성지와도 같던 서울관이 손에 닿을 듯 가까워지는 느낌이었다. 청중의 의견을 듣기 위해 마이크가 한 참관객에게 옮겨졌고, 협회의 결성에 찬성하는 의견들이 하나둘 더해졌다. 그리고 이 자리의 논의를 SNS상으로 이어갈 것을 예정하며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 대안공간들의송년 좌담회 <안녕>관객들

 

에필로그

필자는 좌담회 참석 이후 계속 잠들어있던 트위터 계정을 활성화하고 좌담회의 참석자들을 찾아 팔로잉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소리를 더 가까이서 듣고 싶었고, 시대를 공유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입장 표명에 대한 나의 입장 표명을 하고 싶었다. 서울관에 청년을 위한 공간이 생긴다면 좁은 땅이 무엇을 해결할 수 있을까? 그곳은 또 다른 형태의 권력 공간이 되지는 않을까? 우리가 함께 목소리를 모아 주장해야 하는 바는 최고를 뽑기 위한 또 하나의 경쟁 구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술하기 좋은 우리의 환경을 만드는 일은 아닐지. 변화의 기운을 느끼고 공감했지만, 그것이 표현되고 실현되는 방식에 대해서는 여전히 결정 유보 상태이다. 필자가 좌담회에서 확인한 가장 큰 가치는 치열한 경쟁의식에서 벗어나 서로가 서로에 대한 평가와 격려를 주고받으며 공공의 영역을 추구하는 문화였다. ‘청년관을 위한 예술 행동’이 그것을 담기 위한 좋은 그릇에 대한 고민이 되기를, 그릇의 모양 만큼이나 내용과 쓰임에 대해 더 깊은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

 필자_배세은

 소개_월간 퍼블릭아트 잡지 기자로 활동하였고(2007~2008), 2010년 서울문화재단지원으로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눈먼자들의 도시>를 기획했다. 인터알리아 어시스턴트 큐레이터(2010)에 이어 현재 갤러리잔다리에서 큐레이터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