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프로젝트 잠상 <퉁: 인간 어중간에 대한 보고>

2015. 1. 8. 16:15Review

 

예술하는 이들의 관심사 : 정당하거나 적당하거나  

<퉁: 인간 어중간에 대한 보고>

프로젝트 잠상 공동창작

 

 

글_채 민

 

 프로젝트 잠상의 <퉁:인간 어중간에 대한 보고>를 보고 나니 문득 지난밤이 떠오른다. 송년회 자리에서 거나하게 취한 아버지를 마중 나갔다가 아버지의 친구 분을 오랜만에 뵙게 되었다. 친구 분께서는 내게 어서 자리를 잡고 연예인 지망생인 본인의 아들을 끌어달라고 하셨다. 나는 그저 '네 네~ 조심이 들어가세요.'하고 아버지를 모시고 올라왔다. 내가 무슨 일을 하느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아버지는 자식이 하는 일 중 본인에게 가장 분명한 사실을 대답했으리라. '예술 해‘ 

 

 

장님 코끼리 만지기 -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서교예술실험센터 지하 일층, 적당한 인원의 관객이 방석을 깔고 앉았다. 대강 구분해 둔 무대 쪽에 마치 작은 수조같이 보이는 상자가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 물 대신 영상을 채우며 공연은 시작된다. 왜곡된 목소리의 내레이션과 관련된 이미지들이 맥락과 관계없이 분절되어 나타난다. 우리는 코끼리를 만진 장님들의 일화를 듣는다. 전체를 볼 수 없는 그들은 각자가 지각한 일부를 코끼리의 전체인 냥 말한다. 영상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일단락을 맺는다. '치지마라! 퉁' 그리고 이어지는 공연의 전 과정은 ‘퉁 치지 마라’의 앞에 붙을 하나의 수식어를 완성 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누구보다 분명한 인간 - ‘어중간씨’

연출가는 간략하게 공연의 정황 설명을 마치고 하나의 영상을 공개한다. 한 밤중에 햄버거 가게에 들어선 남자가 감자튀김을 주문한다. 주인이 정성껏 튀겨준 감자튀김을 뒤집어엎은 남자는 가게 밖으로 뛰쳐나간다. 이렇게 별스럽지 않은 사건을 시사고발 프로그램의 형식을 빌어 서스펜스 있는 도입을 시도한다. 주인공은 눅눅한 감자튀김을 싫어하는 ‘어중간씨’다. 이후에도 친구들과 어중간씨, 소개팅 상대와 어중간씨, 어중간씨의 어머니와 인터뷰어 등 인간 어중간씨을 보여주는 다양한 대화들이 이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관객은 어중간씨의 누구보다 분명한 성향을 인지하고 ‘어중간’이라는 이름에 아이러니를 느낀다.

영상에 등장하는 ‘어중간씨’를 제외한 주변인 모두는 얼굴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그곳에 나의 주변인과 부모, 형제를 대입해본다. 그리고 그들은 나와는 상관없는 나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주변인들에게 장님 앞의 코끼리만큼이나 스스로를 표현하지 못하는 어중간씨는 당장 돈이 되는 일을 해 보라는 친구에게 ‘초밥집에서 삼겹살은 팔지 않는다’라는 대답을 하고, 이것은 ‘너는 꿈을 먹고 사는구나’와 같은 레퍼토리 멘트를 부를 뿐이다. 그리고 그는 치고 들어오는 퉁 사이에서 또 다시 어중간 해진다.

공연의 막바지에 본 공연의 영상, 소리, 미술 창작의 주체들이 무대 전면으로 등장하여 각자의 퉁 침 당했던 경험들과 극복하려고 했던 시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로써 어중간씨가 창작자 본인들의 이야기임이 명확해진다. 이렇게 <퉁:인간 어중간에 대한 보고>가 끝나면 마치 젊은 예술가의 짧은 일기를 읽은 기분이 든다.

 

 

무대로 가는 사유하기

설치 미술과 미디어의 유기적인 연출과 능숙한 구현은 프로젝트 잠상의 강점이다. 서교실험예술센터 지하1층의 애매한 실내구조를 다양하게 활용한 점도 거리예술에서 잔뼈가 굵은 프로젝트 잠상의 내공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나는 프로젝트 잠상의 거리공연 <도시내시경 시리즈>를 몇 차례 경험한 바 있다. 고양호수예술축제, 과천축제, 안산거리극축제 등에서 해당 지역의 역사와 현재의 모습을 주어진 장소성을 활용하여 적절하게 연출했던 장소특정적 공연이었다. 관객은 그들의 매소드를 통해 구성된 공간에 들어가 직접 체험이 가능했다.

공연장 안으로 들어온 ‘프로젝트 잠상’의 본 공연은 이전의 공연처럼 장소성에 기대지도 않고, 극의 형식도 빌리지 않은 채 오롯이 창작자의 사유를 주제로 했다. 그들의 고민과 하고자 하는 말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 ‘퉁 치지마라’는 효과적이고 위트 있는 아이디어 였으나, 그 이상의 의미로 확장시키지 못한 점은 아쉽다. 사회 시스템 안에 어중간하게 자리 잡을 수밖에 없는 다른 존재들을 조명 했다면 그들의 착상이 더욱 빛을 발했을 것이다. 오히려 예술가는 ‘이해하기 힘들고, 하는 일이 어중간하며,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사람’으로 남아있어도 되지 않을까.

ps. 상대가 나에게 가지는 애정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 없이는 그 ‘어중간’함은 해소되지 않는다. 그것이 퉁 침 당하지 않으려는 나의 의지만큼이나 중요할 것이다.

 

 

*사진제공_프로젝트 잠상

**프로젝트 잠상 지난리뷰 바로가기 >>> http://indienbob.tistory.com/741

***프로젝트 잠상 웹페이지 바로가기>>>  http://jamsang.org / facebook.com/projectjamsang

 필자_채민

 소개_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가치를 믿습니다. 아직 부족하지만, 시간을 가지고 충분히 고민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