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인천아트플랫폼 인큐 - <TAKE OFF 벗/어나/기>

2015. 1. 28. 05:19Review

 

<TAKE OFF /어나/>

  :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다, 그리고 말하다

 글_전강희

 

얼라이브아츠코모(aliveartsco_mo)는 연극, 무용, 음악,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창작 네트워크이다. 시간과 순간을 채집하여, 세밀한 관찰과 미학적인 실험을 거친 후, 여러 사람들의 생생한 반응을 이끌어내어, 상호능동적인 소통을 하고자하는 집단이다. 연극을 포함한 공연예술을 연출하는 홍은지와 비디오, 사진,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매체 실험을 하는 김지현이 만나 어떤 시간과 순간을 수집했다. 결과물은 멈춰버린 시간과 생생한 순간이 되어, </어나/>라는 이름으로 인천아트플랫폼 전시장에서 관람객/관객을 만났다.

/어나/‘take off’의 사전적 의미인 ‘(옷 등을) 벗다‘(~로부터) 떠나다의 합성어이다. 홍은지와 김지현은 이러한 의미에 예술적 상상력을 불어넣어 일인관람설치작업을 만들었다. 전시장은 한 명의 관람객만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작은 공간이지만 작품 속 시간과 순간을 품기에 충분했다 

보다

- 흔적들: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

관람객이 전시장 안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작은 스피커이다. 사실, ‘눈에 들어온다보다는 들린다고 쓰는 것이 더 정확하다. 가장 먼저 칼로 야채를 손질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린다. “탁탁탁탁”, 어릴 적부터 듣던 익숙한 리듬이 귀에 기분 좋게 감긴다. 규칙적인 소리가 일상의 평화로움을 전해준다. 곧이어 기름에 음식을 지지는 소리가 들린다. 공간을 꽉 채우는 소리 때문에 마치 명절날이 아닐까하는 상상에 빠지게 된다. 평화로움에 활기가 더해진다.

소리의 경쾌한 리듬에 익숙해질 때쯤이면, 전시실의 한 면이 눈에 들어온다. 그냥 소품 창고로만 보이는 문 앞으로 다가가면, 요리하는 소리의 크기가 점점 줄어든다. 문 앞에는 작은 투명한 원이 있다. 방 안을 자세히 살피기 위해 몸을 더 기울이면, 소리가 점점 잦아든다. 배경을 크게 보기위해 문에서 몸을 떼고 몇 발자국 물러서면 소리는 다시 커진다. 소리와 방이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린다. 문과 스피커 사이를 몇 번 왔다갔다하는 수고를 들여야 한다.

탁탁탁탁소리로 떠올렸던 행복한 순간이, 문 앞에 서면 소리가 사라지면서 함께 없어진다. 소리가 사라진 문 너머의 세계에서도 평범한 일상이 펼쳐지고 있다. 대신 다른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하는 소리인데, 텔레비전이 켜져 있는 것 같다. 전자제품 불빛처럼 파란 빛이 불규칙적인 빛을 흘리며 낮게 드리운다. 작은 창 너머의 공간은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방의 절반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실 나머지 부분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도 없다. 다만 그곳에 조리대가 있고, 앞서 듣던 요리 소리의 근원지일 거라는 심증 강한 추측만 할 뿐이다.

아기자기한 소품들은 작은 공간을 아늑하게 보이게 한다. 사실적인 장치들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남의 집을 엿보는 거지만, 물건 하나하나를 시선으로 더듬어 따라가 본다. 식탁에는 음식이 차려져 있다. 냄새도 조금 난다. 갓 구운 빵에 쨈도 발라져 있고, 스프도 있다. 옆에는 꽃도 놓여있다. 옷걸이에 외투가 걸려있는 것으로 보아 외출한 것은 아니다. 안 보이는 곳에 누군가 있다. 그곳에서 요리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낯선 사람이 바라보고 있어서 잠시 멈춘 것뿐이라고 생각하자.

문 안쪽에 펼쳐진 일상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있다. 매끄럽게 공간을 타고 흐르던 시선이 걸리는 곳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양파 다발에서다. 제자리에 있지 않은 사물이 공간에 이상한 분위기를 퍼트린다. 아늑하다고 생각했던 공간이 낯설어 진다. 이제 식탁 위가 약간 어질러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천장의 전등도 너무 아래쪽으로 내려와 있는 것 같다. 전등이 켜져 있는 데도 방은 환하지 않다. 아니, 저녁인가? 외투도 못 챙겨 입고 나갈 정도로 긴급한 일이 발생한 건가?

- 관람객: 단 한 명의 등장인물

</어나/>는 장르를 명기하자면 시각예술분야의 전시다. 그런데 관람을 하고 나면 공연 몇 개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등장인물은 한 사람도 등장하지 않았지만, 여러 명을 만난 듯하다. 전시에 분명히 등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관람객이다. 이 전시는 관람객이 없다면 갤러리의 한 모퉁이를 차지할 가치조차 없어진다. 누군가가 소장하는 작품이 아니라 체험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작품에는 관람객이 해석해야할 기호들이 넘쳐난다. </어나/>라는 제목도 그렇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들려오는 소리부터, 원형 창틀 안에 펼쳐진 세상의 작은 소품 하나하나까지 관람객 스스로 해석해내야 하는 기호들이다. 관람객은 기꺼이 기호들을 엮어 논리적인 이야기를 만들고자 한다. 사람은 이미 떠나고 쥐들만 있는 것은 아닐까? 영화 <The Others>처럼 유령이 사는 곳인가? 혹 대지진이 휩쓸고 간 후쿠시마의 한 가정집은 아닐까? 등등 어떤 이야기를 발견해 내려고 고심하고 있을 때 관람객을 엄습하는 것이 있다. 바로, 감각이다.

</어나/>에는 예술가들이 촘촘하게 만들어 놓은 여러 감각의 층위들이 존재한다. 요리하는 소리는 규칙적인 소리, 둔탁한 소리, 가벼운 소리 등을 내면서 그것 자체로 물질성을 획득하고 있다. 문 너머의 불빛 또한, 바탕이 되는 앰버 조명에 깜빡거리는 차가운 청색 조명이 스며들면서 들쭉날쭉한 경계를 만들어낸다. 조명만으로도 어떤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런 감각과 이야기가 만나면서 작품은 더 다채로워진다. 여기까지는 예술가들이 관람객의 반응을 미리 충분히 계산해서 유도해 낼 수 있는 체험이다. 관람객을 엄습한 감각은 청각과 시각이라기보다 후각이다.

이 작품의 시청각적인 요소에 비해서 후각을 자극하는 요소는 아주 미미하다. 모든 감각을 지각하고 난 후에야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희미하게 코끝에 닿는 냄새가 있다. 문에서 나는 나무 냄새인가, 고민해 보지만 정체는 식탁 위 빵 냄새로 드러난다. 이 냄새를 맡는 순간, 관람객은 엿보는 사람이 아닌 그 시간 속에 동참하는 등장인물이 된다. 전시의 시간과 실제 나의 시간이 이 순간 만나게 된다.

궁극적으로 </어나/>는 해석하는 작품이 아닌 감각하는 작품이 된다. 시간이 확대되자, 공간이 팽창하고, 관람행위는 이런 순간을 체험하는 수행과정이 된다. 감각과 감각이 맞물리며 특정한 의미로 고착되는 것을 계속해서 지연시킨다. 의미가 분명해 보였던 기호들은 감각과 결합하여, 본래의 의미를 넘어서는 새로운 것으로 탈바꿈한다. 끊임없이 차이가 탄생하면서 전시는 사건이 된다. 관람객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능동적인 주체로서, 작품 안에 함께 한다.

 

말하다

- post-exhibition: 다시 벗어나기

관람객이 전시를 둘러보는 시간 동안 홍은지와 김지현은 전시장 바깥에 마련된 벤치에서 그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작품의 시간을 결정하는 것은 관람객이기 때문에 이들이 어느 정도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관람객이 나오면 두 명의 예술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영상이나 녹음을 통해 수집해 나간다.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처럼 수집이 시작된다. 이 과정은 자신들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이들이 귀를 기울이는 것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이야기 이외의 또 다른 이야기이다. 다음 단계에서 작품의 수준을 더 높이고자 코멘트를 요청하는 것도 아니다. 관람객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전시를 마무리 하는 것이다. 한 공간 안에 놓인 단일한 이야기가 복수의 이야기로 바뀌는 경험을 이들도 함께 나누기 위함이다.

이때 예술가의 태도는 새로운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관객의 태도를 닮았다. 관람객에게 무언가를 말할 것을 요청한다. 이 순간, 관람객은 예술가가 되고, 예술가는 관객이 된다. 역할 바꾸기, 즉 또 다른 벗어나기가 시작된다.

 

 

* 사진제공: 홍은지  / 인천아트플랫폼 홈페이지 http://inartplatform.kr/
** 이 글은 인천아트플랫폼이 운영하는 온라인 매체에 공유되거나, 발간하는 인쇄물로 출간될 수도 있습니다.

2014 인천아트플랫폼 <창작지원 : 플랫폼 인큐> TAKE OFF 벗/어나/기

· 일시 : 2014.12.09~2014.12.10
· 장소 : 인천아트플랫폼 A동 2층
· 시간 : 2014.12.9(화)~12.10(수) 12:00~18:00

 

얼라이브아츠코모 alivearts co_mo/collective moment

시간/순간 채집활동을 통한 창작활동.

능동적인 소통과 반응, 즉흥과 변주, 다양한 호기심과 실험.

얼라이브 아츠 코모는 예술가 창작 네트워크로, 연극, 무용, 음악, 미디어 아트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나눔과 확장을 시도합니다.

 

김지현

비디오, 사진,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 등 단일 매체에 국한되지 않는 작업들을 시도하고 있다. 6년 간의 파리에서의 생활이 작가의 개인 작업에 있어서 출발점이 되었고, 서울로 거점을 옮긴 이후 주변을 관찰하고 수집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개인 작업과 더불어 2010년부터 그룹 <얼라이브 아츠 코모>를 통해 모인 타분야 아티스트들과 함께 인터랙티브 퍼포먼스 <벙어리시인>을 공연하였고, 2012년 미디어&사운드 그룹 의 작업을 시작하였으며, 밴드 <로로스>, <니나이언> 등의 뮤지션 공연에서 미디어 작업을 함께 했다. website: www.intergrids.com

 

홍은지

연극을 기반으로 한 공연예술작품을 연출하고 있다. 공연그룹 <은빛창고>에서 공동창작을 통한 텍스트만들기와 몸의 이미지 찾기에 초점을 맞추어 다양한 공연 언어를 발견하는 작업을 해왔다. 2009년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과 함께 진행한 다분야 협업 프로젝트를 계기로 다양한 매체와 공간에서 소통하는 미디어 퍼포먼스 작업들을 해오고 있다. <사막을 걸어가다>, <세자매- 크로스아시아버전>, <내입장이 되어봐>, <까페더 로스트>, <벙어리시인> 등을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