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15 서울변방연극제, 서울괴담<칠순잔치>

2015. 8. 14. 09:11Review

위로를 넘어 제언으로

<칠순잔치>

극단 서울괴담 / 변방연극제

 

글_채 민

 

 

버스가 구불구불한 오르막길을 버겁게 오른다. 언젠가 비슷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데 하며 더듬어 보니 지난번 서울괴담의 <북정블루스>을 보러 북정마을에 가는 길이 그랬었다. 지역의 커뮤니티 및 거리를 기반으로 작업하는 극단 서울괴담의 숙명 비슷한 것 같다. 이것이 그들의 작업을 주시하는 나의 숙명 비슷한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내가 경험한 몇몇의 변방연극제 공연들은 본디 ‘공연장’이 아닌 곳에서 이루어진 것들이 많았다. 창작자들은 ‘공연장’이 아닌 곳을 관객과의 ‘약속’을 통해 ‘공연현장’으로 만들어 내고 그 공간의 맥락이 공연 안으로 들어오게끔 했었다. 여타의 연극제들의 공간이 일정 지역의 주요 공연장들에 한정된다면, 변방연극제의 공간은 심리적 변방과,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변방이 더해져 광범위 해진다. 따라서 ‘공연을 찾아가는 녹록치 않은 길’ 까지 관극 시간으로 확대할 수 있는 것이 변방연극제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안내 배너가 없었으면 지나쳤을 숲길이 ‘성북구민회관’의 입구였다. 조금 걷다보니 눈에 익은 알록달록한 알전구가 마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걸쳐져 있는 것이 보였다. 계단 끝으로 갈수록 ‘잔치’답게 막걸리와 김치 냄새가 진해졌다. 밴드 ‘와다다 사운드’의 연주와 함께 한 바탕 춤판이 벌어지고 북정마을 해방둥이들의 <칠순잔치>가 시작 되었다.

 

 

여배우가 리어카를 끌고 마당에 들어선다. 스스로를 ‘송태식’이라고 소개한 그(그녀)는 조적공이었다. 지난날을 회상하는 배우의 목소리에 ‘송태식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끼어든다. 아카이빙 된 목소리 너머로 들려오는 술잔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 있자면 근·현대사의 모든 결정적인 현장에 있었다고 말하는 그의 회고는 사실인지 아닌지 알 도리가 없어지지만, 중요한건 그가 모든 사건을 가깝게 기억한다는 것이다.

리어카를 세워서 만든 간이 무대에서 손가락 인형극으로 송태식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작업 중에 높은 곳에서 낙상하는 장면은 분명 비극적인 것이지만, 상황과는 동떨어진 와다다사운드의 음악과 춤추듯 흐느적거리는 손가락이 감정의 이입을 막는다. 그래서 우리는 송태식 할아버지의 사건 현장이 아닌, 잔잔하게 회고하는 감정 상태에 머물게 된다. 첫 번째 이야기가 끝나고 배우는 인형이 끼워진 손으로 관객들에게 악수를 청한다.

“여러분 송태식 할아버지입니다!”

외벽에 붙은 스크린에 영상이 맺힌다. 오래된 집 담벼락에 낙서인 듯 그려진 사람의 형상이 두 번째 주인공이다. 남자 배우가 스크린 안으로 들어와 낙서에게 말을 건다. 투박하지만 배우와 영상의 주고받음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담벼락에 할아버지의 지난 시간들이 그려진다. 이야기를 들으려고 스크린으로 뛰어들었던 배우는 청년 시절의 할아버지가 되고, 자유롭게 하늘을 뛰어다니던 그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땅으로 떨어진다. 역사의 화마(火魔)를 피해 몸을 웅크려 도망 다녔던 산전수전의 이야기가 끝나면 담벼락에 주름진 얼굴 하나가 그려진다. 그 초상 앞으로 마이크를 쥔 이야기의 주인공이 노래를 부르며 등장한다. 모두가 함께 박수를 치며 한곡을 구성지게 다 부른다. 할아버지의 전사를 본 직후에 그와 공존하는 이 시간이 순간 기묘하게 다가온다.

 

 

정리된 마당에 아코디언을 맨 여배우가 멜랑콜리하고 서정적인 가락을 흘리며 들어온다. 그녀는 출가 이후로 줄곧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할머니로 불려온 한 여자의 이름을 추적한다. 어떤 것으로든 맥주병을 딸 수 있는 그녀는 이름은 ‘박승희’다. (그들은 실제로 박승희 할머니가 어떤 도구로 맥주병을 땄는지 시전 해 보인다.) 되찾은 그녀의 이름이 새겨진 비행기표를 들고 그들은 하와이로 떠난다. 무대로 밀고 들어오는 코끼리 오브제들과 함께 마당은 비현실적인 축제의 공간이 된다. 마을사람들은 코끼리의 꼬리를 물고 원을 그리며 논다. 그들은 모든 막과 막 사이에 자연스럽게 들어오고 나간다.

네 번째 주인공 연기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한 명의 광대가 끌어나간다. 광대 복장을 하지 않았지만, 그는 대사, 춤, 슬랩스틱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안전모와 벽돌을 나르는 지게는 조적공이었던 연기 할아버지를 상징한다. 인생의 한 구절을 넘길 때마다 술통에는 술이 채워지고, 가득 찬 술동이를 지게에 지고 휘청거리며 마지막 춤을 춘다. 걷다가 몸이 쏠리면 버티기 보다는 쏠리는 쪽으로 한걸음 더 가주는 것이 균형을 잡는 법이라는 것은 연기 할아버지의 깨달음이다. 할아버지의 70년 인생이 담긴 술을 나누어 마시며 마지막 춤판이 벌어진다.

 

 

극단 서울괴담은 <칠순잔치>에서 연기, 무용, 춤, 영상, 음악, 오브제 등 다양한 요소들을 꼴라주 하여 총체적 연극을 지향했다. 이를 통해 공감각적으로 풍부한 관극 경험을 제공하여 야외에서 이루어짐에도 불구하고 공연에 대한 높은 집중이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매체의 다양성이 표현의 참신함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아쉽게도 인물들의 전사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는 새로울 것이 없었다. 비이상적으로 고도성장한 경제구조와 공존하는 전근대적 사고에서 오는 모순이 개인의 삶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보여주기에는 아카이브한 인물의 이야기들이 보편성을 띠고 있었고, 그만큼 익숙한 이야기들은 문제를 상기시키는 것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뉴다큐멘터리형식의 공연에서 대상을 향한 질문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되는 지점이다.

북정마을 사람들을 소재로 한 극단 서울괴담의 공연에서는 그들이 커뮤니티와 공유한 시간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배우들과 소통하며 공연의 안팎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마을사람들의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다. <칠순잔치>에서는 본인들이 제기한 문제의식보다는 극단과 커뮤니티 구성원들과의 관계가 전면에 부각되었다. 앞으로 이어지는 서울괴담의 작업이 변방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위로’에 그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진제공_서울변방연극제 사무국 (사진촬영 : 이재각)  

 필자_채민

 소개_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가치를 믿습니다. 아직 부족하지만, 시간을 가지고 충분히 고민하고 싶습니다.

 

“남자로 상징되는 한국 현대사, 이성과 과학, 서구중심적 제국주의, 자본주의적 개발 및 시장만능주의, 능력제일주의, 서울중심주의로 가득한 기이한 고도 성장 속에서 녹녹치 않은 시간을 보내온 해방 70년 광복둥이들의 이야기“

 [일시] 2015년 7월 29일(수)~7월 30일(목) 오후 8시

 [장소] 성북구민회관

 작품소개_칠순은 ‘고희’라고도 하는대 두보의 싯구 ‘인생칠십고래희’라는 대목에서 유래했다. 인생 칠십까지 살기 쉽지 않다라는 의미로 여기까지 사는 것도 덤으로 사는 것이니 근심이나 걱정할 것 없이 남은 여생을 살아도 괜찮다는 의미이다. 2015년 서울괴담의 신작 연극 <칠순잔치>는 남자로 상징되는 한국 현대사, 이성과 과학, 서구중심적 제국주의, 자본주의적 개발 및 시장만능주의, 능력제일주의, 서울중심주의로 가득한 기이한 고도 성장 속에서 녹녹치 않은 시간을 보내온 광북둥이들의 이야기이다. 연극 <칠순잔치>는 농업과 생태적 가치의 존중으로 대치되어야 하는 시대적 요구에 어울리는 상징적인 칠순 잔칫상을 차림으로서 우애와 환대를 나누며 오순도순 살았던 공동체의 기억을 되살려서 분열과 갈등으로 멍들고 얼룩진 가슴을 쓰다듬어 보자는 의미의 공연이다. 자본과 속도의 무한경쟁 앞에 모든 국민이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압축성자의 휴유증이 터질 듯 팽배해 있는 한국 사회에서 예술가들이 먼저 앞장서서 꿈을 꾸어야 하지 않겠나?

 아티스트 소개_서울괴담은 인공적 환경속에서 살아가는 도시민의 일상성에 기이함을 느끼고 도시가 가지고 있는 부자연스러운 현상들을 극단적 이미지의 괴담으로 풀어낸다. 사라져가는 근현대 도시의 곳곳을 찾아내어 ‘무대와 관객’의 경계선을 허물고 연극, 미술, 음악, 영상을 통해 함께하는 작업을 지향하며 극장(black cube)이나 미술관(white cube)등 기존의 공연장의 틀을 벗고 일상적인 장소에서 보편적인 이야기를 구현해 낸다

 제작진 소개_작 공동창작 / 연출 유영봉 / 음악감독 강택현 / 미술 유영봉 / 무대감독 권석린 / 탈춤지도 솔문 / 사진기록 유영록 / 영상기록 하유준 / 그래픽디자인 여울 / 프로듀서 박효주

 출연진_임형섭 / 이영미 / 오선아 / 김인규 / 양승주 / 김두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