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순우삼촌> 그것이 현실이었다

2015. 7. 31. 23:49Review

 

그것이 현실이었다

<순우삼촌> 리뷰

김은성 재창작, 부새롬 연출 / 극단 두비춤

  글_정은호 

 

1973년 잠실은 섬이었다. 2015년 잠실은 육지가 되었다. <순우삼촌>1973년 경제성장의 흐름 속에 놓여 있는 섬 주민들의 일화를 다룬다. 한강은 매몰되고 뱃사공의 노를 만드는 순우는 직업을 잃는다. 뱃사공 철구도 직업을 잃는다. 자본이 득세하고 자본가가 권력을 쥐었다는 것은 지금이나 예전이나 다르지 않다. 노동자는 착취의 대상이고 늘 그래왔다. 어떤 저항이 있을 것인가? 슬프게도 저항이 없다. <순우삼촌>에서 실질적 약자인 순우도 철구도 이 한강개발계획에 직접적으로 저항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이었다. “그것이 현실이었다라고 적었을 때 느껴지는 굴욕감, 분노, 비정함, 고통. 이런 감정들이 <순우삼촌>이라는 연극이 가지는 에너지일 것이다. 내가 좋았던 점은 이 연극이 나를 계몽하려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한강을 파괴한 정부의 계획은 나쁘다. 정부는 나쁜 놈들이고 우리는 그에 맞서 저항해야한다.”라고 강하게 말해주지 않아서 좋았다. 그걸 강변하였다면 나는 금세 싫증이 났을 것이다. 나는 1973년 잠실섬에서 산 사람들의 삶이 궁금했고 <순우삼촌>은 그것을 잘 보여주었다. 그것이 기뻤고 그래서 나는 연극을 보고 슬펐다.

 

 

 

연극은 순우가 아름답게 흐르고 있는 한강을 바라보는 데서 출발한다. 순우의 평생을 함께한 한강은 도시계획에 의해 파괴된다. 순우의 형, 건우는 발 빨리 부동산을 수소문해, 땅을 팔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건우는 순우와 순우의 어머니가 힘들게 일한 돈으로 유학비를 마련하여 박사학위를 딴 인물로 잠시 한국으로 귀국하여 순우 가족과 함께 살게 되는데, 이 때 갑작스레 발생한 것이 도시계획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순우는 땅을 팔고자 하는 형에게 분노하게 되고 20년 동안 형을 위해 애쓴 자신의 노력이 다 헛것이었다는 생각에 고통을 느낀다. 게다가 건우의 아내인 다정에게 연정마저 품게 되는 순우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자신마저도 혐오하고 원망하게 된다. 순우는 1973년 잠실섬을 사랑하는 주민으로서 정부 계획에 가장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은 인물이다. 한강의 생태계가 파괴될 때마다 자기 살이 깎여나가는 듯한 아픔을 느끼는 사람이 순우다. 게다가 순우의 어머니마저 순우 자신은 돌보지도 않고 유학을 갔다온 박사 출신의 건우만 예뻐하니, 순우의 깊은 분노는 해소될 길이 없었다. 도시개발은 계속해서 진행되고, 공사장 인부들은 계속되는 공사에 다쳐 보건소로 실려 온다. 순우는 갈등한다. 땅을 판다는 것은 그의 삶을 파는 것에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등장인물들의 감정이 최고조에 이르는 것은 바로 3장의 마지막이었다. 땅을 팔자고 하는 건우와, 땅을 지키자고 하는 순우의 갈등은 결국 싸움으로 번지게 된다. 20년 간 뒷바라지를 했지만 땅에 대한 사랑은 하나도 없는, 자신과는 거의 남에 가깝게 되어버린 형 건우에 대한 고통이 순우에겐 있었다. 어머니와 동생조차도 자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 자본이라는 거대한 압력에 짓밟히고는 자신의 무력감이 순우를 감정적 폭발 상태로 몰아갔을 것이다. 순우는 건우를 죽일 기세로 몽둥이를 휘두르고, 가족들은 그런 순우를 말린다. 순우는 더욱 미쳐서 날뛰고, 스스로의 손으로 재배한 참외가 들어있는 상자마저 집어 들게 된다. 참외 상자를 집어 든 채 차마 던지지는 못하고 부르르 떨고 있는 순우의 눈에서는, 잠실지구의 고통이 단순히 사회적 외압뿐만이 아니라 가정적 분란마저 불러오게 된다는 것을 명시하는 듯하다. 결국 순우는 참외상자를 힘없이 손에서 놓치고, 그가 재배한 참외들은 마치 공사현장의 잠실 섬처럼 무너져 내린다. 잠실 섬은 끝났다. 이제 우리가 아는 섬은 사라지게 될 것이고, 잠실 섬과, 순우가 좋아했던 그 코스모스들과, 한강을 오가던 오리들을 기억하는 사람도 사라져 갈 것이다.

 

 

순우와 그의 조카 지숙은 결국 잠실 섬에 계속 남기로 결정한다. 그의 어머니도, 건우도, 다정도, 철구도, 지숙이 짝사랑하던 석준도 모두 떠나버리고 이제 그들 둘만 남아 섬을 지킨다. 지숙은 순우와 나란히 앉아 자신이 보았던 새들의 이야기를 한다. 아주 추운 겨울, 강물 위에서 새들이 미친 듯이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새들이 미친 듯이 강물을 계속 날갯죽지로 치고 있었다고 했다. 그 이유는 바로 강물을 얼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다음날 지숙이 강으로 가 보자, 신기하게도 새들이 날갯짓을 해 놓은 그곳만 추위에 얼지 않았다. 순우와 지숙은 그 이야기를 하면서 새들의 날갯짓을 따라해 본다. 공사장에서 내는 금속성은 점점 그들에게 가까워져 오고, 그들은 계속 날갯짓을 따라해 본다. 잠실 섬에서 그들에게 남아 있는 것은 바로 그 날갯짓뿐인 것이다. 계속해서 날갯짓을 해나가는 것, 폭력적인 현실에 저항하는 것, 희망을 품는 것, 그것이 순우삼촌의 메시지였다. 씁쓸하면서도 앞으로 이겨나갈 의지를 품게 되는, 그러므로 완전히 베드엔딩은 아닌 결말인 셈이다. 여전히 현실에서도 제 2, 3의 잠실 섬 사건은 많이 일어나고 있다. 날갯짓 이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무엇일까. 체제를 변화시킬 방법은 무엇일까. 삶을 바꾸는 규칙을 돈의 논리 이외에서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이 남는 연극이었다. 날갯짓으로 모든 강을 얼지 않게 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니까 이 슬픈 날갯짓을 어떻게 하면 더 강하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드는 것이다. 앞으로도 그런 고민을 계속 하게 될 것 같다. 답이 있을까.

 

* 사진제공_극단 두비춤

필자_정은호 

소개_ 시를 공부하고 있다. 무엇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없으나 미래에도 계속 시를 쓰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창작 김은성
연출 부새롬
출연 문일수, 성여진, 오대석, 이상홍, 강말금, 김정, 이지혜, 노기용

원안 안톤 체홉 <바냐아저씨>

조연출 윤혜숙
무대/소품 김다정
조명 성미림
의상 김미나
분장 정경숙
음악 배미령
음향 임서진
그래픽 황가림
드로잉 이상홍
사진 장우제
기획 나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