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9. 6. 09:56ㆍReview
두 개의 리 얼
신민 개인전 <Inhale, Exhale, and STAY>
(들이쉬고, 내쉬고, 그대로 유지)
글_니문
그 풍경은 확실히 불협화음이었다. 필자는 작가 신민의 전시를 두 번 보았다. 둘 다 연남동에 위치한 ‘플레이스 막’에서 진행된 전시로, 하나는 2011년 <딸기코의 딸들>이고 다른 하나는 2014년 <We're all made of ___>였다. <딸기코의 딸들>은 대낮에 보아도 소름이 끼치는 전시로, 작가는 찰흙으로 만든 틀 위에 편지 쓰던 종이와 신문지를 물풀로 한 겹씩 붙여서 소녀로 추정되는 얼굴을 만들고 거기에 눈구멍을 내어서 향을 피웠다. 아이들은 저마다 눈구멍에서 허연 향연(香煙)를 뿜으며 신음을 가시화했다. <We're all made of ___>는 폭력 현장의 한 모습에 가까웠다. 작가는 누구나 한 번쯤은 먹어보았을 유명 패스트푸드점의 파트타이머로 일하며, 저비용 고효율을 자랑하는 노동 부품으로서의 시간을 견뎌야했다. 엎드려 뻗혀 있는 알바생 조형물들은 그러한 시간의 응고다. 부당함은 일상이나 일터에서 정신없이 일했을 때보다, 퇴근하고 퇴사하고 더 심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 작업에 스며들었고, 작업의 모티프는 대개 일상 시간의 분노가 된다.
여하간 신민의 전시는 늘 참혹했다. 커먼그라운드의 ‘TOY REPUBLIC’에서 진행된 <들이쉬고, 내쉬고, 그대로 유지> 역시 다르지 않았다. 참혹함에 있어서는 말이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해졌다고도 할 수 있다. 벌거벗은 여성(으로 추정되는)의 전신이 종이 평면 위에 그려져 있는데, 이 평면의 전신상은 무덤 속 관(棺)처럼 적지 않은 두께와 사람 키만 한 높이를 가지고 있다. 이런 종이 관이 세 개나 된다. 셋 다 입장하는 모든 이들을 달갑지 않게 응시하고 있다. 그 곁에는 지난 전시에서 보였던 <주문하신 소프트 콘 두 개>의 주인공이 아이스크림에 짓눌려 있다. 뒤편의 벽에는 꼴라주 겸 드로잉들이 즐비한데, 고난에 대한 은유를 직유처럼 던지고 있다. 아이스크림에 짓밟히고, 단체로 직원들이 혼이 나가있고, 사지가 구겨져서 용변을 보는 파트타이머를 담은 작은 평면의 작업에서 우리는 심한 욕설이 아주 곧은 방향으로 던지는 간접적인 언어의 폭력임을 안다. 곧은 각도로 작가는 이미지를 던지고, 보는 이들은 달려드는 신민의 볼거리에서 당시 그이가 겪은 수모와 농도를 짐작할 수 있다. 피켓 위로 육하원칙에 따라 규탄하는 글을 쓰는 게 아닌데도, 그 몇 점의 공작(工作) 따위가 더 참혹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꺾어지는 벽면에서 전시의 참상은 절정을 이루는데, 바닥에는 목 잘린 두상(頭像)들이 널브러져 있고 그 위에는 그 머리들의 혼인 냥 허연 드로잉이 두둥실 떠있다.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는 전시이다.
▲ 신민 개인전 <Inhale, Exhale, and STAY>@토이 리퍼블릭 (사진=니문)
어느 나라의 언어적 논리를 그 나라의 모국어로 전달할 때, 의미는 가능하다. 의미가 가능하다는 것은 언어적 오류가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신민은 작업에 대하여 정교한 은유나 복선들을 쓰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답 없는 일터에 위치했을 때 주변에 널린 부스러기들로 처한 상황을 읊어낸다. 즉물적이다. 차마 눈 뗄 수 없는 악다구니를 악을 쓰던 시간의 파편들(편지지와 감자튀김 종이봉지)로 엉겨내었기 때문이겠다. 그래서 신민이 선택한 재료들과 그 재료가 배치된 작법은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문법적 오류가 적은 작업이다.
그렇다면 이번 전시는 이전 전시와 다르지 않은 동어반복인가? 그건 그렇지 않다. <들이쉬고, 내쉬고, 그대로 유지>는 어조나 어투라고 할 법한 차원에 있어서 차이를 가진다. 물론 방향을 크게 전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작가도 이번 전시가 이전 전시와 동일한 연장선상에 있다고도 하였다. 모티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동일한 분노와 참혹함을 기반으로 했다는 말이다.
다만 참혹함이 수습되어 가고 있었다. 수습이 무슨 문제가 해결된다거나 해소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때 수습은 주검을 주섬주섬 주워서 양지바른 땅까지 끌고 가는 그런 수습을 말하는 것이다. 노려보며 500원짜리 소프트콘 아이스크림을 내밀던 직원은 깔아뭉개졌고, 나신(裸身)의 여성들은 종이로 만들어진 관에 껴들어간 듯하다. 게다가, 그 두상을 모아둔 자리가 제일 그러하다. 큰 무례를 감수하고 표현하자면, 그 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대가리’들에서 이전 전시에서 보이던 엽기나 폭력의 뜨거움이 식어버린 것을 느낄 수 있다. 이전 작업에서 사납게 사위는 향불과 울분은 잘린 목의 단면처럼 고요해졌다. 잘려나간 신체에 대한 묘사는 소설가 김훈의 『칼의 노래』에도 나타난다. 소설 안에서 이순신은 꿈속에서 왜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아들을 만난다. 그리고 이순신은 잘려나간 아들의 어깨 절단면 사이에서 울음이 새어나오는 광경을 목도한다. 신민이 만든 대가리에 그런 울음은 없었다. 잘려나간 대가리의 단면은 척추와 골수 등의 단면이 보이는데, 이건 정육점 고기나 다름없는 단순함을 가지고 있다. 희고 또 붉은 그 간명한 농도의 색채처럼 단순해져버린 감정들이 덩어리 째 굴러다닌다. 이 단순함 사이에서 새어나오는 정보는 없다. 신민은 향불이 퍼지고 백안시로 노려보는 것에서 더 분노를 압축하는 기술을 터득한 게 아닐까 싶다. 침묵은 잘린 목의 단면만큼이나 단순하고 조용하지만, 가라앉힌 앙금 같은 아수라를 보여준다. 사실을 채로 친 리얼의 앙금이다.
▲ 신민 개인전 <Inhale, Exhale, and STAY>@토이 리퍼블릭 (사진=니문)
여기까지는 전시에 대한 이야기이다. 귀를 닿고 오직 작품만 있는 전시장을 보았을 때 느낄 수 있는 풍경이다. 애석하게도 전시장의 풍경이 그렇게 말끔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이번 전시에서는 더욱이 그러했다. 7호선 건대입구역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커먼그라운드는 소개 글에 따르면 “국내 최초이자 전세계 최대의 팝업 컨테이너 쇼핑몰”이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어떤 공간에 최초와 최대라는 수식이 하나라도 붙으면 범상치 않은 수익성을 기대하기 마련인데, 무려 둘 다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 안의 전시장이라는 ‘TOY REPUBLIC’의 부제격인 수사는 ‘ENJOY PLAYFUL PLATFORM’이다. 소개문을 살펴보면 앞선 수사와 마찬가지로 축제와 흥취, 젊은 감각 그리고 크리에이티브 등으로 수식되어있다. 컨테이너 구조물을 얹어서 흥미롭게 꾸며놓은 이 쇼핑몰에 입장한다면 누구나 즐기고 환희에 젖어서 있다가 완구(玩具)들의 공화국에 들어서게 된다. 팔짱을 끼고 커플들이 공유할만한 패션을 고민하고, 가족끼리 주말에 나와 가벼운 먹거리와 함께 신이 나서 한 주를 마무리하기에 적격이다. 이러한 쇼핑몰은 교환가치의 순환을 숨 쉴 틈 없이 돌린 뒤에 전시장으로 안내하는데, 전시장에서는 제품에서 상품으로 상품에서 작품으로 승격되는 사물의 승진을 완상하는 기능을 하게 마련이다. 당대적 가치에 충실한 기획으로 사물들이 진열되어 있고, 전시는 진열됨 그 자체의 의미를 강화하는 것이다.
앞서, 어느 국어의 논리는 그 국어로 전달할 때 의미가 가능해진다고, 언어적 오류가 없는 것이라고 썼다. 여기에 하나의 단서를 더 달겠다. 의미가 가능하다는 것은 언어적 오류가 없는 것이지만, 해석의 오류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멀쩡한 문장은 그 자체로 오류가 없지만, 그 문장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때 뒤틀리고 뒤바뀔 가능성을 늘 가지고 있다.*
이 전시가 그러하다. 전시장을 둘러싼 환경에 의하여 전시 안에는 갖은 오역들이 창궐했다. 소비 동선을 완벽하게 구조화하기 위하여 전시장 안에서는 쇼핑몰에서 틀어주는 음악과 동일한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잘린 목이 침묵하는 위에서 최신 가요가 사랑을 노래했다. 감자튀김 봉지로 뒤덮인 조형물에 관람객들은 너무나 손쉽게 손을 댔다. 이내 더러워지고 파손되었다. 작품들은 늘 수선을 요했다. 몇몇 커플들은 살가웠던 전시장 입장 이전의 시간을 유지하고 싶었고, 목이 뒹구는 풍경에 경악했다. 어린 아이들은 작품 앞에서 이게 뭐냐며 질문을 던졌지만, 아마도 어른들의 시선에서 전시는 겉보기로도 안을 살펴보기로도 불온했을 것이다. 비단 불쾌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노동의 역할에 따라 도구화되는 미약한 사람들에 대한 증언으로서의 조형물은 관광 상품처럼 소비되었다. 아이스크림에 짓눌려있는 모습 앞에서 동일한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 벽화 앞에서 연신 셀카를 찍었다. 몇 백일을 기념한다는 커플들의 간지러운 사랑 얘기와 수능대박을 기원하는 글들이 방명록에 넘쳤다. 블로그에는 “스스로 선택했으니, 책임을 지는 어른이 되어야”한다는 작가의 반어법을 직역하여 인생의 지침으로 삼기도 했다. 전시장은 소비 동선의 물결을 타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오역들의 바다가 밀물로 다가와서는 썰물로 빠질 즈음 방명록과 블로그에는 기념비적인 문구들로 범벅이 되었다. 돌아보건대 이건 신민의 오브제들 앞에서 잠시 깜빡한 또 하나의 사실이지 않은가. 번듯한 리얼이지 않은가.
▲ 신민 작가의 개인전이 열렸던 상업공간, 커먼그라운드의 전경 (다음지도검색 및 로드뷰 캡쳐사진)
작가는 짧은 인터뷰에서 이 오독을 의도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모순의 접점 역시 계획되었던 것이 아닐까. 기획된 부조화에 따라 아주 강렬하게 두 가지 사실이 포개져 서로 소멸하는 모습 말이다. 전시는 마치 쓸모를 위해 기획된 두 가지 사실로서의 풍경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전시장 입구를 경계로 사람들은 신음하는 생산 현장에서 깔깔거리는 소비 현장으로, 부품 같은 노동에서 완제품에 대한 향유로 넘어간다. 두 풍경은 무언가 쓸모 있는(쓸모 있다고 누군가 여기는) 것을 산출하고 무언가 쓸모 있는(쓸모 있다고 누군가 여기는) 것을 소비시키는 하나의 뫼비우스의 띠에 그려진 두 가지 모습인 것이다. 두 개의 사실인 것이다. 그리고 철저하게 두 풍경이 맞닥뜨리는 어느 시점에서 서로의 풍경은 소멸되고 있다. 정확하게는 풍경의 소멸이라기보다, 풍경을 마주하는 한 사람의 내면 안에서 자신이 경험하는 두 개의 리얼이 정확하게 포개어지며 붕괴되어 가는 과정이다. 하나의 풍경만을 취사선택할 경우 붕괴는 일어나지 않겠지만, 두 가지를 모두 리얼로 받아들일 경우, 모순의 접점이 자기 안에 발생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일본의 문예비평가 ‘다카하시 도시오’가 말하는 “해결불가능성에 의한 내적 붕괴”에 가깝다. 두 문제 어디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고 그저 받아들여야만 하는, 그런 리얼의 충돌 앞에서 무기력은 정점으로 치닫게 되는데, 이때 진실로 두려운 것은 “자신을 포함한 내부에서 오는 공포”인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매일같이 철저하게 상반되는 ‘리얼’의 동시적인 출현에 직면하고 있다.…(중략)…둘 중 하나가 ‘진짜’고, 나머지 하나가 ‘거짓’인 게 아니다. 둘 다 ‘진짜’고, 그 두 가지 ‘진짜’가 격렬하게 싸우고 있다.”***
여기 두 개의 리얼이 있다. 어느 하나도 가짜가 없다. 우리는 전시에서 볼 수 있는 두 리얼의 싸움 아래서 어떻게 파국을 맞이할 것인가? 자기가 해체되는 상상력을 우리가 스스로 감내할 수 있는지, 그 악다구니의 풍경은 묻고 있다. 패션몰 옆에 절두산 성지가 있는 듯한, 바로 그 두 개의 리얼 앞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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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주석]
* 이때 오류는 여러 점의 조형 언어 안에 담긴 작가의 의도와 어긋나는 것임을 말해둔다. 오류가 본래의 이치에서 삐끗한 것이기에 일종의 틀림을 뜻하는 것이지만, 다른 해석의 틀림이란 작가의 의도를 기준으로 비추어보았을 때뿐이다. 감히 필자가 가치론적으로 그릇되었다고 말할 수 없음을 밝힌다.
** 저자는 대학에서 ‘호러론’, ‘괴수론’과 같은 문학부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문예비평가이다. 저자는 저서 『호러국가 일본』(2012)의 서문에서 호러(horror)와 테러(terror)를 구분한다. 테러의 공포가 하나의 개체를 초월한 외부에서 다가오는 공포라면, 호러는 더 생리적인 두려움, 그래서 오싹함이며 자신을 포함한 내부의 붕괴를 말한다. 따라서 호러는 외부를 상실한 시대의 두려움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전시를 보고서 느끼는 당혹감은 자기 안에서 부딪히는 두 개의 사실, 곧 리얼의 충돌을 경험하고 자기모순에 의해 붕괴되기 때문인 것으로 이해하였다.
*** 다카하시 도시오, 김재원·정수윤·최혜수 옮김, 『호러국가 일본』, 도서출판b, 2012, p. 10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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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밥 지난 리뷰(신민 작가) 바로가기 >>> http://indienbob.tistory.com/884
필자_니문 소개_학위를 얻기 위해 돈똥을 싸고 있습니다. 책을 많이 사서 인테리어로 활용하는 취미가 있습니다. '언니'가 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
Inhale, Exhale, and STAY / 들이쉬고, 내쉬고, 그대로 유지. (SHIN-MIN Solo Exhibition) 2015.08.07-08.26 @ 토이리퍼블릭
복합문화공간 토이리퍼블릭에서는 신민작가의 개인전 <Inhale, Exhale, and STAY> (들이쉬고, 내쉬고, 그대로 유지) 전시가 시작된다. 막장으로 내몰린 청년들의 현실을 작품으로 승화시킨 신민작가는 세계적인 패스트 푸드 프랜차이즈 업체의 음식 재료를 담은 포장지로 제작한 캐스팅 작업을 선보인다. 작가는 작업실 월세와 생활비 충당을 위해 작업실 근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겪은 비 인간적인 대우와 힘든 노동에 분노하며, 알바생 군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작품들의 눈은 아무렇게나 칠해져 있다. 위아래로 매직은 대충 죽죽 그은 듯한 눈은 꽤 무섭게 생겼다. 입술 밖으로 삐져나온 이도 도깨비마냥 뾰족하다. 그런데 입은 웃고 있다. 얼핏보면 우스꽝스럽다.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이 모순적인 표정은 짙은 화장으로 눈물을 숨기고 있는 광대의 모습과 닮아 있다. 어쩌면 억지로라도 웃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그럼 시대에 던져진 지금의 젊은이들은 광대일지도 모를 일이다. 신민작가는 알바생을 만드는 작업을 통해 신자유주의 가치 아래 필연적으로 비정규직이 양산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돈은 사람을 뽀송하게 해준다.」 비가 적적하게 내렸던 오늘, 옆방의 동료작가와 나는 시내에 나가 각각 12,000 원짜리 연어정식을 사먹고, 프랜차이즈 커피점에 가서 각각 5,000 원짜리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우리는 달맞이길 너머로 보이는 바다를 보며 환호했다. 숲속길을 산책하며 더러워진 맨발을 해운대의 한 고급호텔 화장실 세면대에서 온수를 틀어 씻었고, 적당히 따끈한 변기에 궁둥이를 대고 오줌을 눴다. 나오면서는 콘트라베이스 라이브를 들었다. 아이스크림을 닭고기 요리마냥 돔형 음식덮개를 덮어 서빙하는 직원이 우리 옆을 지나갔다. 오늘 우리는 “아, 행복해”를 연발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말없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버스를 타고 비가 새며, 습하고, 허름한 작업실로 돌아왔다.
「매일매일 로또 로또.」 컴퓨터를 켜서 네오룩 사이트에 들어가 작가공모 리스트를 체크하고 서류를 준비한다. 왜 나를 뽑아야 하는지, 읽기 쉽게. 왠지 심사위원들의 구미를 자극할 것 같은 단어들을 자주 사용하여 글을 쓰고, 포토샵으로 먹음직스럽게 색보정한 포트폴리오 이미지를 출력해 새로 산 클리어 화일에 정갈히 꽂아 넣는다. 이번엔 뽑히기를. 이것만 되면…(실은 그 이후에 아무 생각도 없다.)
「스스로 선택했으니, 책임을 지는 어른이 되어야.」 징벌같은 궁핍 속에서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기는 했으나 선택 또한 한가지 밖에 없었다. 여튼 그것은 나의 탓이다. 「오직, 유니폼밖에 없다.」 나는 맥도날드를 그만두었다. 맥도날드를 그만두면 평안해질 줄 알았다. 맥도날드 유니폼을 벗으면 잠시라도 자유로워질 줄 알았다. 하지만 결국 나는 유니폼을 홀딱 벗은 채, 내 알몸을 샅샅이 진술한 서류를 준비해서 나를 간택해줄, ‘새로운 유니폼을 주는 사회’가 제시한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또 유니폼을 입고, 전체주의에 준하는 행동을 따르고, 숨을 죽여야, 연명할 수 있다.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의식하지 마라. 하여간 뭐든 의식하면 안된다. 의식은 ‘중 2 병’ 들이나 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12,000 원짜리 연어정식을 사먹고 5,000 원짜리 커피를 마시고 싶다면. 나아가 고급호텔에서 묵고 싶다면. 가만히 있으라. 공기같은 자본을. 들이쉬고, 내쉬고, 그대로 유지
신민 (SHIN MIN)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공학도 출신의 신민 작가는 ‘파괴/ 소녀/ 세계’라는 키워드로 조금은 거칠고 서툴러 보이는 마치 괴팍한 어린아이가 만든 듯한 인형들을 선보여 왔다. 현재는 부산 레지던시 오픈 스페이스 배 에서 작업중이다.
본문정보 내용 출처_http://toyrepublic.o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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