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We're all made of ____> - 신민 개인전

2014. 10. 17. 15:47Review

 

의 내부, ‘의 일상

     - 신민 개인전 <We’re all made of ____>

 

_전강희 

잉여슈트, 73 x 93 x 152 cm, 2014

 

○○○로 이루어진 우리

우리는 ____로 이루어져 있다. 빈 칸에 무엇을 넣을까? 공연을 만드는 작업에 참여하는 필자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살과 피아니면 뼈와 살정도이다. 공연예술의 정수를 표현해 주는 것은 결국 살아있는 배우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혀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렇다면 다른 매체를 다루는 예술가는 어떤 생각을 할까? 1991년에 영국의 Marc Quinn<Self>라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피 4.5리터를 뽑았다. 먼저 자신의 얼굴을 석고로 떠서 틀을 만들고 그 안에 5개월에 걸쳐 뽑은 피를 넣어 작품 세 점을 만들었다. ‘작품이 바로 나이다, 작품으로 나를 표현한다.’라는 명제에 어떤 반박도 할 수 없게 만든 작품이다.

1990년대에 를 표현하기 위해 진짜 자신의 일부를 사용한 작가가 있었다면, 밀레니엄을 한참 지난 오늘날에는 를 표현하기 위해 무엇을 사용할까? 필자의 눈을 사로잡은 것이 있다면, 바로 쓰레기이다. 쓰레기에 비하면 잉여라는 단어는 고상하기까지 하다. 지난 8월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모멸감>이라는 공연이 있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들은 공연 시작 전에 받은 형형색색의 쓰레기를 배우에게 던져 그가 쓰레기와 동일한 존재임을 보여준다. 마음 아픈 장면이지만 아기자기한 쓰레기들 때문에, 비애감이 다소 누그러진다. 이 글에서 다룰 신민의 작품 또한 슬픔과 유머가 함께 한다. 그녀는 대신 쓰레기를 채워 작품을 완성했다.

신민은 <We’re all made of ____>로 연남동에 위치한 플레이스막에서 전시를 가졌다. 그리고 현재 울산 이음아트스페이스에서 관람객을 만나고 있다. 그녀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속사정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신민은 예술가이기도 하지만, 돈을 버는 노동자이기도 하다. 작업실 근처 맥도날드에서 일을 하고 있다. 작업실 월세를 벌어보려고 시작한 일이 한 해를 넘겼다. 재료비를 아끼기 위해 아르바이트 장소에서 나오는 폐지들을 모아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We’re all made of _____, 각 10 x 11 x 22 cm, 2014

 

신민의 작업을 보면서 <모멸감> 이외에 떠오른 작품이 하나 더 있었다. 2012년 페스티벌 봄에서 보았던 네지피진의 <모티베이션 대행>이다. 일본의 사정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당시 한국에서도 유명한 어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새로운 공연을 구상하고 연습할 시간이 없어서, 자신이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잘하고 있는 일을 무대에 올리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편의점에서 치킨과 감자를 기름에 튀기던 일을 무대 위에서 그대로 시현하고 설명해 준다. 쓰레기가 블랙박스 무대나 화이트 큐브 전시장에 전면으로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 글로벌 프렌차이즈 사업체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리 생경하지 않다. 드디어 이곳에도 왔구나하고 생각할 뿐이다.

당시 <모티베이션 대행>은 젊은 관객층 사이에서 깊은 공감대를 이끌어 냈다. 관객 중 실제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던 예술가가 있었다. 그녀는 공연이 끝나고 폭풍 같은 눈물을 흘렸다. 이 공연의 완성도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대체로 호평일색이었다. 다국적 기업의 광고를 보고 자라면서 국경 없는 세계의 도래에 환호하였지만, 성인이 된 오늘날, 더 견고해진 경계선들 사이에서 예술가라는 자리를 지켜내기란 여간 고역스러운 것이 아니다.

예술가에게 이제 예술은 정말로 일상과 떨어질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일상으로 내려가자는 정치적인 슬로건이 한 발 늦은 것 같다. 예술계는 일상이 먼저 무대로, 미술관으로 파고들고 있다. 서서히 스미는 경우도 있지만, 가끔 침입 당하는 것 같기도 하다. 신민의 작품은 두 경우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작가가 일상으로 침입하고 있다. 작품의 내부를 자신의 일상으로 채워, ‘바깥의 무자비한 일상에 작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신민의 <We’re all made of ____> 

1. 견상 자세를 강요하는 사회

갤러리 플레이스막은 3~4평 남짓의 좁은 공간이다. 신민은 이 공간을 연한 갈색을 띠는 형상들로 가득 채운다. 냉동감자를 포장했던 갈색 종이의 질감이 그대로 드러난다. 자세히 바라보면 인쇄된 글씨도 간간히 볼 수 있다. 형상들은 다섯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견상 자세하는 알바생>, <side effect>, <주문하신 소프트콘 두 개>, <잉여슈트>, <Schedule time table>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엎드린 자세로 중앙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형상 세 개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작가는 이 자세를 견상자세라고 부른다. 개가 기지개를 켜는 모습처럼 보이는 요가동작이다.

 

견상(犬 狀)자세 중인 알바생, 308 x 200 x 153 cm, 2014

 

작가는 전시를 총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정리하고 있다. 하나는 궁핍의 무한 루프이고, 다른 하나는 견상 자세를 강요하는 사회이다. 작품 <견상 자세하는 알바생>을 통해서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이 강요라는 단어 안에 응축된다. 견상 자세는 좌골신경통에 효과가 있지만, 작가는 앓고 있는 것은 신경통이 아니라 생존이라고 강조한다. 원치 않는 견상 자세는 엎드려뻗쳐일 뿐이고, 이를 통해 이익을 얻는 것은 기업이라고 역설한다. 견상 자세 알바생만으로도 전시장은 가득 찬다. 좁은 장소에 놓인 커다란 작품은 시야에 한꺼번에 들어오지 않는다. 커다란 작품이 좁은 공간을 낯설게 만든다.

이상한 분위기가 오히려 작품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한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작품을 코앞까지 다가가서 보게 된다. 피부를 대신한 포장지, 그 위에 흐리게 남아있는 상표, 지지대가 냉동감자 포장상자인 것까지 알아 볼 수 있다. 자세한 것들이 보이고 나서야 거대한 형상보다 더 커다랗게 놓인 사회의 모습이 포착된다. 그 안에서 취하는 견상 자세는 신경통을 치유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작가의 표현대로 생존앓이를 견뎌내고 있는 자세일 뿐이다.

작가노트에는 다음 글이 담겨있다.

       노동으로 생존할 수 없다면
       저항하여 생존해야 한다

       랩퍼는 디스하고
       무용수는 춤을추고
       미술가는 그림으로
       디씨인은 갤질로

       저항하세
       행동하세
       척추를 펴세

신민 작가가 척추를 펴는 방법은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2. 궁핍의 무한 루프

<견상자세를 하는 알바생>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은 궁핍의 무한 루프라는 제목으로 묶을 수 있다. 작가는 이 부분을 전시의 1장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거대한 견상자세가 필자의 눈을 너무도 강렬하게 붙들어서 2장을 앞서 먼저 소개했다. 견상자세를 바라보는 것이 어느 정도 눈에 익숙해지고 나면 나머지 작품들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야기 한다라는 표현이 상투적이기는 하지만, 딱히 이보다 더 적절한 단어를 찾을 수가 없다. 작가는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사용된 재료나, 작품이 취하는 자세가 그녀의 의도를 분명하게 제시한다.

 

주문하신 소프트 콘 두 개, 80 x 70 x 192 cm, 2014

 

그런데 이러한 명확함이 관람객에게는 복수의 소리로 다가간다. 꼭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가 아닐지라도 각자의 경험을 대입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구성해 낼 수 있다. 등을 보이며 얼굴을 벽 쪽으로 향하고 있는 작품 앞에서도 이야기가 들린다. 신민의 이야기, 작품이 하는 이야기, 관람객의 이야기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 이들은 나누고 싶은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고서도 각자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궁핍한 삶을 벗어나기 위해 노동력을 싼값에 제공하지만 나아지지 않는 삶에서, 작가는 후렌치 후라이의 특성을 발견했다. 작가노트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

        내가 아니어도 이 일을 할 사람들은 많다
       
내가 그만두어도 기업은 아쉽지 않다
       
젊고 건강하며 돈 필요한 잉여들은 세상에 널렸지

        값싼 노동력과 후렌치 후라이의 공통점:
      
몸에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헤어 나올 수 없는 것

 

한 쪽 벽면에는 값싼 노동력으로 완성된 시간표가 있다. 작가는 사람의 이름을 넣는 대신 작은 인형들을 넣었다. 21, 31, 아니면 혼자서 감당해 내야 하는 시간이다. 인형들을 받치고 있는 지지대는 가느다란 흰색 실에 의지하여 벽면에 겨우 붙어 있다. 무게를 견디기에 위태로워 보인다. 이 자리마저 아슬아슬하다.

 

 

모든 작품들을 다 들여다보고 나면 처음 보았던 <잉여슈트>로 자연스레 돌아오게 된다. 얼굴이 없이 유니폼만 걸치고 있는 이 형상에 <schedule time table>에 있던 인형의 얼굴을 하나씩 대입해 본다. 그러다 작가의 얼굴도, 필자의 얼굴도, 어떤 얼굴이든 생각나는 대로 하나씩 넣어 본다. 이 얼굴들은 손도 발도 없기 때문에 어딘가로 향하지 못한다. 대신, 거대자본이 이들 사이를 흘러 다닌다. 움직이는 것은 자본이다.

<We’re all made of ____>는 작가의 경험을 토대로 진행된 작업이다. 개인적인 경험이 사회적 담론과 맞닿아 있는 전시였다. 지금은 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면 당대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시대이다. 이는 어느 시대든지 마찬가지였겠지만, 2014년은 누군가의 순수한 내면의 이야기를 들어줄 마음의 여유가 도통 나지 않는다. 신민 작가의 이야기가 더 큰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서 좋았다. 이 시대의 예술이 그리 무용하지 않구나하는 안도감을 느꼈다. 처음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는 재미있어 보여 웃었고, 다 둘러보고 나서는 씁쓸하여 우울했고, 시간이 흐른 지금은 돌이켜 생각해볼수록 통쾌하다.

 

* 사진제공_플레이스막 http://www.placemak.com/

전시_We're all made of____
일정_플레이스막 2014.8.8-30
       이음아트스페이스 울산전시 2014.10.7-31 

 

We’re all made of ____, 가변크기,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