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8. 15. 10:51ㆍReview
말이 없는 오셀로는 어디에 있나요
- 창작집단 Hereyouare, <Othello the Mute>
글_황지윤
창작집단 Hereyouare의 음악극 <Othello the Mute>가 7월 21부터 24일까지 4일간 탈영역 우정국에서 상연됐다. 안 그래도 탈영역 우정국이 궁금하던 찰나였다. 운 좋게 공연 소식을 듣고 반가운 마음으로 광흥창으로 향했다. 낯설고 익숙지 않은 곳에서 보는 연극은 언제나 흥미진진하다.
作. 셰익스피어
개인적인 감상 기준이지만, 셰익스피어의 오셀로가 극화될 때 내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다음 세 가지다. 오셀로의 재현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이아고의 악(惡)을 어떻게 그려내고 있는가. 마지막으로 데스데모나와 에밀리아의 관계와 이들의 여성 주체성이 극 내에서 어떤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가.
셰익스피어의 극만큼 ‘해석’이 중요한 극은 없다고 느낀다. 그의 작품은 해석의 여지를 충분히 열어둔 의뭉스러운 모호함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대 위에 오를 때 그의 극은 더더욱 빛을 발한다. 무대화의 과정에서 오롯이 의미화되지 않은 모호한 부분을 채워 넣는 과정이 재해석의 정수가 아닐까. 셰익스피어 희곡을 재해석한다는 것은 셰익스피어라는 스핑크스가 낸, 아주 오래된 난제에 연출이 답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스핑크스가 낸 문제처럼 답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라 다행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무엇이든 답이 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재해석이 얼마나 풍부하고 정교하게 이루어 졌는 가에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니까. <Othello the Mute>는 그런 의미에서 상당히 흥미롭기도, 또 아쉽기도 한 공연이다.
(등장)인물: 오셀로
두 남녀가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극이 시작한다.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보니 이 둘은 잘나가는 로펌에서 일하는 변호사다. 서로 간에 칭찬 일색인데 귀를 기울여보니 팀장인 남자는 캐시오, 여자는 이아고다. 캐시오는 존경하는 오셀로 부장에 대해 일장연설을 한다. 그의 대사에는 ‘말도 하지 못하면서’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로펌의 부장 자리에까지 이른 오셀로에 대한 존경이 가득 담겨있다.
본 공연에서 오셀로는 언어 장애인으로 나온다. 공연에서 일관되게 사용하는 속된 표현을 빌리자면 ‘벙어리’(mute)인 셈이다. “말로써 구성되고 작용하는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이들의 끝나지 않는 비극”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어서일까. 공연에서 오셀로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가 언어 장애인으로 설정된 탓에 목소리로도 그의 존재감이 확인되지 않는다. 오늘 공연에서 오셀로는 부재하는 존재다.
원작에서 오셀로는 ‘무어인’(Moor)이다. 무어는 과거 북부 아프리카의 아랍 문화권 사람들을 지칭했던 표현인데 당시 아프리카, 중동, 인도 등지에서 온 이들을 폭넓게 가리킨다. 당대 유럽인들이 편의상 임의로 설정한 ‘타자’ 규정이라고 보는 게 맞겠다. 셰익스피어는 오셀로의 ‘검은’ 피부를 강조하는 등 그의 신체적, 인종적 특수성을 부각하며 당대의 편견을 여과 없이 희곡에 반영하고 있다. 이성보다는 감정에 쉽게 휘둘리는 오셀로의 ‘야만성’ 또한 부각된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유럽인’들에 비해 ‘열정적이고 다혈질인 무어인 오셀로’ 라는 스테레오타이핑은 극을 파국으로 이끄는 촉매로 기능한다. 그러므로 현대적 재해석의 과정에서 차별의 언어와 인물에 부여된 편견을 어떻게 이해하고 조율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오셀로 재현이 결코 간단할 수 없는 이유다. 오셀로가 ‘타자’인 점, 그리고 그의 타자적 속성이 극을 이끌어가는 핵심 동력이라는 점을 간과한다면 풍부한 해석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Othello the Mute>는 오셀로를 ‘뮤트’시킴으로써 그의 존재 자체를 지우는 방식의 재현을 택했다. 흥미롭다. 다만 오셀로가 공연에서 사라지자 관객으로서 그의 장애, 즉 타자성에 대해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게 됐다.
본 공연에서 오셀로의 타자성은 극의 중심에 놓이지 않는다. 그저 하나의 콘셉트일 뿐이다. 오셀로가 부재하는 오셀로 공연은 그가 타자로서 존재조차 할 수 없다는 비극 상황에 처한 비유일 텐데, 그러다보니 비극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느낌이다.
이아고(여자 1), 에밀리아(여자 2), 데스데모나(여자 3)
오셀로가 부재하니 그의 짝인 데스데모나의 존재감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오셀로와 데스데모나의 이야기보다는 이아고와 에밀리아, 캐시오와 비앙카의 이야기가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 특히 이아고의 비중이 남다르다. 이아고를 여자로 설정한 점도 눈에 띈다. 유능한 변호사 이아고는 호감이 가는 싹싹한 캐릭터다. 그는 순진하다 못해 지나칠 정도로 착해빠진 인물로 그려진다. 자신을 제치고 승진한 캐시오에게 싫은 내색 전혀 없이 되레 그의 치적을 칭찬하고 나선다. 점심시간을 쪼개 회사 근처 노숙자 급식소에서 봉사활동을 할 정도로 착한 심성을 지녔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거짓이다. 이아고는 빈틈없는 가면을 쓴 악인이다. 이아고의 추악한 내면을 날 것으로 드러낸 장면이 기억난다. 배우는 속사포처럼 욕설을 쏟아내고 이리저리 날뛴다. 배우의 움직임이 그의 과하게 마른 몸과 얽혀 기이한 효과를 만들어냈다.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고 말 그대로 ‘추악하다’는 느낌이 무대를 지배했다. 다소 작위적인 장면이었으나 준수한 외모에 말끔했던 이아고가 순식간에 위선과 권모술수로 가득한 악인이라는 각인을 남기는 데는 성공적이었다.
이아고는 셰익스피어의 극 중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악인이라는 평을 듣는다. 오셀로를 향한 이아고의 강한 혐오감이 무엇에 근거하는지, 또 그가 왜 이런 악행을 벌이는지 명확한 이유를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악을 다양한 방식으로 규명할 수 있게끔 텍스트를 열어둔 원작자 나름의 배려인지도 모른다. 사건의 전말이 드러난 공연 말미에 에밀리아가 이아고에게 묻는다. 네가 왜 이런 일을 했는지가 아니라, 어쩌다 네가 이렇게 됐는지가 궁금하다고. 무엇 때문에 네가 이렇게 돼버렸냐고.
이아고가 오셀로를 연모했다는 암시를 공연 중반부에 얼핏 본 듯도 하다. 그 때문일까? 그렇다고 하기엔 이아고와 오셀로의 연결이 헐거워 다소 뜬금없는 면이 없잖아 있다. 한편 이아고와 에밀리아는 과거에 연인이었거나 적어도 친밀한 유사 동성애적 관계로 보이는데 이 또한 어떤 맥락에서 설정된 걸까. 원작에서 이 둘이 부부였기 때문인가. 굳이 필요한 관계 설정일까.
에밀리아의 물음처럼 왜는커녕, 그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관객으로서 전혀 알 길이 없다. 여러 가지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지만 그저 근거 없는 망상인 듯싶어 이내 접고 말았다. 이아고의 악행에 대해 이런 저런 암시는 던져주지만 이를 하나로 엮어낼 만한 ‘무언가’가 없다.
etc. 음악
본 공연은 ‘음악극’을 표방한다. 배우들이 열연을 펼치는 동안 다양한 라이브 사운드가 공연을 꾸며준다. 뮤지션들의 연주가 공연을 다채롭게 만들고 있음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공연과 음악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운드가 배경 음악 또는 효과음 이상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음악이 공연을 아름답고 풍부하게 장식하지만, 부수적인 구성요소 이상의 기능을 하지 못해서다. 음악적 요소가 공연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면 더욱 흥미로운 음악극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배우와 뮤지션이 대화를 나눈다면 어떨까. 또, 뮤지션들 그저 무대 뒤쪽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앞쪽으로 나온다면 어떤 효과가 있을지. 탁 트인 무대 공간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음악극을 표방하는 이상, 어떤 방식으로든 음악과 연극의 보이지 않는 경계를 무너뜨리는 작업이 절실해 보인다. 그래서 <Othello the Mute>는 음악극임에도 음악에 대한 이야기는 기타(etc.) 항목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공연이 끝나기 직전, 모두가 퇴장한 가운데 이아고가 무대 뒤쪽으로 향한다. 이아고는 악기를 찬찬히 둘러보더니 마이크를 한 손에 쥐고 객석을 잠시 응시하고 퇴장한다. 그 어떠한 사운드도 없었던 찰나의 장면이지만, 내게는 이 장면이 본 공연에서 가장 ‘음악극’스러웠다.
*사진제공 >> 창작집단 Hereyouare 제공
** 창작집단 Hereyouare SNS 페이지 >> https://www.facebook.com/teamhereyouare/
*** 탈영역 우정국 SNS 페이지 바로가기 >>> https://www.facebook.com/ujeongguk/
필자_황지윤 소개_연극을 보러 다니는 철학도입니다.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것들에 무한한 애정을 품고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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