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27. 14:05ㆍFeature
처음이지만 낯설지 않은 코로나19 시대 (2)
공간은 정지하지 않는다
'자고 일어나니 다른 세상이다.' 요즘 우리에게 딱 들어 맞는 말인것 같습니다. 코로나19는 사회의 취약한 부위를 강타했습니다. 네 '우리'요.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지만 연쇄작용으로 인한 또 다른 이슈들이 계속 달려옵니다. 거의 모든 작업이 취소 및 연기된 가운데, 거기에 삶을 영위하기 위해 가졌던 다양한 정체성도 제 역할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가 힘들긴 하지만 낯설지는 않습니다. 예술은 재난 앞에 유독 취약했으니까요. 인디언밥은 기획연재를 통해 예술생태계의 다양한 지점에 존재하는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이를통해 각자가 발견한 생활 속 '절망' 혹은 '전망'을 공유해보려 합니다. |
글_정혜진(공간운영자)
지난 몇 달 동안 일어난 변화와 불확실성의 증가로 분야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혼란스럽고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대외적인 모든 모임이 무산되고, 페스티벌과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며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공간과 기관이 한시적으로 문을 닫았다. 누구 하나 이 변화들에 맞설 준비를 하지 못했다. 우리는 대안을 고민하고 계획을 실행하기 이전에 그냥 위로가 필요했다. 서로의 상황을 공유하며 안부를 묻고, 구석구석 존재하는 비가시적 현상들을 바라볼 여유가 필요했다. 한순간에 개개인이 이 모든 상황을 해결해 내야 할 주체로써 떠안겨진 상황에 대한 근력이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루를 겨우 살아내고 불안한 내일을 만연한 불확실성 아래 준비했다.
코로나19는 프리랜서 및 문화예술 기획자, 활동가, 작가의 회의와 활동 모습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변화의 과정에서 근래 문득 이질적 현상들이 피부로 느껴졌다. 온라인 공간에서 처음 만나 한 번도 오프라인에서 본 적이 없지만 관계를 맺은 사람과 여러 차례의 회의를 거치며 단 한 번도 ‘코와 입’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생겼다. 나는 그 사람들을 안다고 할 수 있나? 나는 그 사람들을 만난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며 사랑니를 뺐을 때의 기분을 떠올렸다. 어느 날 갑자기 쑥하고 빠져버린 그곳에 무엇인가 존재했다는 느낌만 남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기분. 혀끝으로 만져지지 않는 허공을 겉도는 간지러운 기분. 온라인 공간에서 새로운 현상들을 마주하는 동안 우리의 물리적 공간의 빈자리에는 먼지가 쌓이고 있었다.
판데믹에 마주한 커뮤니티 공간의 쓸모
커뮤니티 공간에는 여러 모양이 있다. 사업자등록증에 명시된 업종 분류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는 공간들이다. 인디 뮤지션들에게 열린 구조의 무대를 제공하는 바, 대중적인 것에서 밀려나 쉽게 향유할 수 없는 문화를 지켜나가는 서브컬쳐 클럽 등 지난달 바와 클럽이 집단 감염의 근원지로 오르내리며 이들은 운영의 난항을 겪었다. 이 문제는 비단 운영난에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의 의식 속 문화공간의 보이지 않는 계급화의 이면을 들춘다.
2015년 여름, ‘보람 상조’라는 간판을 달고 전자상거래 사무실로 쓰이던 수상한 공간에 못지않게 수상한 공간을 만들었다. 이름은 ‘안티카페 손과얼굴’이라고 지어주었다. 정말 많은 사람이 손을 더해주었다. 계획된 공간과는 거리가 멀었다. 필요에 의해 공간을 구했고 깊고 얕게 관계 맺은 다양한 작업자들이 자신이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은 것들을 공간에 쌓기 시작했다. 시기와 사람에 따라 공간은 시시각각 변화를 거듭했다.
처음 문을 열고 지금까지 운영 자금이 결코 안정적이었던 적은 없지만, 올해 2월부터 초유의 재정난에 맞닥뜨렸다. 물리적 현재 공간의 마침표와 새로운 시작을 고민하던 시기였다. 고민하던 결정이 자의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더 이상 그 공간에 대한 결정권은 내 것이 아니었다. ‘만남과 쉼을 공유하는 공간’이라는 슬로건 아래 커뮤니티와 모임을 지원하던 공간은 몇 달간 아무런 대외적인 만남도 만들 수 없었다. 마음의 쉼을 이야기하던 공간은 이제 더는 안전하지 않았다. 잠정 휴관을 하는 공간들이 생겨나며 재난 상황을 이겨 내기 위한 노력에서 운영을 열심히 하는 것조차 죄스러운 일이 되었다.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뉴스에서 줄곧 보도되는 착한 건물주 운동은 정말 뉴스에 다뤄질 일이었다. 누구나 힘든 시기에 나만의 고충을 내세우고 싶지 않아 상황에 대한 태도는 더욱 안으로 말려 들어갔다. 모두가 같은 생각일 것이라 짐작해 본다. 모든 것이 너무나 불명확하고 죽음의 가능성 앞에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듯했다.
50,000원과 엽서 한 장
계단에 올라가며 보이는 포스터들, 화장실에 붙은 문구들, 손과얼굴에 비치된 책들, 굿즈들, 옥상에서 느끼는 바람들, 앞으로도 손과얼굴만이 줄 수 있는 ‘안티스러움’을 계속 느끼고 싶어요.
어느 날 손님이 두고 간 오만 원 지폐 한 장과 함께 동봉된 엽서의 한 구절이다. 내일의 지속성을 약속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푸념을 소셜미디어에 남기고 며칠 안 된 시점에서 남겨진 오랜 고민이 느껴지는 단골의 흔적이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아니 돕는다는 말 자체가 맞는 걸까. 현금을 준다는 건 본의 아니게 오해를 만들지 않을까 등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그 이전에 그냥 이렇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기에 그냥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 5년간 지속했던 이 공간은 이제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었다. 지켜내야 한다는 건강한 의무감이 어깨에 얹어졌다. 그리고 위의 구절에서 ‘계속 느끼고 싶어요.’라는 표현이 유난히 마음이 쓰였다. 재난 시대에 공간이 할 수 있는, 해야 할 일들이 흐릿하게나마 보이는 듯했다.
“문화는 정지하지 않는다.”
이탈리아 문화부 장관이 국민들의 ‘문화 향유권’ 보장을 위해 벌이고 있는 캠페인 문구다. 여러 문화예술 기관과 예술가가 협력하여 온라인 문화서비스 제공에 동참하고 있다. 또한, 타격이 큰 문화공간들이 회복할 때까지 디지털 공간 내 창조적 문화콘텐츠가 제공될 수 있도록 협력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휴관 중인 문화시설을 활용한 사회 취약층 지원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다. 그 예로 복합문화공간 라프리슈라벨드메(la Friche La belle de mai)를 이동금지 조치 기간 동안 사회적 거리두기 준수 하에 노숙자 등 사회 취약층 보호시설로 활용한다. 이외에도 다양한 문화예술 기관의 온라인 콘텐츠 제작과 애플리케이션 개발 및 홍보를 지원하며 동시에 직접적인 재정지원을 발 빠르게 시행했다. 베를린문화진흥원(Kulturförderpunkt Berlin)에서는 클럽 문화 회복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렇게 진행된 라이브 스트리밍은 5백만 조회 수를 기록했으며 뿐만 아니라 클럽 문화를 주제로 한 토론과 강의를 진행했다. 이 모든 수익은 임대료 지급을 위해 분배되었다.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문화부 장관들은 공동으로 ‘우리의 힘은 문화이다.’라는 기고문을 게재하며 이기적인 국가단위 폐쇄주의를 지양하고 연대감과 상호소통 강화를 강조했다.
각자 도생이 불가능한 현재 더욱 연대와 연결의 움직임이 절실해진다. 온라인 공간 활용에 대한 확장과 유연화를 정착시킴과 동시에 또한 그 이후를 염려하고 싶다. 지금의 현상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며 우리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예측들이 나온다. 현재의 혼돈을 발판 삼아 새롭게 창조적 커뮤니티를 생성하고 지역과 지역을 넘나드는 네트워크를 만드는 시기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여전히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여기’를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모든 것은 도구일 뿐 정말 지키고자 하는 문화가 무엇인지, 함께 유사시를 대비하는 근력을 키우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문화예술공간은 끊임없이 흐른다. 그리고 현재 도시 속 흐름의 공간들은 불가항력의 큰 파도를 맞닥뜨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디어 달라고. 여전히 공간의 힘을 믿고 절절히 필요한 하나의 개인으로써 부탁하고 싶다.
(참조)
주이탈리아 한국문화원, 코로나19 관련 주재국 대응 현황 자료
주프랑스 한국문화원, 코로나19 관련 주재국 대응 현황 자료
프랑스 문화부
베를린 문화 진흥원
필자소개_정혜진(안티카페 손과얼굴 대표) 작업자들의 지속가능한 작업과 활동을 위한 풀랫폼을 고민하며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미디어 작가이자 문화예술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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