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5. 20. 11:09ㆍFeature
유튜브 시대의 음악듣기 : 로파이 힙합 비트에 대한 단상
김민수
요새 어떤 음악 듣냐는 질문은 자칭 ‘리스너’들 사이의 오래된 인사나 다름없을 것이다. 우린 신보에 대한 정보나 감상을 주고받고, 가끔은 오래된 덕력을 자랑하곤 한다. 하지만 요즘 조금 다른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유튜브로 음악을 듣다보니 취향이 없어지고 어떤 음악을 들어야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음악들이라면 취향이 강화되는 방향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유튜브 시대의 음악듣기란 대체 어떤 것이길래 이런 얘기들이 나오는 걸까? 본 글은 이 작은 질문에서 시작한다.
음악보는 유튜브에서 음악 듣는 유튜브로
애플뮤직이나 멜론을 비롯한 스트리밍 서비스와 유튜브 플랫폼이 함께 성장할 때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오디오와 비디오라는 차이였다. 실제로 음원 사이트와 영상 플랫폼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맺어왔다. Recandplay가 10cm를 조명1하고, freindz.net의 영상으로 제이래빗이 주목2받았던 지도 10여년이 지났다. 영상으로 SNS에서 주목받은 팀들은 곧 음원으로 소비되었으며 공연으로 관객과 만났다. A Take Away Show로 유명한 프랑스의 유튜브 채널 La Blogothèque3 가 채널 소개에 “십년이 넘는 시간 동안 La Blogothèque는 사람들이 음악을 경험하는 방식을 바꿔왔다”4고 적은 것은 거짓이 아닐 것이다. 영상화된 음악은 실제로 유의미한 변화의 흐름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점진적인 변화와 다른 새로운 움직임이 최근에 관측되고 있다. 그것은 플레이리스트의 힘이었다.
국내 채널 가운데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제공하는 대표 격인 채널 때껄룩TAKE A LOOK5 은 곡명이나 음악가를 강조하지 않는다. 대신 20분 내외의 플레이리스트에 ‘들으면 편안해서 녹아버ㄹ’, ‘클릭하는 순간 여름 냄새나며 기억 조작되는 팝송 모음’같은 식의 제목을 짓는다. essential;6 은 보다 적극적으로 플레이리스트임을 강조하며 ‘옥상이 피크닉 장소가 되는 산뜻 playlist’, ‘트렌디한 카페에서 흐르는 팝송’과 같이 상황과 무드를 설명한다.
이것은 유튜브가 배경음악으로서 음악을 ‘틀어놓는’ 주요 플랫폼이 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현상은 긴 길이의 동영상 뿐 아니라 실시간 스트리밍 형태의 플레이리스트로도 많이 볼 수 있다. 길이가 정해진 영상의 경우 중간 광고가 붙기 때문에 24시간 방송되는 스트리밍을 통해 모두가 공짜 BGM을 즐기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 곡 한 곡의 음악들이 아니다. Sunday Coffee Bossanova와 같은 이름으로 그려지는 ‘분위기’인 것이다. 이는 FM라디오에서조차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방식의 음악 소비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BGM화 된 음악, 로파이 힙합의 부상
유행하는 매체에는 그와 함께 떠오르는 콘텐츠가 있기 마련이다. 싸이월드가 부흥하던 시절, BGM리스트를 통해 취향을 전시하던 그 때 시부야케이7 등 이지리스닝 계열의 일렉트로니카가 부상한 것이 대표적인 예시일 것이다. 오늘은 유튜브 스트리밍이라는 플랫폼을 타고 부상한 장르로 Lo-fi Hiphop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Lo-fi, Chill, mellow hiphop, mellow beat, chillhop 등으로 불리는 이 장르는 힙합의 서브 장르 혹은 스타일 정도로 읽히기도 한다. Low Fidelity의 약자인만큼 의도된 바이닐 노이즈나 러프한 사운드가 특징이며, 반복적인 구성과 6-80bpm 내외의 느린 템포, 샘플링의 적극적인 활용 및 빈티지한 드럼소스와 Rhodes, 기타와 같이 비슷한 악기의 사용, 메인 멜로디가 없거나 약한 특성 등을 가지고 있다. 지저귀는 새소리나 글씨 쓰는 소리 같은 앰비언스를 적극적으로 쓰기도 한다. 언뜻 붐뱁 힙합8의 인스트루멘탈 트랙같지만, 처음부터 랩/보컬 트랙 없이 듣기 위해 만들어진 음악이며, 누자베스와 같은 재즈힙합의 뿌리를 잇지만 보다 미국적이기도 하다.
이러한 성격들은 모두 배경음악으로서의 활용에 최적화된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스트리밍 채널은 Beat to study/sleep 과 같이 특정 행동에 적합한 배경음악으로서 음악을 홍보한다. 배경음악으로 틀어놓는 음악을 고르는 플랫폼에서 두각을 보일 수밖에 없는 특성들인 것이다.
헤드폰 낀 소녀와 고양이로 표상되는 이미지와의 결합
로파이 힙합 비트가 배경음악으로 소비되는 맥락 뿐 아니라, 하나 더 주목할 만한 지점이 있다. 바로 이미지와의 결합이다. 이는 유튜브라는 플랫폼이 가진 힘과도 연결되어있는데, 대부분의 썸네일에서 해지는 저녁과 헤드폰 낀 소녀, 고양이, 도트 애니메이션과 같은 일관된 경향을 볼 수 있다.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재패니메이션에서 따온 것 같은 이런 이미지는 향수를 자극하며 러프하고 아날로그적인 사운드와 결합한다. 고양이와 소녀의 이미지는 이러한 감각을 더욱 강화시키고, 책 한 번 넘기고 고양이 한 번 쳐다보고 별 가끔 떨어지는 정도의 작은 움직임이 반복되는 영상은 배경으로서의 기능에 충실하기까지 하다.
이는 지난 해 전 시티팝9 음악이 부상하며 재패니메이션의 이미지와 결합한 것과 비교될만한 지점을 가진다. 시티팝 역시 80년대 일본을 떠올리게 하는 복고적이고 과잉된 악기의 활용이 돋보이는 장르로 비슷한 이미지를 통해 향수를 자극한다. 하지만 ‘시티팝 일러스트’로 불리는 이미지들은 마천루와 네온사인이 도드라지는 도회적인 이미지 혹은 바다와 하늘이 강조되는 쿨한 이미지를 그린다. 두 장르가 모두 유튜브를 중심으로 주목받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러한 맥락은 더욱 비교해볼만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앞으로는?
어떤 장르나 스타일의 미래를 점친다는 것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과업일 것이다. 하지만 로파이힙합을 향한 애정을 바탕으로 미래를 만들어갈 방법을 상상한다면 실패할 지라도 유의미할지 모른다.
플레이리스트라는 형태의 묶음으로 소비되어온 로파이 힙합은, 예술가보다 이를 소개하는 채널이 더욱 주목받으며 성장해왔다. 힙한 노동요로 충분히 커진 지금 필요한 것은 그 작품을 만드는 이들을 조명하는 눈일 것이다. 한국에선 Lo finders와 같이 로파이힙합 프로듀서 크루가 생기기도 했으며, 리드머의 강일권 필자는 지난 해 주목해야할 신예로 ‘로파이’라는 프로듀서를 꼽기도 했다.10 진상jinsang 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관심받기 시작했으며, 아시아 비트메이커들의 컴필레이션 음반인 [First Class Tape]을 기획한 뷰티풀디스코 역시 지켜볼만한 국내 프로듀서라고 할 수 있다.
매체의 변화부터 로파이 힙합이라는 장르까지 짧지 않은 글 안에서 급하게 달려왔다. 유튜브 시대의 음악 듣기는 플레이리스트와 로파이 힙합의 부상 뿐 아니라 다양한 변화를 이끌어왔으며, 앞으로도 새로운 파장들을 만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래왔듯, 새롭고 좋은 음악을 우리는 또 찾아낼 것이다.
1) https://youtu.be/Rf0sJyeXac
2) https://youtu.be/xnYmVTgoI4
4) 원문 ‘For more than ten years, La Blogotheque has changed the way people experience music
5) https://www.youtube.com/channel/UCVut4hqvrjQC4qDE3oc5qig
6) https://www.youtube.com/channel/UCSGC87iX0QhnIfUOI_B_Rdg
7) Free Tempo, Fantastic Plastic Machine, Daishi Dance 등 일본 시부야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프로듀서들이 이끌던 감성적인 일렉트로니카 서브 장르이다. 국내에선 클래지콰이, 허밍어반스테레오, 그리고 빅뱅 등이 이러한 흐름을 이어갔다.
8)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미국 동부지역에서 유행하던 스타일의 힙합. 드럼의 킥과 스네어가 강조된 사운드로 Nas, Joey Bada$$ 등이 대표적인 예술가다.
9) 고도성장기였던 70년대 후반-80년대 일본에서 유행한 성향의 팝 장르로, 밴드 기반의 훵크 사운드에 브라스와 스트링, 신디사이저의 활용과 여성보컬 등을 특징으로 한다.
10) http://board.rhythmer.net/src/go.php?n=18599&m=view&s=feature
필자소개_김민수 거리예술을 비롯한 공연예술축제를 만듭니다. 가끔은 음악가로도 불립니다. 서울프린지네트워크, 민수민정, 민필, 블루프린트 같은 소속과 친구들을 자랑스러워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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