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 24. 11:45ㆍReview
저도 만나서 기뻐요
창작집단 여기에 있다 <뉴스페이스 : 연극>
글_김민수
언젠가 아는 축제감독과 어떤 작품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연극을 시작한 뒤 지금까지 작가의 삶을 돌아보는 작품이었는데, 나는 늘 JIN-JUNG-SUNG에 미쳐있는 탓에 자전적인 얘기를 담담하게 나누는 방식이 좋았다고 했고, 그는 그것이 얼마나 확장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회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 순간 떠오른 문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연극에 대한 연극은 연극하는 사람만 좋아하는 연극’이라는 말이었다. 나는 연극하는 사람이 아닌데.
‘창작집단 여기에 있다‘는 거리에서 또 극장에서 꾸준히 연극에 대한 연극을 만들어왔다. <투명인간을 찾습니다>에선 연출가의 노트북을 소재로 작품을 올리고, <canned goods>는 연극계를 통조림에 비유한 작품이었으며, 그 외의 공연에서도 연극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질문을 꾸준히 던져왔다. 이번 작품은 심지어 제목부터 <뉴스페이스 : 연극>으로 보다 본격적이다. 2020년 올렸던 <SPACE : 연극>의 연작으로, 전작에서 극장 혜화동1번지가 우주선이 되었다면 본작에선 신촌극장이 신촌우주센터가 되고, 우주선을 올려 보내는 이 연극은 결국 연극을 올리는 연극이 된다.
하얀 바닥이 깔리고 머리 위에 둥그런 스크린 구조물이 달린 극장 안에 일곱 명의 관객이 앉으면, 작은 인형극이 시작한다. 우주인 인형 감독관 ‘있다’는 목표행성으로 함께 떠날 우주인-관객-에게 앞으로의 여정을 소개한다. 두 배우를 따라 관객들은 우주복을 입고 우주인 n번이 되어 훈련을 시작한다. 하나 둘 셋 넷, 걷기, 하나 둘 셋 넷, 닿기. 끊임없이 걷고 닿기 위해 노력한다.
코로나19 이후 많은 연극의 대안은 영상화와 온라인 송출이었다. ntlive를 보며 어쩌면 연극의 영상화가 새로운 관객개발을 위한 도약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낙관적인 이야기도 나왔다. 이제 보면 도대체 그런 담론들이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아주 중요하게 다뤄졌다. 모두 ‘그래서 어떻게 할까’를 말하는 사이, 어차피 훌륭한 온라인 송출을 위한 자본력/기술력을 갖추지 못한 독립예술가들은 ‘그런데 우리 왜 하지’를 묻기 시작했다. 공연예술만이 가진 무언가-그들을 계속 무대에 서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같은 질문이 피어오를 때 들었던 생각은 결국 “만나는 것” 자체였다. 관객이 느끼는 현장감Liveness를 넘어 관객과 공연자가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며 생기는 감각.
신촌우주센터에서의 훈련 중 시청작 자료로서 쓰이는 영상과, 무대미술의 차원에서 공중에 설치된 스크린 오브제 위로 투사되는 영상 외에도 본 작품은 영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 가운데 신촌우주센터장 전진머스크(신촌극장 극장장 전진모)의 등장은 인상적인 순간이었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민간우주센터인 신촌우주센터에서 몇 편의 우주선을 쏘아 올렸는지 얘기하며 그 모든 노력들이 ‘무화’되지 않게 하기 위해 안전이나 방역 상의 이유로 공연을 취소시키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고 얘기했다. 너무도 단순한 은유였지만 ‘창작집단 여기에 있다’라는 단체명이 말하는 ‘존재함’의 감각이 되려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관객들과 함께하는 훈련은 발사와 안정화 단계에 들어서며 잠시 멈추었다. 그들은 창작집단 여기에 있다가 지난 해 어떤 작품들 했고 관객을 얼마나 만났는지 얘기하고, 이를 넓혀 공공부문의 지원사업 예산에 대한 통계를 보았다. 불쑥 삽입되는 크리스토퍼 놀란과 김초엽, 랑데부 포인트 진입에 실패한 이후 연주되는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는 분절되어 보이지만, 창작자들이 이 시대에 굳이 연극을 해내는 마음의 겹을 보여주는 데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기대와 보람과 회의와 좌절과 희망이 그리는 4차원 그래프 속 어디 즈음을 헤매는 극은 곧 우리의 마음 속 좌표를 점쳐보는 순간이 된다.
랑데부 포인트에 재진입하는 데에 성공하며 극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간다. 영상화된 작품에서의 연기 경험을 인터뷰한 영상에서 배우들은 그 작업이 매우 쉽고 쾌적하여서 낯설었다고 고백한다. 라이브캠이 달린 헬멧을 쓰고 배우들이 움직이면 배우와 눈을 맞추는 관객의 모습이 오브제와 벽면에 투사되었다.
이 장면들은 진전머스크의 영상과도 묘하게 겹치는 감각을 주었다. 그들은 화면 속에 존재하지만 관객들에게 자기 얘기를 직접 털어놓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함께 연극놀이 같은 걸 하며 놀던 누군가가 영상으로 나타나 자기 얘기를 하는 순간은 그들이 어떤 캐릭터가 아닌 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적은 수의 관객은 두 인물과 인형 ‘있다’가 아닌, 두 배우와 ‘창작집단 여기에 있다’, 그리고 다른 관객들과 대면하고, 영상으로 서로의 모습을 보며 함께하는 감각들을 나눈다. 하나 둘 셋 넷, 걷기, 닿기.
보이저 호가 찍은 사진 <창백한 푸른 점>을 보고 칼 세이건이 적은 글을 떠올린다. 우주라는 광대한 스타디움에서 지구는 아주 작은 무대에 불과하다고, 우리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 얘기하며, 칼 세이건은 우리가 서로를 더 배려해야하고 우리의 유일한 삶의 터전인 창백한 푸른 점을 아끼고 보존해야한다고 말한다.
배우들은 자신이 연극을 계속 하는 이유를 거창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너무 좋아해서라며, 카페에 가지 않아도 괜찮게 된 것처럼 연극을 보지 않아도 괜찮은 세상이 되어가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목표행성에 도착한다. 다시 한 번 ‘연극에 대한 연극은 연극하는 사람만 좋아하는 연극’이라는 문장을 떠올린다. 지구가 외롭고 먼지같은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하듯이 연극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주 작은 무대에 불과할 것이고, 그래서 그 땅을 일구는 이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나의 삶과 생계를 떠올린다. 마찬가지로 작고 외롭고 특별할 것 없는 나의 세계를 떠올리며, ‘그럼에도 연극을 해내는’ 마음에 공명한다. 사소한 존재로 살아내는 사람으로서, 종일 사로잡혀있던 문장에 취소선을 긋는다.
공연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간다. 서정적인 음악은 조금씩 커지고, 바깥을 향하는 문이 열린다. 배우들은 한 명 한 명 이름을 외친다. 음악이 더 커진다. 배우들도 따라 목소리를 높인다. 이름이 호명되면 무대 디자이너, 연출, 조명, 음악 한 명씩 2층에서 손을 흔든다. 음악은 점점 벅차오른다. 배우는 거의 소리를 지르며 작은 쪽지를 꺼내 함께한 관객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른다. 우리 모두 만나서 기뻐요! 소리를 지르고 손을 흔든다. 연극은 끝이 난다.
“저도 만나서 기뻐요.”라는 인사로 리뷰를 마무리하고 싶다.
필자소개 김민수 : 거리예술을 비롯한 공연예술축제를 만듭니다. 가끔은 음악가로도 불립니다. 인디언밥, 민수민정, 밤의 소요, 블루프린트, 스튜디오1992 같은 소속과 친구들을 자랑스러워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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