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6. 02:59ㆍReview
브레히트의 명으로 폭주하는 우주선
프로젝트 뉴 플래닛 <Let’s Go To My Star 시즌1>
글_김민수
“와와? 와와와??” 우스꽝스러운 복장에 과장된 몸짓으로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세 연기자는 “와”로 대화하더니 이정현 <와>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의식의 흐름인가 싶겠지만 이런 질주는 멈추지 않는다. 멈출 생각이 없다. 브레히트의 명으로, 프로젝트 뉴플래닛이 그리는 포스트 서사극은 세 배우의 엄청난 에너지를 바탕으로 끝 모르고 달려간다.
지난 8월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을 통해 발표된 삼부작 연극<Let’s Go To My Star> 시즌1은, 본 공연의 작가 겸 배우인 최아련의 결혼 퍼포먼스<평생을 같이하고 싶은 그대를 만났습니다>(2021, 스페이스 다온)에서 시작한다. ‘연극과 결혼하겠다’는 선언을 퍼포먼스적으로 풀어낸 작업으로, 연극을 의인화하여 결혼식의 의례들을 밟아가며 연극에 대한 창작자로서의 애정을 유쾌하게 담아낸 작품이었다. 연기는 과장되었고 담론은 깊이 나가기보다 쉽게 결론지어지며 웃음을 유발하는 데에 보다 초점이 맞춰졌는데, 이는 관객 대부분이 지인으로서 그녀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왔기 때문에 가능해 보였다. ‘연극군’의 어머니, 아버지는 라이브 방송(영상)을 통해 덕담을 전하며, 연극에 대해 ‘고지식해 보여도 세상을 변화시킬 힘이 있으며 자세히 보면 재밌는 친구’라고 말한다. 신부는 남편이 19세기 사람인지 20세기 사람인지 혼란스러워 현대미술 전자음악 다원예술씨에게 마음을 돌리기도 했다며 웃지만, “내가 연극씨 세련되고 멋지게 만들어줄게”같은 말로 이유 없는 사랑을 고백한다. 그리고 불쑥, 외계행성에서 온 롸롸, 두두, 섭섭이 이상한 춤을 추고, 신부의 전 애인 둘이 춤을 추는 말도 안 되는 전개로 웃음을 유발하다 뮤지컬 <Rent>의 넘버인 seasons of love를 하객(관객)들과 함께 부르며 끝나고 마는 작품이었다.
연극을 사랑하는 마음에 대해 깊이 고민하거나, 결혼 의례가 가진 다양한 상징을 짚어내거나, 결혼의 의미를 묻거나, 개인이 연극이라는 개념과 합일하는 행위의 가능성을 묻는 대신, 보다 쇼적인 재미를 만드는 데에 집중했던 <평생을 같이하고 싶은 그대를 만났습니다>처럼 본 작품 <Let’ go to my star 시즌1> 역시 다양한 가능성을 품은 채로 쇼와 설명으로 작품의 대부분을 보낸다. 이 작품을 독해하기 위해 중요한 첫 단추는 이 작품이 ‘연극군’과 결혼한 최아련에게 시어머니인 ‘브레히트’가 “포스트 서사극을 해야한다”고 주문하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점이다. 요즘 연극이 다 비슷해져서 포스트-포스트 드라마이자 포스트 서사극을 표방하겠다며 둠칫거리는 일렉트로닉 비트가 극장에 울려 퍼질 때 이는 창작자의 의지인 동시에 누군가의 명을 받아 수행하는 장이 된다. 연극은 모두 허구이고 허상이라는 인식 하에, 논리를 기대하지 말라는 가이드를 바탕으로 신나게 놀자고 말하며 액자 속 이야기는 시작된다.
보이저 탐사선에 부착된 ‘골든 레코드’1)에서 지구의 음악을 듣고 이정현의 ‘와’에 빠진 핼 행성의 세 외계인 롸롸, 두두, 섭섭은 인간을 사랑해서 지구에 도착한다. 그들은 ‘와와와 와와와’로 소통하고 끊임없이 춤을 추며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지만 전반적으로 호응을 얻는 데에 실패한다. 세 외계인은 지구에 불시착한 뒤 각각 록 페스티벌과 고시촌, 공단에 도착해서 인간들 사이에 섞여 사는 10여 년의 시간을 보내고, 새로운 행성 ‘제네시스’를 만들어 지구인을 이주시키고자 하며, 이를 위해 ‘고맙당’이라는 당을 만들어 당원대회를 진행한다. SF 세계관을 설명하는 것에서 나아가, 많은 이야기를 빠르게 통과하는 가운데 손뼉을 치며 관객 호응을 유도해야 하는 만큼 나머지 시간은 배우의 설명으로 채워진다. 본격적으로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는 노래를 해야하기에, 헬족의 특성부터 그들이 지구와 인간을 사랑한 이유, 세 캐릭터가 지내온 10년 등 많은 것은 요약 전달된다. 외부자의 시선에서 이 사회의 구조와 인간성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SF적 장치를 “오 아름다워라! 인간은 서로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정도의 문장으로 뭉뚱그리며 작품은 빠르게 달려 나간다.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노래하는 사이 많은 것이 퉁쳐지는 가운데, 예리하게 빛나는 것은 자본주의 바깥을 향하게 하는 상상력이다. 너무 쉽게 많은 것이 자본주의의 탓으로 지적되고 동시에 자본 바깥의 사회를 상상할 수 없어 무력해지는 요즈음에 그들은 새로운 행성으로 대표되는 대안적 삶을 꿈꾸게 한다. 인간을 왜 사랑하는지 설득하는 데엔 실패했지만, 자본이 인간보다 소중해지고, 모든 판단의 근거가 되는 시대에 대한 비판은 유효해보인다. 그들은 인간이 경제적 불평등과 생존의 문제에서 벗어났을 때 어떤 공동체를 그릴 수 있을지 관객에게 묻고, 이를 위한 규칙을 정하기 시작한다. 규칙은 전반적으로 허술하지만, 토의 과정에서 현대문물이 자본주의의 산물인 동시에 자본주의적 사고를 유발한다는 점을 지적하는 등 반짝이는 부분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여기서 우린 ‘브레히트’의 명으로 이 작품이 만들어진 것을 다시 떠올린다. 포스트 드라마 연극이 배우의 몸과 현존성, 다큐멘터리 적 접근을 바탕으로 서사 중심 연극의 재현적 환영을 해체할 때, 베른트 슈테게만(Bernd Stegemann)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의도를 계승하며 드라마에 다시 집중하고 연극을 통해 지배 이데올로기를 폭로하여야 한다는 측면에서 포스트 서사극을 주창하였다.2) 본 작품 역시 액자 구조, 해설자의 존재, 에피소드식 구성, 감정이입을 방해하는 연기술과 같은 연출적 측면뿐 아니라 자본에 대한 비판과 같은 내용 측면에서도 포스트 서사극의 개념을 잇는다.
하지만 본 지면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이 작품이 얼마나 진정한 ‘포스트 서사극’이라는 태도-형식에 도달했는지가 아니라, 이를 뿌리로 어떤 작품을 만들었는가에 있다. 공연은 너무 많은 질문-자본주의가 왜 문제인지부터 새로운 행성이 필요한 이유, 기본적인 의식주는 어디까지이며 그것이 충족됐을 때 인간이 할 일, 자기가축화에 대한 이야기부터 사람이 변화할 수 있는가, 그리고 왜 인간들이 제네시스로 이주하지 않으려 하는지까지-을 던지지만,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허락하지 않는다. 갑자기 랩을 하거나 성악을 따라하고 나면 이미 답이 정리되어버리는 것이다. 작품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고 끊임없이 쇼를 보여준다. 그리고 수미상관처럼 이정현의 노래 <바꿔>를 부르며 끝나버린다.
문득 한국 사회에서 시어머니의 명이란 어떤 것인지 상상해본다. 남편(연극)을 사랑해 함께하기로 결정한 탓에 따라오는 의무 같은 것일까? 프로젝트 뉴 플래닛은 포스트 서사극을 표방하며 이를 ‘브레히트’의 명으로 착실히 수행해낸다. 하지만 본 공연이 포스트 서사극이라는 개념에 대한 논문 대체 발표가 아닌 이상 공연을 통해 관객이 경험하게 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가 보다 중요할 것이다. 세 배우가 뿜어내는 에너지와 매력을 충분히 보여준 만큼, 가벼운 낙관과 끊임없이 몰아치는 엔터테인먼트로 주제에 대한 고민과 통찰을 애써 지워내는 대신 뚝심 있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남은 두 시즌 동안 풀어내 주길 기대해본다.
1) 보이저 금제 음반(Voyager Golden Record)은 1977년에 발사된 보이저 탐사선 두 대에 실린 축음기 음반으로, 지구상의 생명체와 문화의 다양성을 알리기 위한 소리와 사진이 기록되어 있다. | 출처 위키백과
2) 장은수, "포스트드라마 이후 독일 포스트서사극" 브레히트와 현대연극, 한국브레히트학회, 브레히트와 현대연극 제 30호 p149-169, 2014
필자소개
김민수
거리예술을 비롯한 공연예술축제를 만듭니다. 가끔은 음악가로도 불립니다. 인디언밥, 민수민정, 밤의 소요와 같은 소속과 친구들을 자랑스러워합니다.
공연소개
프로젝트 뉴 플래닛 <Let's Go To My Star 시즌1> 일시 : 2022년 8월 17일(수) 20:00, 8월 18일(목) 오후 19:30
장소 : 연희예술극장 기획·제작 : 프로젝트 뉴 플래닛 작 : 최아련 출연 : 박두환, 변준섭, 최아련 예술감독 : 이혜정 조명감독 : 황규연 영상·음향디자인 :최아련 비주얼디렉팅 : 황보희정 그래픽디자인 : 오정빈 포토 : 오은빈, 김성일 라인프로듀서 : 차승은 영상 오퍼레이터 : 하영오 후원 : 경기문화재단 장소 협조 : 예술도서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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