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19. 22:08ㆍFeature
기꺼이, 시끄럽기를 선택한 극장
삼일로창고극장 기획사업 ‘창고포럼’
임현진 (삼일로창고극장 공동운영단)
삼일로창고극장은 참 오래된 극장이다. 수많은 시간을 거치며 기억과 이야기를 쌓아왔다. 올해의 기획사업 ‘창고개방’에서는 삼일로창고극장을 소개하는 자료를 만들며 ‘불사조’를 극장의 마스코트로 삼기도 했다. 민간과 공공이 함께 운영하는 극장이 되기까지 여러 변곡점을 거치며 재개관을 여러 번 거듭해왔다는 역사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었을까. 극장을 매번 다시 일어서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올해의 ‘창고포럼’은 극장의 힘을 다시금 확인하기 위한 대화의 자리를 열었다.
극장의 사람들은 극장을 참 사랑한다. 맹목적인 사랑이라기보다는 극장을 생각하고, 극장에 대한 꿈을 꾸고, 극장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에 가깝다. 극장의 역할은 무엇인지, 미래의 극장은 무엇일지 궁리하는 일에 참 진심이다. 삼일로창고극장의 ‘창고포럼’은 극장에 관한, 극장의 사람들에 관한, 극장의 이웃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대화의 자리이다. 극장의 미래를 상상하며, 우리에게 필요한 극장은 어떤 모습일지 함께 논의하는 시간들이 여러 방식으로 이어졌다.
1부. 삼일로창고극장 토론파티 (11/24 목)
포럼은 3부작으로 기획되었다. 첫 번째 포럼은 삼일로창고극장 기획 사업 등의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이들을 대상으로 준비한 ‘삼일로창고극장 토론파티’로, 퍼실리테이터 김해리와 정한나가 함께 기획했다.
토론파티는 토론도 파티처럼, 파티도 토론처럼 만들어가기를 꿈꿨다. 종종 입버릇처럼 말해오던 ‘삼일로다운 일들’이 이런 것이 아닐까 상상했다. 대화와 네트워킹이 이어지며 극장에 대한 질문을 함께 다뤘다. 참여자들은 삼일로창고극장에서 어떠한 것들을 경험했는지, 어떤 가치를 발견했는지, 극장이 만들어냈던 일들의 가치와 의미를 각자의 언어와 목소리로 풀어냈다. 극장과 나의 관계를 살피는 질문으로부터, 극장의 페르소나를 상상하며 그려보았고, 극장에서 발견한 것들을 1) 우리가 유지하고 지켜나가야 할 것, 2) 우리가 해결해 나가야 할 것, 3) 우리가 새롭게 시도해보아야 할 것으로 구체화했다.
토론파티의 참여자들은 극장을 ‘예술가들과 함께 운영하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극장의 ‘개방하려는 의지’를 확인하며, ‘해보지 않았던 영역에 도전’할 수 있었고, ‘수많은 대화가 일어나는 것’을 목격했다고 했다. 극장은 ‘새로운 창작자를 만나는’ 곳이었고, ‘환대의 자리’이자 ‘하나의 숲’이었다. 극장의 페르소나를 설명한 문장 중 재미있었던 것은 ‘아빠에게 극장을 물려받은 딸, 주입식 교육이 시작되기 전의 어린이 같은 마음, 큰 눈을 하고 있어서 넓은 세상을 보고, 웃을 때 활짝 입이 커지는 보헤미안 같은 존재’라는 설명이었다.
극장이 해왔던 일들의 성과와 가치를 읽어내는 언어가 참여자들의 목소리로 더 생생해졌고, 함께 해보고 싶은 일들이 더 많아졌다. 참 작은 극장이지만, 함께 만들었던 일들은 풍성하고 깊었다. 극장이 스스로 해낸 일이 하나도 없었고, 모두의 기여가 만들어낸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여전히 극장이 필요할까 반문하는 것으로부터, 극장은 아직도 할 일이 많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는 시간이었다.
2부. 삼일로창고극장 극장활용법 결과공유회 (11/25 금)
극장활용법은 극장이라는 공간과 장소의 의미를 다시금 새롭게 살피고, 물리적인 공간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장소성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지, 미래 극장의 역할은 무엇일지, 어떤 사람들을 환대할 수 있을지 답을 찾아가기 위하여 기획된 사업이었다. 공모의 형식으로 진행된 리서치 프로젝트로, 삼일로창고극장의 질문에 예술인들이 각자의 방식을 통해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으로 진행되었다.
극장활용법이 진행되었던 기간 동안 예술가들은 극장의 공간을 사용하고 잠시나마 점유하며 극장에서 맺는 관계, 극장에 초대하는 방식, 극장을 채우고 비우는 방식을 실험했다. 극장이 없는 세상을 상상하며 극장의 존재를 인지하고, 극장을 다르게 보는 시선으로부터 극장이라는 공간 자체를 미학적으로 바라보는 시도들을 이어갔다.
결과공유회는 극장활용법에 참여했던 작가들이 각자의 연구 과정과 결과를 공유하며, 질문하고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창작자들은 다양한 존재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안전한 극장을 꿈꾸었고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 관계적인 공간으로서의 극장을 실험했다. 극장의 소유 구조를 넘어서서 극장이 되고자 하는 스스로들이 더 많아지는 극장을 이야기했고, 이야기를 경청하는 극장, 극장의 새로운 태도를 상상하기도 했으며, 극장의 물리적인 한계와 관습을 넘어서는 공간 조성과 설계를 실험하기도 했다.
링크. 삼일로창고극장 ‘극장활용법’ 노션 아카이브 바로가기
3부. 2024 삼일로 대현장전상서 大現場前上書 (11/26 토)
삼일로창고극장의 포럼 3부작 중 마지막 시리즈인 대현장전상서는 삼일로창고극장의 현안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다뤄내는 그룹 토의의 자리였다. 공공/극장의 이유에 대해 묻고, 토론하고, 어쩌면 진짜 필요했던 극장을 상상했다. 서울시의 위탁 하에 서울문화재단과 공동운영단이 함께 운영해오고 있던 삼일로창고극장은 2023년까지 현 체계를 유지하고, 이후에는 다시금 운영 방식을 재조정하게 된다. 대현장전상서는 이러한 이슈를 현장의 예술계와 공유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계되었다.
삼일로창고극장의 역사와 현재를 살피는 발표와 소극장의 공공성과 위탁운영 의제를 구체적으로 제안한 기조 발제가 진행되었고, 실무자, 종사자, 공공극장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참여자들은 소그룹으로 나뉘어 주제를 심화하는 토론에 참여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생각과 이야기를 발전시켰다. 기조 발제에 이어 공동운영단이 제안한 세부 토론 주제는 다음과 같았다.
“기획이 없는 극장은 어떻게 얼굴을 만들 수 있는가?”
“현장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 현장의 목소리는 어떻게 수렴되는가?”
“삼일로창고극장은 누구를 위한 극장이어야 하는가?”
“극장의 독립성과 자율성, 왜 필요한가?”
“민간위탁과 재단 운영의 사이”
“공공극장의 역할과 가능성이 뭐길래!”
각 소그룹에서는 극장의 지속성, 독립성과 자율성, 공공(소)극장으로서의 역할, 극장이 소외했던 존재들을 살피는 포용적 관점 등을 토론했다. ‘공공’은 누구인지, 삼일로창고극장이 수행할 수 있는 ‘공공성’은 무엇인지에 대한 토론으로부터 이야기의 깊이를 더했다. 안전한 선택만을 하며, ‘모두’라는 적당한 말로 애매한 선택을 하는 극장이 아니길 바랐다. 믿는 바대로 극장의 공공성을 추구하는 극장, 실험과 창작의 플랫폼으로서의 일들을 실천할 수 있는 극장, 공공에 필요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모험을 하더라도 필요한 선택을 하는 극장이 되었으면 했다. 다양한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공공극장(들)이 존재하며, 각자의 공공성이 생태계 안에서 기능하는 것을 꿈꾼다.
기획이 존재하는 극장이 희박해지고 있다. 극장을 관리와 운영의 대상으로만 치부하는 것을 넘어서서, 관계를 위한, 협업을 위한 극장을 구상할 수 있을까. 삼일로창고극장의 보수 이전에 벽에 남아 있던 창작자들의 낙서처럼, 이 시간의 대화들이 나와 우리에게, 누군가에게 새겨질 수 있을까. 창고포럼을 통해 극장은 기꺼이, 시끄러운 곳이 되기를 선택했다. 극장이 마주하고 있는 의제들을 감추어두지 않고,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극장의 대화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평온하지 않을지라도 용감하게 질문을 던지고, 함께 고민하며 답을 찾아갈 수 있는 극장이기를.
임현진 독립 기획자로 축제 프로그래밍, 공연 제작, 국제교류의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도시·공간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여러 축제, 예술단체들과 함께 작업한다. 공연을 하며 만난 세상을 이야기하고, 재미난 질문들을 찾아내는 것이 즐겁다. 명동의 고요한 언덕 위에 자리잡은 삼일로창고극장의 공동운영단이다. @myunze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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