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24. 08:40ㆍLetter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호기롭게 "내가 이번에 레터를 쓰겠어"라고 말했지만 결국 6월 그리고 7월 마지막이 돼서야 편지를 써 내려갑니다. 흩어지고 조각난 말들 사이에서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인디언밥에서 일을 하는 듯 안 하는 듯 활동하고 있는 불나방입니다. 한동안 무섭게 내린 장맛비와 연이은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와 마음이 아주 무겁습니다. 먼저 마음을 담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올해 초부터 실천하고 있는 것들이 있는데요. 그 가운데 제 최대 관심은 바로 일상의 균형을 맞추는 데 있습니다. 빠르게 돌아가는 시스템 안에서 상당 시간 길들여진 몸이 이곳저곳이 망가져 저는 잠시 저를 내려놓고 휴식을 선택했습니다. 그동안 오로지 몸과 마음의 회복에 많은 부분 할애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먹고 마시고 잘자는 것에 집중하기! 가장 기본적인 것을 잘 지킨다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말을 몸소 느끼고 있습니다. 그만큼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 살피는 것에 관심 있다 보니 2023년 삶의 방향성은 ‘0의 지점’으로 가는 것입니다.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렸던 시간을 돌아보고 조금씩 천천히 숨도 고르고 바깥 풍경도 보면서 나와 주변인들을 챙기는 것에 집중하고 작업과 나 사이에 삶의 균형을 맞춰가는 데 마음을 다하고 있습니다.
삶의 조화와 균형을 맞추는 데 노력에도 사실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습니다. 자꾸만 삶의 큰 균열이 나기 시작하는 사건들이 최근 들어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또다시 생존의 위협이 목구멍까지 칼을 드리대고 있으니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는 상황 같네요. 연일 SNS를 뜨겁게 달구는 소식 가운데 저는 몇 가지 소식들을 전해보고자 합니다. 뉴스레터로 다소 무겁지만, 필요한 말을 한다는 것은 '인디언밥'이 가지고 가야 하는 사명감이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슬픈 소식, 힘든 소식, 아픈 소식 보기 힘들고 안 보게 되실 텐데, 이번에는 봐주길 바랍니다. 나의 친구들이 나의 동료들이 하나둘씩 터전을 잃게 생겼거든요.
사진출처 :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 인스타그램(@hculturecoop)
마포구에는 다양한 창작공간이 존재합니다. 개인의 창작공간, 갤러리, 극장을 비롯해 다수의 공공공간도 있는데요. 근래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르는 소식은 마포출판문화진흥원 ‘PLAFORM P(이하 플랫폼P)' 이슈가 아니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울시가 2010년 1월부터 서교동 일대를 마포 디자인·출판 특정개발진흥지구로 지정했으며, 플랫폼P도 그중에 하나입니다. 출판업계의 약 20% 이상 약 52개 개인 및 단체가 약 2~3년의 주기로 상주하며 출판업의 다양한 활동(도서전, 워크숍, 출판 등)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위험한 조짐이 보인 가운데 3월부터 마포구민을 위한 시설이 되어야 한다, 창업지원센터로의 전환 등이 이야기가 붉어졌습니다. 이와 함께 상반기에 진행되어야 할 입주단체 모집이 없는 상태이며, 단체 연장심사를 진행하는 가운데 갑작스러운 심사조건의 변경 등 행정과 절차를 무시한 진행, 강압적인 입장 보여 대부분이 공간에서 쫓겨나야 하는 입장입니다. 이는 비단 플랫폼P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이와 더불어 서울문화재단 산하의 창작공간인 '서교예술실험센터', '경의선 책거리'도 공간 계약 종료 시점에 맞춰 공간의 역사와 가치를 무시하며 남아있는 이들과의 논의가 진행되지 않은 체 공간의 용도 변경 및 삭제시키는 일을 진행한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습니다. 돈이 되지 않는 것, 지역 예술가들의 생존, 예술의 가치가 하락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일련의 사건들이지 아닌가 싶습니다.
사진출처 : 왼쪽부터 예술텃밭(@art.tutbat)/ 원주아카데미극장(https://campaigns.do/campaigns/913)/ 서울혁신파크(@better.eunpyeong)
여기서 그치지 않고 현재 안타까운 소식은 연이어 들립니다. 공연예술가들의 수다 공간이자 다양한 창작활동을 하는 '화천의 예술텃밭', 국내 유일의 단관극장으로 불리며 역사성을 가진 원주 아카데미 극장', 서울의 사회적경제 단체가 모여 활동하고 은평구 시민들의 놀이공간 '서울혁신파크', 수많은 발자취가 남은 '삼일로 창고극장' 외에도 작은 도서관, 어린이 도서관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곳들도 시와 군 단위의 공간 계약 종료가 시점에 놓인 가운데 미관상의 이유로, 재개발, 수익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등의 이유로 그 공간이 가진 정체성, 의미가 점차 지워지고 있습니다. 납득할 수 있는 이유와 설명이 있다면 피곤하더라도 진부하더라도 얘기하는 과정이 있더라면 이렇게 분노할까요.
일련의 사건들을 돌아보며 우리가 머물 수 있는 공간은 어딜까요. 어디여야 할까요. 우리가 함께 했던 것들은 지금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이 상황이 지속될수록 너무 마음이 아프네요. 길지 않은 시간 시한부와도 같은 공간에서 머무는 이들, 쫓겨나듯이 자리를 떠나야 했던 단체들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지금을 견디고 있을까요.
그래서 인디언밥은 가만히 있기보다는 움직여 볼까 합니다. <시대에서 쫓겨나기>라는 제목을 통해 지금 현안에 대한 3명의 당사자의 목소리를 발화하는 자리를 시작으로 8월 중순에 진행하는 '독립예술집담회'에서는 다 같이 둘러앉아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를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 나만의 얘기가 아닌 모두가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자리이니 부담 없이 이야기를 나눴으면 합니다.
분노로 시작해 홍보로 마무리하는 의도적 계획을 보이면서도 식물에 새순이 나와 작은 즐거움을 발견하는데 마음을 두고 있는 이상한 불나방 오늘 레터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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