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5. 5. 19:03ㆍReview
‘책을 듣다, 마음을 보다’
어느 까탈스런 미식가의 공연 맛보기
<원작 : 정미경 단편소설 '밤이여, 나뉘어라'>
글 ㅣ 스카링
주요재료 l 단편소설 ‘밤이여, 나뉘어라’
주생산지 l 작가 정미경의 글 세계
기본양념 l ‘있는’ 자들의 쓰디 쓴 마음
요리방법 l 낭독회 스타일의 공연
▲ 단편소설 '밤이여, 나뉘어라'에는 다양한 절규의 모습들이 나옵니다. 뭉크의 작품 '절규'도...
문학은 ‘조건부’ 예술, 그래서 자꾸 변신하나봅니다.
안녕하세요. 제가 소개할 요리는 ‘달달 지지고 볶은, 단편소설 조림’입니다. 처음 들어
보신다구요? 그렇지도 않아요. 대부분의 공연 밑바탕에는 텍스트가 있지요. 대본이라는
이름으로 말이죠. 그러나 대본이 아닌 텍스트로 이뤄진 공연이 있는데, 주로 ‘문학’이란 꼬리표를 달고 있는 글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랍니다. 시, 소설, 수필, 동화 등등등...낯설진 않죠? 오늘은 단편소설로 만든 요리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여러분은 책을 좋아하시나요? 저는 군것질 다음으로 좋아해요. 한 글자, 한 문장을 따라 읽노라면 마치 마법에 걸린 듯, 몸 안과 밖으로 책의 세계가 훅 빨려 들어오거나 또는 눈앞에 확 펼쳐진 느낌을 받곤 한답니다. (물론, 정말 ‘잘’짜여진 글에 한해서이긴 합니다만) 책이 좋은 건, 능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장점이자 단점이 있긴 하다만, 그러한 ‘적극적인 쏠림’을 통해 제각각 새로운 경험과 감성을 쌓게 된다는 것이 경이롭게 느껴지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나 제가 이렇게 책에 대한 주저리주저리 예찬을 늘어놓아도, 텍스트에 있어서 최
대의 ‘문제’가 있습니다. 글자와 언어를 알아야 한다는 것,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이 요
구된다는 점이죠. (제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 또한 마찬가지일겁니다. 새삼스레 글을 가
르쳐주신 분들께 넙죽 절이라도 하고 싶네요.) 아무리 쉽게 쓰인 글이라고 해도 글을 모
르면, 말짱 도루묵. 외국작품일 경우는 더욱 더 높디높은 언어의 벽 앞에 가로막히기도
하죠. 글자로 이뤄진 예술은 다 좋은데, 언제나 그게 아쉬워요. 문학은 그래서, ‘학
(學)’이란 학문으로 일컬어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러한 조건이 있는 예술이기에, 그
래서 문학은 자꾸 변신하나봅니다. 더 쉽고, 더 널리 많은 사람들과 작품에 대해 나누고
싶어서일까요?
마침 이에 딱 맞는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냉큼 갔죠. 이 공연의 제
목은 ‘책을 듣다, 마음을 보다’입니다. 좀 거창하다 싶지 않으세요? 책을 듣는 거야 어렵
지 않지만, 마음을 보여준다니요. 모든 예술이 지향하는 건, 안에 담아 둔 마음을 드러내
는 것이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요. 사실 고백하자면 저는 미식가라기보다는, 의심 많은
편식쟁이에 가깝습니다. 때문에 이 글을 쓴다는 게 조금 찔리기도 합니다만, 입에 바른
칭찬보다는 정이 깊어 딴지를 거는 쪽이 때론 모두에게 이로운 경우를 봤거든요. 그래서 맛나는 건 꼭꼭 씹어먹고, 아니다 싶은 건 잘근잘근 씹을랍니다. (딱 어린애 입맛이죠? 하하)
주재료 ‘단편소설’부터 소개하자면,
이 공연은 두 작품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저는 ‘그닥 안 땡기는’작품을 맛봐야 했어요. 작가 정미경의 단편소설 ‘밤이여, 나뉘어라’입니다. 대단한 타이틀을 소지한 작품이
죠. 2006년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입니다. 뭐, 좋습니다. 심사위원 선생님들이 엄지손
가락 들었다니 게임 끝이죠.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친구 'P'를 따라 의학도의 길을 걷다 이내 포기하고 외국에서 알아주는 영화감독이 된 ‘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동경해 온 친구 ‘P’를 만나러 영화방문차 북유럽에 왔다가 ‘P
가 있는 노르웨이의 오슬로로 갑니다. 'P'와의 재회가 목적이기도 했지만, 사실 ’P'에게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오랜만에 재회한 'P'와 한 때 끌렸던 ‘M'. 부부가 된 두 사람을 만
난 ‘나’는 생각지도 못한 그들의 변화에 당황합니다. 무엇을 해도 1등, 언제나 만능이었
던 의사 ‘P’는 채워지지 않는 욕망에 대한 공허함에 알콜중독자가 되어 있고, 그의 아내 'M'은 그를 이해하면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뭉크의 ‘절규’ 그림 속 인간처럼 하얗게 타버렸습니다. ‘나’또한 결국 그 그림과 같이 귀를 막은 채 ‘P’의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과 그의 절규를 외면합니다. 과거의 ‘P’만 기억하고, 지금의 ‘P'의 모습을 지워버린 것이죠.]
물론 이 단편소설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줄거리를 따라, 그 안을 가득 채운 작가의 손
길은 참으로 섬세한 깊이가 느껴진답니다. 낯선 이국의 배경의 묘사며, ‘나’의 심리를 술
술 풀어놓는 문장이며 정말이지, 닮고 싶은 ‘대가’의 숨결이 물씬 풍기더군요. 그래도 딱
잘라 말하면, 꼭꼭 씹어 내 안에 채워둘 만큼 애정이 가진 않았습니다. 사실 전 ‘반(反)엘
리트주의’거든요. 그런 거 있잖아요. 콧대 높은,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이 배배꼬여
서 질투하는 게 아닙니다. 문제는 이거에요. 엘리트 아닌 내가 봐도 별 거 아닌 걸 가지
고, 자기들 세계에선 죽을 둥 살 둥 ‘엄청난 이슈’로 부풀리면서 미치고 팔짝 날뛰는 것이 아니꼽다는 거죠. 왜 어깨에 힘을 바짝 주어요? 왜 시름시름 골머리를 앓아요? 마치 나
만의 문제, 나만이 겪은 이야기. 전 이것 ‘나만의 특별한’ 경험이란 투로 선을 긋고 장벽
을 치는, ‘니들은 이런 내 맘 알 리 없지’, 요런 엘리트들이 얄미울 뿐이에요.
이 소설에서 느껴진 가장 큰 감성은 타자를 내 삶의 기준으로 세워 둔 줏대 없는 ‘엘리
트’가 그 기준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모습에 돌아 선다는 ‘회피’였습니다. 안쓰럽기도 했
지만, 전 그 ‘돌아섬’때문에 참 씁쓸하고 화가 났습니다. 물론 인물들의 심리를 제대로 이
해 못 한 제 무지함이 큽니다. 하지만 엘리트들은 이리 냉정한 걸까 싶은 그럼 느낌이 먼
저 들었죠. 뭐랄까, 진짜 맛있는 인절미를 먹긴 먹었는데 너무 딱딱하게 굳어서 목에 탁
걸린 그런 느낌이랄까요? 켁켁. (누구, 설탕물 좀 주세요.)
그래서 다시 맛보러 갔어요. 글자들이 어떻게 변신하는 지.
사실 호기심 반 우려 반 심정으로 공연장을 찾았습니다. 이미지가 보이지만, 짙게 깔린 심리들을 어떻게 이끌어낼지 걱정이 되더군요. 물론 단순한 낭독회가 아니란 말에 기대
감은 더욱 부풀었구요. 이 공연은 ‘단편소설’을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해 놓았어요. 지지
고, 볶고, 조리고...텍스트를 읽는 것이 아니라, 연기를 하면서 말이죠. 단편소설 ‘밤이여, 나뉘어라’는 무대 위에서 어떤 모습으로 ‘두둥’하고 나타날까요? 실제 소설처럼 북유럽
이 배경으로 나온다면 대박이다 싶었습니다. 아차, 이건 영화가 아니죠. 흠흠. 아무튼 이 공연은 조금 색다른 컨셉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연극무대’로 올리기 전, 연극을 만
드는 과정 중 일부를 보여준다는 설정이었죠. 배우들이 연습실에 모여 이 소설을 리딩하
는 모습을 통해, 소설이 펼쳐졌습니다.
무대에는 아담한 연습실이 꾸며져 있었고요, 예쁜 조연출이 나와 연습실 정리를 하며 배우들을 기다리고요. 여기까진 좋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배우들이었습니다. 어르신 세 분이 등장하더군요. 어르신이어서 문제가 되는 건 아닙니다.(요건 뒤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여자배우 둘, 남자 배우 하나, 이렇게 세 분이 차례차례 ‘연습실’로 오시더군요.
(아, 연출자 역을 맡은 여자 배우도 한 분.) 뭔가 잘못되었나 싶었습니다.
‘밤이여, 나뉘어라’에는 총 세 명의 주요 인물이 등장합니다. 나와 ‘P'는 남자, ’M'은 당연히 여자. 이렇게 말이죠. 그런데 무대 위에는 여자 둘, 남자 하나입니다. 그 때부터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습니다. 뭔가 색다른 설정이겠지, 의심병 도지는 제 마음을 꾹꾹 누른 채 공연에 집중했습니다. 이게 뭔가요. ‘돌려 읽기’였습니다! 세 배우가 돌아가며 나와 'P', 그리고 'M'을 연기하며 읽으시더군요. 휴, 다행히 남자 배우 분은 ‘M'의 대화문은 안 읽으셨습니다. 소설 한 문장 한 문장 ’연기‘가 실린 낭독으로 꽉꽉 채워지는 무대. 귀 기울이며 감동받는 분들도 여럿 계셨는데요. 하지만 삐딱한 저는 좀 숨이 막혔습니다.
무대 위에는 조청 잔뜩 바른 ‘인절미’가 올라와 있었지요.
원작이 딱딱한 인절미였던 것과 달리, 무대에 오른 ‘밤이여, 나뉘어라’는 달콤하면서도 잔뜩 끈적끈적했습니다. 달짝지근한 거 좋다고 많이 먹으면, 얼마 못 가 속이 니글니글
해지잖아요. 공연을 보면서 딱 그런 기분에 젖었습니다. 이것이 연기다, 라는 연기의 진
정성까지는 잘 모르는 관객입니다만 그 날 무대에서 본 연기들에는 ‘틀’이 느껴졌습니다. 묵직하고 힘 있는, 그러나 어딘지 오래된 형식에 갇힌 그런 연기 말이죠. 한 번 눈 감고
들어보니, 옛 성우들의 라디오드라마를 듣는 것과 흡사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번에는 냉
수 한 잔이 마시고 싶어지더군요. 등장인물들의 고민덩어리들을 잘 전달해야겠다는 ‘사
명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여기에도 한 마디 쓴 소리 해야겠습니다. 낭
독회라는 조건이 달려있긴 했지만, 어쨌든 무대 위에서 ‘설정’아래 연기를 하신 거니깐요. 세 분 다 같은 톤의 대사읽기와 연기를 보여주시더군요. 그래서인지 세 분의 목소리
만 다르지, 전부 한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진짜 ‘연극’이 아니니깐?
아니죠. 무대 위에서 연극배우가 연습하는 과정을 연기하신 거니 것도 진짜 연기죠. 연극배우가 연극배우를 연기한다는 게 너무 잘 드러나서, 전 그게 좀 아쉬웠습니다. 딴 소
리지만 제가 생각하는 ‘좋은 연기’는, 연기같이 느껴지지 않는 연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많이 웃었습니다.
병 주고 약 주고 해서 죄송합니다만, 웃기도 많이 웃었습니다. 책에서 대충 지나갔던
몇 몇 문장들을 눈앞에 보여주셨지요. 고등학생이었던 ‘P'가 선생님한테 슬리퍼로 뺨을
쳐 맞는 모습이라던가 뭉크의 ’절규‘의 그림 속 인간 표정을 흉내 내실 때 여기저기서 웃
음소리가 들리더라구요. 의아했습니다. 책 읽을 땐 단 한 번도 웃지 않았는데, 배우 분들
을 통해 웃음을 포함해 여러 감정이 들더군요. 아, 그 때 공연예술의 힘을 느꼈습니다.
함께, 그리고 지금 감정을 나누는 예술임을. 솔직히 타이틀대로, 책은 잘 들었지만 마음
은 잘 보았는지는 ...글쎄요. 그러나 글자들이 들리고, 보이는 형태로 변신하여 관객들
마음에 내려앉는 순간들은 곧잘 목격했습니다. 특히 눈앞이 안 보이시는 분들께서 더욱
열린 마음으로 공연을 즐기시더라구요. 뜨끔했습니다. 이놈의 편식이 사실은 잘난 지식
에 기대어 떠든 건 아닌가 싶은. 그 열린 마음으로 공연의 모든 요소 하나하나를 음미하
는 분들이야말로 진정한 미식가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전 좀 더 입맛을 길러야겠습니
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맛나게 먹고 난 뒤에 제대로 맛을 음미하는 방법을 말이죠.
그래도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시다니, 대단하다 생각했습니다. 저라면 틱틱거리며 재미
없게 읽다 지쳐 쓰러졌을 겁니다.
작품에서 뭉크의 유명한 그림 두 점이 도난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누가 훔쳐갔을까
요? 술에 취한 'P'는 자신이 훔쳤다 하지만, 작가는 끝내 범인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너
무 유명한 그림들이라 어디에 내다 팔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왜 훔쳤을까요? 나
만 갖겠다는 욕심에서 벌어진 일일까요?
어떤 예술작품은 이름과 사연이 덧붙어 당대 최고의 걸작이 되기도 합니다. 살아남는 건 걸작뿐일까요. 아니요.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인정받는 것도 물론 중요
하지만, 예술의 가장 중요한 것은 만든 사람과 보는 사람의 감성을 서로 통하게 하는 것
이라고. 내가 먼저 흥해야 작품이 만들어지지만, 작품을 만들면서도 보는 사람들의 마음 또한 항상 배려하면서 만들어 주세요. 그래야 예술이란 건,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적
시면서 계속 살아 숨 쉬게 되지 않을는지요.
<책을 듣다, 마음을 보다> 공연정보보기
단순히 보고 즐기는 연극공연이 아닙니다.
마음 깊은 울림의 소리로 이루어진 무대를 통해 영혼과 영혼이 이어지고 예술과 삶이
맺어지고 그 속에서 연극적 가치의 지평이 넓어지는 무대입니다.
또한 우리의 희망을 귀로 듣고 마음으로 보는 첫걸음이며 나눔의 이름으로서의 연극
이 주는 감동의 첫 소절입니다.
공연제목 : 책을 듣다, 마음을 보다
공연일시 : 정미경 작 ‘밤이여, 나뉘어라’ 2010.4.13 ~ 17 오후 2시
김애란 작 ‘달려라, 아비’ 2010.4.20 ~ 24 오후 2시
공연장소 : 선돌극장
필자 스카링(scar★wing) 은...
영어 scar와 wing을 빨리 발음하여 얻어낸 닉네임. 이름보다 더 많이
쓰고 있다. 강아지보다는 고양이, 폴 매카트니보다는 존 레논쪽 과에 속하며,
어느 쪽도 포기할 수 없어 딸기와 초콜릿을 함께 먹었다가 담배맛이 난다는 것을 최근에 깨달았다.
글쓰기를 업으로 알고 '조율'하는 중이며, 기타줄도 튕기고, 자전거 체인도 움직이며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전진하고는 있는데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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