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5. 13. 09:10ㆍReview
세상은 거짓말 같아!
<나의 열 살>
글| 김지선
열 살을 떠올려본다. 첫 눈 맞춤 이후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게 펼쳐졌던 세상은 강산도 변한다던 10년 세월동안 어느 만큼 익숙해졌고, 어느 정도 ‘알’ 것만 같았다. 10이라는 완결의 숫자. 열 밤, 열 개, 열 번처럼 어린 시절 완결과 완성을 의미했던 숫자 10. 그래서 열 살이 된 어느 날 ‘벌써 내가 열 살이 되었어.’라고 탄식 했는지도 모른다. 태어난 지 10년 된, 열 살의 인공은 이제 세상을 조금 알 것만 같다. 벌써 열 살이 된 인공의 눈에 비춰진 세상은 거짓투성이. 4월 1일, 만우절에 태어난 열 살 주인공이 생일을 하루 앞두고 집에서 쫓겨나 마주친 세상의 모습, 세상의 진실은 다름 아닌 ‘거짓말’이다.
시험 문제를 열 개나 틀린 인공은 아빠에게 혼이나 집에서 쫓겨났다. 인공은 집에 들어가고 싶지만, 굳게 닫힌 문은 열리지 않는다. 집 앞 가로등 앞에 앉아 고민에 빠진 인공은 시간이 지날수록 반성보다는 오히려 시험 문제 열 개 틀린 것이 그렇게 큰 죄일까 싶다. 결국 인공은 일종의 오기와 반항의 심정으로 길을 나서고, 아빠가 금기시 했던 일들을 보란 듯이 감행한다. 그러나 PC을 가는 것도, 길에서 파는 붕어빵을 사 먹는 것도 돈 없는 어린 인공에게 여의치가 않다. 우연히 지하철역에 다다른 인공은 홍대로 향하고, 밤새도록 방황하다 한강까지 이르게 된다. 이렇게 공연은 열 살 인공의 시선으로 그가 집을 나와 하룻밤 방랑에서 만난 세상의 거짓들을 통해 거짓 같은 진실, 거짓말 같은 세상의 진리를 보여준다.
열 살 아이에겐 어울리지 않는 홍대의 밤거리는 인공이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세상이다. 술을 먹고, 휘청거리는 아저씨와 길거리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웨이터, 택시를 태워주겠다고 접근하는 사람들까지 보지 못했던, 혹은 볼 수 없었던 세계는 거짓처럼 인공을 혼란스럽고 지치게 한다. 우연히 얻게 된 오 만원권 지폐도 인공의 손에 쥐여졌던 사실조차 거짓이었던 것처럼 그 손을 빠져나가 한강 다리 아래로 떨어져 버리고, 인공은 울면서 아빠와 자신의 죽음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 상상도 실은 거짓이다. 인공이 바라는 것은 그 두 사람의 죽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공이 만우절에 태어난 아이라는 설정과 함께 공연은 세상의 거짓 같은 진실, 그 진리를 끊임없이 놓치지 않는다.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기자인 인공의 엄마가 전하는 거짓말 같은 뉴스는 이러한 진리를 뒷받침 한다. 어린 아이가 어른을 인질로 삼고 있는 영어 마을 사건은 아이가 가지고 있던 총이 장난감 총이었다는 것과 함께 거짓말처럼 일단락된다. 그러나 결코 거짓말로 치부해 버릴 수 없는 사건의 진실은 조기 영어 유학중 스트레스로 인한 범죄라는 현실감으로부터 발생한다. 인공의 하룻밤 방랑기처럼, 이 사건 역시 거짓말처럼 사라졌지만 한 순간 존재했던 세상의 진실인 것이다.
생일 날, 학교에서 인공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하룻밤 방랑기를 자랑해 보이지만, 4월 1일 만우절에 펼쳐지는 그 진실들은 왠지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거짓말처럼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도, 이름은 주인공이면서 한 번도 주인공이 되어 본 적이 없다는 것도, 그리고 실재했던 하룻밤의 방랑기조차 마치 꿈처럼 거짓말이 되어버리는 세상의 진리 앞에서 주인공은 벌떡 일어나 크게 웃어 보인다. 세상을 알 게 된 ‘열 살’로 ‘세상은 거짓말 같아’라는 진리 앞에 아저씨처럼 너털웃음을 지어 보이는 인공. 세상을 십년이나 산 인공은 그렇게 진실과 진리 앞에서 부쩍 자라난다.
열 살 아이는 외로울까? 그들은 고민을 할까? 외로움을 느끼고, 고민하는 열 살의 아이는 왠지 거짓말 같다. 그러나 진실은 그들은 외롭고, 고민하는 존재라고 공연은 말한다. 손바닥 크기 정도의 작은 인형 인공이 지하철을 탔을 때 그 뒤 스크린에 펼쳐지던 커다란 세상은 열 살 아이가 마주한 광활한 미지의 영역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 안에서 작고 연약한 아이의 존재감이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욤 프로젝트>의 음악과 더불어 빠알간 공중전화 박스에 담겨 빙그르 공중을 떠도는 인공의 모습은 낯선 밤 세계 속, 거짓말처럼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서 방황하는 외롭고 지친 열 살 아이의 영혼을 느끼게 했다.
혼자 있는 인공이 부쩍 외로워 보였던 것은 언제나 허공에 떠서 화면과 영상으로 전달되는 엄마 아빠의 존재 때문인지도 모른다. 시험을 못 봤다고 혼내는 아빠는 영상으로 나타나고, 그런 인공을 위로하는 존재지만 잦은 출장으로 인공과 떨어져 지내는 엄마 역시 텔레비전 화면 속에 갇혀 있다. 열 살 아이와 부모의 물리적이고 심정적인 거리감은 땅에 있는 인공 인형과 허공에 매달린 텔레비전과 스크린으로 가시화된다.
영상과 함께 인형놀이마냥 무대에 사용된 칼라감이 느껴지는 작은 소품들과 그것들을 활용한 무대 전환은 인형극에서 느낄 수 있는 아기자기함과 동시에 극의 속도감을 높여주었다. 시험 문제를 많이 틀린 인공의 고민이 깊어지자 그가 기댄 작은 책상은 순식간에 뒤집혀 그네가 되고, 공간은 어느새 학교에서 놀이터로 전환된다. 그네의 앞뒤로 왔다 갔다 움직임과 함께 인공은 사느냐, 죽느냐를 고민한다. 작은 테이블로 된 인형 무대는 한강다리를 표현 할 때는 무대 위로 높은 다리가 올려지고, 지하철이 될 때는 무대 아래쪽에 문이 열리며 새로운 공간을 내보이는 등 무대 상하의 활용이 돋보였다.
나의 열 살. 거짓말처럼 말하고 움직이는 작은 인형 주인공의 거짓말 같은 방랑기는 ‘세상은 거짓말 같아’라는 거짓말 같은 진리를 열 살짜리 아이를 통해 전해주고 있었다. 세상에 태어난 지 십 년이나 되는 열 살 주인공이 들려주는 세상의 진리, 그리고 거짓말을 10살도, 10살을 지나온 이들도 한 번쯤은 알면서도 속아줄 가치가 있을 것 같다. 만우절에 태어난 주인공이라는 상징처럼, 우리 모두는 어쩌면 한 순간 존재했지만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릴 존재이니까. 그러고 보면, 우리 모두는 그 자체로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나의 열 살
2010년 4월 22일 ~ 5월 19일
5월 12일~19일 연장공연**
공연시간: 평일 오후7시30분/주말 오후3시,6시
공연장소: 성북구 아리랑 아트홀
문의: 극단 고양이다방 010-8200-8417
일반 15.000원/청소년 10.000원관객카페 바로가기
하이라이트 영상
김지선
여름과 사람과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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