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경의 마임워크숍]-16.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종합하고 있다

2010. 6. 7. 20:38Feature

고재경의 마임 워크샵 - 열여섯 번째 기록



글| 강말금
 
 



 

*들어가는 말 

 

열여섯 번째 시간. 하람이라는 어린 친구가 왔다. 하람이는 내가 아는 연극배우분의 아드님이다. 열다섯 쯤 됐을까? 어린 사람의 깨끗함과 종종 사람을 놀라게 하는 넓은 마음이 느껴졌다. 요즘 만나는 어떤 아이들에게 자체 발광을 느낀다.

오늘은 그 동안 배웠던 다양한 몸풀기들, 하늘 날기, 노 젓기, 종치기, 줄 당기기 등을 다양하게 했다. 선생님이 하람이를 배려한 덕분인 것 같다. 수업의 분위기도 좋았다. 편견 없이 흡수하는 어린 재능이 우리에게 영향을 준 것 같다.


오늘은 다양한 연습을 많이 했지만,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정리해보겠다.




1.

화내는 에너지와 기뻐하는 에너지는 같다
&

움직임의 속도가 변하는 순간이 중요하다






이 수업은 다음 것들을 훈련하고 종합하는 것 같다.


- 화내는 에너지와 기뻐하는 에너지는 다른 것이 아님.
  다른 형용사로 표현되지만, 배우에게는 하나의 동사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하나의 호흡-하나의 내적 충동-같은 층위의 에너지.


- 슬로우로 액션하다가 일상속도로 변화시키기. 혹은 그 반대.

  속도가 변하는 순간 찾기.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엑서사이즈를 하였다.


A. 두 사람의 복싱. 한 사람이 펀치를 날리면 피한다. 
   슬로우 모션으로 하다가 어느 순간 일상의 속도로 하기. 다시 어느 순간 슬로우로.


- 이 엑서사이즈의 전제는 이렇다. 복싱이되 때리고 맞고 이기고 지는 드라마가 관건이 아니다. 상대방의 모션에 대한 대응이 기본이다. 특별히 액션/리액션 한다기 보다는 하면서 시간이 흐르면서 상대방에게 맞추게되는 자연스러운 대응.

위와 같은 전제 하에, 슬로우와 일상 속도가 교차되는 순간을 연습하기 위한 것이다.


B. 두 사람이 마주보고 서로에게 화내기 (소리 없이, 터치 없이, 구체적인 상황을 가리키는 몸짓 없이). 어느 순간 속도는 슬로우로, 감정은 기쁨으로 바뀐다.

; (화+일상속도)와 (기쁨+슬로우)의 반복.


- 연습 A에서 화/기쁨이라는 감정의 요소가 들어갔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어떤 이유로 어떻게 화낸다 따위의 구체성을 배제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게 에너지를 보내는 것이다.


화의 에너지는 기쁨의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다, 둘은 하나의 호흡-내적충동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화/기쁨은 다른 형용사로 표현되지만, 움직이는 배우에게는 하나의 동사에서 출발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감정+속도가 변할 때의 순간이다. (화+일상속도)가 가진 에너지를 (기쁨+슬로우)로 변했을 때 유지해야한다. 소멸시켰다가 생성시켜서는 안 된다. 에너지가 유지되면서 변환했을 때 힘이 있다. 그래서 이 순간이 중요하고, 어렵다.


B-1. 감정과 속도가 반대인 경우. (화+슬로우)와 (기쁨+일상속도)의 반복.


B-2. 두 명이 아니라 4-5명의 그룹으로 위의 엑서사이즈를 하기.


- 4-5명에게 골고루 에너지를 보내고 골고루 영향 받는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 데 집중하기 보다는 그룹이 전체적으로 띄는 기운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화내는 기운, 기뻐하는 기운, 속도와 감정이 변하는 순간의, 공간의 기운을 느껴본다.


C. 참여 인원 모두가 둥글게 서기. 한 사람이 중앙으로 들어간다. 둥글게 선 그룹은 중앙의 사람에게 기쁨을 표현하고 중앙에 들어간 사람은 둥글게 선 그룹을 향해 화를 낸다.


- 중앙에 선 사람은 둥글게 선 사람들에게 에너지 상으로 밀리면 안 된다. 둥글게 선 사람들은 가운데 선 사람의 화에 먹히거나(밀리거나) 기쁨이 아닌 조소의 웃음을 표현해서는 안 된다. 드라마를 만들어서는 안 되며, 다만 서로 에너지 상으로 지면 안 된다.


D. 한 사람씩 어떤 반복되는 일을 마임으로 표현한다. 다리미질하기, 창문 닦기, 봉투 붙이기 등등. 일상의 속도로, 화가 난 기분에 가깝다.

어느 순간 상태가 (기쁨+슬로우)로 바뀐다. 다시 (화+일상속도+일)로 돌아온다.


- 속도의 변화, 감정표현의 변화에서 마임이라는 요소가 추가되었다. 그 모든 것을 잘해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변화의 순간이 중요하다. 변화의 순간은 시간을 압축하는 일루전을 보여준다. 관객을 집중하게 하는, 공연의 밀도를 만드는 순간이다.


E. 반대의 경우. 슬로우의 속도로 일하다가 일상의 속도로 기뻐하기.




2.

막대기 움직이기






우리는 움직임의 맨 처음 ‘스탠딩’을 배웠다. 스탠딩의 상태에서, 내가 낙엽이 되어 쓰러지는 것과 위에서 눌러서 쓰러지는 것을 구분했다. 내부의 힘과 외부의 힘이다. 외부의 힘을 통해서 갈등을 배웠다.


내 몸 위에 임의의 점을 찍는 것을 배웠다. ‘몸의 분리’ 이다. 얼굴-머리-목-가슴-어깨-팔꿈치-손목-손 등 몸의 어느 선을 분리함으로써 에너지를 확장하는 것을 배웠다.


내 몸 바깥 어느 지점에 임의의 점을 찍는 것을 배웠다. 공간 개념이 생겼다.


갖고 들어오는 것과 내보내는 것을 배웠다. 거기에 몸의 분리가 추가되면서 우리 몸이 만들어내는 공간이 더 확장되고 구체적이어졌다.


공간에 그림을 그리는 것을 배웠다. 직선, 곡선, 각, 비틀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 몸을 직선, 곡선 따위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내부와 외부의 차이다. 예를 들어, 내가 난다와 뭔가를 날린다가 있다.


이제는 고정점에 신체의 일부분 - 손을 고정하고 내 몸을 직선, 곡선 따위로 움직여본다. 내 몸이 고정점에 의지한다. 고정점이 명확했을 때 내 몸이 지나간 공간에 일루전이 생긴다.


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게 중심, 신체 중심이다. 무게 중심인 골반이 빠졌을 때 상체에서 의도하는 에너지가 하체로 전달이 안 된다. 신체 중심인 가슴과 배는 의지를 나타낸다.


워킹을 배우고 있다. 워킹은 전진하는 에너지인데, 뒤꿈치를 누르는 힘이 에너지의 근원이다. 워킹이 스탠딩이 될 때, 에너지는 수평으로 확장된다. 그 확장된 에너지가 무대에 선 배우의 아우라가 된다.


접촉 개념을 계속 배우고 있다. 처음에 우리는 손바닥 아랫부분으로 (손목을 이용하는 것 같지만 손목이 아니다) 공간에 점을 찍었다. 그 다음 손바닥으로 벽을 짚거나 내 배꼽 앞의 어떤 물체를 쓰다듬었다. 몸의 분리로 에너지가 커졌다. 접촉 개념을 배우면서 막대기를 잡아보았고, 움직여보았다. 테트리스 게임을 했다.


오늘은 투명 막대기 움직이기를 침묵 속에서 오랫동안 했다. 수평의 막대기를 양 손으로 잡아 수직으로 90도 돌리는데, 축은 막대기의 중간에 있다. 수직으로 선 막대기를 두 손으로, 오른쪽으로 쭉 민다. 다시 그 자리에서 수평으로 90도 돌린다. 수평이 된 막대기를 두 손으로, 머리 앞으로 들어올린다.

막대기를 쭉 내려서 쭈그리고 앉아서 할 수도 있고, 위로 올려서 머리 위쯤에서 할 수도 있다. 막대기의 위치에 따라 몸을 이동시키면서 한다.

우리는 공간에 그림을 그린 적이 있다. 직선으로, 곡선으로, 비틀면서. 막대기를 직선, 곡선, 각, 비틀기로 이동시킨다. 막대기가 그리는 그림이 된다.

여태까지 배웠던 것의 종합이 된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종합하고 있다.


결국 공간의 놀이가 된다. 우리는 십 분 동안 집중 속에 혼자만의 놀이를 행했다.


 

* 끝 맺는 말


첫 시간에 고재경씨가 우리에게 당부한 말이 있었는데, 나는 계속 반대로 간 것 같다.

배우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태도. 첫 시간 내가 리뷰에 썼던 고재경씨의 말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 너무 이해하려고 하지 마세요. 몸이 몸을 기억하잖아요. 은연중에 얻어지는 게 있어요.

- 움직임은 동사, 상태는 형용사예요. ‘간다’는 동사, ‘슬프다’는 형용사예요. 어떤 동사 혹은 어떤 형용사인지를 판단하면 바로 움직이세요.

- 무조건 따라와 주세요. 딴생각하는 순간에 몸은 말을 안 들어요. 왜? 어떻게? 생각하지 마세요.

- 미리 와서 몸을 푸세요. 무엇보다 공간과 친숙해지기 위해서. 공간의 분위기를 장악하는 거예요. 연기는 결국 공간을 인식하는 능력이에요.

- 수업 할 땐 넓게 보세요. 자신을 너무 인식하거나 다른 사람을 테스트하지 마세요.

- 힘들어도 하려고 하세요. 생각하지 마세요. 단순해져야 되요. 맞고 틀림은 없고 다름이 있는 거예요.

- 나중에 제 말을 이해하고 나면, 다른 언어를 써도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