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를 가다] 지은인 프로젝트 <샴 아미그달라> - 극장에서 나온 후

2012. 7. 26. 05:20Review

변방연극제 <샴 아미그달라> 리뷰



극장에서 나온 후


글_김해진



1. 어둠 그리고 불

 

[사진 = 변방연극제]


  손전등을 켠 안내원을 따라 극장으로 들어간다. 맨 앞자리에 앉는다. 나중에 ‘하필 앞자리’라는 생각이 들 줄, 그때는 몰랐다. 극장은 무척 어둡다. 공연 시작 전, 무대에는 핀 조명이 떨군 작은 원 하나만 있다. 그마저도 사라진다. 오랫동안 어두울 것 같으니 앞자리에서 공연을 잘 살필 수 있겠다 생각했지만 객석 뒤편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눈앞의 어둠이 갑자기 섬뜩해졌다. 배우 박지환은 자꾸만 누군가를 불렀다. ‘삼이’라고 들렸다. 관객들 사이에 앉아 있을 것만 같은 ‘삼이’, 혹은 무대를 가득 채운 어둠 속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스윽 나올 것만 같은 ‘삼이’. 아직 인간이 덜 된 이라고 했다. 촛불 하나만을 가지고 무대와 객석을 오가며 배우가 이런 저런 말들을 흘린다. 배우는 다소 거친 태도를 유지했고 간혹 위악을 부리기도 했다. 앞줄의 관객을 향해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지르는 건 그래도 장난 같았지만, 주머니에서 캬라멜인지 작은 돌멩이인지를 꺼내 바닥에 내던질 때는 왼편의 객석이 움찔 놀라는 것이 느껴졌다. 어둠 속에서는 모든 자극이 몇 배가 된다.

 

[사진 = 변방연극제]

 

  어둠을 두려워했다는 네안데르탈인을 얘기했다. 배우는 촛불 앞에서 어둠 너머를 경계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어느 순간엔 동물의 움직임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다가 극장이 결코 안전하기만 한 장소가 아니라는 걸 일깨운다. 어둠 속에서 사람들 사이에 앉아있던 누군가가 얼마든지 옆사람을 찌르거나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배우가 칼로 누군가를 찌르는 듯한 몸짓을 보여줄 때 그것은 충분히 위협적이고 폭력적으로 느껴졌다.(실제 칼은 없다.) 실제로 얼마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아서 옆사람의 얼굴을 봤느냐고, 눈을 본 적 있느냐고 배우는 묻는다. 그렇다. 보지 않았다. 누구인지 모른다. 그가 어떤 행동을 할 지 모른다. 또 내가 무슨 행동을 할 지 모른다, 이 어둠의 시간이 길어진다면 말이다. 공포가 꼭 위협이나 폭력적인 몸짓을 통해서만 나올까? 난 그보다 긴 어둠 속에 놓여있는 것이 더 공포스러웠다. 더듬더듬 객석을 짚어가며 극장을 빠져나가는 동선을 그려보기도 했다. 머릿속에서.


  공연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왔을 때,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가 상영되던 미국 콜로라도 주의 한 극장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연극 <샴 아미그달라>의 연출된 어둠과 혹시 있을지 모를 극장 안의 위험에 대한 경고가 더 이상 공연예술이라는 (모호한) 안전장치 안에 머무르지 않게 되었다. 실험이나 연구에 가 닿은 연극의 시선도 더 이상 ‘가상의’ 극장 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예기치 않은 시간에(우연하게 혹은 너무 적확하게) 현실과 충돌함으로써 <샴 아미그달라>는 적어도 내 머릿속에서만큼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총기난사 사건과 ‘연결된다’. 물론 상상조차 하기 싫은 현실과 기꺼이 보러 간 공연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안심이 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론 두통이 되기도 한다. 혹시 내게는 극장과 공연이 현실이고 저 멀리 총기난사 사건이 가상이 아닌지? 이 공연, 시간이 갈수록 관객의 머릿속에서 끈덕지고 오리무중이다. 배우는 촛불마저 후 불어 꺼버린다.        

 


2. 빛 그리고 사냥

 

[사진 = 변방연극제]

  어둠의 시간도 까만 웃옷을 입은 배우도 가고 무대 뒷벽에서 화려한 빛 무늬가 춤을 춘다. 배우는 하얀 옷으로 갈아입고 나와 그 무늬 안에서 춤을 춘다. 드디어 무대가 환해져서 다행이라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가 이종 교배했다는 얘기가 관객의 머릿속에서 명징하게 구성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어둠과 빛은 감각적으로 각인된다. 객석에 앉아 어둠 속에서 눈알을 굴리다가 배우가 춤을 추는 동안 무대가 점점 환해지자 눈이 부셨다. 빛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렸다. 인종별 차이를 ‘어둠과 빛’이라는 직접적인 자극으로 전달함으로써 다른 종으로 넘어가는 다른 장을 이전의 장과 확실히 분리시킨다. 배우는 껄렁한 농을 섞어 쓰면서 어둠을 두려워하는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로 관객을 취급했다가, 또 문화를 만들고 사고하는 호모 사피엔스의 후예로 취급한다. 불을 켤 수 있었는데 왜 안 켰냐고, 극장에서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랬냐고, 문화인이냐고, ‘니네 참 많이 컸다’고, 배우는 이죽거린다. 객석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오면 ‘좋냐’고 하고 ‘나 너무 좋아하지 마요.’ 그런다. 그런데 정작 내 머릿속에 강하게 각인된 것은 따로 있었다. 


  덥다고 벗어던졌던 하얀 옷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호랑이 얼굴이 그려진 사각팬티를 입은 채로 배우는 총을 겨눈다.(물론 실제 총은 없다.) 빛으로 윤곽이 짜인 원 안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그가 겨눈 것은 멧돼지다. 쏜다. 천천히 죽는다. 총을 쏜 자가 총을 맞은 것처럼 몸을 웅크린다. 그러니까 쏜 자가 맞은 자가 된다. 맞은 자가 아까 쏜 자다. 멧돼지가 되어 죽는 사냥꾼. 조명은 어두워진다. 이 장면이 뇌리에 박힌 이유는, ‘어둠과 빛’이라는 이분법으로 읽힐 수 있는 이전의 흐름과 달리 어둠과 빛이 배우의 몸에 동시에 깃들기 때문이다. 공포와 이성이, 사냥감과 사냥꾼이 배우의 몸을 매개로 하나가 된다. 도구를 쓰지만 동시에 도구의 대상이 되고 인간은 인간이 죽이고자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지금껏 무대에 홀로 서는(보이지 않는 삼이는 일단 제외하고) 배우 박지환은 역할을 입었지만 동시에 개인 또한 드러나 보였는데 이 짧은 시간만큼은 재현을 통해 몰입도를 높인다. 네안데르탈인이, 호모 사피엔스가, 혹은 관객이라는 현생인류가 겨냥하고 쓰러지고 스러져가는 과정이 응축된다. 실험적 프리젠테이션 속에서 재현의 미감(美感)이 도드라지는 순간이다.

 


3. 안개 그리고 관객


  무대 뒷벽에 글자가 찍힌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머릿속에서 휘발됐다. 혹시 그때의 하얀 글자들이 배우가 앞서 불러내려 했던 삼이의 말들이 아니었나 하고 상상해보지만 그마저도 안개에 가려서 다 읽지 못했었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것은 ‘너는 어떻게 그렇게 짧게 두려워하지?’ 라는 질문이다.(그때의 문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관객의 머릿속에 남아 있다가 다시 호출된 문장이다.) 시간대의 전략적 배치나 관객 안에 ‘다른 것’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암시로 공연을 조직한 후에 무대에 ‘쏘는’ 질문. 그 질문은 내게 남았다. 무엇을 두려워하는 누구이며 왜 두려워하기를 자꾸 그치려 하는가. 사적인 질문이 극장의 질문에 맞부딪친다. 두려움이 피동에서 능동형이 된다.


  안내원들이 어색하고 어정쩡하게 무대 양 옆에 나와 서더니 안개 속으로 나가면 된다고 알려준다. 관객들은 들어왔던 문이 아니라 무대 쪽으로 나가야 한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난 좀 더 앉아서 관객들을 바라볼 걸, 싶지만 맨 앞자리에 앉았던 터라 용감한 관객들에 뒤섞여 이끌리듯 일어섰다. 훅 끼쳐오는 안개 속으로 역시 어색하고 어정쩡하게 걸어 나간다. 빛은 희미하고 안개 때문에 뿌옇기까지 하다. 사람들이 남아있는 객석을 뒤돌아본다. 순간 내가 먼저 감염된 좀비처럼 느껴진다. 혹시 무대 안쪽으로 들어가면 남은 공연이 진행되려나 싶었지만 이내 아니라는 걸 알아챈다. 공연의 마지막 장면은 이렇게 퇴장하는 관객들로 구성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퇴장하는 관객들의 혼잣말 혹은 친구와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아고…못 살아, 안 보여…….”

  “뭔가 찝찝한데?”

  “왜 쫓겨난 느낌이 들지.”    

 

[사진 = 변방연극제]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둠을 뚫고 나가는 공연의 주체(?)가 되어버린 관객에 대해 적으려다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던 퇴로 곳곳의 스태프들을 떠올린다. 마치 귀신의 집 곳곳에 선 수문장 같다. 이 공연이 아니었으면 보기 어려웠을 무대 뒤의 좁은 계단과 대기실, 분장실 등을 지난다. 푸르스름한 조명 때문에 분장실 정수기를 보고 움찔한다. 머릿속은 시끄럽다. 더욱이 나가면 강남역 아닌가. 벙찐 얼굴로 극장을 나선다. 아무래도 변방연극제의 도발적인 색깔을 짐작하는 관객들이 많이 모였겠지만, 심신이 미약한 이들은 어쩌라고. 공연 초반에 어두운 시간이 조금만 더 길었다면 내가 조금만 더 심약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관객을 삼켰다가 입을 벌리고 뱉어내는 것 같았던 극장. 삼이는 어떻게 됐을까. 있었나 없었나. 생겨나는 중이었나 사라지는 중이었나. 리플렛을 다시 보는데 출연진 이름에 박지환과 함께 노사미가 있다. 응? 노사미? 삼이? 사미였구나. 정말 누가 있었나. 사미의 샴은 관객이었을 것이다. 공연이 끝남과 동시에 사미는 사라졌을 것 같다.


  낯선 감각으로 공격하듯 질문하고 관객을 공연 안으로(무대 뒤로, 극장 깊숙한 곳으로) 이동시켜 ‘다른 관객’으로 만들려는 시선. 그런데 나는 왜 이쯤에서 공장 혹은 귀신의 집 컨베이어 벨트에서 차례로 내려서는 관객들의 모습이 연상되는 것일까. 실험에 ‘쓰였다’는 생각이 드는 것일까. 다른 관객은 있었나 없었나. 생겨나는 중이었나 사라지는 중이었나.  

 

[사진 = 변방연극제]

 

 제14회 변방연극제 공식초청작

■ 지은인 프로젝트 | 샴 아미그달라

   

 

 

  


             공연일시2012. 7. 19 (목) ~20일 (금) 오후 8시 | LIG아트홀

구분│공연(연극)      초연/신작│초연      소요시간│80 분      관람연령│7세 이상      티켓 │5,000

 

Artists
작/ 연출_지은인     조연출_강성규    출연_박지환, 노사미    프로듀서_임인자, 안광조     무대감독_문홍식   

조명감독_김도훈    의상_이주황     음악_이병훈         무대미술/영상_이주은     사진_이운식     영상기록_오세현     

인쇄물 디자인_스팍스 에디션    홍보마케팅_박현진

        

작품소개
LIG 문화재단과 서울변방연극제가 공동주최하는 지은인 작가의 [샴 아미그달라 Siamese Amygdala]는 현실에 대한 SF적 상상들을 극대화하여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나누고자 하는 프로젝트이다. '당신은 인간입니까?' 라는 아주 단순한 질문으로 시작되는 [샴 아미그달라]의 상상들은 이상하고도 섬찟하다. 그 이상함은 현실을 바라보는 방식이 현재의 세계관과는 다르기 때문이며, 섬찟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상이 충분히 논리적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러한 기존의 세계관, 현실을 넘어서는 ‘SF적 상상력’은 실재와 상상 사이 다른 가능성들을 통해 인간이 안고 있는 근본적 질문을 되짚어 볼 수 있게 한다.

인간을 향한 반(半)인간들의 비(非)인간적 질문: 당신은 인간입니까?
[샴 아미그달라]의 이종(異種)인간들: No Sapiens
NS: 과거,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 사이에서 이루어진 이종교배의 흔적은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NS² : 현재, 인간은 원시적 환경보다도 위협적인 문화적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는 생존무기, 생각하는 능력을 어떻게 진화시키고 있는가?
NS³ : 미래, 인간이 오랜 소망이었던 영생을 향해 충분한 시간동안 진화해간다면, 최종형태에서 남아있을 인간의 특성은 무엇일까?

종(種)과 시대를 초월하는 감각, 공포: 당신은 무엇이 두렵습니까?
연극의 제목[샴 아미그달라]는 샴(Siamese: 샴쌍둥이의, 떨어질 수 없는)과 아미그달라(Amygdala: 공포를 담당하는 뇌 영역, 편도체)의 합성어로 서로 다른 존재들의 떨어질 수 없는 공포를 의미한다. 공포는 인간의 발생 이전부터 생명체의 생존을 결정지어 온 감각으로 종을 초월한 생명체들의 연결지점이다.
[샴 아미그달라]는 서로 다른 존재들의 연결지점인 ‘공포’를 통해 과거와 현재와 미래, 인간과 비인간을 잇는 만남을 시도할 것으로, 종과 시대를 초월하는 시간여행의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지은인

‘예술을 위한 실험’이 아닌 ‘예술로 인한 실험’을 지향하며 장르에 귀속되지 않는 작업들을 해오고 있는 지은인은, 3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 스크리닝을 가진 바 있으며, 지난 해 프로젝트 <강화된 지혜: 동물 행동풍부화를 통한 고찰>에서는 직접 공모전을 개최하고 그에 관한 연구를 <제 1회 인지예술학회>로서 발표한 바 있다.  

* LIG 아트홀 오픈 스튜디오 ㅣ 제14회 서울변방연극제 공식초청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