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인디포럼에서 만난 세편의 영화들

2012. 7. 11. 03:33Review

[인디포럼 2012]

 

지겨운 청춘을 살아가는, 우리 존재

 

글_유햅쌀

 

그놈, 저놈, 아니 이놈, 아무튼 망할 놈의 청춘. 지겨운 청춘.

언제부터였나. 고루한 청춘이야기가 어떤 경향으로 자리한 지 오래. 그러니까 10대 후반 고등학교를 졸업해 대학에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기까지, 혹은 대학이라는 과정 없이 바로 사회인이 되기까지-이 과정은 물론 잘 다뤄지지도 않거니와 청춘이라는 규정에서 제외되기도 한다- 그 또래를 청춘으로 묶는다면, 그 이야기는 넘쳐흘러.

아. 궁핍한 우리 존재여.

우리 존재가 살아가는 무기력한 일상을 곳곳에서 마주하는 것. 지긋지긋하지 않나. 청춘이라 퉁쳐 부를 수 없는 우리 존재의 다양성이 무시된 채. “왜?”라는 질문은 거세당한 채로.

이 시점에서 인디포럼에서 상영된 세 영화 <영아>, <캠퍼스>, <나의 교실>.

같을지도 모르지만 다른 이야기. 어쩌면 우리가 겪었지만 겪지 않았을 우리 이야기. 솔직한 고백과 이름 붙일 수 없는 복잡 미묘한 감정의 환기. 비슷하다 묶인 우리들의 서로 다른 삶. 인디포럼에서 그냥 미안한, 그냥 서러운, 그냥 불쾌한, 그냥 웃픈 심정으로 이 영화들을 만났다.

 

▲최아름 감독의 영화<영아>스틸컷 (출처 : 인디포럼 홈페이지)

 

왔다가 사라진 너 - 최아름, <영아>

완무는 택시비가 없어 부의금을 훔쳤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영아와 데이트한다.

장례식장에서 완무가 영아를 만나,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고 함께 공부하던 옛 교실에 들렀다가,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도 봤다가. 비좁은 완무의 방(고시원)에서 영아 동생 영은의 방을 거쳐 어느 건물 옥상으로 그리고 다시 장례식장으로 오가는 남녀의 평범하고도 짧은 데이트가 수상하다.

그렇다. 영아는 없다. 어디론가 부유하는 남녀의 고단한 낮과 밤이 담긴 컷이 무질서하게 이어질 즈음, 우리는 갑자기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영아의 존재를 알게 된다. 영아는 죽었다. 마스크와 털모자로 얼굴과 머리카락을 가린 영아는 반도체 노동자였고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글쎄. 영아와 하루를 보내는 완무의 미안한 마음.

“영아, 미안해…”/ “뭐가?”/ “몰라. 그냥 미안해…”

돈을 훔쳤다는 죄책감인가. 책임감인가.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이 마음은 뭘까.

영화는 ‘너 다운 너’와 ‘변해버린 나’-반도체 공장에 다니다 죽은 ‘영아’와 대학생 ‘완무’-를 그린다. 그들이 보낸 개인적인 하루는 삼성반도체 공장 노동자의 죽음을 환기하며 사회적인 어떤 감정들을 불러일으킨다. 어느 순간 기억했었다가 잊어버린 사회적 죽음에 대한 감정 말이다. 그 감정을 <영아>는 방진복을 입고 일해야 하는 반도체 공장에서의 고된 노동과 완무가 사는 유폐된 고시원의 삶과 맞물려 흘려보내면서 어렴풋하게 기억해낸다.

이 영화에 폭발하는 감정은 없다. 담담하게 이어지는 고백이 있을 뿐. 평소에 친분이 없던 친구의 죽음, 그 죽음은 바로 뉴스에 나왔던 젊은 노동자의 잇따른 증발. 아무도 그를 마음속에 담으려는 사람은 없다. 위로하는 사람도 없다. 잊힌 기억일 뿐. 어쩌면 영아가 꿈꾸는 연애하고 결혼해 신혼여행도 가고 가족여행도 가는 평범한 삶은 반도체 공장에서의 노동을 선택한 이후 애초부터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왔다가 담담히 사라져버린 흔적, 완무가 기억(상상)해낸 평범한 꿈을 지닌 너, 괜스레 미안해지는 존재, 영아가 여기에 있다.

 

▲유재욱 감독의 영화<캠퍼스>스틸컷 (출처 : 인디포럼 홈페이지)

 

불안과 잉여는 피로와 멘붕이 되고 - 유재욱, <캠퍼스>

<캠퍼스>는 불안과 잉여에 시달리는 두 대학생 재원과 종연의 이야기이다. 당장 돈이 급한 이들 크게는 대학 등록금, 작게는 당장 밀린 집세까지 해결을 위해서라면 무조건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한다. 하루하루가 불안의 연속이다. “등록금 다 모았어?”부터 “집세 좀 내라”에 이르는 일상 속 만성피로에 시달리다 결국 일하던 시멘트 공장에서 해고당하고 만다. 왜. 대학생 일당은 5만 5천원, 조선족 일당은 3만 원이니까. 거기에 대학생들은 학교 앞 카페에서도 용돈 벌이 할 수 있다는 이유로. 게다가 약물 실험에서 만난 미모의 여대생은 자신을 조롱거리로 삼고, 교수는 대학 학점 평생 간다며 꾸짖기까지 하는 데다 성적 미달이란 이유로 근로 장학생은 신청조차 할 수 없다. 이제 휴학조차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AV로 만족해야하는 자위는 시끄러워 허락되지 않는다. 고단한 일 때문에 수업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더없이 피로한 이들에게 수업시간은 잠을 채워야 하는 시간이다.

‘불안’과 ‘잉여’는 어느 순간 우리를 덮쳤다. 불안한 잉여들이 넘쳐났고 잉여가 말하는 불안에 관한 이야기는 다변화되어 퍼져 나갔다. 유희가 되기도 하고 농이 되기도 하다가 한없이 찌질하고 불쌍한 박제된 청춘들을 낳기도 했다. 그러던 순간, 걷잡을 수 없이 퍼진 자본과 경쟁의 독에서 불안과 잉여는 ‘멘붕(멘탈붕괴)’을 낳았다. 질서도 해결책도 없는 상태. <캠퍼스> 속 살아가기 급급한 청년들이 부딪친 피로한 멘붕의 시공간, 대학에서의 삶.

욕망하는 것을 욕망할 수 없는 잉여인생. 이들이 꿈꾸는 캠퍼스의 낭만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 그럼에도 정상적인 졸업과 취업을 위해서라면 꼭 캠퍼스에 남아야만 한다. 떠날 수 없는 공간에서 이들은 결국 철근 같은 물건을 훔쳐 팔고, 자해공갈을 하는 길을 택한다.

영화 속에서 순간순간 지나가는 반값등록금 시위 장면. 먹고 살기 급한 대학생 재원과 종연은 관심조차 둘 수 없는 그저 지나가는 풍경일 뿐. 게다가 학교 컴퓨터를 훔치다 만난 청소노동자 아주머니의 ‘그거 없어지면 우리가 물어내야 한다’는 말에 드릴을 들고 찾아가 “아줌마, 자식 없어?”라고 위협적으로 협박해야 살 수 있는 더럽고 치사한 경쟁사회. 누구와 협력할 수도, 당면한 문제의 변화 요구 같은 것에는 관심 둘 수도 없는 우리 존재의 삶이다. 왜? 살아내야만 하니까.

 

▲한자영 감독의 영화<나의 교실> 스틸컷 (출처 : 인디포럼 홈페이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 한자영, <나의 교실>

2010년 11월부터 2011년 5월까지, 6개월 동안 전문계고에 다니는 진수, 시나, 현진의 왁자지껄 사회생활 준비가 펼쳐진다. 감독이 직접 자신이 졸업한 학교를 찾아가 고등학생과 사회인의 경계에 선 여고생들을 촬영했다. 이들은 미취업 상태로 ‘잔류’해 있거나 취업한 직장이 생각과 들은 것과 달라 다시 학교로 돌아와 ‘소환’되어 있거나 ‘취업’ 예정인 상태로 남아 있다. 그리고 학생들은 각자 설계한 인생의 출발점대로, 혹은 아닌 채로 교실에 남거나 떠난다.

네 번째 입사 면접을 준비하며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눈매가 무서우니 쌍꺼풀을 만들어 사진을 다시 찍으라’ 명받은 진수는 어머니 퇴직금 3백만 원 중 2백만 원을 털어 코 성형을, 선배 눈치 보랴 학교 생활하랴 대학 생활 적응에 바쁜 현진은 결국 야간대와 회사생활 병행을, 취업한 아이들은 상사를 욕하며 눈물을 짓는 이 왁자지껄한 생계의 현장이 낯설지가 않다.

험난한 세상 이제 막 첫 발걸음을 내디뎠는데 데 나 말고 학벌, 외모, 예절 등등 챙겨야 할 것도 너무나 많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끊임없는 요구, 아 고단하다.

거대한 굴레를 살아내는 이들을 볼 때 생기는 간절한 소망이 있다. 발랄한 여고생들 제발 주눅이 들지 않기를. 여고생들의 수다를 듣다 보면 또 하나, 이 사회가 짐짓 겁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속단하는 어른이 되기는 싫은데 나도 그렇게 되면 어쩌나. 혹은 나도 어른들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평가하는 무리에 끼어 있구나. 그 불안 사이에서 발견하는 것, 학벌과 외모와 또 다른 그 무언가로부터 구획 지어져 우리 사이에 생기는 금이다. 아마도 우리는 살아갈수록 수없이 많은 기준에 의해 분류 당하면서 차차 멀어질 것이다.

영화에선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지금이 보인다. ‘아버지가 노조를 싫어해 노조가 센 직장이 좋은 직장인지 몰랐다’는, ‘오빠 대학 학자금을 자신이 번 돈으로 다 댈 수 있다’는, 첫 사회생활에서 만난 못된 상사 욕을 다부지게 하는, 회사 일이 힘들어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하는 이 발랄한 여고생들의 고백은 웃프기만하다.

 

 필자_유햅쌀

 소개_시트콤같은인생살이를위해, 재미진무언가를찾습니다. 인간은유희적동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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