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9. 27. 19:51ㆍFeature
천하제일탈공작소 # 1
<탈춤으로 철학하기 – 우리는 짜라투스트라를 이렇게 만났다>
글_김서진
천하제일탈공작소는 현재와 공감하는 창작연희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젊은’ 탈춤 예인집단입니다.
탈춤 이수자들이라고 하면 주변에서 종종 할아버지들인 줄로 오해를 하셔서 젊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이번 겨울에 천하제일탈공작소는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서설로 새로운 공연을 올릴 예정입니다.
니체가 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짜라투스트라의 서설과 80개 주제의 설파로 구성되어 있다. 실제적으로는 첫 번째 설파이기도 한 서설은 서사의 형태를 띄고 있는데, 짜라투스트라가 산에서 내려온 첫 날 사람들을 만나면서 겪은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 함께하고 있는 山海철학의 신용호 선생님이 그 서설만을 갖고 <짜라투스트라의 하산 첫날>이라는 원고를 작성하셨고, 책이 출판되기 전에 미리 원고를 볼 수 있었던 내가 천하제일탈공작소(이하 천탈)에게 함께 공연을 만들자고 제안을 하였다. 그리하여 천탈이 이번 겨울에 발표할 신작의 제목은 <짜라투스트라의 하산 첫날>이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부의 초판 표지]
처음 이 계획을 주변에 알렸을 때 니체로 탈춤을 춘다는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호기심을 보이기도 혹은 당황함을 보이기도 했지만, 사실 니체와 탈춤의 조합은 의도가 아니었다. 니체를 공부하고 있던 연출은 어찌됐든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서설로 공연을 만들고 싶어 했고, 같이 공연을 만들기로 한 천탈은 어찌됐든 탈춤을 추는 집단이다 보니, 그 두 가지 조건의 단순한 만남일 뿐이었다. 그런데 우연하게 엮인 니체와 탈춤이라는 이 괴상한 조화는 그 괴상함만큼 나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니체는 뒤집기를 좋아하는 철학자였는데 (그는 늘 가치의 전도를 말하더라) 일반적으로 어렵고 진지하게만 생각되는 니체의 책을 일반적으로 쉽고 시시하게만 생각되는 탈춤과 만나게 해서 둘 사이의 뒤집기 한판이 가능할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짜라투스트라 역을 맡은 천하제일탈공작소 이주원의 이매놀음]
물론 동시에 두려움도 있었다. 우리들의 정신적인 역량 부족으로 실패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우리는 철학서를 옆구리에 끼고 다니며, 철학적 사고가 일상화 되어 있고, 철학적 대화를 심심치 않게 나누는 그런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까마득히 무식한 우리들이 현대철학의 구심점인 니체의 책을 가지고 공연을 하겠다고 덤벼들 수 있느냐는 말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조금 앞서 니체를 붙잡고 있던 연출인 내가 믿는 구석이 있었는데,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이 구절 때문이었다.
그리고 삶과 교감을 나누고 있는 나에게, 나비와 비눗방울 그리고 사람들 가운데 있는 그와 같은 모든 것이 행복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오.
이 가벼운, 이 바보 같은, 이 가냘픈, 이 동적이고 동적인, 이 작은 영혼들이 사뿐 사뿐 날아다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 짜라투스트라는 그만 눈물과 노래가 흘러나온 다오!
나는 춤이 무엇인지 알 법한 신만을 신봉할 것이오!
나의 철학 선생님 말씀도 니체가 기존의 철학자들에게는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중력의 영에게 발목을 잡히신 채 무거워지고 심각해져버린 기존의 공부하시는 분들과는 달리, 우리는 가볍고 바보 같고 춤도 추니까(안타깝게도 가냘픔의 미덕은 갖추지 못했지만) 어쩌면 니체를 더 잘 느낄 수 있지 않을까라는 무모한 확신이 있었던 것이다. 니체가 망치로 철학한다고? 좋아, 그럼 우리는 탈춤으로 철학을!
[태양의 춤을 만들고 있는 천하제일탈공작소]
그리고 또 하나 지금까지 몇 편의 작업을 거치면서 경험으로 알게 된 연극의 놀랍고도 훌륭한 한 가지 면에 대한 신뢰도 있었다. 비록 막연한 느낌 속에 깜깜한 눈으로 시작했을지라도 끝까지 의문을 놓지 않고 있으면 뒤늦게라도 결국은 알게 된다는 점. 몸을 쓰고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그런 것인가 보다. 구체적인 말로 설명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배우들은 늘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이게 맞는 것 같아요’, ‘이게 더 나아요’ 하면서 점점 분명한 표현들을 찾아내곤 했다.
비록 지금은 우리가 니체의 글이 깜깜하게만 느껴져도 더듬더듬 짜라투스트라의 시를 따라 읊어보고 절름절름 짜라투스트라의 길을 따라 가다 보면 조금씩 환해질 것이다. 물론 끊임없이 출몰하는 물음표들을 느낌표로 바꾸어 내기 위해선 머리가 심히 아프겠지만 말이다.
우리는 짜라투스트라를 이렇게 만났다.■
필자_김서진 소개_천하제일탈공작소의 명함 받은 연출. 연희집단 The광대의 명함 없는 연출. 목요일오후한시의 쉬고 있는 단원. 山海철학의 공부하는 학생 |
천하제일탈공작소 '천하제일탈공작소'는 중요무형문화재 봉산탈춤, 고성오광대, 하회별신굿탈놀이의 젊은 이수자 3인이 모여 2006년도에 결성한 창작연희 단체이다. 각자 자신이 이수한 전통탈춤과 연희에 대한 탄탄한 실력을 기반으로 '탈춤'과 '탈'이 가진 특유의 해학과 풍자, 그리고 춤사위의 멋을 살려 오늘의 관객과도 웃고 어울릴 수 있는 창작연희극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천하제일탈 페이스북 >>>> http://blog.naver.com/talnol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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