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이언(eAeon) 첫번째 단독 공연 <GUILT-FREE>

2012. 10. 10. 11:26Review

 

MOT의 "이상한 계절" 이후 5년..

솔로 앨범과 10월에 발표되는 새 앨범(EP) 수록곡들을 보고 듣고 느끼는 시간

이이언(eAeon) 첫번째 단독 공연 <GUILT-FREE>

 

글_나그네

 

올해 초 솔로로서는 처음 선보이는 1집 앨범을 내놓은 후 이런저런 공연 활동을 해 오던 이이언(eAeon).

앨범이 나온 후 거의 반 년이 넘게 지난 지금, 드디어 단독콘서트를 세상에 선보였다. 좋아하는 뮤지션은 손에 꼽을 수 없을만큼 많지만, 그럼에도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이 누구냐'고 물으면 주저없이 '이이언'과 '김윤아'를 꼽곤 한다.

마치 한 편의 시와 같이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가사는 듣는 이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노래의 선율은 그 가사가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도록 만들어진 비단길 같다. 하지만 그를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의 목소리이다. 아무런 멜로디나 악기 연주가 없어도 단지 그의 목소리, 아니 숨소리 자체가 하나의 음악으로 들려온다.

그의 팬이 되었을 때는 이미 MOT 활동이 마무리 된 상황이었고, 솔로 앨범이 나오자마자 런던으로 가게 되어 솔로로 참여한 공연들도 볼 수가 없었다. 그렇다보니 이번 단독콘서트는 나에게도 아주 의미가 깊은 공연이었다.

 

(출처 : 엘리펀트 뮤직 홈페이지)

 

아티스트들도 존경하고 사랑하는 진정한 아티스트.

그의 음악적 발자취에 대해 간단하게만 소개해보자면, 우선 2004년 앨범 ‘비선형(non-linear)'과 함께 못(MOT)으로 데뷔한 그는 첫 번째 앨범으로 바로 한국대중음악상 신인상을 수상하였고 수많은 음악 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2007년 두 번째 앨범 ‘이상한 계절’ 역시 한국대중음악상에서 본상을 수상하면서 자신의 음악성을 세상에 더 널리 인정받았지만, 그 앨범을 끝으로 MOT의 활동을 잠정적으로 중지하고 건강과 공부를 위한 휴식기를 가졌다. 휴식을 취하는 동안에도 식지않을 열정으로 곧 솔로 앨범의 기틀을 다진 그는, 이후 긴 시간동안 고독하고 치열하게 때로는 음악과 사랑하기도, 싸우기도 하며 지금의 솔로 앨범 ‘Guilt-Free'를 완성시켰다.

공연은 이화여자대학교 내에 있는 삼성홀에서 진행이 되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장으로 찾아가는 길에 발견한 ‘빅 이슈’ 가판대에서 잡지 한 권을 샀다. 판매하시던 할아버지는 좋은 주말이 되라며 환하게 웃어주셨고, 나는 오늘 공연은 정말 잊지 못 할 추억이 되겠구나 하는 예감을 얻었다.

 

(※ 빅 이슈(Big issue) : 홈리스들에게만 판매권을 줌으로써 그들의 자립을 돕는 잡지)

 

공연장에 도착해 티켓을 받고, 조금 둘러보다 보니 입장이 시작되었다. 무대 위에 내려진 스크린에는 eAeon과 Guilt-free 라는 단어가 깜빡이고 있었고, 공연장 안에서는 이이언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공연장에 들어서자마자 '정말 준비를 많이 한 공연' 이라는 것이 벌써부터 느껴졌고, 바깥 세상과 철저히 단절된 이 공간에, 그의 머릿 속, 마음 속, 그의 세상 속에 천천히 빠져들기 시작했다. 

공연이 시작되기 바로 전, 이이언 솔로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drug'가 공연장에 울려퍼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공연은 시작되었다.

 

 

곡 순서_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 너는 자고 - Bulletproof - 5 in 4 - Heaven song - My little piggy - 날개 - 창문 자동차 사과 모자 - 시니피에 - 카페인 - 슬픈 마네킹 - 세상이 끝나려고 해 - SCLC - Cold Blood - 서울은 흐림 - 자랑 - 나의 절망을 바라는 당신에게 - 나의 기념일

앵콜) Bulletproof(new ver.) - Close

 

그의 공연에는 너무 많은 것이 담겨져 있었으므로, 그 속에서 발견한 개인적인 몇 가지 소재를 통해 공연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 목소리

‘이이언’의 공연인 만큼, 그의 목소리가 주는 감동에 대한 이야기를 결코 빼놓을 수가 없겠다. ‘너는 자고’라는 곡을 통해 그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공연장에 울려 퍼졌을 때의 그 전율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가 내뱉는 단어 하나 하나가, 숨소리 하나 하나가 나에게로 고스란히 전해져 왔고, 그것들은 내 몸 속으로 마음 속으로 파고들어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파도를 일으켰다. 그의 CD 케이스가 허름해졌을 만큼 닳고 닳도록 들어왔던 곡들인데도 스피커가 아닌 현장에서 듣는 그의 노래는 나에게 그 그 메시지를 더욱 크고 또렷하게 전해주었다. 이번 공연에서는 이이언의 솔로곡들 뿐 아니라, MOT의 곡들도 들을 수가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날개’라는 곡이, 그것도 어쿠스틱 편곡으로 공연장에 울려퍼지던 그 순간은 한 동안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 영상

공연 포스터를 다시 한 번 살펴보면 Audio-Visual이라고 적혀있는데, 그런 만큼 노래와 연주 뿐 아니라 영상에도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인 공연이었다. 무대 뒤에는 커다란 스크린이 있었고, 그 위에서 다양한 시각적 이미지가 춤을 추었다. 미리 만들어 온 영상뿐만 아니라 그의 목소리에 반응하도록 만들어진 인터랙티브 영상들도 선보였는데, 각기 다른 영상이 그가 내는 목소리의 높낮이와 강약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바뀌는 모습이 신기하고 아름다웠다.

또한 한곡 한곡마다 그 곡이 주는 느낌을 더욱 또렷이 느낄 수 있도록 영상에 더해 조명까지 많은 신경을 썼음을 알 수 있었다. 어떤 곡에서는 청록색 조명에 파도와 같은 영상이 더해져 내가 물고기가 되어 그 노래 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듯 했고, 어떤 곡에서는 알록달록한 꽃잎과 같은 영상과 조명으로 내가 꽃밭위에서 그의 달콤한 고백을 듣고 있는 듯 했다.

모든 작업들이 굉장했지만 그 중에서도 계속해서 기억에 남는 것이 2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창문 자동차 사과 모자’ 공연 때 쓰인 영상이다. 일련의 이미지들이 연속적으로 보여지는데 곡과 너무 잘 어우러져 모든 것이 한 편의 아름다운 단편 영화와도 같이 느껴졌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카페인’ 때의 영상으로, 내가 정말로 카페인에 잔뜩 취해 무중력 상태가 되어 공연장 안을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영상 속으로 너무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에 3D 영화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이언 님은 실제로 스크린이 살짝 휘어져 있고 국내 공연에서는 처음 쓰이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 연주

이이언 그의 노래와 노력을 한층 더 부각시켜 준 것은 바로 그와 함께 해 준 밴드 멤버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의 노래를 들어보면 (특히 5i n 4, SCLC와 같은 곡들..), 박자에 대한 강박증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박자가 아주 잘게 쪼개져 있어 정교함을 뽐내고 있고, 멜로디 하나 하나에도 엄청난 세심함이 묻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정교함과 세심함은 연주력은 물론 고도의 집중력과 엄청난 연습을 필요로 할 것인데, 그를 너무나도 잘 살려준 연주에 공연 내내 감탄을 연발하였다. 특히 5 in 4를 공연할 때는 경이로워 보이기까지 했을 정도로 대단했다. 저런 박자를 대체 얼마나 연습을 했으면 저렇게 소화를 할 수가 있는 것인지.. 드럼, 베이스, 기타, 건반 멤버들은 모두 악기를 서너 대씩 가져와 공연에 사용했을 만큼 이이언 못지 않게 열정을 쏟아 부었고, 그랬기 때문에 더욱 성공적인 공연이 될 수 있었으리라.

 

# 이야기

공연 중간 중간에 있었던 멘트뿐만 아니라 연주 자체에서도, 수많은 이야기가 공기 속에 떠다니는 공연이었다. 떠다니는 공기 속에 이런 이야기가 나의 숨 안으로 섞여 들어오기도 하고, 저런 이야기가 섞여 들어오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이야기가 나에게 오느냐에 따라 정말 다양한 감정과 생각이 내 안을 채워주었다. 공연 내내 이이언은 그 자신의 이야기를 관객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연설자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서로가 공유할 수 있도록 이야기의 장을 만들어주는 마술사로 존재했다.

 

# 진심

마지막 소재로 꼽은 것은 바로 ‘진심’이다. 그는 공연에 쏟아 부은 노력에 스스로도 묘한 성취감을 느꼈는지, 이번 공연에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야기로 전해 듣지 않아도 이 공연을 만들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을 지를 어느 정도는 느낄 수가 있었다.

중간에 며칠 전 꾼 꿈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작업을 하다 너무 지쳐서 침대에 엎드려 잠시 잠이 들었는데, 어디서 콘크리트 바닥에 바퀴가 돌돌돌-하고 끌리는 소리가 나 고개를 들어보니 천사가 카트를 들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천사에게 아직은 안 된다고 이야기를 했고, 이 이야기를 하니 음악하는 동생 ‘박소유’씨는 천사가 그를 장바구니에 넣어 구매하려고 하다가 다시 위시리스트에 돌려 놓은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객석은 웃음바다가 되었지만, 그 속에서도 그가 얼마나 이 공연에 열정을 가지고 임했는지가 느껴져 마음이 짠해왔다. 그의 음악 못지 않게 공연 또한 곳곳에 그의 흔적이 묻어 있는, 한 켤레의 정교하고 섬세한 유리구두 같았다.

 

 

곡 하나 하나에 집중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공연이 끝났다. 공연장에는  'drug'가 다시 한 번 울려퍼졌고, 공연을 만든 사람들의 이름이 마치 영화의 엔딩 크레딧처럼 스크린 위로 흘러갔다.  

소극장에서 어쿠스틱 기타 하나 매고 공연을 할 수 있는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들이 때로는 부럽다고. 공연 하나를 하려면 너무 일이 커진다던 그는, 그래도 다음에는 조금 아담한 공연장에서 좀 더 사적인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공연을 꾸며보겠다고 했다. 그의 특성상 그 공연이 또 언제쯤 되어야 실현이 될런지는 모르겠으나, 벌써부터 기대되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I wish you have a bullet-proof soul-

다만 다음 공연 땐 좀 더 성숙하고 단단해진 모습으로 그의 노래를 마주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우린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더 높은 곳으로만 날았지.

처음 보는 세상은 너무 아름답고 슬펐지.

우린 차가운 바람에 아픈 날개를 서로 숨기고,

약속도 다짐도 없이 시간이 멈추기만 바랬어.

우린 부서질 것을 알면서도 더 높은 곳으로만 날았지.

함께 보낸 날들은 너무 행복해서 슬펐지.

우린 서툰 날개짓에 지친 어깨를 서로 기대고,

깨지 않는 꿈 속에서 영원히 꿈 꾸기만 바랬어.

_날개

 

 필자_나그네

소개_안녕하세요. 음악을 사랑하는 24살 서예슬이라고 합니다.

20대라는 나이가 담고 있는 '청춘'과 '젊음'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에겐 버겁기만 합니다. 하지만 저는 20대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늘 열정이라는 가치를 놓치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삶에서 열정을 잃는 순간, 그 삶은 제 것이 아닌 게 되어버리죠. 저에게 그런 열정을 가져다 주는 것은 바로 ‘음악’이었고, 현재 홍대를 비롯한 여러 공연장들을 찾아다니거나, 각종 페스티벌에 일꾼으로 참여를 하는 등 열심히 이런저런 음악적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취미로 밴드에서 노래도 부르고요.

저는 우리 모두가 나그네라고 생각해요. 세상에 길고도 짧은 여정을 떠나 온 나그네. 적어도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라면, 내가 진정 열정을 느끼는 것이 무엇일까? 한 번 쯤은 고민해보시고 더 능동적인 삶을 설계해보았음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이번 여행 좀 더 활기차게 즐겨보자구요. 우린 아직도 여행 초반부에 있고, 갈 수 있는 길이 더 많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