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0. 4. 21:09ㆍReview
메타모포시스 <광염소나타>
구원 없는 세상, 지루해지지 않기 위하여
글_정진삼
1. 무엇을/누구를 볼 것인가
천재 음악가의 이야기를 소설화한 김동인의 <광염소나타>가 연극으로 변신했다. 1930년대의 소설-시공간이 2010년대의 연극-시공간으로 넘어오면서, 내용과 형식뿐만 아니라 의미까지도 ‘트랜스폼(transform)’ 했다. 음악/소설의 무용/연극화라는 도전적인 ‘컨셉’ 을 제시한 이들은 무늬만 입체가 아닌, 속속들이 입체적인 장면으로 ‘차원 확장’ 을 도모한 것이다.
소극장 예의 반원형 무대는 설치미술을 방불케 하는 세트가 채우고 있다. 육중함이 느껴지는 철제 사각형 공간은 '무대 위 무대' 로 기능한다. 각각의 면은 마치 하나의 건반처럼 바닥에 눕혀져 상하로 움직인다. (건반 무대가 주저앉을 때 '쿵' 하는 굉음은 관객을 놀라게 한다) 좌우에는 앙상한 사각의 프레임과 TV가 자리하고 있다. 객석의 첫째 줄까지 확장된 공간에서 배우들은 가림막 없이 다음 장면을 위해 대기하며 무대 위 다른 배우들을 카메라로 중계한다. 엄밀히 말하면 이들의 공간 확장은 소극장 예 전체에 걸쳐있는 셈이다. 배우들은 무대 위 ‘공간’ 을 넘나드는 것 뿐 만 아니라, 극중극, 가면놀이, 상황극을 통해 ‘시간’ 을 자유롭게 건너다닌다.
이야기 구조는 비교적 간단하다. 교수와 목사의 술자리(?) 대화에서 광적인 기질을 가진 천재 음악가 백성수가 태어나고 성장한다. 사회에서 쉽게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천재 예술가의 사연이 대를 이어 전개된다. 천재 예술가의 몰락기가 본 연극의 플롯인 셈이다. 다만 소설의 주안점이 그러한 천재를 받아들일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토론이었다면, 연극의 주안점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고통스러워하는 광인들의 토로가 된다.
인물들은 크게 화자와 그 대화속에서 등장하는 (남성)예술가와 (여성)뮤즈들, 그리고 코러스들로 구성되어 있다. 남성 캐릭터들은 자기 안에 이중적인 성질을 내재하고 있다. 이를테면 작품의 중심에 놓이는 백성수는 폭주하는 신체적 움직임과는 달리 부드러운 외양을 가지고 있다. (겉보기엔 사이코패스보다는 그저 순수청년에 가깝다.)
연극에서 추가된 코러스 역할의 피령들 - 이들은 피아노의 영이라고 한다 - 은 메트로섹슈얼한 남성다움을 뽐낸다. 근육질에 달라붙는 하얀 의상을 걸치고 나와 마치 아이돌의 칼군무를 연상시키는 세련된 동작들을 선보인다. 이들은 사방 무대의 한 면씩을 점하여 대사와 행동의 반복과 점층을 시킨다. 신체극, 소리극의 면모를 강화하는 것은 이들의 몫이다. 게다가 백성수의 아버지 백형석, 술집의 서빙, 난쟁이-장님 부모, 군대의 상관 등 기능적인 인물도 하나같이 강렬하다.
원작 소설에서 사회교화자와 음악비평가로서 역할을 했던 인물들은 이 연극에서 절름발이 목사와 히스테리컬한 음대 교수로 그 구체성을 더한다. 특이한 점은 사회교화자 또한 건달에서 목사로 ‘교화’ 된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냉소와 허무에 빠져있다.
당대의 최고 음악비평가로 나오는 안교수는 대체로 어둡고 진지한 인물들 가운데 유일하게 '웃음을 주는' 캐릭터다. 원작과는 다르게 그다지 신뢰가 느껴지지 않는다. 따라서 음울한 캐릭터인 백성수와 목사는 희극적 캐릭터인 안교수와 만나 묘한 대조의 앙상블을 이루어 낸다.
개성적인 남성 캐릭터들 못지않게 여성 캐릭터들도 인상적이다. 희생적 모성과 도발적 소녀성이 단조로운 이미지를 부각시키지만, 그 협소한 운신 범위 내에서도 그녀들은 묘한 존재감을 뽐낸다. 구원의 존재로서 예술가를 거둬들이는 ‘천한나’ 와 ‘하나’ 의 인물설정은 다소 맥 빠지는 감이 없지는 않지만, 이에 굴하지 않듯 천한나는 극중에서 전지적인 화자로 군림하고, 소녀 하나는 소년 백성수에 어울리는 한 쌍이 되어, 기꺼이 희생 제물을 도맡았다. 소설에선 아예 없거나(하나) 흐릿하게 제시된(천한나) 인물이지만, 이 연극에서는 구원자를 잉태하고 돌보며 사랑하는 인물로 나와 강한 상징성을 지닌다.
2. 어떻게 볼것인가
극중에서 말하듯, 말이 그림이 되고, 그림이 말이 되는 ‘연극’ 만들기를 위해 이들은 다양한 무대기호를 사용한다. 이를테면, 비닐을 뚫고 나오는 행동이 탄생을 의미한다든지, 중앙 무대 가 거대한 피아노 건반을 상징한다든지, 사랑하는 행위가 ‘키스’ 로 집약된다든지, 등등의 장면들이 그러하다.
미적으로 가공된 장면 외에 노골적으로 코드화된 기호들이 눈에 띈다. 예를 들어, 백성수가 고통을 느끼며 그것이 창작으로 이어질 때, 무대 왼편에 설치된 프레임은 오선지의 악보가 된다. 피령들은 마치 음표처럼 그 사이로 고개를 내밀어 그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피’ 를 상징하는 케찹의 등장도 일차원적이다. (억지스런 호통에 의해 서빙하는 사내가 케찹을 가져올 때부터, 관객들은 교수의 말로를 얼핏 예견하게 된다) 즉각적인 연상작용이 웃음을 유발하는 동시에 그로테스크함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노골적인 행위가 단순함이 아니라, 고도의 반어(反語)로 풀이되는 장면도 있다. 극중에서 백성수가 명곡을 토해낼 때, 그 피아노 치는 액션은 마치 “맨땅에 헤딩하는” 모습을 닮았다. ‘창작’ 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을 단순하고도 압축적인 그림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천한나’ 가 현실과 극을 넘나드는 장면도 눈여겨 볼 만하다. 목사의 딸을 연기해야 하는 천한나의 준비되지 못한 ‘경망스런’ 태도는 백형석 역할을 하는 배우에게 있어서 비판의 대상이 된다. 예를 들어 “작품 분석 안 했냐” , “전공자들이 연기를 해야지, 어디서 춤추는 애를 데리고 와서 이래서 문제야” 하는 대사는 관객들에게 실소를 자아낸다. 순수 예술이 갖고 있는 배타성과 경직성을 우회적으로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이들은 매끈한 장면 전환과 급박한 전개 속에서도, 탈맥락적인 '틈' 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필시 지루한 연극을, 보다 흥미롭게 만들고자 하는 시도로 여겨진다.
전통적인 연극에서의 ‘놀이’ 개념이 프로그레시브하게 나타났다기 보다는 메타모포시스(변태)했다는 편이 맞으리라. 이들은 극의 안팎의 인물들이 서로를 알아봄으로써, 극중극의 규칙을 의도적으로 위반하고, 오브제를 상징화하는 과정에서 일부러 노골적인 기호를 남겨두고, 현실과 우화의 경계를 흐리게 함으로써 전통적인 놀이(play)를 변주하고 있다. 그러한 장면들을 발견하는 것이 이 작품의 또다른 재미라고 할수 있으리라.
3. 왜 볼 것인가
흥미로우나 의문점도 있다. 원작에서 음악비평가의 입을 통해 정당화된 예술의 심미주의에 관한 논쟁은 이 연극에선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지, 극중에서 문제적 예술의 개념과 의미는 관객들에게 어떤 파급력을 발휘하는지 등등. 실상 극의 결말은 백성수라는 괴물의 존재를 '덮어버리는' 또 다른 괴물, 목사의 종결자적 행동으로 마무리 된다. 그는 스스로 '심판자' 로 기능하며 자신의 벗인 교수를 살해한다. 그 와중에 의미의 확장이나 토론의 여지는 바로 감지되지 않는다.
살펴보면 광인들의 살인 동기는 복수심에서 기인한 응징의 성격을 갖는다. 백성수에서 목사로 이어지는 ‘살해’ 는 소중한 혈육을 잃은 고통에서 비롯되는데, 그 앞에서 예술적인 혹은 종교적인 치열한 고민들은 이내 자취를 감추게 되는 것이다.
목사가 백성수에 의해 희생된 자신의 딸을 “김하나이” 라고 부르는 장면과 성수가 자신의 어머니를 부르며 고통에 휩싸이는 장면은 묘하게 오버랩된다. 그들 광인에게 있어서 종교 혹은 예술이라는 신(아도나이)보다도 소중한 존재는 바로 자신의 '혈육' 이었던 것인가. 그들의 아픔은 게다가 관객들로 하여금 어떤 공감 혹은 동정의 감정을 요구한다. 이야기는 여기서 '응징' 의 형태를 띄면서 '구원은 없다' 는 식의 허무와 냉소로 매듭지어지고만다.
세상을 정화하고 구원하는 예술과 종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거꾸로 세상을 위협한다는 점은 분명 시대에 맞는 적확한 지적일 것이다. 그러나 광인 캐릭터의 일방적인 고백과 절규는 관객들에게 이상한 인물의 정당성을 전하고, 예술과 종교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을 흐려 놓는다. 이들이 박력 있게 감행해온 ‘재미있는 연극’ 은 현실의 차원이 아니라, 탈현실의 영역에 머물러 종국엔 특이한 ‘기이한 이야기’ 정도로 느껴지는 것이다.
살펴보면 이 작품은 이 작품은 ‘현실’ 을 떠올리기엔 너무 많은 우화적 장치들이 사용되었고, ‘탈현실’ 로만 받아들이기엔 당대성을 호명하는 단서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관객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현실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고, 혹은 연극 세계에서나 있을법한 가상으로 여길수도 있겠다. 다만, 학창시절 국어학습 과정에서 무방비로 만났던 원작과는 다르게, 극장을 찾아온 연극 관객의 입장이라면, 보다 능동적으로 자신의 예술론과 연극관을 점검하는 기회로 삼아보는 것도 좋겠다. 그래야 이 소설이 연극으로 차원확장을 시도한 이유들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4. 질문을 위한 질문, 답 없는 답
예술가의 입장에서 보면 ‘광염 소나타’ 는 분노의 표현일테다. 사랑받지 못한 예술, 인정받지 못한 예술, 억압된 예술이 갖는 흉포한 힘. 아가페적인 '사랑' 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악한’ 예술의 무서움. 그리고 그것에 대한 경고. (그런 상황에선 종교도 광기의 포섭 대상이다) 예술이 진과 선과 미의 일치된 방향성을 갖던 시절과 달리, 지금, 여기,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예술' 은 모두 자신의 한계성을 드러내며, 광기의 폭주를 확인시켜주는 동시에 이를 염려하고 있다.
이 공연에서 던지고 있는 예술의 한계성에 대한 질문은 결국 예술에 대한 사회의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역(逆)으로 그러한 메시지를 지닌 작품이 생뚱맞은 것으로 느껴질 때는 우리 사회가 그만큼 예술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혹은 우리 사회의 예술이 딱히 문제적이지 않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 된다. <광염소나타>에서 제기하고 있는 예술론에 대한 우리의 '새삼스러운' 반응은 그간 예술을 '도구' 정도로 파악하던 이 사회의 저차원적 예술관을 확인시켜준다. 예술이 유용함으로써만, 세상을 교화시키고자 하는 목적물로써만, 공공과 정치적인 관점으로써만 작동해왔던 실체. 그간 예술은 예술 자체로 존재감을 발했기보다는 시혜적이거나, 수혜적인 '것' 으로만 여겨져 오지는 않았는지. 메타모포시스는 <광염소나타>에서 적당껏 주고받는 미학적 거래 관계를 거부하고, 최소한 관객들에게 예술적인 선도 자세를 취하고자 했다. 이런 것이 분명 '실험' 이고 '도전' 이라 할수 있으리라.
아마도 이 시대 젊은 연극은 '거친 질문' 의 형태로 의미를 들이미는 기성연극에 대한 반발로 나름의 새로운 연극만들기를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이들은 점점 감각적으로 연극을 꾸미고, 신체극을 연마하고, 무한 유머와 재치를 수용하고 있다. 재미-아름다움-사유, 라는 새롭게 정립된 '우선순위' 하에서, 재미에 대한 소통량이 커질수록 탈정치, 무사유에 대한 오해도 동시에 많아지리라 생각한다. 결국 여기서는 재미와 의미를 대립관계로 보지않는, 관객의 지혜로운 그리고 적극적인 해석이 필요하겠다.
고백하자면 이러한 새로운 연극의 변화양상에 대해 필자 역시도 어떤 평가를 내려야 할지 ‘아직은’ 모르겠다. 의미적으로나 감각적으로나 시대를 선도하지 못하는 매체가 동시대 '연극' 인지라, 다른 방향에서 새롭게 무장하고 뛰쳐나가려는 시도를 일단 지켜볼수 밖에.
ps. 기성 평자들이 젊은 예술가들을 대할 때, 버릇처럼 나오는 단정적인 말투와 젊은/기성의 편가르기가 여지없이 여기서도 발휘되었다. 이런 ‘아류’ 로서의 자신이 퍽 침통하다. 어쩔 수 없음을 반성/변명하며 젊은 관객들과 젊은 창작자들에게 대인배적 양해를 구한다. 이 비평은 존대로 써야 옳았다.
**** 사진출처 :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제공
Project Group Metamorphoses 대망의 첫 번째 프로젝트. 연극 <광염소나타>는 관람한다는 것은 곧 시소를 타는 것? 위대한 예술에 감탄하며 압도되는 듯하다가, 그 예술의 자양분이 되는 범죄에 소름이 마구 돋다가? 추악한 죄와 예술의 아름다움 사이에서 혼란스럽길 관객들의 영혼과 정신이 그리고 육체가 끊임없이 시소를 타기를 원한다. <광염소나타>는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신체의 움직임을 통해 그 음악, 감정들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관객들의 감각도 혼란스럽게 할 것이다. 주인공 백성수가 연주하는 음악들을 귀 뿐만 아니라 ‘눈’으로 듣게 될 것이다. 광포성에 휩싸인 힘이 센 음악들을 몸의 움직임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광염소나타>를 보고, 듣고, 맡고, 만지고, 맛보며 관객들 스스로 답을 내리기 시작하는 그 순간! 시소가 제자리로 돌아오려고 하는 그 때! 우리는 마지막으로 시소를 한 번 더 힘차게 움직일 것이다. “과연 이 이야기가 성수의 이야기가 아니라 당신의 이야기라면?” <광염 소나타>는 궁극적으로 관객들에게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우린 아직 설익고 어린 예술가들이고, 어쩌면 이런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 우리 스스로 구덩이를 파는 일인지도 모른다. 예술은 굉장히 모호하고, 어렵고, 또 심오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광염 소나타>를 무대에 올리기 위한 준비를 하는 동안 우리는 예술이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해 계속하여 고민하고 있다. 그 어딘가에 숨어있는 답을 찾기 위해 매일매일을 헤매고 있다. 이는 무척이나 힘든 과정이다. 돌아보지 않고 달리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우리가 그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젊지 않은가? 없는 게 메리트이며, 가진 건 청춘이지 않은가? 두렵지만 두려워하지 않으며 용기있게 ‘예술’에 대한 질문을 기꺼이 던지며 신나게 이 구덩이 속으로 뛰어들 것이다.
시놉시스 백성수, 광포성에 휩싸인 한 젊은 천재음악가. 백성수는 그의 아비에게서 뛰어난 음악성과, 또한 그에 못지않게 귀기어린 광포성을 동시에 물려받았다. 그는 때때로 듣는 사람을 사로잡아 꼼짝 못하게 만드는 엄청난 음악들을 연주해낸다. 하지만 그에게는 비밀이 있는데, 그의 예술은 끔찍한 죄악에서 영감을 얻어 창조된다는 것이다. 그 죄악은 복수심 어린 방화로 시작했으나, 그 끝은 시간(屍奸)에 까지 이른다. 이런 잔인한 범죄들은 그에게서 엄청난 음악이 흘러나오게 한다. 이야기 하나에 음악 하나씩.. 한 예술가는 이 피의 음악들을 찬양하며 그의 범죄를 묵인하고 합리화하며 사랑해 마지않는다. 그리고 또 한명, 천재 음악가에게 그의 가장 사랑하는 존재를 잃은 한 신의 사도가 있다.. 그리고 또 한명, 천재 음악가에게 그의 가장 사랑하는 존재를 잃은 한 신의 사도가 있다.
스탭 임지현 /백성수 임은조 /김하나 서정호 /안교수 조선기 /김목사 김희정 /천한나 안동구 /피령 조용경 /피령 오경주 /피령 김로완 /피령 기매리 /연출, 윤보미 /조연출 류봄이 /기획 손하영 /기획, 한초원 /마케팅, 박동기 /무대, 고은비 /조명, 김용화 /음악/작곡 안미경 /안무/움직임, 윤문선 /의상, 유지희 /분장, 문홍규 /그래픽 디자인
극단소개 Project Group Metamorphoses (이하 P.G.META)는 프로젝트의 목적 및 특성에 따라 매번 그 모양을 달리하는 비정규집단이다. Metamorphoses는 변신 혹은 변형이라는 뜻으로 프로젝트의 형태, 그리고 구성원들의 다양한 조합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이 집단의 정체성을 반영한다. 문화예술, 교육, 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구성원 각자의 비전이 이 집단을 통해 펼쳐지고, 또한 집단의 비전 역시 개개인의 성장과 변화에 따라 성취된다. 여하튼 간에, 꿈꾸던 모든 것을 시도하고 도전하는 과정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 바로 이 집단의 목표이자, 존재이유다. c.f. Metamorphoses 메타모포시스: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의 서사시. 그리스ㆍ로마 신화를 바탕으로 우주의 생성, 세기의 창조, 삼세(三世)의 변천, 대홍수의 이야기, 전설적 인물의 변신 따위를 묘사하였다. * 2011년 7월 첫 모임을 시작했으며, 이번 <광염소나타>가 창단 프로젝트다. **본문출처 : 서울프린지페스티벌 홈페이지 ---------------------------------------------------------------------------------------------------------
*본 공연은 10월 10일부터 14일까지 두산아트센터에서 재상연됩니다. 두산아트센터 홈페이지 바로가기 >>> http://www.doosanartcent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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