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1. 13. 03:11ㆍReview
유랑축제 <숨겨진 시간들>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도시의 바퀴벌레 그리고 예술가"
글_스카링
이런 수상한 축제를 보았나. 싸늘한 가을바람이 맴도는 도심 속을 정처 없이 떠도는 축제라니. 게다가 혐오라는 낙인을 달고 사는 바퀴벌레를 찾아다니며 소탕하는 임무라니. 이것도 모자라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것들을 곳곳에 숨겨 놓았단다. 지인들과 와도 낯설었을 텐데, 혼자 온 관객은 오죽했으랴. 그 1인 관객 중 하나인 나, 서울토박이는 익숙하다 싶은 공간에서 그만 숨이 막힐 뻔 했다. 축제에서 나눠 준 마스크를 내내 쓰고 다닌 탓도 있었으나 이를 넘어 묵직하면서도 뚝뚝 끊기는, 동시에 낚싯줄로 이어놓은 축제 현장-서울 혜화동 대학로-은 낯설어도 너무 낯설었다.
아무튼 축제란 참으로 신비롭다. 누군가가 즐기자고 모이면 힘이 솟고 별별 생각이 다 떠오른다. (하물며 죽은 이들도 되돌아와 10월 31일에 축제를 하지 않는가.) 특히 사람의 축제야말로 온갖 은유와 상징, 심지어 광기까지도 버무려지므로 가히 으뜸이다. 그런데 이 ‘유랑축제’는 힘을 쫙 뺀다. 하지만 이러한 ‘힘없음’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애매모호한 상황일 때 진짜 힘을 발휘한다. 힘이 없다는 건 대개 부정을 나타내지만, 어떤 의미로는 그로 인해 대단한 존재감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목적지 없이 이리저리 떠돈다는 뜻의 ‘유랑’ 온갖 모험을 생각나게 하면서 ‘낭만’을 향해 직구를 던지게 하지만, 이 작품 속 ‘유랑’은 낭만과 함께 ‘불안’을 맞닥트리게 하였다. 아는 곳도 어딘지 모를 곳으로 뒤바꿔놓은 여덟 팀의 예술가들에 이끌린 채 말이다. ‘유랑축제-숨겨진 시간들’은 거리예술, 축제, 투어, 실험과 같은 여러 코드를 통해 숨겨진 것을 드러내거나 드러난 것을 숨기며 불안을 씨앗삼아 잎을 피우고 뿌리를 내렸다. 첫 번째 불안은 무대와 객석의 제거였다. 표를 예매하고 온 관객들은 극장에서 밖으로 나가 서성여야했다. 극장 뒷길, 구석진 골목, 주차장이 무대로 바뀌어있었다.
여기가 대학로였던가. 이곳이 도시였던가. 그 혼란도 모자라 관객은 투어 멤버(표식 스티커와 초소형 램프)이자 바퀴벌레 사냥꾼(마스크)이 되어 때 아닌 밤중에 몰려다니며 거리를 헤집고 다녔다. 사실 이 지점에서 호불호가 스멀스멀 새어나온다. 바로 ‘관객참여’에 대한 것인데, 특히 거리예술에서 예술가와 관객 사이에 종종 ‘밀당’이 벌어진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으니 가능한 것이리라. 허나 이제껏 봐 온 거리예술(실내도 포함)에서 ‘관객참여’는 일종의 서비스 또는 도구화인 경우가 잦았다. 그 순간 그 행동이 관객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친절히 설명하지 않더라도 어물쩍 넘어가면서 ‘관객참여’라 일컫는 경우에는 ‘눈 가리고 아웅’ 이라는 씁쓸한 생각에 사로잡히고 만다.
유랑축제는 모든 관객이 ‘움직여야’지만 살아나는 작품이다. 또한 곳곳에서 ‘유랑’다운, 캐리어를 끌기도 하고 잃어버린 동생이 되기도 하고, 제멋대로 왈츠를 추기도 하였다. 이러한 행위는 예술가들이 즉석 찜한 이들만 구체적인 역할을 부여받았다.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한 감정들이 그대로 드러난 얼굴들에는 놀랍게도 불안보다 흥미가 어려 있었다. 이 부분에 필히 주의를 가질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서로 눈치를 보거나 또는 무관심으로 상징되는 도시, 그것도 가장 복잡한 도심 한 복판에서 넘쳐흐르던 여유의 연장선이기 때문이다. 한 시간 반이라는 물리적 시간은 이미 시계바늘을 넘어 느릿느릿 움직였다.
쿠폰을 떠올리게 하는 리플릿에는 각각의 작품들이 한 면마다 짧게 실려 있었다. 처음 이를 읽었을 때는 알알이 흩어진 구슬들이 과연 엮일 수 있을까 싶었다. 이런 우려 아닌 우려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 제목은 대단한 이음새로 여겨졌다. 한 데 모이는 ‘축제’이면서 떠돌아 다니는 ‘유랑’, 게다가 동시이면서 제각각인 ‘시간’을 끌어오다니. 그 사이사이에 바퀴벌레 박멸과 관객들과 함께하는 이동이 보이지 않는 실 역할을 하면서 유랑축제 속 작품들을 느슨하면서도 팽팽하게 이었다. 작품들은 크게 공간특정형, 도구를 사용한 신체극, 설치작품, 절절한 신파극이라는 특징들을 갖고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넘나들기’에 견주어보면, 각 작품들의 단단함과 유연함은 다소 편차가 있었고 전작 ‘녹슨 시간들’의 주요 무대였다는 문래동 철공장 일대가 훨씬 더 잘 어울렸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외로 ‘대학로’라는 공간이 낯설게 보이는 것 외에 어떠한 충격이나 아름다움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이 공간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도시는, 특히 서울은 수많은 껍질들로 둘러싸인 양파와도 같다. 까도 또 까도 처음 접하거나 아니면 그게 그거인 경우가 수두룩하다. 그래서 도시를 주제를 삼을 때는 보다 깊이 있는 접근과 성찰이 요구된다. 시골보다 훨씬 이해관계가 복잡한 곳이 바로 도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잡다단한 도시에서 예술과 축제를 벌일 때에는 더욱 더 과감한 부딪힘 그리고 더욱 더 품는 따스함이 배어 있으면 좋다. ‘유랑축제’이자 ‘숨겨진 시간들’이기도 한 작품들은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말마따나 어우러지기 위해 얼마나 많이 고민했고, 연습했고, 계산했을 지가 느껴졌다. 특히 모든 작품들을 아우르는 큰 주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바로 ‘외침과 몸부림’이다.
도시만큼 소외라는 이 요망한 것을 활발히 주고받는 곳도 없다. 워낙 이해관계가 복잡하니 어쩔 수 없다고 하소연을 하지만, 사실 이 과정에서 필요 있음과 없음에 의해 거부, 투명인간, 해로움과 같은 것으로 치부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이는 도시에서 쉬쉬하는 기정사실이 된 지 오래이다. 유랑축제에 나오는 인물들이 대개 이러하다. 그래도 그들은 마지막인 것처럼 있는 힘을 다해 소리 지르고, 뛰거나 날아다녔다. 막연히 현실에서 벗어나는 꿈을 꾸는 자, 구석에 숨어서야 세상을 향해 딴죽을 걸거나 꾸짖는 자, 동생을 찾지만 찾지 못하는 자, 오도가도 못 하는 자, 초대받지 못 한 자, 눈물 흘리는 자 모두 ‘바퀴벌레’를 닮았다.
바퀴벌레라는 녀석이 무엇이던가. 인류만큼 오래 살아남은 종족임에도 그 습성과 생김새가 매우 비호감이라며 해충박멸을 위한 온갖 제품양산의 일등공신이 아니던가. 물론 예술가들이 이 정도 취급까지 받지는 않지만, 적어도 도시에서는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떤 교집합을 엿보았다.
또 다른 공통점을 하나 덧붙인다. 바퀴벌레가 어디 쉬이 사라질 생명체이던가. (만일 다 때려잡는 누군가가 나타난다면 그는 필히 히틀러의 완성체이리라!) 예술가도 마찬가지이다. 유랑축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비리비리함에 얼룩져 있음에도 마지막까지 제 모습을 잃지 않았다. 그 끈질긴 생명력 앞을 마주하니 코끝이 아리고 눈가가 시큰거렸다.
‘유랑축제-숨겨진 시간들’은 도시라는 공간에 대한 구조적인 재인식보다는 도시의 개념에 대한 추상적 또는 구체적인 표현으로 재인식하게 하는 힘을 지닌 작품이다. 바퀴벌레와 자신들(예술가)간의 유사관계도 은유를 통해 떠올리게끔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충분히 도발적이고 과감하다. 어찌 보면 날카롭고 메마른 면만 강조된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여기에서 그쳤다면 축제라 부르기에 애매했을 것이다. 그렇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이 예술가들이 큰 그릇처럼 보인 건 주차장에 마련한 유랑본부, 비공식이었지만 따뜻한 밥 한 끼 나눠먹는 공간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맛보지는 못했으나 말하지 않아도 안다고, 그 넘치는 정이 ‘유랑축제’를 정말로 축제로 만들었고, ‘숨겨진 시간들’이 어울리는 시간으로 확장하였다. 어쩌면 도시란 곳은 이처럼 끊임없는 긍정과 부정으로 맺어진 공간이지 않을까.
앞으로 조심해야겠다.
혹여나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것들을 무심코 밟을지 모르니. ■
***사진제공_ "유랑축제" 공연기획_문화이끔이 꼴
필자_스카링 소개_고양이와 기타를 벗 삼아 삶의 숨구멍을 얻기 위해 종종 ‘헤쳐모여’를 즐겨합니다. 자칭 ‘글 써서 나도 갖고 남도 주는 사람. |
유랑축제 <숨겨진 시간들> Nomadic Festival <Immemorable times>
일시_2012년 10월 25일(목) ~ 10월 27일(토) 평일 8pm/ 주말 8pm 장소_아르코예술극장 및 대학로 일대
공연소개 _ 이 작품을 보이는 곳과 보이지 않는 곳의 경계를 넘나드는 바퀴벌레를 매개체로 하여 대학로라는 특정한 공간의 숨겨진 이면을 보여준다. 대학로의 묻혀버린 시공간과 그 이면에 쌓인 이야기들을 다양한 시각과 장르의 작품으로 각각 창작하고, 이는 하나의 축제로 탄생하게 된다. 바퀴벌레 박멸의 임무를 부여받은 관객들을 화석처럼 세상을 더듬어 온 바퀴의 흔적을 쫓다가 때로는 코믹하게, 또는 날카롭게 통렬한 비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대학로의 의외의 모습에 맞닥뜨린다.
기획의도 _ 전작 <녹슨 시간들>에서 등장했던 바퀴벌레는 유창축제의 여정에서 계속해서 등장할 예정이다. 지구의 나이만큼 오랫동안 존재해왔던 바퀴벌레가 보이는 곳과 보이지 않는 곳의 경계를 넘나들며 존재했듯이 우리는 사람들이 소외시킨 혹은 너무 많은 관심으로 안착할 수 없는 지역에 집을 짓고 정착한다. 시민들은 바퀴벌레 박멸이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축제가 벌이는 소동에 적극적인 개입을 하고 또한 혐오의 대상인 바퀴벌레-하지만 단순히 학습의 효과일 수 있는-와 같은 마주하기 싫은 혹은 애써 외면해왔던 소재들을 새롭게 재인식하는 과정을 통해 도시와 마을을 생소하게 바라보는 경험의 순간을 제공한다.
참여 아티스트 _ ● 극단 서울괴담: 음악, 미술, 인형, 가면, 오브제 등을 이용하는 매체연극이 복합된 총체극 ● 마린보이: 저글링, 코미디, 서커스를 매개로 새로운 공연을 만드는 서커스광대 ● 예술불꽃 화(花火)랑: 불꽃을 예술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불꽃 전문단체 ● 프로젝트 날다: 국내 유일의 공중 퍼포먼스 전문 단체 ● 프로젝트 잠상: 인터렉티브하고 섬세한 영상 작업을 야외에서 펼치는 실험적인 영상단체 ● 극단 몸꼴: 움직임을 중심으로 하는 피지컬 씨어터/거리예술 전문극단 ● 독립예술프로젝트 : 라이브 아티스트 솔문과 부토댄서 나탈리의 공동창작 프로젝트 ● 유성희: 라이브 퍼포먼스 조명 디자이너 서울국제공연예술제 2012 참가작 >>> http://www.spa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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