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2013 춘천마임축제 현장을 다녀오다 - 도깨비는 축제를 좋아하지

2013. 6. 7. 11:38Feature

 

2013 춘천마임축제 현장을 다녀오다

: 뿔난 축제, 엉킨 관계, 슬픈 도깨비들.

하지만 도깨비는 축제를 좋아하지!

 

글_스카링

 

‘이 편한 세상’ 붐은 세균게임 같다. 어울리지 않는 곳까지 ‘편리함’ 예찬론을 퍼트리는 통에, 세상은 점점 강남 성형인들을 닮아간다. 2013년 5월 25일 토요일, 낭만의 대명사였던 춘천 가는 기차, 무궁화호 대신 ‘빠름, 빠름, 빠름’과‘4D영화관’을 흉내 내는 ITX-청춘열차를 타고 춘천으로 향했다. 도착역인 남춘천역의 신도시 냄새가 어색해서 서둘러 빠져 나왔다.

 

 

춘천마임축제에 대한 기억은 2003년 고슴도치섬에서부터 시작된다. 공연예술 전공자도, 마니아도 아닌 사람이 ‘도깨비열차’에 몸을 실었던 이유는, 밤새 야외에서 공연을 본다는 사실 그 자체가 몹시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기차에서부터 극장, 고슴도치섬에서 만난 1박 2일 - 멈출 줄 모르는 몸짓들과 묵직한 물안개는 지금도 눈앞에 선명하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몇 년 전, 도깨비난장이 고슴도치섬에서 열리지 않게 되었다는 소식은 참 많이 아쉬웠었다. 사유지인 고슴도치 섬이 리조트 조성을 이유로 춘천마임축제와의 인연을 매듭짓게 된 것이다. 하지만 ‘물의 도시 춘천이니까, 오랜 역사와 경험을 갖고 있는 축제이니까’ 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있었다. 더 좋은 장소를 찾아낼 것이라는 믿음. 그러나 이 ‘장소성’이 2013년, 춘천마임축제를 뒤흔들 커다란 이슈가 될 줄은 당시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축제를 만드는 사람이 되니, 자연스레 국내 예술축제들을 만날 기회가 많아졌다. 일반관객들이 접할 수 없는 비공개용 소식을 접하거나 매의 눈으로 현장을 바라보니, 다음과 같은 무거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하나. 예술축제는 예술인들의 창작 활성에 초점을 맞춘 축제인가 아니면 지역주민과 관광객을 위한 향유, 지역경제 활성을 위한 축제인가.

둘. 예술축제가 정부나 관련 기관에서 주관하는 축제이거나 또는 예산, 행정협조 지원을 받는다면 운영방식이나 프로그램 구성에 있어 ‘제어’받아야 하는가.

셋. 이러한 영향력 아래 있는 예술축제들이 ‘과시’, ‘성과’ 중심으로 흘러가면서 특징보다는 비슷한 모습으로 ‘성형’되어 가고 있는 건 아닌가.

 

 

행정기관이 연계되어있는 국내의 축제들은 ‘한 방에 보여줄 수 있는 찬스’라고 여기는 듯한 인상을 준다. 때문에 어떤 예술축제들은 의도치 않게 힘겨운 과정을 겪게 된다. 올해 춘천마임축제도 그러했다. 많이 아팠다. 춘천시와 지역주민, 여론을 대상으로 숱한 설득과 선택, 그리고 결단과 타협들이 오고갔다. 축제 장소 선정에서의 논란, 협의 없이 줄어든 춘천시의 지원, 예술감독의 사의 표명, 덤으로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맥락의 충돌이 주요 이슈였다고 할수 있겠다. 이렇듯 축제 이전에 축제를 둘러 싼 여러 쟁점들이 다음과 같이 몇 개월간 연일 쏟아졌다.

‘남이섬은 경기도에 속한다. 마임축제가 그 곳으로 가면 춘천의 경제는 쇠락할 것이다 / 춘천시는 춘천마임축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부족하다 / 춘천마임축제는 25년을 이끌어 온 유진규 예술감독의 것인가 / 한 예술가의 행동이 춘천마임축제를 뒤흔드는 위협적인 사건인가.’

어느 예술축제든 예술인들이 꾸준히 창작을 할수 있게끔 하려는 터전이 되고자 할 것이다. 서로 모여 격려하고, 마음껏 교류하며 즐기려 할 것이다. 또한 관람객, 시민들에게 해당 예술이 사랑 받기를 바랄 것이다. 이처럼 순수하고 주관적인 목적을 품은 예술축제임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러하기에 지역사회 성장을 도모하는 '행정' 그리고 '경제' 영역과의 대립은 불거지게 마련이다. (이러한 마찰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일까)

 

 

5월 한 낮의 오후, 너나 할 것 없이- 예술가, 관객, 스탭, 자원활동가인 ‘깨비’-벌겋게 익어 있었다. 춘천마임축제에서 푸르른 늦봄과 싱그러운 초여름 대신 땡볕 가득한 무더위를 만나게 될 줄이야. 축제사무국에서 낮도깨비난장과 같은 프로그램 운영에 있어 새로운 고민들이 생겼을 것이다. 그럼에도 땀 흘리며 공연하는 예술가와 달궈진 바닥에 앉아 박수를 보내는 관객들을 보고 있으니,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뭉클함이 올라왔다. 게다가 축제를 만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련들이 쌓였을지를 헤아리니 먹먹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예정에 없었지만, 축제 상황을 자세히 듣고 우리나라 축제들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알고자 포럼에 참관했다. (더불어 태양을 피하고 싶어서!)

축제현장전문가 포럼_제1차 축제현장토론회는 "한국 축제 어디까지 왔나?" 를 주제로 춘천마임축제를 통해 한국 축제의 현황과 과제를 살펴보는 자리였다. 축제의 전문가들이 했던 발언 중 인상 깊은 내용을 압축 정리 해보았다.

하나. 기금에 의존하지 말고 상품성을 높이자는 의견과 공공재로서의 축제의 가치를 당당히 내세우는 의견

둘. 창작만큼이나 행정, 지역사회, 관계 등 두루 살피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는 의견

셋. 해마다 각기 다른 지원체계 대신, 축제 성장을 위한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지원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의견

넷. 축제, 관, 지역사회가 함께 축제 방향을 논의해야 할 때라는, 지역을 기반으로 뿌리내리고 퍼져나가는 방법과 지원기관과의 소통체계를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

무엇보다도 ‘축제는 나무다’ 라는, 춘천인형극축제 강준혁 이사장의 은유섞인 말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였다. ‘모든 조건이 맞아야 나무는 뿌리를 내리고 잎을 피운다. 무턱대고 옮겨 심거나 어떤 요소 하나가 넘치거나 부족하면 나무는 잘 자라지 못한다.’ 나무가 자라나는 방법, 잘 자라나기 좋은 환경과 같은 이야기는 참으로 축제와 많이 맞닿아 있다. 포럼은 축제현장전문가들의 포부를 담은 ‘춘천선언문’ 낭독을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1989년에 시작한 춘천마임축제는 예술과 지역 사이에서 줄다리기가 한창이다. 같은 예술축제를 만드는 입장에서 조심스레 의견을 제시하자면, 당연히 예술축제에 한 표를 보낸다. 그러나 나이만큼이나 덩치도 세계적인 춘천마임축제는 이름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축제는 춘천이라는 지역에 뿌리내린 커다란 나무이다. 갓 심은 묘목과 달리, 더 많은 양분을 확보해야 하며 주변 나무들과의 어울림도 고려해야 한다. 즉, 예술축제이면서 예술로 지역사회와 연계해야 하는 매우 섬세한 조율을 해내야 하는 것이다. 구분되는 개념이면서 구분 짓지 말아야 하는...

이러한 고민에 대해 생각을 하나 덧붙이고자 한다. 언제부터인가 축제, 예술, 지역, 공동체라는 말을 듣거나 쓰다 보면 왠지 모르게 '벽' 을 느끼고 있다. 심지어 ‘그들만의 축제’라는 인상마저 주는 축제'도' 있다. 또한 나무와 같은 긴 생명 대신 어떤 축제들은 나무보다 1년생, 다년생 풀들을 연상케 한다. 이런 가운데 축제 성과는 잘도 뽑아내면서, 반성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요 근래에는 축제를 둘러싸고 보이지 않는 자기주장이 끊이지 않는 현실이 못내 밉기까지 하다. 축제를 통해 ‘있어 보임’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축제를 축제답지 못하게 하는 족쇄라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축제라는 건 누군가에게 아주 좋은 건수일 지도 모르겠다. 관광 산업이 흥하고, 지역 경제가 살아나고, 수익을 보장하는 콘텐츠를 확보하게 되니 한 번에 여러 토끼를 잡는, 들인 만큼 배로 거두는 보물창고일 것이다. 하지만 ‘예술’에서 싹튼 축제들에게까지 이와 같은 관점을 그대로 이식하면, 서로 간에 끝없는 평행선만 생겨날 뿐이다.

요즘 들어 축제는 또 다른 정치, 권력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관 주도 또는 관이 주도하는 축제는 이번 춘천마임축제를 통해 그 대립구조를 명확히 보여줬다. 그러나 이 점만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겠다. 춘천마임축제는 예술가들이 ‘마임’이라는 예술을 응원하기 위해 만든 축제에서 성장하여 춘천이라는 지역과 어우러지고, 춘천은 물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마임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행정기관이 예술을 대하는 태도가 보다 성숙해지길 바라는 건 순진한 생각일까? 각자에게 이로운 입장을 끊임없이 내세우며 설득하려 하는 것에 앞서, 이제는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며 조율할 지점을 지혜롭게 찾아내는 방법이 필요한 시기이다. 지난 대선 때, 엄청 떠올랐던 ‘상생’이란 말과 같은 관점에서 말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번 춘천마임축제에서 가장 섭섭할 뻔했던 것은, 우악스럽고 무서워 보이지만 장난끼 많은 도깨비들과 같은 ‘흥’ 이다. 우리네 축제, 아니 잔치는 신분과 나이, 성별을 내려놓고 신명 나는 볼거리, 즐길 거리, 먹거리를 나누며 함께 어울리는 정신을 기반으로 해왔다. 요즘 축제를 마음 놓고 즐기기 어려운 까닭은, 여러 이해관계들 사이에서의 파워게임, 축제 본래 모습보다 부수적인 것들에 집중하는 상황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축제도 변하는 건 당연한 이치이겠으나 이 집단의 ‘흥’만큼은 변하지 않는 가치임을, 부디 기억했으면 한다.

 

 

예술 중에서도 공연예술, 거리에서 만나는 예술은 우리네 잔치의 후예이며, 춘천마임축제는 이를 잘 이끌어 온 예술축제이다. 이러저러한 홍역과 함께 땡볕 무더위가 극심했으나, 다행히도 낮도깨비난장 풍경은 예술가와 시민이 야외무대, 공원 한 켠에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이 공연을 선보이고 관람하는 모습은 다행히도 잘 살아있었다. 장터와 같은 먹거리, 아트 마켓도 반응이 좋았다. 조금 더웠지만, 분위기는 참 축제다웠다.

그 밖에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씻김굿 형식을 빌어 삶 속에서 묵은 때를 벗겨내는 수중잔치이자 개막프로그램 ‘아!수라장’, 어른들이 밤새 즐기는 ‘미친 금요일’과 온 가족용 ‘도깨비난장’의 결합은 물론, 춘천 시내를 직접 찾아간 주거침투형 난장 ‘바람난 유랑단’, 스페인 거리극단 ‘캄챠카 컴퍼니’와 시민들이 함께 춘천 시내를 바라보는 여러 시선들을 담은 거리극 워크숍까지, 기죽기는커녕 매력 넘치는 프로그램들이 펼쳐졌다고 한다. 그러면서 여전히 과시하지 않고, 재미있게 놀아보자는 초대의 말을 건네었다. 예술을 예술답게, 춘천마임축제는 도깨비 힘을 빌어 ‘태초에 몸짓이 있었다’는 메시지를 재미나게 퍼트렸다. 고마운 도깨비들이 여전히 잘 있어서 다행이다.

 

 

앞으로도 축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제작하는 과정에 불협화음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춘천마임축제를 시작으로 우리나라 축제에 대한 건강한 고민과 실천들이 움트면서 축제를, 예술을, 지역을 잘 엮어내는 방향들이 조금씩 뿌리내리게 될 것이다.

춘천마임축제는 이제 아프지 않다. 대신 뜨거운 불주사를 맞았다. 머지않아 면역체가 잘 자리잡게 될 테니 함께 이상적인 축제 만들기를 위한 환경을 가꿔나갔으면 좋겠다. 내년도, 내후년도 늘 응원하는 마음을 갖고 찾아갈 테다.

ps. 예술축제의 피로 그리고 성장은 ‘좀 불편한 세상’ 에서 풀린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놀란 마음을 다독여본다. 

 

 글_스카링

 소개_(이번엔 간단히)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스탭입니다.

 

*사진출처 및 본문내용(박스) 참고 >>> 춘천마임축제 웹페이지 http://www.mimefestiv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