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1. 10. 23:46ㆍFeature
청소년 리뷰 -1
<햄스터 살인사건>을 보고나서
글_박주연
모텔 방안으로 허름해 보이는 인테리어와는 다소 부조화를 이루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들어선다. 그들이 죽을 장소로 택한 곳이었던 것이다. 곧이어 어떻게 죽을 것인지에 대해 말을 꺼내는 극 중 주인공들의 모습은 놀라울 만큼 일상적이다. 마치, 교실에서 어제 본 드라마가 어땠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이러한 연극 ‘햄스터 살인사건’의 시작 부분은 제목만 보고 추측했던 모든 것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햄스터를 둘러싼 등장인물들의, 아니 어쩌면 또 다른 햄스터들의 이야기가 바쁘게 무대 위에서 펼쳐졌다. 한 시간 남짓 하는 러닝타임이 웃고 즐기다 보니 짧다 싶을 정도로 빠르게 지나갔다. 시종일관 생각지 못했던 방향으로 극이 이리저리 통통 튀어 다닌 덕에 온전히 그 흐름에 따라 몰입해서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특유의 발랄한 분위기와 약간의 난해함은 풀지 못한 퍼즐을 안고 집에 돌아가는 느낌을 가져다주어서 다시 찾아서 보고 싶게 만들었다.
극에서는 계속해서 상황이 제시되고 또 제시되었다. 아버지의 사회적 지위와 욕망 때문에 자기 자신이기보다는 누군가의 자식으로서 먼저 인식되는 상황, 부모님이 부모님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지 못하는 데에서만 그치지 않고 자기 자식의 존재를 부정하고 저주하는 상황,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부터 하고 보지만 막상 그들의 손에 총이 들려있을 때는 망설임 없이 머리를 조아리는 상황. 나의 모습이었고, 내 친구들의 모습이었고, 또 주변 어른들의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봐왔던 청소년극과는 약간 달랐다. 주인공들의 과거사를 읊으며 그들이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려고 드는 청소년극을 몇몇 봐왔다. 특히나 최근에는 학교폭력문제가 대두되면서 연극제에서도 비슷한 부류의 작품이 나오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극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사회현상을 답습했을 뿐 본질을 파고들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질감을 느꼈다. TV에서의 비행청소년들과 교실에서 보는 친구들의 모습에서는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것처럼.
즉, 청소년극은 ‘청소년들을 위한 연극’인데 막상 극을 보면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기보다는 청소년들의 ‘문제점’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럴 때면 훈계하는 어른들의 모습이 겹쳐져서 일방적으로 연극이라는 매체를 통해 메시지를 주입받고 있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것을 강요하지 않아서 좋았다. 극 자체가 부조리극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보니 뚜렷한 서사구조에 따라서 전개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형식은 청소년들의 특성을 나타내줄 수 있는 표현방식의 하나였다고 본다. 청소년들의 말과 행동은 자질구레한 것들이 겹겹이 쌓이고 쌓여서 마침내 분출되는 것으로, 예측 불가능할 만큼 충동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명확한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기도 한다. 심지어 순서가 뚜렷하지 않고 뒤죽박죽이기도 하다. 내뱉는 말들은 어린이의 것도 아니고 어른의 것도 아니어서 낯설게 느껴지고 말장난 같기도 하다. 오히려 이런 모습이 나에게는 더없이 솔직하게 느껴졌고 위화감 없이 다가왔다.
또한 무엇보다도 볼 때마다 새로운 이미지를 잡아낼 수 있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상황을 생각하기에 따라서 천차만별의 느낌을 받을 수 있었고 결말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이야기를 극에 적극적으로 대입하면서 감상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를 포함한 관객들은 서로 다른 이유로 극을 즐길 수 있었을 것 같다.
다음에 또 다시 무대 위에 이 작품이 오르게 된다면 꼭 친구들과 보러가고 싶다. 아쉽게 같이 가지 못한 친구들에게 약간의 대사와 상황을 설명해준 것만으로도 그들은 관심을 보였고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부모님과 함께 가고 싶은지 묻는다면 아직 잘 모르겠다고 답할 것 같다. 청소년극을 본 어른들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다. 같은 느낌을 가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개 청소년기를 거치지만 지나고 나면 이상하게 그 때의 감정을 잊어버리는 듯하다. 분명히 태어나서 가장 치열하게 자신과 마주했을 시간들이고 매일이 새롭게 스파크가 튀는 순간들이었던 만큼 세포 속에 남아있을 법도 한데 말이다. 그래서 극 중의 상황들이 나에게는 피부에 생생하게 다가오고 대사 속에서 보이지 않는 것도 느껴지기도 하는데 어른들은 감정이 무뎌져서 그렇게 느끼고 공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필자_박주연
소개 _공연기획자가 되고 싶은 자유로운 영혼. 잠실여고 2학년에 재학중.
<햄스터 살인사건>
일시: 2013. 10. 25. 금. 8시/ 10. 26. 토. 3시. 7시
장소: 성북구 아리랑아트홀
작품소개
청소년을 위한 시
극은 작은 모텔 방에, 이곳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고등학생 두 명이 등장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어린 학생들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죽음’을 위해서다. 처음부터 모텔, 자살 같은 극단적인 말과 장면이 펼쳐지지만, 씁쓸하게도 낯설지 않다. 청소년들이 왜 죽으려 하는지 이유를 들어보지 않아도 그 이유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성적, 친구들, 가족들, 또 경제적인 문제 등 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는 어른들이 청소년들을 마음 깊이 이해하고 있어서가 아니다. 청소년이라는 이름으로 사회 속에 새겨진 이미지가 몇 개 안되기 때문이다. 최근에 ‘자살’이 하나 더 보태졌을 뿐이다. <햄스터 살인사건>도 이런 결말을 벗어나지 않는다. 처음 공연이 던져주는 강렬한 죽음 이미지가, 무대 한 쪽에 놓인 햄스터 우리를 발판 삼아 극 전체를 관통한다. 하지만, 불편하게도 이 작품을 보는 내내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극이 진행될수록 불편한 마음이 사라진다. 작가가 포착해내는 청소년의 예측할 수 없는 행동, 재기 넘치는 말이 보는 사람을 안도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매스컴에서 만나는 어른의 시선으로 편집된 청소년이 아니라 내 옆집에 사는 평범한 그 아이를 떠오르게 해준다. 텍스트가 무대 위 공연이 되면서, 불편한 감정이 미안함으로, 연민과 사랑으로 치환될 수 있는 여지를 곳곳에 만들어 주고 있다. 톡톡 튀는 대사와 아름다운 움직임이 기묘한 조화를 이루어내면서, 무거운 주제가 무거운 뉴스가 아닌, 울림을 주는 한 편의 시처럼 무대 위에 펼쳐진다.
작_허선혜
연출_최여림
배우_배소현, 이현석, 이다영, 박알렉스, 설재영
예술감독_최영애
예술교육감독_황하영
음악감독_노선락
조연출_문올가, 송재영
무대디자이너_노민석
조명디자이너_조철민
의상디자이너_홍문기
무대감독_송재영
그래픽디자이너_박찬미
예술교육팀_박지혜, 이소선
조명오퍼_홍유정
음향오퍼_임지윤
기획_이가영, 박지명
객석감독_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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