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 17. 02:53ㆍReview
두산아트랩 - <다페르튜토 스튜디오>
야생염소가 꾼 개꿈
글_김연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설픈 그림이나 춤으로 화답해야 할 것 같은 공연이다. 구구절절이 언어로 설명하면 안될 것 같아서 시작을 ㅋㅋㅋ로 해보았다.
연극을 볼 때는 원초적인 웃음소리를 냈지만 극장에 나와서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관객이 많았을 것 같다. 비논리적이고 비언어극이면서도 엉성한 소품들이 즐비한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연극’이라는 장르 타이틀을 달고 상연되었기 때문에 더욱 갸우뚱했을 것이다. 연극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야기가 축적되며 긴장감을 자아내고, 끝을 정확하게 맺고 극장을 나서게 한다는 기대가 있다. 그러나 다페르튜토 스튜디오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는 이야기보다는 공연성을 강조한다. 잘 짜여진 이야기보다는 지금, 같은 공간 안에 있는 사람들이 더 중요하다.
황당무계한 다섯 토막의 연극이 펼쳐진다.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는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라고 제목을 붙인 첫 번째 연극에서는 꿈을 꾸는 디자이너의 의식 속으로 들어간다. 양들의 런웨이를 지켜보다 끝난다. 두 번째, ‘도시인들이 동물을 만나는 방법은 식탁 위 죽은 고기를 통해서이다’는 더 애매하다. 형체도 알 수 없는 것들이 등장해서 저들끼리 낑낑대다가 퇴장해버린다. 세 번째, ‘맥베스, 숲에서 길을 잃다’는 맥베스랑 뱅코가 방귀 뀌다 끝나버려서 원작 <맥베스>라는 이야기가 길을 잃어버렸다고 봐야 할 듯하다. 네 번째 ‘하늘과 땅과 아프니까 밝넝쿨춤’은 제목부터가 마구 갖다 붙였다는 느낌이 든다. 전혀 연관성 없는 단어들을 조사로 한데 모아 놨다. 제사장이 관객과 함께 춤추다 끝난다. 마지막 토막연극은 ‘앵콜공연 야생염소’. 사냥꾼이 모든 야생염소와 성관계를 갖는 하룻밤을 다룬 내용이다.
언어실험극
무대 전면에 프로젝터로 메모장 화면이 보인다. 공연 시작 전에 들리는 극장 안내멘트 마저 메모장에 타이핑되는 문자를 통해 만난다. ‘스페이스111을 찾아주신……’ 메모장에 입력되는 문자마저 없었다면 공연을 감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섯 토막을 통틀어 배우들이 한 말은 'Bon voyage, 뱅코, 맥베스. 아파‘ 밖에 없기 때문이다.
타이핑으로 첫 번째 토막에서 등장하는 양을 세고, 다섯 번째 토막에서 야생염소 이야기를 들려준다. 막이 시작하기 전, 토막의 제목도 알려준다.
첫 번째 토막에서 양이 오른쪽 입구에서 등장했다가 작은 화단을 뛰어넘은 뒤 ‘Bon voyage’를 외치고 퇴장한다. 같은 방식으로 서른 마리 넘는 양이 등장한다. 처음에는 타이핑이 극을 주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양 한 말’이라고 타이핑하면, 양이 등장하고 ‘양 한 마리’라고 문장이 완성된다. 언어로 지시체가 완성된다. 그러나 양들이 빠른 속도로 등장하자 타이핑은 간신히 숫자만 써넣을 뿐이다. 양이 등장하는 속도가 느려질 때 완성하지 못한 문장을 서둘러 보완한다. 여기서 관객들의 실소가 터진다. 타이핑이 연극의 흐름을 주도할 것이라는 기대에 대한 배반이다. 언어가 무대를 장악하고, 배우가 명령에 따를 것이라는 배반.
언어가 먼저일까, 생각이 먼저일까. 잠이 오지 않아서 프랑스 요리 프로그램을 켜놓고 잠자리에 든 디자이너는 양을 세기 시작한다. 양을 떠올린다. 양이 나타난다. 그러다 의식의 고삐가 풀어질 때쯤 빨간 양이 등장하고, 풍선 양이 등장하고, 뽁뽁이 양이 등장한다. 양들은 서로 밟고 놀기도 한다. 램 수면 상태인 디자이너는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패션쇼를 벌인다. 패션쇼는 엉망진창이다. 직업 스트레스가 대단한가 보다.
반면에 다섯 번째 토막극에서는 언어가 배우들에게 지시한다. 연출가가 한 문장을 타이핑하면, 무대 위에 서 있는 배우들은 문장이 완성되길 기다렸다가 쓰여 있는 그대로 행한다. 이야기가 있는 형식이라서 우리에게 익숙할 것 같지만 그 내용은 전혀 익숙하지 않다. 개연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사냥꾼이 여인으로 변한 염소에게 유혹당해 염소 마을로 간다. 염소로 변한 사냥꾼은 모든 암소와 광란의 밤을 보내고 다시 인간세계로 돌아온다. 사냥꾼은 이제 수소만 사냥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암소는 부인이며, 모든 염소 새끼는 자신의 자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다.
사냥꾼이 바위 사이에 있는 염소 동네에 들어간 것처럼 관객도 극장을 찾는다. 사냥꾼이 본분을 잊고 야생염소로 변해 광란의 밤을 보내는 것처럼 관객도 일상의 본분을 내려놓고 극장의 일원이 되어 광란의 70분을 즐긴다.
지금 여기에 펼쳐지는 광란의 염소 파티
유니클로 박스를 머리에 쓰고, 노끈(?)으로 수염을 만들어 제사장 복장을 한 밝넝쿨씨가 등장하여 밝넝쿨춤을 알려준다. 팔을 하늘과 땅으로 올렸다 내렸다 가슴을 톡톡 두드린 다음, 뽀뽀를 전파한다. 아픈 사람한테 뽀뽀하는 건가. 뽀뽀가 극장 안을 가득 메운다. 밝넝쿨씨 혼자서 춤을 추는 게 아니라 특정 관객에게도 권한다. 그 후에 관객 전체가 밝넝쿨춤을 춘다. 극장 안에서도 사냥꾼의 자의식을 잃지 않는 관객으로서 객석이 밝넝쿨 교주를 따르는 염소넝쿨밭으로 보였다. 밝넝쿨춤은 다섯 가지 정도로 변주가 가능하다. 약간의 변화만 넣어서 랜덤으로 모두 함께 춤을 춘다. 앞서 등장했던 세 명의 배우도 각각 권투선수, 여우, 뭔지 모를 것으로 분장하고 나와서 함께 춤을 춘다. 어떤 이야기도 필요없다. 광란의 밤, 당신들은 야생 염소였다.
실수 없는 연극
배우들의 이완된 몸과 투박한 소품은 머리로 연극을 입력하기보다 몸으로 편안히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준다. 연습실에서 정교하게 다듬어놓은 호흡과 몸짓, 드라마를 극장에서 재연하지 않는다. 각 토막마다 배우들이 일정하게 수행해야 할 행동의 원리나 규칙만 있다. 그래서 배우들의 움직임은 연기라기보다는 놀이하는 몸으로 보인다. 자유롭게 놀이하는 몸은 관객 몸 안에 있는 놀이 세포를 깨운다. 어렸을 적에 칼싸움을 했던, 잡기 놀이를 했던, 소품 하나로 변신해서 놀았던 세포들이 깨어난다. 시간을 재밌게 보내기 위해 몸을 움직였던 기억, 단지 웃기 위해서 방귀 소리를 냈던 기억들.
소품들은 모두 재활용품으로 만들어졌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누런 박스와 뽁뽁이, 철제 의자, 풍선 등을 재료로 삼았다. 형상도 잘 만들려고 하기 보다는 사물의 특징만 살려서 무엇인지만 알아보게끔 만들었다. 완전한 복제가 아닌 키치를 지향하는 소품들이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재활용품으로 투박하게 만들어진 소품들은 공연을 ‘우리 곁에 있는 연극’으로 만들어준다. 특수한 기술이 필요한 어려운 연극이 아니라, 나도 배우가 될 수 있고 소품을 만들 수 있는 연극. 무대 뒤를 공개하여 배우들이 스스럼없이 걸어다니기도 한다. 극장이라는 공간을 배우들의 연기공간이 아니라 우리들의 놀이공간으로 만들어준다.
Bon voyage!
소음도 음악이 되고 물감을 흩뿌린 것도 그림이 되는 현대. 일상과 분리되는 예술이 될 수 있던 수많은 이유 중의 하나는 ‘리듬’이라고 생각한다. 다페르튜토 스튜디오의 연극은 기존 서사를 가져가지도 않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지만 연극적 체험으로서 연극성을 획득한다. 밋밋한 반복과 나열이 아닌, 영리한 반복과 변주가 꿈으로서의 역동성을 갖게 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극장에서 꿈을 꾸고 난 관객들은 일상으로 돌아간다. 다폐르튜토 스튜디오는 동화책을 덮는 것처럼 사라진다. 언제든 극장을 다시 찾으면 그대로 놀고 있을 것 같다.
염소 마을을 뒤로한 채 우리는 다시 사냥하러 떠난다. 여행 도중 잠시 쉬어가고 싶은 다페르튜토 스튜디오였다. ■
필자_김연재
소개_연극은 좋아합니다.
<다페르튜토 스튜디오>
일시 2015.1.22-1.24
장소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작,연출 적극
출연 김정화, 박한결, 박형범, 노래
특별출연 밝넝쿨
<다페르튜토 스튜디오>는 탈장소성을 의미하는 '다페르튜토'(이탈리아어-'어디로나 흐르는')와 장소 특정성을 의미하는 '스튜디오'의 합성어이다. 팀 명이자 공연명인 ‘다페르튜토 스튜디오’는 연극의 내용과 형식을 고민, 다양한 장르의 작가와 협업하여 ‘무용적 연극’, ‘음악적 연극’이라는 대안을 모색해왔다. 이번 작품에서는 2014년의 다양한 장소적 작업들을 기반으로 탈장소성의 극장공연을 구현한다.
적극 dappertuttostudio.com
연극연출가로 2010년 다페르튜토 스튜디오를 창단하여 '연극을 재정의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다페르튜토 스튜디오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새로운 연극을 지향하며 공연마다 새로운 아티스트와 콜라보레이션을 하여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선보인다. 2014년 홍은예술창작센터 입주예술가이다.
* 정보제공
두산아트센터 홈페이지 http://www.doosanartcen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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