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노기훈, “Mise-en-scène” @지금여기

2015. 11. 14. 14:07Review

 

광장의 풍경 바깥으로

노기훈, “Mise-en-scène” @지금여기

 

글_유지원

 

광화문, 서울역 광장, 보신각, 통합진보당 당사. 이곳들이 바로 노기훈이 삼각대를 내렸던 장소들이다. 이 장소들이 모종의 ‘정치적’ 속성을 지닌다는 것을 인지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남대문 경찰서 맞은 편에서, 광화문을 향하여, 시청 곁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행진했고, 또 외쳤다. 각 사건들 속에서 이들은 ‘해체’, ‘규명’, ‘석방’과 같은 것들을 요구했다. “지금여기”에서 펼쳐진 노기훈의 «미장센≫은 서로 다른 시공간 속에서 펼쳐진 사건들의 이미지 파편들을 제시하고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띠는 4면의 아시바 설치물(공사중인 건물외벽에 계단을 설치한 것)은 2012년도의 광화문광장과 1년 후 같은 장소의 사진이, 그리고 2012년도의 통합진보당 당사와 1년 전의 한나라당 당사의 사진이 마주하여 위치해 있다. 이 철제 사면 구조물 안쪽에는 따뜻한 색의 빛을 발하는 전구들이 받침대에 길게 매달려있다. 이 설치물을 지나면 2009년도, 그리고 2013년도에 촬영한 서울역 광장의 모습이 나란히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고 이들 각각의 측면에는 온전한 초와 불이 붙어있는 초의 이미지가 자리잡고 있다. 우편으로 돌아서면 서로 다른 때에 보신각을 찍은 이미지들이 일렬로 나란히 놓여있다. 이처럼 «미장센≫은 전체적으로 딥틱(diptych-둘로 접을 수 있는 목판 성상화) 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이 시공간과 저 시공간이, 저 사건이 이 사건과 연동되고 충돌되는 순간들을 만들어내는 파편들이 흩어져있는 것이다. 그런데 각 이미지들을 살펴보면 정확히 어떠한 연유에서 그와 같은 장면이 펼쳐졌는지를 추적해내기가 쉽지 않다. 장노출 기법으로 인해 빛, 사람, 깃발 등과 같이 움직이는 것들은 전부 흔적만 남긴 채 정체를 감추어버렸고, 부동의 자세로 선 주위의 건물만이 장소의 동일성을 보장해줄 뿐이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 압수수색 및 해산, 철도민영화 반대시위, 부정선거 규탄시위 등 복잡하게 얽힌 맥락과 첨예한 갈등의 현장들이 구체적인 맥락들이 지워진 채 장면으로만 남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

 

▲노기훈 사진, 미장센 #20131228 서울광장

 

<#20110503 한나라당 당사>가 담은 장면에서 선명하게 남은 것은 “大洞빌딩”의 간판과 1층 주위에 자리잡은 상호들뿐이다. 건물 앞에 이미 흐릿해진 다수의 사람들이 서있는데, 희미하게 식별되는 옷차림으로 미루어보아 다수가 노인들임을 짐작해볼 수 있다. “한나라당 집행부 총사퇴가 아니라…”의 슬로건이 적힌 현수막이 바닥에 깔려있다. <#20131005 서울역 광장>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가로등과 간판들의 빛번짐과 파열된 작은 불꽃들로 인해 제법 화려한 모습이다. 특히 계단참에 앉아있는 이들이 들고 있는 촛불빛들은 마치 폭죽같이 보이기도 해서 시위의 장면인지 축제의 관경인지 알 수 없는 미묘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전면에 고정되어 작게 보이는 현수막에 쓰인 “국정원 해체!”라는 슬로건만이 이들이 모인 이유를 짐작해볼 힌트를 던져준다. 4년 전 동일한 자리 - <#20090930 서울역 광장> - 에서는 낮인데도 오히려 사람들과 깃발들이 움직인 자리가 어지러이 자국으로 남아 어둡다. 흐릿한 현수막 가운데 겨우 알아볼 수 있는 “용산철거민”이라는 단어가 이 자리를 어림풋하게 설명해줄 뿐이다. 이처럼 2009년과 2013년, 낮과 밤이 같은 장소를 가로지르며 서로 다른 풍경을 형성하고 있는데, 공통적으로 각 사람들의 모습이나 메시지들은 움직이는 바람에 흐릿한 흔적으로 남게 되었다. <#20121218 광화문 광장>의 밤은 측면에는 이동 중인 차량이 만들어낸 눈부신 빛길이 자리잡았고, 중앙 전면에 설치된 무대로부터 번져나오는 빛으로부터 막연한 열기가 느껴진다. 오른편의 교보생명빌딩에 영사된 “선택!”, 그리고 “대선”이라는 문구에서 이날 밤의 풍경을 예상해볼 수 있다. 반대편에 위치한 <#20130225 광화문>은 낮 시간대에 동일한 장소를 촬영한 것인데, 저 멀리서 다가오는 차량 몇대와 벤치에 앉은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별 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텅 빈 풍경이다. 이 날에는 제 18대 대통령 취임식이 있었다. 두 광화문 광장의 풍경은 밤과 낮, 부산함과 고요함이 교차하는데 마찬가지로, 장면만으로는 당시의 맥락을 정확히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이 작품들은 어떤 이미지들의 탄생이기보다 지움에 가깝다. 각 프레임 안에 위치하는 사람들은 개인으로서의 표정이나 움직임을 잃었다. 이들은 자신보다 더 큰 흐름 속에서 진동하는 일부로서 존재한다. 심지어 이들을 한 자리에 모았던 공통된 아젠다 마저 무엇이었는지 식별하기 어려워진다. 이러한 시선은 작가가 동시에 시작했던 «구미» 시리즈에서 보인 접근과는 사뭇 다른 것으로 보인다. 작가의 고향인 구미는 박정희 대통령의 고향이라는 이유로 경공업 단지들이 급속하게 조성되어, 전국에서 젊은 여성들이 모여들었다. 이와 같이 이 도시의 구성에 영향을 미친 배경에 천착한 결과물은 소도시의 소박한 풍경과 그 속에서 나름의 삶을 꾸려가는 젊은이들의 구체적인 일상들을 담은 사진들이었다. 하지만 광장에 나선 작가는 개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군중에, 그리고 더 나아가 군중이 위치한 광장을 담아내려 한다. 이 전체의 프레임 속에서 움직이는 존재들은 흐려지고 물러나지만 (반)영구적인 지표들, 즉 도로와 건물들은 남는다. 이로써 어떠한 사건, 그 사건의 주인공이고자 했던 개인의 의지, 그리고 이러한 개인들이 모여 뜻을 모아 외쳤던 슬로건들과 발걸음들은 하나의 풍경으로 녹아든다. 하지만 이것은 작가 개인의 의지적인 조작의 결과물이 아니라 광장의 속성일지 모른다. 오히려 작가는 시종일관 어딘가로 모여드는 사람들, 그리고 시대의 풍경에 집중해왔다. 그 결과 구미에서 발견되는 것이 ‘초상’이었다면, 광장에서 발견되는 것은 ‘장면’이었으리라.

광장에 나오는 순간 개인은 집단이 되고, 이야기는 슬로건이 된다. 하나의 특정한 사건은 광장에 자리잡는 순간 탈-맥락화 되어 또 하나의 ‘시위’가 된다. 광장은 그 어떤 개별적인 집단, 시위, 혹은 외침도 기억하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군중이, 엇비슷한 구호를 외치며, 익숙한 속도와 방향으로 발걸음을 움직일 것이다. 집단이 구성되는 것과 동시에 구체성은 뒤로 물러나고 흐려진다. 몇몇 사람들이 결집되었을 때, 그것이 특정한 정치적 노선이나 이해관계의 한 측으로 이해되기 시작하면 나머지 의미들은 탈각된다. 그리고 마침내 개인들의 중층적 정체성들은 모두 ‘시위에 가담한 사람’으로 수렴된다.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모여야 하지만 정작 광장에 모이면 집결했다는 이유로 하나의 풍경으로 녹아드는 탈각과 일반화의 메커니즘. 그러나 한번 더 살펴보면, 이는 광장과 집단의 횡포일 뿐 아니라 서로 스치고 비껴가는 개인들에 대한 징조는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노기훈, “Mise-en-scène” @지금여기 현장사진

 

<싱크 리셋>은 2 채널 영상으로, 작가가 광복 70주년을 맞은 광복절 연휴에 자신의 오랜 친구인 재각과 성국의 하루를 뒤따라 촬영한 영상을 나란히 배치한 작품이다. 성국은 아침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문을 나서 지하 주차장으로 향한다. 재각도 기상하여 옷을 갈아입고는 노란 리본핀이 꼽힌 가방을 매고 골목을 나선다. 재각은 지하철을 타고 한 대학교에 도착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의열중앙 민주열사”를 기리는 현수막을 펼쳐본다. 성국은 내비게이션을 켜고, 노래를 틀고는 낚시터로 향한다. 재각은 이미 대학로 가득 쏟아져 나온 행렬을 따라 걷고, 달리고, 구호를 외친다. 성국은 집에 돌아와 아기의 기저귀를 갈고, 저녁식사를 하고, 9시 뉴스를 틀어놓고 일상적인 대화를 한다. 재각은 친구들을 만나 맥주를 마신 뒤, 계산을 하고 택시를 탄다. 재각과 성국의 일상은 각각 왼편과 오른편의 스크린을 차지하고 주거니 받거니 하며 진행된다. 하지만 그 어느 시점에도 이 둘이 동시에 영사되거나 동일한 장소에서 만나지는 못한다. 이들은 출신지를 공유하고 공통의 친구를 두고 있음에도 서로 다른, 겹치지 않는 일상을 영위한다. 이처럼 평행선을 달리는 두 개인의 뒷모습들은 그 누구의 것이어도 무관하다. 미끄러지고 비켜가고 결코 만나지 못하는 익명의 개인들.

이들이 모인 광장과 그곳에 모인 이들을 다시 살펴보자. 이들은 광장에 모여든다. 각자의 생활반경으로부터 나아와 자신보다 더 큰 흐름에 합류한다. 하지만 몇 시간 뒤에는 다시 각자의 집으로, 각자의 소속 집단으로 흩어진다. 분명 어떤 공동의 방향성이 이들로 하여금 광장으로 모여들게 하였지만 그 속 이야기들은 서로 미묘하게 갈려 있을 터. 광장은 이들의 개별적인 삶과 열망을 지워내고 하나의 거대한 흐름, 혹은 풍경 속에 녹아들게 함으로써 결집시키지만 이렇게 형성된 일시적인 집단은 결코 공동체일 수는 없다. 광장에서의 만남은 또 하나의 미끄러지는 지점인 것이다. 하나의 풍경 앞에서 세 회화 작가들 – 최영, 강원제, 곽상원 – 이 서로 다른 것을 인식하였듯이, 광장이 결집해낸 장면은 또 다른 분산의 시초점이 된다. 그리고 얼마 후 또 다른 사건이 그들로 하여금 일어나 광장으로 향하게 하거든, 동일하게 개별성의 탈각과 집결, 풍경의 형성, 그리고 분산이 반복될 것이다. «미장센»은 ‘정치적’이라 여겨지는 장소인 광장, 그리고 집단을 포착하고 병치시킴으로써 오히려 그 바깥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이 시대에 이 도시의 광장에서 일어나는 ‘정치’의 풍경이 이와 같은 것이라면, 집단의 ‘정치’가 또 다른 파열을 필연적으로 배태하고 있다면, 광장과 집단 바깥의 정치란 어떤 것일까? 그렇다면 그것은 여전히 정치라 할 수 있을까?

 

 필자_유지원 Yu Jiwon / yujiwon0424@gmail.com

 소개_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시각 언어에서 문자 언어로 옮기는 작업에 관심이 있다. 작가/작품/기획자와 대화하고 글로써 소통하는 것에서 공동체의 가능성을 꿈꾼다.

 

노기훈 개인전

미쟝센

10/23 - 11/15

오후1시-7시

지금여기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 23-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