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혜화동1번지 6기동인 봄페스티벌 -극단 창세 <문제 없는 인생>

 

사랑은 피는 것

혜화동1번지 6기동인 봄페스티벌

극단 창세 <문제 없는 인생>

 

글_권혜린

 

2016 혜화동 1번지 6기 동인 봄 페스티벌 ‘심시티(SIMCITY)-도시 삶의 비용’ 시리즈 중 극단 창세의 <문제 없는 인생>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제목이 당연히 반어적으로 문제 ‘있는’ 인생을 그릴 것이며, 그 문제가 바로 도시 자체의 욕망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즉 문제 없는 도시는 없으며, 도시는 문제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문제가 사랑과 결부되었을 때 부분적인 것이 아니라 전존재적인, 전체적인 것으로 확장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연애가 양쪽 집안의 ‘허락’을 받는 문제로 나타날 때 이는 단순히 감정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이고 물질적인 조건과 연결되며, 그 조건을 받아들이는 인물들의 가치관에 따라 그것은 삶 전체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한 문제가 펼쳐지는 과정을 따라가는 즐거움을 이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욕망이 거세된 ‘메마른 도시’

이 작품에서 돋보인 것은 욕망이 거세된 ‘메마른 도시’를 공간 구성을 통해 그려내는 방식이었다. 인물들의 일상생활을 그대로 보여주는 극의 시작에서 물기라고는 하나도 없다. 그저 생활을 영위하는 움직임들이 있을 뿐이다. 특히 평면의 무대가 아니라 모서리를 활용해서 좌우로 시야가 넓게 트이게 해 남녀 주인공의 가족들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한쪽에서는 여자의 집을 보여주는데 누워 있는 할머니와 밥을 먹는 가족이 공존한다. 다른 쪽에서는 남자의 집을 보여주는데 서류를 보는 친척과 벽에 사진을 붙이고 있는 친척 동생이 함께 등장한다.

여기에서 ‘동시에’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통점을 부각하느냐, 차이점을 부각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질 텐데 이 작품에서는 공통점에 초점을 맞춘 것처럼 보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연애의 전제 조건으로서 집안 환경을 최우선으로 꼽는다고 할 때, 표면상으로 기울기는 비슷해 보인다. 가게의 월세를 고민하는 여자의 어머니와, 빚을 걱정하는 남자 의 친척은 비슷하게 현실적인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더 깊이 들어가면 남자 쪽이 약간 더 기울어진다고 볼 수 있다. 친척 집에 얹혀사는 남자는, 여행을 꿈꾸는 친척 동생에게 어려운 집안 사정을 얘기하면서 취직을 강요하는 친척을 보고 독립을 결심하는 것이다. 친척의 말은 그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욕망이 거세당한 현실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보여준다. 여행을 통해 꿈꾸는 자유는 노숙자로 번역되고, 돈이 곧 인격이 된다. 이에 저항하면서 친척 동생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겠다고 하며, 스스로 자유로운 인간이라고 하면서 발화한 욕망은 갑갑한 정장 아래에 숨어 버리고 만다. 그리고 친척 동생이 회식 자리에서 성추행을 당하고, 남자친구와 갈등을 겪을 때 자유로운 삶과는 거리가 점점 멀어진다.

그렇다면 여자 쪽의 집은 어떨까? 여자의 오빠는 반듯하고 모범적인 삶을 사는 전형적인 인물로서 책임을 이야기하고, 여자는 무언가에 빠지는 것 즉 ‘몰입’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자의 오빠가 객관적으로 잘 사는 것이자 잘 사는 것으로 남들에게 ‘보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여자는 주관적인 것으로서 스스로 잘 사는 것으로 ‘느끼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에 따르면 여자의 오빠는 모범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발화한 적이 없는 셈이다. 그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당위만 여동생에게 이야기하며 그것은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난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책임의 대상에 빠지지 않아도, 몰입하지 않아도 되며 예상 가능한 것이다. 이는 여행을 갈 때 여자의 오빠가 계획에 따라 모든 것을 예상 가능한 범위에서 결정하고자 하는 것과 달리, 발길 닿는 대로 골목길을 돌아다니고자 하는 친척 동생이 여행을 자신의 욕망에 따라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도 연결된다. 그러니, 결국 책임과 욕망의 대조를 통해 메마른 도시에 비를 내리게 하는 것이 이 작품의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추억이라는 공간

그러나 단순히 욕망만을 내세우게 된다면 그것은 판타지에 그칠 것이다. 이 작품은 사랑이라는 환상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현실 속의 문제로 보여주면서 그 안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한다. 사랑이 현실이 되는 문제에서 중요한 화두는 ‘집’과 ‘방’이다. 특히 도시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집과 방은 그 자체로 ‘도시에서의 삶의 비용’이며,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두 남녀가 함께 몸을 누일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서울에서 두 사람이 자립하여 방 한 칸 마련하는 일조차 쉽지 않다. 남자가 독립을 하고, 여자가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와 두 사람은 김포에서 동거를 시작(*)한다. 그리고 자본주의적인 책임을 강조했던 친척이 두 사람의 방에 방문하여 자신의 셋방살이를 추억하는 부분은 일종의 변화를 보여준다. 그러한 변화는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것이 꼭 돈이 아니라는 사실을, 추억도 삶의 자양분이라는 사실을 말해 준다. 이것이 일견 상투적으로 보일 수 있어도 그것이 공간과 결부된다면 ‘공간=돈’이라는 도식이 ‘공간=추억’이라는 도식으로 탈바꿈된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팸플릿에 나온 것처럼 양쪽 집안의 가족들이 남녀의 만남을 억압하고 통제한다거나, 외압을 한다는 것은 실제 작품의 내용과는 다른 것처럼 보인다. 여자의 집안에서는 실질적으로 만남을 반대하지만, 남자의 집안에서는 이들의 교제에 대해 명시적으로 반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자의 집안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구조는 책임과 욕망의 충돌로서 친척-친척 동생의 관계에 해당한다.)

 

 

노동하는 몸, 반복, 삶

집/방이 돈에서 추억으로 의미가 변화하는 실존적인 공간이라면, 노동하는 몸 역시 실존적인 장소로서 변화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이 작품에서는 중간 중간에 여성 인물들/남성 인물들/전체/개인이 무리를 지어서 노동을 몸으로 표현하는 장면들을 보여준다. 절도 있게 반복되는 동작들은 인물들의 비장한 표정과 함께 극적인 느낌을 준다.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는 일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절단된 노동들이 삶을 구성하고 있음을 몸의 동작들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노동하는 몸만 보여주는 것이 이 작품의 전부는 아니다. 그것은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여자의 말에 여자의 아버지가 책을 읽는 동작을 보여주듯이, 언제나 ‘다른’ 몸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하는 몸’으로서의 반복도 삶이지만, 그 반복을 넘어서는 것도 삶이다. 그리고 결국 그러한 반복을 궁극적으로 넘어서는 것은 ‘사랑하는 몸’일 것이다.

 

 

새로운 웰빙(well-being)을 하는 법

이의 연장선에서 이 작품에서는 ‘문제 없는 인생은 없다’는 식으로 문제만 벌여 놓고 끝내지는 않는다. 결국 사랑을 달성하는 남녀의 모습을 통해 문제 없는 인생이 곧 행복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하고 싶은 것을,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극중에 나온 대사대로 ‘시작이라도 하는 것’이다. 인생에서 자기결정권을 갖는 것이다.

이렇게 사랑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잘 사는 것이다. 단순히 물질적인 부나, 정신적인 만족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삶을 사는 웰빙(well-being). 그러나 이를 한때 불었던 웰빙 열풍과 동일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웰빙이 ‘상품’으로서 자본주의적인 것으로 전유되면서, ‘유기농’이라 이름 붙은 (비싼) 것들을 과시하는 이미지를 상상하면 될 것이다. 한마디로 진정한 웰빙을 하려면 진정한 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만큼 자본주의에 얽매여 있는 게 또 있을까? 그러니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웰빙이 아닌, 새로운 웰빙을 말해야 할 것이다. 사랑하면서 잘 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이 세상을 상상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남녀가 추구하는 사랑과 그에 연결된 행복이 곧 모험이 되는 것에도 수긍이 간다.

그러나 이러한 모험을 현실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간극들을 뛰어넘어야 할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그 과정을 남녀의 사랑이 이해 받는 지점을 인위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나타내지 않고, 물 흐르듯이 흘러가게 한다. “죽을 것처럼 보이지만 살려고 꽃을 피우는 화분”을 상징으로 보여줌으로써 봄으로 비유되는 해피엔딩을 예고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간극을 뛰어넘는 것은 곧 피어나는 사랑을 뜻할 것이다. 물론 이 작품이 보다 실험적이기 위해서는 ‘문제 없어 보이도록 포장하는 것이 오히려 더 큰 문제’라는 역설을 끝까지 밀고 나가 파국을 보여주는 것이 좋았을 수도 있다. 주인공 커플 외에 여자의 오빠와, 남자의 친척 동생의 연애까지 나와 내용이 분산되는 느낌도 있다. 하지만 작품을 본 뒤 결국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어깨를 나란히 한 연인이 같은 곳을 응시하는 장면이었다. 그 시선에서 피어나는 사랑이 메마른 도시를 촉촉하게 할 것이다. 그러니 때로는 고통이라는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사랑은 피게 되며, 피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

 

*사진제공_극단창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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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SNS페이지 >>> https://www.facebook.com/hhdlab 

필자_권혜린 (blog.naver.com/grayhouse31)  소개_작은 매처럼 책과 책 사이를 날아다니고 싶은 ‘골방 탐험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