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가볍고도 무겁게, 지금 여기의 이솝우화 - 2017 산울림 고전극장 <이솝우화>

2017. 3. 1. 09:35Review

 

가볍고도 무겁게, 지금 여기의 이솝우화

2017 산울림 고전극장 <이솝우화>

공상집단 뚱딴지 / 황이선 각색연출

 

글_황지윤

 

 

짧고 간결하다. 유쾌하면서 통렬한데 내가 무언가를 잘못한 듯, 마음 한쪽이 찝찝하다. 성찰 지점이 있는 거다. 교훈적이지만 그렇다고 고지식한 것은 아니다. 짤막한 이야기 속에 큰 세계가 녹아들어 있다. 마치 한 편의 우화를 읽은 듯하다. 올해 산울림 고전극장의 첫 작품 <이솝우화>(공상집단뚱딴지·황이선 연출) 이야기다.

 

봄날의 동물들

포도를 보며 입맛을 다시던 허기진 여우들에겐 반가운 소식! 단출히 꾸며진 무대 위에 느닷없이 귀여운 새끼 양이 나타난다. 무리에서 뒤처져 홀로 남은 새끼 양의 등장에 여우들은 기쁨의 춤을 춘다. 이제 포도를 보며 헛배를 채우지 않아도 된다. 포동포동한 새끼 양을 먹을 생각에 그저 기쁘다. 이들은 새끼 양의 통통한 손과 발을 만지작거리며 감탄을 금치 못한다. 새끼 양 역을 맡은 배우는 실제로도 어린 배우다. 친절을 가장한 여우들과 함께 무대 위를 폴짝거리며 누비는 새끼 양의 귀여움에 객석에서조차 탄성이 터져 나온다.

연출은 단편적인 우화를 하나의 개연성 있는 이야기로 엮어낸다. 이야기는 봄날의 여우, 여름의 바다, 가을의 바람과 별, 겨울의 귀환으로 나뉜다. 새끼 양을 찾아 나선 여우의 이야기가 계절의 흐름에 따라 이어지고 극을 이끌어 간다. 급류에 휩쓸려 사라진 새끼 양을 찾기 위해 여우 한 마리가 들판을 헤매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넌다. 긴 여정을 거치며 모기, 개구리, 늑대 등 다양한 동물을 만난다.

우여곡절 끝에 여우는 새끼 양과 상봉한다. 여우는 새끼 양에게 그만 무리로 돌아가라 말한다. 새끼 양을 보면 자동반사적으로 입맛을 다시고 마는 자신의 ‘본능’을 알기 때문이다. 헤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새끼 양을 밀어내는 여우에게 새끼 양이 천연덕스럽게 묻는다.

 

“자연스러운 게 뭐야? 여우가 새끼 양을 잡아먹는 게 자연스러운 거야?”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듯

고대 그리스, 노예 아이소포스가 주인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엮어낸 것이 ‘이솝우화’다. 주인에게 차마 직접 말할 수 없는 불만을 이야기 속에 담아 우회적으로 전달한 것이다. 이솝우화에는 이 세계의 불합리함에 대한 아이소포스의 비판적 시각이 녹아있다. 겉보기엔 동물들의 이야기지만 인간의 삶에 대한 비유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새끼 양이 여우에게 던진 ‘자연스러움’에 대한 의문은 본 공연의 핵심 주제 중 하나다. 자연스레 흘러가는 계절과 달리 여우는 자연스러움을 거스르는 여정을 시작한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넘어가는 통통한 새끼 양을 겨우 찾아내더니 먹기는커녕 무리로 돌아가라고 한다. 이런 여우는 자연스러운가? 하지만 새끼 양과 친구가 돼 버린 여우에게 사랑하는 친구를 잡아먹는 본능은 더는 자연스럽지 않다. 자연스러움은 절대적이지 않으며 자연스러운 위치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유동적으로 흐르는 것임을 일러준다.

자연스러운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여우는 “위기에 처한 새끼 늑대를 구하러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 말한다. 자연스러움이란 계절처럼 시시각각 변하지만 그럼에도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듯” 나름의 질서가 있다. 마땅히 해야 할 옳은 일들이 있다는 의미로 들린다. 덫에 걸린 새끼 늑대를 구하지 말고 죽게 내버려 두자는 늑대 우두머리의 태연함이야말로 가장 부자연스러운 일로 느껴진다.

다른 늑대들의 성화에도 꿈쩍하지 않는다. 덫에 걸려 서서히 죽어가는 새끼 여우들을 구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챙기는 늑대 우두머리의 모습은 어딘가 낯익다. 새끼 늑대. 덫. 죽음. 내버려 두자. 부모. 울음. 통곡. 아마 많은 관객이 동물 이야기에서 세월호 사건을 읽어냈으리라. 극은 통통 튀는 풍자에서 묵직한 은유에까지 가닿는다. 늑대 이야기는 우화에서 현실로, 고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는 교량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음악과 움직임 그리고 객석에서

다채로운 소리와 배우들의 움직임이 돋보이는 공연이다. 무대 위의 음향 효과 대부분이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소리로 이루어져 관객을 자극한다. 소리만 듣고 있어도 그다지 지루할 것 같지 않다. 구시렁거리는 개구리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조용히 침묵하는 것과 같은 재치 있는 장면 연출이 많다. 각 동물의 특징을 소리와 엮어 섬세하게 표현한 것 역시 공연 보는 재미를 더해 준다.

객석 맨 앞에 앉아 있던 어린 관객이 기억에 남는다. 어린 관객은 새끼 양으로 분한 배우의 등장을 무척 반가워하기도 하고 음향 효과에 즉각적이고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공연 말미 배우들이 북을 두드리며 웅장하고 쾌활한 연주를 펼칠 때는 자리에서 일어나 작게 춤을 추기도 했다. 공연에 대한 가장 즉물적인 반응이 아니었을까.

본 공연의 미덕은 짧고 간결함에 있다. 지나치게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 하지 않아 오히려 확장성이 넓다. 어찌 보면 귀엽고 아기자기한 소품 같지만 공연 중간 중간 날카로운 문제의식이 슬며시 묻어 나온다. 동물의 이야기를 통해 현실을 떠올리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고지식한 장광설이 아니다. 그 누구도 무엇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공연장을 나서는 데 마음 한켠이 불편하다. 뭔가 찔렸던 거다. 정말이지 한 편의 이솝우화다. 

 

 

 

* 사진제공_산울림 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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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_황지윤

 소개_연극을 보러 다니는 철학도입니다.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것들에 무한한 애정을 품고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