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연극 <상처투성이 운동장> - 상처를 만나다

2017. 1. 24. 09:27Review

 

 

상처를 만나다

연극 <상처투성이 운동장>

극단 디렉터그42

 

글_권혜린

 

 

 

 

자신의 삶을 기억할 때 대부분은 행복하거나 좋았던 일 위주로 재구성하고 싶을 것이다. 인생의 목적이 불행이 아닌 행복인 이상 그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인생의 대부분이 상처투성이였고, 고통으로 얼룩져 있을 때 그 상처들을 외면하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군다나 그 상처를 매개로 한 만남이 강렬할수록 마치 상처 자체를 만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상처투성이 운동장>(라지브 조세프작, 마두영 연출)은 이렇게 각자의 삶에서 만난 수많은 상처들을 나누는 남녀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8살, 13살, 18살, 23살, 28살, 33살, 38살 등 5년 주기로 이들의 만남이 그려지지만 무대에 있는 벽에 숫자들이 직선이 아니라 별자리 모양처럼 새겨져 있듯이, 이야기는 선조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나이를 넘나들면서 상처들을 교류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상처들을 단순히 열거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살면서 상처 하나 없는 사람들은 없지만, 상처들을 일일이 기억하고 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난히 많은 상처‘들’을 중심으로 소년과 소녀의 만남을 직조해 내는 이 작품은 상처로 연결된 인물들의 관계를 아름답게 보여준다. 상처를 입은 장면들은 소리로 처리하고, 그 소리가 나오는 동안 배우들은 옷을 갈아입으면서 다른 나이들을 건너간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은 뒤, 상처를 입은 ‘이후’ 이들의 만남이 중적으로 나타난다. 마치 서로의 상처가 서로의 존재를 부르는 것처럼.

 

 

 

 

상처의 색

무대는 사방이 온통 흰 벽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시작한다. 그곳은 배가 아픈 소녀 케일린과 눈에 상처가 난 소년 더그가 만나는 양호실이 된다. 병원을 닮은 백색은 상처와 연관되는 색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상처는 다양한 색을 담고 있다. 8살의 아이에게 흉터는 고통이 아니라 영광의 상처이다. 지붕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떨어진 더그는 지붕에서 날고 싶어 하고, 늘 배가 아픈 케일린은 지붕에 있는 부엉이 조각상을 천사라고 믿는다. 아직까지 이들의 대화는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함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서로의 상처에 관심을 보인다. 케일린이 더그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은 아프냐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상처를 만지는 것을 통해 최초의 접촉을 시도한다. 상대방의 상처를 느끼는 것은 타인의 고통에 다가가려는 행동처럼 보인다.

그러나 23살 때 케일린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더그가 폭죽 때문에 눈을 다쳤을 때, 케일린이 만지면 상처가 낫는다고 믿는 더그는 눈을 만져 달라고 하지만 케일린은 거절한다. 이처럼 이들의 상처는 곧바로 동일시되지 않으며, 이들의 만남은 연속해서 이어지지 않는다. 상처를 통해 만났다가 단절되는 과정이 5년마다 반복되는 것이다. 더그는 스케이트, 소스, 자전거, 결막염, 폭죽 때문에 지속적으로 눈을 다친다. 케일린은 다리와 배에 자해를 한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고통의 색, 어둠의 색이라고 하는 것은 부족해 보인다. 상처의 색은 곧 만남의 색이 되며, 서로의 상처가 만나는 과정에서 그들의 관계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상처의 넓이

그들의 상처는 서로에게 다가가는 과정을 통해 점차 넓어진다. 13살의 그들은 연습을 한다면서 키스를 한 뒤 같은 양동이에 함께 구토를 하기도 하고, 함께 춤을 추기도 한다. 구토를 자주 하는 케일린을 위해 일부러 구토를 하는 더그의 모습은 케일린이 가진 상처를 공유하고 싶은 몸짓을 보여준다.

또한 28살에 결혼식에서 도망치고, 지붕에서 벼락을 맞는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더그를 찾아온 케일린은 더그가 깨어나기를 바라면서 기도한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해준 것 중에 가장 좋은 것 열 개를 더그가 해주었다고 말한다. 더그가 자신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아마도 케일린이 처음으로 자신의 진심을 전했을 이 순간에 더그가 깨어났더라면 그들의 관계가 진전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이들의 만남은 또다시 어긋나게 된다.

이렇게 이들의 상처는 서로에게 번지면서 넓어지는 듯하지만 두 사람이 합일되는 것은 어렵다. 18살 때 더그는 케일린이 자해한 상처를 보고 그 상처를 자신에게도 옮겨 달라고 한다. 상처를 나눠 갖는 사이가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에게서 해방되지 못하는 케일린의 정신적인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물리적인 상처를 공유한다고 해서 내면의 상처들까지 바로 공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는 시간을 뛰어넘어 33살 때, 요양 병원에 있는 케일린을 더그가 찾아왔을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더그는 케일린이 천사라고 생각했던 부엉이 조각상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케일린이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뒤 왜 자신을 찾지 않았냐고 묻자, 더그는 폐허 속에서 천사와 성인들에 둘러싸인 자신의 모습이 자신의 인생 같았다고 이야기한다. 천사는 언제나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다. 그 천사 옆에 가지는 못하는 것이다. 더그에게 천사와도 같았던 케일린 역시, 천사로 알았던 부엉이 조각상이 추락한 것처럼 더그의 옆에 있기는 어렵다. 더그는 자신이 이대로 흘러가게 내버려둘 거냐면서 자신을 놓지 말아 달라고 하지만 케일린은 더그의 절박한 마음을 외면한다.

 

 

 

 

상처의 간격

그렇게 어긋나는 이들의 관계는 다시 23살로 돌아가, 더그가 케일린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했을 때 그 고백이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휘발되는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케일린에게 상처를 주었던 케일린 아버지에게 심한 말을 할 정도로 케일린을 좋아하는 더그는 케일린의 옆에 있고 싶어 하지만 케일린은 거부한다. 각자 상처를 지니고 있다는 점은 닮아 있지만, 그 상처들 사이의 간격을 메우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떨어져 있다가 38살에 만난 그들은 운동장을 닮은 아이스링크에서 옛날을 회상한다. 휠체어를 탔기 때문에 더 이상 지붕에서 날지 못하는 더그는 비 오는 날 전신주에 올라갔다가 사고를 당한다. 더그는 그 이유를 케일린의 전화번호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더그는 케일린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위로 올라갔지만 케일린은 보이지 않는다. 케일린은 더그가 자신의 비극적인 운명에 얽히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렇게 그들은 떨어져 있는 동안 서로에 대해 자세히 모르지만 결국 서로를 찾아온다. 마지막에 그들은 여전히 함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던 이들의 관계처럼 마지막에 케일린이 더그의 흉터를 만지려고 했을 때 이번에는 더그가 이를 거절한다. 그 정도의 거리가 이들의 간격일지 모른다. 더그는 충분히 날아다녔으며, 그만큼 케일린을 찾아다녔으며, 이제 그들은 운동장에서 그네를 탔던 이야기를 하면서 나란히 서서 웃을 수 있는 것이다. 상처로 점철된 삶이지만 그들은 상처투성이의 삶에서 비로소 편안함과 안락을 찾는다. “난 다른 사람이 아냐. 난 너야.”라는 말처럼 두 사람은 상처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맺는 관계를 맺지 못하고 약간의 간격을 두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간격 안에서 비로소 서로의 존재를 통해 위로를 받는다.

이처럼 <상처투성이 운동장>은 상처로 만나는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는 장면을 통해 묘한 위로를 준다. 상처가 단순히 고통으로 환원되기만 하는 것은 아니며, 상처를 만난다는 것이 반드시 절망적이거나 나쁘지만은 않다는 소박한 위로를 건네는 것이다.

 

 

*사진제공 >>> 디렉터그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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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명_권혜린

 소개_작은 매처럼 책과 책 사이를 날아다니고 싶은 ‘골방 탐험가’입니다.

 http://blog.naver.com/grayhouse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