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지만 낯설지 않은 코로나19 시대] 4. 재난의 얼굴

 

처음이지만 낯설지 않은 코로나19 시대(4)

 

재난의 얼굴

 

'자고 일어나니 다른 세상이다.' 요즘 우리에게 딱 들어 맞는 말인것 같습니다. 코로나19는 사회의 취약한 부위를 강타했습니다. 네 '우리'요.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지만 연쇄작용으로 인한 또 다른 이슈들이 계속 달려옵니다. 거의 모든 작업이 취소 및 연기된 가운데, 삶을 영위하기 위해 가졌던 다양한 정체성도 제 역할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가 힘들긴 하지만 낯설지는 않습니다. 예술은 재난 앞에 유독 취약했으니까요. 인디언밥은 기획연재를 통해 예술생태계의 다양한 지점에 존재하는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이를 통해 각자가 발견한 생활 속 '절망'혹은 '전망'을 공유해보려 합니다. 

 

글_강지윤(시각예술가)

 

하. 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할 말이 무척 많다고 생각했다가도 문득 할 말을 잃게 된다. 할 말이 없게 되는 것은 이렇게 ‘재난’시대의 ‘예술가’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 영 낯설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시작은 해야 글을 쓸 수 있으니 최근의 나의 변화부터 말해보기로 한다.

 

난 한 달여 전부터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인터넷 쇼핑몰의 물류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이곳에서 내가 하는 일은 포장이다. 만약 당신이 경기 서북부, 그리고 서울 서북권에 산다면 당신들이 이 쇼핑몰에서 사는 물건 중 일부는 내가 포장하는 것일 수 있다.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은 아닐까, 나는 포장을 하면서 주문자의 이름을 살펴보곤 한다. 아직까지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누군가의 아는 이름을 발견한다면 무척 반가울 것 같다.

 

사진출저_더롱타크공식누리집

 

내가 이곳에서 일하기로 한 것은 물론 코로나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 그 이전에 이미 결정된 일이기도 했다. 근 5년간의 내 생계를 간신히 유지시켜줬던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사업에 올해는 참여할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일종의 안식년과 같은 개념으로 이른바 고인물을 빼내고 사업에 처음 참여하는 사람들의 기회를 최대한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올해 처음 도입된 이 방침에 찬성한다. 한편으로는 5년간 이 사업에 참여했지만 ‘창직’은 요원한 일이라는 점에서도 이번에 참여제한이 걸린 것이 오히려 잘된 일이다 싶었다. 언제까지 임시방편에 기대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또 애초에 사업에 지원할 수 없으니 합격할지 아닐지 마음 졸일 필요가 없어서 후련했다. 

하지만 다른 예술 분야의 일들은 여전히 페이가 형편 없을 뿐더러 비정기적이었고, 기획자나 예술행정가가 아닌 내가 할만한 일들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예술 분야에서 일자리를 찾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통장 잔고가 가볍다 못해 투명할 지경이었다. 다행히 작년에 이사온 이 동네에는 공장과 물류센터가 근처에 아주 많았고 그곳에서는 매일같이 사람을 뽑고 있었다. 아주 기본적인 질문과 대답이 오가는 면접을 통해서 3개월을 계약했다.

 

그렇게 흘러들어온 이곳에서 하는 임노동은 노동강도가 생각보다도 쎘다. 일 년을 이렇게 일하면서 대출금도 갚고 차도 바꿔야지, 했던 야심찬 계획은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첫 계약한 3개월만 버텨도 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의 노동현장은 -본 적은 없어도 감히 상상컨대- 전쟁 중인 배 밑바닥에서 노를 젓는 광경과 비슷하다. 레일을 따라 죽 늘어선 수백명의 사람들, 속도 좀 올리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관리자, 그리고 때맞춰 일어나는 (마감)웨이브. 까만 롱패딩이 거의 정해진 복장인 사람들은 일개미처럼 보이기도 한다. 관리자들은 사람이 일분이라도 쉬는 꼴을 못 보기 때문에 한소리 듣지 않으려면 뭐라도 하는 척 해야 한다. 손이든 발이든 부지런히 놀리는 게 중요하다.

이곳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최근 코로나19의 영향을 받았다. 자체 실직한 자영업자, 투잡러, 휴학생이나 온라인 개강을 한 대학생, 부부나 커플, 모녀관계나 부자관계 등등의 가족들. 그래서 그런지 서로가 서로를 짠한 얼굴로 바라본다. 이제 안면을 트고 눈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이 늘었다. 이 사람들 중에 작가들이 몇 명쯤 있겠지, 생각하면 슬며시 웃음이 난다. 그들 역시 짠한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인왕산 달밤등반 ⓒ강지윤

 

그런데 그동안 예술가들에게 재난의 시기가 아니었던 적이 있었을까. 나는 영 이 상황과 고민들이 낯설지가 않다. 애시당초 재난이란 무엇일까? 이번에 코로나19의 시기를 지나면서 재난의 얼굴이라는 것은 우리 예상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쓰나미와 같은 자연재해, 혜성 충돌이나 핵전쟁, 좀비를 다룬 영화에서 보이는 모습이 아니었다. 당장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폭동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다. 많은 것들이 결핍이 아닌 과다 비축의 상태로 남고, 겉보기에는 썩 괜찮아 보인다. 공원에 나가보면 주말도 아닌데 많은 사람들이 나와 천천히 여유롭게 산책을 한다. 아이들은 까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하늘은 파랗고 봄꽃은 만개했다. 반면, 사람들은 마스크나 손세정제를 가능한만큼 구입해 비축하고, 해외에서는 생수와, 또 기이하게도 휴지가 동이 났다고 한다. 집집마다 창고에 두루마리 휴지가 새하얗게 들어찬 모습을 상상해 본다. 물류센터에는 상품들이 그득히 쌓여있고, 사람들의 온라인 장바구니에도 물건이 그득하다. 하지만 초조함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동안 전시든 일자리든 덥썩덥썩 물었던 것은 이 기회가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그 초조함 때문이었다. 남들이 볼 때 ‘그래도 너는 잘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면 그또한 이 초조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연말이면 기진맥진했고, 그동안 모은 돈으로 근근히 겨울을 났다.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었고,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었다. 그동안 나의 생계는 얼마나 얇디 얇은 실낱 같았는지. 나는 생애 첫 4대보험을 여기 물류센터에서 가입했다. 이 코로나19의 시대에, 이곳에서 4대보험을 처음 가입했다는 것이 우스웠다.

그동안 나는 재난의 얼굴을 코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했던 걸까. 재난의 얼굴은 이미 익숙한 얼굴이 아닐까. 지원사업에 됐다고 엄마한테 얘기했을 때, ‘그럼 넌 얼마를 받아?’ 라는 질문을 되돌려 받고 ‘나한테 무슨 돈이 돼… 다 작업비지...’라고 대꾸하는 퉁명스러움. 잠시잠깐 일했던 기관들에게 해촉증명서 발급을 부탁하는 메일을 쓰고 말미에 덧붙인 ‘감사합니다.’ 라는 문장의 공손함. 그만둘 꺼라는 친구들의 말. 그럼에도 우린 그만두지 않을꺼라며, ‘지금 그만두면 뭘 하려고?’ 무례하게 웃어넘기는 마음. 그것들이 모두 다 재난의 얼굴이 아니었을까. 

물론 각 기관마다 코로나 피해의 구제도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데, 예를 들면 코로나로 피해를 입은 예술가들을 구제하는 사업공모에서 공연이나 전시가 ‘취소’되거나 ‘연기’된 예술가들을 지원한다. 그런데 나에게 그 사실을 증명하라고 한다면, 그건 불가능하다. (많은 재단이 간접적인 피해까지 지원대상으로 포함하고 있음은 잘 알고 있지만, 여기에서는 문자 그대로 해석해보기로 한다) 일년이나 먼저 전시 섭외가 들어온 적은 한번도 없었으므로 ‘아니, 선생님, 어쩌면 제가 전시를 할 수도 있었다니까요?’ 라고 우길 수는 없잖은가. 그렇지만 나는 이번 ‘재난’으로 더 많았을 수 있는 나의 기회가 사라짐을 느낀다. 가능성의 가능성이 사라진다. 재난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가능성의 가능성, 그 가능성의 가능성조차 없애버리는 것.

사진출처_더롱다크공식누리집

그런데 코로나19가 무사히 종착점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보통의 삶으로 돌아갈까. 무엇보다 묻고 싶은 것은 우리에게 보통의 삶이라는 것이 지금과 근본적으로 다를까, 하는 점이다. 일년 이상을 계획할 수 없고, 언제까지 지원사업에 매달려야 하나 한탄하면서도 대안을 찾지 못해 수십개의 지원서를 쓰고, 일반 시민으로서의 사회적 안전망도 구축할 수 없으며, 여전히 만연한 성폭력을 농담거리로 삼는 것이 우리들의 보통의 삶이었다면, 나는 보통의 삶은 결코 돌아가고 싶은 곳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누군가들은 코로나19 이후의 시기는 그 이전과 절대 같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게 정말이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당부의 말을 드리자면 쇼핑몰에서 물건을 결제할 때 왠지모를 미안한 마음에 여러 개를 모아놨다가 한 번에 결제하는 미덕을 보여주실 필요는 없다. 일한지 한 달만에 손목에 병을 얻었다. 

 

필자소개_강지윤

무슨 작업 하세요? 라고 묻는 질문에 답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 요즘에는 무슨 일 하세요? 라고 묻는 대답도 마찬가지다. 삼 개월 계약직 노동자이자 설치와 영상 작업을 하는 두 고양이의 집사. postpast.creatorlin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