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지만 낯설지 않은 코로나19 시대] 5.파자마가 잘 어울리는 여자

 

 

처음이지만 낯설지 않은 코로나19 시대(5)

 

 

파자마가 잘 어울리는 여자

 

'자고 일어나니 다른 세상이다.' 요즘 우리에게 딱 들어 맞는 말인것 같습니다. 코로나19는 사회의 취약한 부위를 강타했습니다. 네 '우리'요.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지만 연쇄작용으로 인한 또 다른 이슈들이 계속 달려옵니다. 거의 모든 작업이 취소 및 연기된 가운데, 삶을 영위하기 위해 가졌던 다양한 정체성도 제 역할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가 힘들긴 하지만 낯설지는 않습니다. 예술은 재난 앞에 유독 취약했으니까요. 인디언밥은 기획연재를 통해 예술생태계의 다양한 지점에 존재하는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이를 통해 각자가 발견한 생활 속 '절망' 혹은 '전망'을 공유해보려 합니다. 

 

글_임현진(독립 프로듀서)

 

원하는 만큼 늦잠을 자고 일어난다. 오늘의 할 일들을 정리하고, 내 방 책상 앞에만 머무른다. 먼 미래의 계획은 세우지 않는다. 이곳은 이 나에게 이미 세상의 전부이다. 인생도 처음이라 서툰데, 재난도 처음이다. 어쩌면 아바타가 나를 대신해야할지 모른다. 어쩌면 모두 얼굴을 가린 채 사진으로 스스로를 대신하며 모임을 해야 할지 모른다.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았었다면 행복했을까. 나는 파자마가 잘 어울리는 여자가 되었다. 

일본 한 대학교에서 아이패드 스크린을 통해 아바타가 졸업식에 참석하고 있다. © TBB University
영국 거리예술가 연합회(NASA UK)에서 페이스북에 안부를 전하며 사진을 올렸다. © Mandy Dike

 

언-프로듀싱(Un-producing)*

 

나는 독립 프로듀서이다. 다만 지금은 잠시 언-프로듀싱을 하고 있을 뿐. 원래는 거리예술 공연을 기획하고, 종종 축제에서 일을 했다. 국내 공연들을 해외에 소개하고, 반대로 해외에서 예술가들을 초청하기도 했다. 해외 동료들과 협업을 하거나 리서치를 하기 위해서 해외 출장도 잦았다. 하지만 지난 3월 코로나19가 전 세계적 유행이 된 이후, 연말까지 대부분의 계획들이 취소되거나 연기되었다. 유독 올해는 국제교류와 관련된 계획들이 많았던 터라 보상이나 대체가 불가능한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한동안 예고 없이 우울함이 찾아왔다. 

 

나는 월급을 받지 않는다. 내가 벌이는 일들이 하나 둘씩 모여 삶을 유지하는 수단이 되었는데, 지금은 그 수단들이 하나 둘씩 끊겼다. 예술계를 위한 지원금과 긴급 사업들은 숨 고를 틈 없이 나를 다음 삶으로 재촉하면서도, 이 다음에 어떤 세상이 올지 고민하게 하거나 선뜻 나아갈 용기를 주지는 않았다. 다시 모든 것은 나에게 달려있다. 당분간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일을 해야 한다. 어쩌면 앞으로도 쭉 그래야할지 모른다. 낯선 오늘이 어쩌면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우리에게 다시 찾아올 것 같다. 

* 언-프로듀싱의 개념은 코로나19 이후 호주의 독립 프로듀서 에린 밀네(Erin Milne)가 처음으로 고안했다. 기획자의 활동들이 대부분 무언가를 기획하지 ‘않는’ 것에 노동력을 들이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변화가 필요했다. 당연했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시기가 오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지난 두 달간 내가 생존을 위해 찾은 대안들은 돈은 벌어주지 못했지만 대부분 재밌었다. 

 

틈틈이 베를린 필하모닉의 디지털 콘서트홀 공연을 틀어놓고는 글을 많이 쓰고 많이 읽었다. 프랑스 거리예술지구의 온라인 거리예술 강좌가 무료로 열려서 노트와 펜을 들고 오랜만에 뭔가를 공부하기도 했다. 수도 없이 이어지는 온라인 포럼과 회의 탓에 내 방은 사무실이 되었고, 시간이 많아진 덕에 전보다 동료들, 친구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흐드러진 벚꽃을 드라이브-쓰루로 구경했다. 그러고 보니 이맘때면 늘 바빴던지라 꽃구경을 해본 것도 오랜만이었다.

 

사람들을 모아서 무언가를 하는 일은 여전히 의미 있었다. 파자마를 입고 셔츠만 갈아입은 채 포럼을 진행했다. 대화가 필요하다면 수단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모았다. 모임의 방법이 달라졌을 뿐, 우리는 수시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우리의 지금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세상을 조심스레 조망했다. 축제에 고용되었다가 일을 잃은 스태프들은 스스로를 ‘축제 메뚜기’라고 부르며 모였고, 우리가 함께 겪은 일들과 앞으로에 대한 고민들을 이야기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함께 공부하고 싶은 주제들을 공유하고 어쩌면 지금이 적기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유토피아적인 축제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거리예술계 동료 우석훈은 그림을 그리는 광대이다. 그는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를 실천에 옮겨 거리예술단체의 공연과 상징들을 그림으로 그려 각 단체에게 선물하는 프로젝트 ‘여기 거리예술이 있다’를 진행했다. 신청한 이들은 모두 그가 직접 그린 그림을 선물 받았는데, 그림만큼이나 그 과정이 의미있었다. 스스로가 공연자인 것을 잊을 만큼 오랫동안 무대에 서지 못했던 이들은 그에게 그림을 요청하며 자신의 작업을 설명해야 했고, 함께 대화하면서 작업의 의미와 지향점들을 수면 위로 다시 올렸다. 그가 직접 그려 선물한 그림들은 여전히 여기 우리들이 있음을 이야기했고, 누군가에게는 소박한 위로가 되었다.

 

반짝 프로젝트 '여기 거리예술이 있다' (c) 우석훈
반짝 프로젝트 '여기 거리예술이 있다' (c) 우석훈

 

반짝 프로젝트 '여기 거리예술이 있다' (c) 우석훈
반짝 프로젝트 '여기 거리예술이 있다' (c) 우석훈

 

다시 프로듀서가 될 수 있을까

 

얼마 전에는 호주, 유럽, 아시아의 독립 프로듀서들과 짧은 온라인 미팅을 했다. 서로의 동향을 묻고 사뭇 진지한 대화들을 주고받다가 문득 누군가 최근 성취감을 느낀 일이 무엇이었는지에 물었다. 이야기는 순식간에 퍼즐로 옮겨갔다. 한 동료가 자신이 최근 완성한 퍼즐이 얼마나 우스운 모습이었는지 이야기를 하자마자 저마다 최신 퍼즐 정보를 내어놓기 시작했는데, 세련된 그라데이션 퍼즐부터 홀로그램처럼 보이는 퍼즐까지 있었다. 이전에는 듣도 보도 못한 온갖 퍼즐들을 보며 프로듀서라는 이들의 정보력에 새삼 놀랐다.

 

“이 모든 일들이 끝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뭐야?”

 

“좋은 공연을 보러 갈거야. 엄청나게 좋은 공연. 그리고 극장 앞 로비에서 관객들에 둘러싸여서 같이 이야기 나누고 싶어.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것을 보고, 신나게 떠들고 논쟁하고 싶어”

 

“예술가들의 야망을 다시 만나고 싶어. 그들의 발칙한 상상들, 그리고 스케일을 넘나드는 엄청난 일들을 마주하고 싶어. 크고 작은 작업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던 때가 다시 돌아왔으면 해. 그 일들에 다시 뛰어들 수 있다면 좋겠어.”

 

“사실 다시 공연을 홍보하고, 투어를 위해 일하고 싶지 않아. 어쩌면 이제 이성적으로 생각해야할지 몰라. 우리는 어떠한 단서도 없이 그저 지금에 머무르고 있어. 언젠가 다시 격리되는 시대가 온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2021년이 온다면, 그 때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그 곳에 예술이 있을까. 우리의 거리는 다시 모두의 것이 될 수 있을까. 생존의 지대에 지진이 일고 있는 지금, 우리는 서로를 돕고 있다. 이 도움이 우리를 잠시나마 버티게 해준다면 이제 곧 그 다음을 설계할 시기가 올 것이다. 어쩌면 더 다양한 표준, 어쩌면 더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이 도래했을 때 우리는 모두 사라져 있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예술은 또 다른 모습으로 세상에 존재하겠지. 어쩌면 나의 파자마는 이런 일들을 벌이기 위한 전투복이다. 우리는 또 다른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고, 함께 살아갈 것이다. 

 

우리에게는 지금 상상력이 필요하다. 예술이 다음을 상상하도록, 굳어있던 관습과 근육들이 깨어나도록. 그리고 우리가 미래의 우리, 미래의 예술을 준비할 수 있도록. 나의 안부를 묻는 이들에게 이 글로 인사를 갈음한다. 그래도 잘 지낸다며 실없는 답을 건네는 것이 아니라 나 그냥 이렇게 산다고 전한다. 지금은 인터미션일 뿐이다.

 

필자소개_임현진
독립 프로듀서. 도시·공간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여러 축제, 예술단체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공연을 하며 만난 세상을 이야기하고, 재미난 질문들을 찾아내기에 몰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