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매일의 혁명을 기념하며, (인디다큐페스티발2020)

 

 

 

매일의 혁명을 기념하며, <인디다큐페스티발2020>

 

인디다큐페스티발2020 리뷰 @롯데시네마 홍대입구

 

 

글_장소현

 

가방 옆구리에 텀블러 하나를 욱여넣고, 영화관으로 가는 직행버스를 잡아탔다. 영화관에 가는 건 대략 5개월 만인 것 같았다. 코로나19로 문화예술 행사들이 줄줄이 취소되거나 미뤄지는 걸 보면서 마음이 울적했는데, 그럼에도 무사히(?) 개막한 인디다큐페스티발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시간이 아슬아슬해 계단을 부리나케 뛰었더니 이마에서 땀이 송골송골 돋아났다. 체온을 재고, 문진표를 쓰고, 이전과 달라진 상황들이 묘한 긴장감을 준다. 상영관 안에서는 커다란 화면이 조그만 의자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나는 박경태 감독의 <나와 부엉이>, 지가 베르토프의 <혁명을 기념하며>, 카이두의 <2분 40초>와 <중복>, 이화여자대학교 영화패 누에 NOUE의 <이화뉴스>와 <영화운동의 함성>을 관람했다.

크레딧이 올라갈 때 즈음 이마의 땀과 긴장이 사그라들었다. 작은 의지들을 압도하는 상황 앞에서 나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것은 다사다난한 2020년에도 인디다큐페스티발이 20회를 맞이했기 때문이고, 기록과 실천, 혁명과 연대의 감각들을 온몸에 담고 있는 다큐멘터리가 있기 때문이고, 뚝뚝 떨어진 관객석의 거리에서도 그만큼의 끈끈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두컴컴한 공간 속에 불이 켜지자 촘촘하게 메워진 관객석들이 보였고, 길이 보였고,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문이 보였다. 의자에서 일어나 걸어나가는 순간에서 나는 무슨 마음들을 품고 있었나.

사진_인디다큐페스티발2020 카달로그 (필자제공)

혁명을 기념하며

“인디다큐페스티발 탄생을 작은 혁명의 시작으로 여기는 우리는, 혁명을 끌어내고 기록하며 혁명 속에서 살아가는 다큐멘터리의 어떤 기원을 재발견한다. -인디다큐페스티발 카탈로그”

요즘 지인들과 만났을 때 가장 많이 나누는 이야기 주제는 ‘혁명’이다. 단어를 혁. 명. 하고 읊어보면, 밝은 빛이 머릿속을 번쩍하고 지나가는 것 같다. 침침한 현실 속에 내리쬐는 빛에 잠시나마 숨통이 트인다. 기후위기, 동물권, 예술인권리, 노동인권, 여전히 많은 논의와 실천이 필요한 의제들이 있다. 그 속에서 개인의 삶은 매일이 혁명이다. 기존의 관습에서 매 순간 독립을 시도한다. 코로나 이전부터 우리의 삶은 재난이었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올해는 2001년 인디다큐페스티발의 탄생 후, 20년째 되는 해다. ‘실험’, ‘진보’, ‘대화’를 표방하는 이 축제가 20년 동안 지속해왔다는 건 말 그대로 기념해야 할 혁명이다. 20회 기념 특별전의 부제로도 쓰여 있는 ‘혁명을 기념하며’는 소련 감독 지가 베르토프가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 1주년을 기념하며 만든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기록은 1920년대가 되면서 몇 개의 부분으로 나눠져 전체 모습을 알기 어려워졌는데, 100년째 되는 해인 2017년에 극적으로 모든 필름이 발견되었고 2018년에 전체의 모습이 복원되었다. 100년 전의 모습에서, 다시 한번 기록과 실천이라는 혁명의 감각들을 느낀다.

 

학생회의 종말

20회 기념 특별전에서는 <혁명을 기념하며> 외에도 집단 작업으로 제작된 국내외 다큐멘터리를 상영한다. 이화여자대학교 영화패 누에 NOUE의 <이화뉴스>와 <영화운동의 함성>은 1980년대 학생회와 학생운동, 대학영화연합과 상업영화에 대한 그들의 목소리를 경쾌한 음악과 함께 담아낸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쫓고 있는가’로 시작되는 내레이션은 ‘다큐멘터리의 사명과 공동체적 속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이 땅의 억압받는 자들의 해방과 여성해방을 지향하며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는 목소리는 약 30년이 지나 다시 2020년의 6월 10일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가로막혀 있다. ‘호헌철폐’, ‘독재타도’는 여전히 공회전한다.

불과 30년의 시간이지만, 작금의 학생회의 모습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부분들이 많이 느껴진다. ‘학생회의 종말’이라는 최근의 논의점들은 지금의 학생회 모습들이 증명하고 있다. ‘학생회=간식 행사’라는 공식이 떠오를 정도로, 학생회는 어느 시점부터 정치색을 띠면 안 된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는 듯하다. 학생회는 왜 정치색을 띠면 안 되는가? 학생운동은 왜 사그라들었는가? 학생회는 어떤 책임의식과 사명을 가지고 있나?

 

사진출처_인디다큐페스티발2020 누리집 <이화뉴스>

 

<이화뉴스>의 강렬한 횃불 투쟁과 대동제의 각 행사들은, 스스로 당사자의 목소리를 내고, 그것이 학생운동과 사회운동으로 번지는 공통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다. 학생회가 솔선하여 이어지는 평화와 자유의 목소리는 강력하다. ‘학생은 정치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면 돼’라는 말은 ‘시민은 노동권 신경 쓰지 말고, 일이나 열심히 하면 돼’라는 말로, ‘예술가는 다른 환경 신경 쓰지 말고, 작업이나 열심히 해’라는 말로 이어진다. 그러나 그 환경은 누가 만드는가? 검열과 억압은 2020년에도 되풀이된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주도자는 예술대학교의 총장이 되었고, 여전히 예술인권리와 창작대가 제도는 미흡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노오력’만 말할 것인가?

 

사진출처_인디다큐페스티발2020 누리집 <영화운동의 함성>

 

<영화운동의 함성>은 대학영화연합, 서울대 얄라셩, 장산곶매, 바리터와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 학생 영화운동을 생생한 목소리로 담는다. 80년대, 여성 혐오적 맥락과 자본을 덕지덕지 붙이고 등장한 상업 영화는 정치, 사회적 문제로부터 대중의 시선을 떼어낸다. 문화 운동의 맥락 속에서 영화 운동의 역사 흐름으로 흘러가던 도입 부분에서, 80년대의 영화운동은 어떻게 이어져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녹아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문화 운동 맥락에서 예술가들은 어떤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가? 나는 어떤 기록과 실천을 남길 수 있나 하는 고민이 남는다.

 

사진출처_인디다큐페스티발2020 누리집 <나와 부엉이>

 

<나와 부엉이>

당사자가 말하는 당사자의 이야기는 귀 기울이게 한다. <나와 부엉이>는 의정부 기지촌에서 성매매로 생계를 이어 갔던 여성들을 대상화하지 않고, 타자화하지 않는 시선으로 이야기한다. 화면은 오롯이 당사자의 목소리를 담는다. ‘소외되고 억압된 삶을 살고 있는 기지촌 여성들이 함께 모여 스스로의 가치를 되찾고 건강한 삶을 살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된’ 두레방에서 미술시간을 보내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세운다. 역사 속의 폭력과 착취는 그대로 여성의 삶에 스며들고, 여성의 경제와 일상을 지탱하는 구조로 둔갑한다. 두레방의 박인순씨는 ‘나와 부엉이’라는 그림을 그린다. 그 속에 미소 짓는 인물의 얼굴과 부엉이가 나란히 그려져 있다. 폭력과 착취, 일상과 창작의 얼굴을 한 나와 부엉이, 그 두 목소리는 화면을 따라 흘러간다.

 

재난에서의 독립 

코로나 재난 이후의 4차 산업혁명, 경제변화, 기술의 발전, 그 화려한 미래에 대한 이미지들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그러나 그 속에 개인의 목소리는 없다. 경제발전이 곧 개인의 진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듯, 계속해서 우리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인디다큐페스티발’은 이처럼 독립다큐멘터리라는 실험과 대화, 그리고 기록으로 실천한다. 영화가 끝날 때마다 몰아쉬는 깊은 숨은, 상영 시간 내내 몸속으로 흘러들어오는 영상의 역동성을 느끼게 한다. 독립다큐멘터리는 매 순간 역동하며 진보한다. 우리는 이렇듯 매일의 혁명을 기념하면서 비로소 재난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소개

장소현_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혁명!


사진출처_인디다큐페스티발2020 누리집 <공식포스터>

인디다큐페스티발2020 (제20회)

Seoul Independent DOcumentary Film Festival 2020

일시:2020년 5월 28일(목) ~ 6월 3일(수)

장소: 롯데시네마 홍대입구

주최: (사)한국독립영화협회

주관: 인디다큐페스티발2020 집행위원회

개요: 국내 독립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제작자 발굴과 흐름을 주도해온 인디다큐페스티발은 '실험, 진보, 대화' 라는 슬로건으로, 사회적 발언과 미학적 성취를 위해 다큐멘터리 제작자, 연구자, 관객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인디다큐페스티발은 국내 독립 다큐멘터리의 부흥기를 만들어나가고자, 새로운 도전과 변화를 통해 관객과 독립다큐멘터리 제작자들에게 다가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