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극장을 팝니다>, 극장에 대한 상상(적 실재)

 

 

<극장을 팝니다>, 극장에 대한 상상(적 실재)

 

부평아트센터 개관 10주년 기념 공연

2020 터무늬있는연극 시리즈 <극장을 팝니다> 리뷰 @부평아트센터

 

김민관(예술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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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장을 팝니다>는 오프닝 영상 이후, 다섯 명의 연출(권근영, 송김경화, 신재훈, 전윤환, 송김경화)이 연출한 각기 다른 다섯 개의 영상 중 하나를 선택해 50여 분 영상이 나오는 태블릿 PC를 들고 극장을 돌아다니게 된다. 사진출처_앤드씨어터 <극장을 팝니다> ⓒ김솔

<극장을 팝니다>는 총 다섯 명의 연출이 각기 다른 시점과 관점으로 50분가량 극장의 시공간을 전유하는 형식을 관객에게 제안하고 있다. 시작 전에 초기 오프닝 영상이 몇 분간 극장 로비에서 공유되는 것을 포함해, 대략 한 시간가량 관객은 극장에 머물게 된다. 그리고 이후의 시간은 태블릿 PC에서 나오는 영상을 통해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된다. 한 명의 관객은 거의 하나의 극장을 전유하는데, 이는 다섯 명의 관객이 동시에 다섯 연출의 작업을 체험하게 됨에도, 동선상 겹쳐지는 부분이 거의 없도록 구성했고, 무엇보다 극장은 보이지 않는 스태프에 의해 구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극장을 팝니다’라는 제목의 함의는 남산예술센터와 같이 공공성을 띤 극장 운영이 사유화되는 시점과 연동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극장을 팔 것이니 극장을 체험해보라고 하는 조민정 연출의 오프닝 영상’과 이에 인계된 이후의 시간에서, 상주단체로 있는 극단 ‘앤드씨어터’가 극장을 사적으로 전용해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라 이익을 취득하겠다는 개념이 아니라, 곧 빈 극장에 유령 관객의 정체성을 구성해 극장 자체의 쓸모를 사적 시각으로부터 재구성한다는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텅 빈 부평아트센터는 사라질 남산예술센터의 근미래(에 대한 체험)이다.

 

물론 이러한 시도는 팬데믹 이후의 시대에 대응하는 형식을 상상한 것에서 직접적으로 출발한다. 인원수에 따른 집합 금지가 국가적으로 지시된 상황에서, 공공 극장은 빈 공간으로 무력화된다. 이런 무력화된 공간에 어느 정도의 가격대조차 제시되지 않고 관객은 아무도 없는 듯 이곳을 누비게 된다. 이 극장을 사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기는 힘들다. 영상의 목소리는 관객을 여러 장소로 인계하고, 이미 지난 목소리로 관객에게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이 목소리는 존재의 현존이 아니라 존재의 유령적 호출로서 관객에게 말을 건다. 

 

극장을 관객에게 다시 넘기는 주체는 사라졌다. 계약은 유효할 수 있는가. <극장을 팝니다>는 극장의 관객이 직접 이곳에 주인이 될 수 있다는 단서를 달면서 극장을 소개함으로써 극장의 사용 주체를 극장을 매개하는 주체로 변환한다. 공공 극장이 과연 공공 극장이었는지, 공공 극장일 수 있는지를 묻는다. 따라서 <극장을 팝니다>는 팬데믹과 직접적으로 맞물린 형식 실험이기보다 극장의 가치에 대한 성찰이 공교롭게 팬데믹에 부합하는 형식 실험으로 전개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형식 역시 팬데믹이 아니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그리고 표면적으로 공연은 팬데믹을 커다란 재난, 곧 절대적인 것으로 상정하는 경향이 있다—그리고 이에 따라 극장은 불완전한 것, 시간으로 상정된다. 

 

사실 이러한 형식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극장 투어 방식의 작업은 공교롭게 남산예술센터에서 열린 크리에이티브 바키의 <남산 도큐멘타: 연극의 연습 - 극장편>(2014)에서 구현된 바 있으며, 이는 극장 안팎을 탐험하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리서치 작업을 통해 극장 자체를 주어로 삼는 이 작업은 본 극장의 역사를 톺아보며 극장의 다른 주체들을 가시화하고 극장의 현재성을 드러냈다. 그리고 녹화된 현실이 나오는 태블릿 PC를 지도 삼아 이동하는 장소 특정적 이동의 방식은 김보람 작가가 ‘대학로예술생태프로젝트 쇼케이스’(2015)에서 선보인 <57.2도 기울어진 지형> 이후 여러 차례 하나의 툴로 가져갔던 바 있다. 이러한 연극 현장들의 복기는 이 작품의 구체성을 역사에서 형해화하기보다 무엇이 이 작품이 가진 새로움이냐를 질문하는 차원에서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형식들 자체가 독창적이라기보다 어떤 맥락에서 쓰이느냐에 따른 의미의 차원에서만 의미를 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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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명편’에서 관객은 부평아트센터 달누리극장을 방문해 극장의 이곳저곳을 자세하게 살펴보게 된다. ‘조명편’은 조명실, 음향실, 백스테이지 등 극장 곳곳을 누비며 다른 네 개의 공연에 비해 가장 세세하게 극장 내부를 살핀다. 이때 사물의 시점이 ‘부상’한다. 사진출처_앤드씨어터 <극장을 팝니다> ⓒ김솔

극장은 문턱이 존재한다. 이는 신재 연출가가 참여하는 ‘0set프로젝트’의 <장애극장>을 비롯한 3부작과 이를 진행하는 여러 과정과 단계에 의해 장애인이 사용하기에 장애가 있는 극장 존재의 물리적 차원으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그와 별개로 입장료라는 부분이 엄연히 존재한다. 돈이 없다면 공연이 벌어지는 극장 입구에 들어올 수 없다. 배우가 대부분 실제 등장하지 않는 것, 그러니까 예외적으로만 등장하는 것, 미래의 관객을 위해 단 한 차례의 짧은 공연만 했었다는 것은 이 공연이 거대한 프로덕션의 집약을 (작은 영상의 화면으로) 간소화한 채 반복할 수 있음을, 그리하여 팬데믹 이후 공연 실황이 대부분 공기관에서는 무료이듯 실제 보여주는 건 영상이 대부분인 이 작품의 입장료를 무료로 수렴할 수 있게 했음을 추정해 본다. 그럼에도 이 공연 자체는 역시 대규모 프로덕션을 통해 가능했다, 또한 가능하다. 그리고 실제 보이지 않는 실재들—극장의 가동과 이를 가동하는 존재들—을 가정한다.

 

이러한 영상 재생을 통한 복제의 코드와 보행에 따른 더 넓은 극장의 전유가 맞물린 가운데, 그리하여 연출은 공간의 디자인보다 다섯 명의 각기 다른 동선들에 따른 ‘공간 구성의 디자인’이라는 다소 즉물적이고 기계적인 방식으로 바뀌며, 이 과정에서 극장을 감싼 주변부까지를 볼 수 있는 시각과 시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보이지 않는 한 명의 연출—이는 한 명이 아닌 다섯 명의 연출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은 다섯 명이 연출한 연극/영상을 부분마다 패치워크식으로 엮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시간과 관점은 1/5만 제공된다. 그래서 이 공연이 결과적으로 보여주는 건 이 공연을, 이 극장 전체를 공연을 통해 총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극장은 그 자체로 텅 빈 시공간이기도 하다. 이는 채워지고 비워짐을 허락한다. 따라서 이 텅 빈 시공간의 질서를 보여주는 건 극장의 이면이자 극장의 반절을 보여주는 것과 다름없다. <극장을 팝니다>는 백스테이지와 같은 극장의 이면을 드러내며 극장의 본질을 보여주는 작업이면서 동시에 이러한 극장을 팔리는 대상으로 비유했다는 점에서, 제도 비판적인 차원의 작업이다. 앞서 말했듯 이러한 매매는 수행적 효력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러한 단서 역시 명확하게 제시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둘은 결국 연결된다. 곧 기존 극장이 보여주지 못하는 걸 보여주는 것의 의도 자체가 극장을 공공재로 사유하는 작품의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다섯 개의 극장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참고로 두 다른 작업을 극장에서 연이어 직접 관람했고, 세 작업은 영상만 따로 극장 바깥에서 보게 되었다. 전자에서 원래 예약한 이후 본 다른 한 작업은 한 관객이 펑크를 내기를 기다린 끝에 본 것이다.) 

 

사실 영상은 보여주는 것보다 ‘움직임과 그에 따른 보기’라는 수행성을 갖는 데 초점이 있다. 곧 어차피 영상은 현재의 지표로서만 유효하며, 다분히 도구적이다. 그리고 여기서 목소리는 과거의 잔여를 현재에 투영해 현재의 이물감을 지워 낸다. 태블릿 PC와 그에 맞춘 속도와 시각은 과거에 붙들려 있지만, 우리는 과거까지를 현재로 착각한다. 동시에 관객은 극장을 영상으로부터 ‘인계’받는다. 이에 따라 극장은 그 자체로 펼쳐지기보다 펼쳐지고 접히는 분절된 조각들로 경험된다. 어떻게 보면 관객의 시간은 통제당한다. 관객은 50여 분의 러닝타임에 자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는 없다. 하지만 극장은 태블릿 PC를 넘어, 관객을 포함하고 있다(는 걸 관객은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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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설편’(연출: 권근영)에서 부평아트센터 뒤쪽을 올라가서 관객은 풍경과 영상을 동기화하게 된다. 사진출처_앤드씨어터 <극장을 팝니다> ⓒ김솔

다섯 명의 연출은 관객에게 극장을 보는 시각과 도보의 시간을 제시한다. 전자에서 영상에 관한 연출의 시각이 들어간다면, 후자에서는 속도와 풍경에 관한 연출의 시각이 들어선다. 이 두 부분은 투명한 편이다. 영상의 시각적인 것들은 심미적인 대상 자체로 수렴하는 대신 현실에 대한 지표로 건조하게 남고, 영상 바깥 현실은 물론 영상을 따른다. 따라서 결국 중요한 건 체험보다는 어떤 이야기와 그에 관한 관점이다. 연출은 이동하는 극장을 구성하기 위해 물리적으로 장소들을 잇는 시노그라퍼의 역할을 해야 하지만, 또한 그 장소들이 잇는 매듭을 만드는 한편, 그 엮인 장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를 써 내려가야 한다. 

 

동시에 여기서 시노그라피는 앞서 언급했듯 무대—장소들—를 디자인하기보다 장소들의 이동 자체를 구성해야 하며, 이는 장소 자체의 변경이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할 수 없음을 수용하는 선에서 그치게 된다. 이는 극장의 이면까지를 보게 하는 차원으로 나아가지만, 극장에 무언가를 더한다기보다 원래의 극장을 보고 거닌다는 차원으로 대부분 머문다. 따라서 관객은 극장의 유령으로 남는다. 극장은 그래서 바로 팔 수 있는 상태로, 누군가 살 수 있는(?) 상태로 계속 머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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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시설편’에서 권근영의 연출은 극장을 구전하는 이야기의 장소로 변경시킨다. 극장 바깥을 완전하게, 곧 ‘또 다른 극장’으로서 관객은 바라보게 되며, 나아가 유일하게 극장 바깥에서 극장을 보는 시각을 체현하게 된다. 이와 비교해 ‘행정편’은 옥상을 올라와 재개발되는 바깥을 바라보는 시간이 있는데, 이때 바깥을 사유하는 시점을 제공하지만, 극장 안을 온전히 조망하는 나아가 감싸는 시점으로 인계되지는 않는다. 권근영은 이야기꾼으로서 부평아트센터의 시설관리팀장—오금주 대리의 인터뷰를 통해 구성한—으로 분한 배우의 목소리로 극장을 따라가게 한다. 곧 목소리는 절대적 힘을 갖고, 동시적 극장은 천천히 진행되는데, 마치 관객은 극장을 시각적 현전으로 바라보기보다 이야기로 잡히고 구슬려지는 장소 안에 머무는 체험을 하게 된다. 

 

주로 극장 안보다는 극장 바깥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 따라서 극장 안에 후반 들어오고 나서 배우(전민호)의 연기는 바로 클라이맥스에 도달한다. 극장은 배우의 현전을 구성하는 장소가 된다. 먼저 극장에 도달한 관객을 더듬는 시간이 꽤 길며 극장에 안착하는 시간 역시 길다. 그렇게 권근영은 극장 바깥의 시간과 극장 안의 시간을 다르게 분별하지만, 그러한 부분이 결국 관객과 관객의 만남과 뒤섞임, 극장에 대한 응시와 체험 뒤에 배우의 현전이 시작된다는 점을 보여주며 연결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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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명편’에서는 부평아트센터 달누리극장을 들러 조명과 음향을 다루는 위치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게 된다.  사진출처_앤드씨어터 <극장을 팝니다> ⓒ김솔

반면, 송경화의 연출은 ‘조명편’에서 달누리극장의 백스테이지에 들어서는 것부터 시작해서 한 명을 위한 조명으로 만든 무대를 보여준다. 여기에는 조명감독을 비롯한 스태프가 ‘목소리와 마주침 없이’ 존재한다. 빛으로 만든 극은 아름답지만, 코로나로 인해 취소된 부평아트센터 10주년을 위해 준비한 것이라는 말에서 공허함을 부른다. 극장은 존재했을, 하지만 존재하지 않았던 공연을 텅 빈 극장에 올린다. 조명실, 음향실 등에는 엔지니어로 분한 배우의 경험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여기에는 악몽을 꾸는 것이 포함되며 조명기기는 제각각 자신의 목소리를 가진다. 

 

이는 <극장을 팝니다>의 여러 참여자의 목소리를 녹음한 것으로, 의도적으로 의사-사물을 표현하여 다소 작위적이고 유아어 같은 부분이 있는데, 이로써 사물과 인간의 다소 흐릿한 접면이 만들어진다. 고홍진 배우가 극장의 조명감독으로 분하지만, 다른 작업과 비교해 유일하게 그의 목소리 자체가 영상을 이끌지는 않는다. 이 작업은 장소의 전환이나 말 모두 다소 속도가 빠르며 러닝타임 역시 길다. 해누리극장의 스펙터클도 이 시간 안에서 무력화된다. 권근영의 극장이 마치 커다란 마당과 방으로 이뤄졌다면, 송경화의 극장은 각종 전문 기기들이 모인 전문가의 공간으로 수렴한다. 극장의 보이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지지가 필요하며 그 보이지 않는 것들의 목소리를 듣는 이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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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환 연출의 ‘행정편’은 기획조종팀의 막내 김유진(이도준 배우)을 따라 극장 바깥 건물 곳곳을 따라간다. 회의실, 옥상, 식당가, 전시장 등을 거쳐 당도하는 곳은 극장이다. “100년 뒤 인류에게 보내는 편지”를 가정하는 공연은 현재 우리의 존재를 지움으로써, 부재를 상상함으로써 이미 죽은 이의 그림자를 선취할 수 있게 된다. 이 영상은 현재 당도하는 관객이 아닌, 그를 포함한 당대의 부재 이후의 어떤 현전이다. 그 현전의 자리에 우리가 존재한다. 이렇게 죽음의 자리에 우리를 기입함으로써 우리는 어떤 미래의 삶이 아니라 우리의 죽음, 그리고 우리에 포함된 다른 이의 죽음을 상상하게 된다. 미래는 지연되는 현재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이때 이러한 문장, 피터 브룩의 빈 공간을 고스란히 전유한 “여기 빈 극장에 사람이 서 있습니다. 그러면 이미 한 편의 연극이 시작된 것입니다.”라는 말에 따라붙는, (본격적인 전개 이전에 워밍업 성격 차원의 인트로 오프닝 영상 외에, 다섯 공연을 유일하게 엮는) “극장이 여기에 있다, 배우가 여기에 있다, 사람이 여기에 있다, 내가 여기에 있어요!”라는 부재의 자기 증명의 극단에 선다. 시종일관 코로나 이후 닫힌 극장의 현전을 그 텅 빔과 그 텅 빔을 감각하는 목소리 동시에 (그 공간을 울려) 감각하게 하는 목소리는 ‘배우편’에서도 부각된다.  

 

이러한 부재의 현전은 관객을 상상할 수 없는 미래로 돌림으로써 가능해진다. 그리고 이 부재가 결코 현재의 관객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울림은 결국 친숙하고 다정한 목소리가 아니라, 결코 눈에 띄지 않(았)을 어떤 존재의 사투에 가깝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말할 수 없는,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공통 기억의 그림자다. 곧 미래와 현재의 부재를 연결할 수 있는 건 그 죽음과 그 죽음을 기억하고 있는—그 죽음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우리인 것이다. “감각을 계속 기억할 수 있나”와 같은 질문은 곧 이러한 애도가 가능할 수 있는가의 질문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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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반에 이르러, 각기 다른 영상을 관람하는 다섯 명의 관객 모두 부평아트센터 해누리극장에 모여 각기 다른 동선으로 극장을 둘러보게 된다. 사진출처_앤드씨어터 <극장을 팝니다> ⓒ김솔

홍예원 연출의 ‘관객편’과 신재훈 연출의 ‘배우편’은 일종의 짝패 같다. 두 작업은 배우를 보는 존재인 관객과 관객에게 보여주는 존재인 배우 그 둘의 관계를 직접적이고 매개 없는 두 개의 대상으로 엮는 듯 보인다. 그렇다면 우선하는 건 배우의 현존이고 이를 체현하는 건 관객의 체험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 둘의 간극은 그러니까 이 팬데믹 이후에 해소 불가능한 것으로 증명될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러할까. ‘관객편’과 ‘배우편’에서 각각 배우는 극장과 연계된 장소에서 자신의 기억을 쏟아낸다. 

 

분장실에서, 고등학교 때 교회를 다니며 중창을 하던 이윤하 배우의 일화—‘어메이징 그레이스’가 나올 때 교복을 입고 머리를 매만지는 유희의 모습과 함께 충만한/무한한 시간이 강조된다, 연습실에서 “남들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을 대면”한다는 전민호 배우의 말—거울에 비친 연습실 전경 안에 배우는 ‘마스크’를 쓰고 말한다—은 극장을 배우의 역할 외적인 기억이나 의식의 공간으로 바꾼다. 배우의 기억은 역할과 자신, 극장과 자신의 관계 자체에 집중한다. 배우는 스스로에 대한 메소드 연기를 하는 셈이 된다. 극장과 연극은 배우를 지우거나 역할로 수렴시키는 것임을 거꾸로 인식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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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을 팝니다>는 극장을 빈 공간으로 전유한다. 그 채워짐을 주로 부정하면서. ‘시설편’의 이야기와 ‘조명편’의 조명은 이를 예외적으로 충만하게 채운다. 이 안의 존재들은 극장을 배우와 관객의 이분법적 현상을 넘어 사물과 정령의 동맹으로 전환한다. 또는 극장은 배우와 관객의 현존으로 여전히 굳건해야 할 것으로 이념화되기도 한다. 어쨌든 극장은 팔려서는 안 될 것이다, 모두의 공간으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극장을 제도적으로 성찰하는 것은 ‘배우편’에서처럼 상상하고 생각하는 극장의 존재(예술가)들에 대한 권리로 수렴하기도 한다. 동시에 ‘행정편’에서처럼 빈 존재들을 증명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극장을 팝니다>는 오프닝 영상 이후, 본론적 전개, 곧 극장에 대한 전유를 다섯 명의 연출에게 맡김으로써 극장에 대한 다양한 시선이 양립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관객이 자기와 같은 태블릿 PC를 든 이들을 중간중간 마주함으로써 모든 공연을 보지 않아도 자신이 보고 있는 세계가 극장 일부임을 자각하게 된다. 따라서 각 공연에 대한 밀도의 차이는 사실 부차적인 것이다. 관객은 영상 대부분이 목소리로써 놓치는 극장의 풍경을 경험해야 하는 데 많은 시간을 가져가야 한다. 거기서 극장과 연접한 풍경, 운동, 공간에 접면하는 몸의 기울기 등을 감각해야 한다. 이것이 이 공연이 보여주(지 않)는 어떤 공연의 본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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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평아트센터 해누리극장에 도착한 다섯 명의 관객은 영상에 나오는 전민호 배우의 연기를 보게 된다. ‘배우편’에서는 관객석이 아닌 무대에서 이를 보게 되고, 조명이 밝혀지는 순간, 관객은 무대의 배우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사진출처_앤드씨어터 <극장을 팝니다> ⓒ김솔

마지막으로, “학생들”, “유리창에 비추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춤을 추는 친구들”, “극장 안쪽까지는 들어오지는 않지만 극장에 함께 있던 친구들”로서 지시되며 오래전 아이돌의 춤—H.O.T의 ‘빛’—을 추는 모습으로 이어지는 ‘행정편’에서의 공연은 유일하게 실재한다. 다섯 공연에서 모두 등장하는, 그렇지만 영상으로 재현되는 전민호 배우의 로미오 역할과는 달리. 그것은 극장 안이 아닌 극장 바깥에서 제시된다는 점에서, 극장을 벗어나며 극장을 구성한다. 이는 앞선 ‘시설편’과 달리 극장을 감싸는 대신, 극장을 완전히 뭉갠다.

 

이는 ‘시설편’, ‘배우편’, ‘관객편’에서 따로 또 같이(‘하나의 시간으로’) 반복된다. 그리고 이 학생들이라는 것, 그리고 오히려 영상으로 찍혀 그 실재했음을 증명하는 전민호 배우의 극-연기와 달리, 이는 그 존재의 이름도 지시되지 않고, 마치 신기루로서의 존재를 ‘명확하게’ 비추며 흩어진다. 그들은 “상상”의 차원 이후 나타난다. 곧 사라질 것이 아니라 ‘사라진 것’ 또는 ‘사라진 것이 우연히 나타나는 것’으로 제시된다. 그렇다면 이것이 말하는 것은 더욱 분명해진다. 앞선 죽은 이들에 대한 기억이 가리키는 존재의 증명. 그럼에도 이 ‘행정편’이 모든 공연을 감싸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섯 편 모두의 어떤 무의식을 가리키는 듯 보인다. 

 

극장이 텅 빔으로써 생겨나는 시간(기억)의 채워짐. 그리고 극장이 비워짐으로써 생겨나는 사유의 어떤 지나감. 그렇다면 극장은 사라져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끊임없이 부상해야 할 것이다. 극장은 혼자의 시간 속에서 사유되어야 할 것이다. 채워진 극장, 곧 공동의 시공간에 있는 관객을 곧바로 공동체로 치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극장의 시간을 비워 우리가 극장의 환영을 통해 비켜 나는 현실의 중핵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곧 진짜 비극은 우리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필자소개

김민관_아트신(artscene.co.kr)편집장. 예술을 체험하고 기록한다. 다양한 예술 아카이브에 관심을 갖고 실천하고자 한다. 좋은 예술이란 무엇일까라는 탐문과 함께 비평적 관점으로 동시대 예술의 계보를 재구성해 나가려고 노력 중이다. 한편으로 예술(계)이 더 좋아질 수 있는 환경과 이를 위한 개인적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다.

사진출처_부평구문화재단 누리집

공연정보

부평아트센터 개관 10주년 기념 공연
2020 터무늬있는연극 시리즈
이머시브 연극 <극장을 팝니다> 


10.07.(수) 11:00 12:30 14:00 15:30 17:00
10.08.(목) 11:00 12:30 14:00 15:30 17:00
10.09.(금) 11:00 12:30 14:00 15:30 17:00  
 

장소: 부평아트센터 전체
관람료: 무료
관람연령: 11세 이상
예약: 부평구문화재단 홈페이지 (9월 15일 10:00 이후)


공동구성연출 : 권근영, 송김경화, 신재훈, 전윤환, 조민정, 홍예원
배우 : 강민지, 고홍진, 박시현, 이도준, 이윤하, 전민호
리허설 기록 : 박소희

*태블릿 PC를 사용하는 이동형 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