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떠나지 않고 미쳐버린 <겉돌며 맴도는 회전으로서>

 

 

떠나지 않고 미쳐버린

 

<겉돌며 맴도는 회전으로서>리뷰 @삼일로창고극장

 

글_채 민

 

잠자리에 누웠는데 낮에 본 김은한의 <겉돌며 맴도는 회전으로서>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잊고 잠을 청하려고 했지만 허사였다. 이불을 덮고 있어도 소름이 돋았다. 결국 일어나서 노트북을 켤 수밖에 없었다.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서늘한 이미지를 다른 의미로 치환해야 했다. 그래야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두가 잠든 가운데 혼자 책상에 앉았다. 스탠드 대신 방 전체를 밝히는 불을 켰지만 오싹한 느낌은 가시지 않았다. ‘아. 이게 밝기와는 관계가 없구나.’ 나는 포기하는 심정으로 낮에 들었던 괴담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빈 무대 위에서, 밝은 조명 하나를 마주하고 선 김은한은 연극을 하는 사람들의 오만함에 대해 말한다. 그가 이야기하는 오만함은 ‘창작자가 연극으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다. 듬성듬성 놓인 객석에 마스크를 끼고 앉아있던 나는 씁쓸했다. 이 시기에 극장까지 찾아와서 듣기에는 가혹한 말이었다. 김은한은 온몸에 힘을 꽉 준 탓에 비틀어진 발음으로 이 시간을 견디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지금 우리는 견디고 있다. 비단 극장 안에서 뿐만이아니라. 어느덧 차갑게 식은 분위기를 타고, 그는 괴담 하나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이곳을 아예 얼려버리겠다는 심산으로. 

 

<겉돌며맴도는회전으로서>공연사진_출처_매머드머메이드

 

김은한은 자신의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해준다. 거리를 두고 들을 수 있도록 친구의 이름은 ‘더글라스’라고 하자고 했다. 이 이야기는 20년 전, 더글라스의 여동생, 플로라의 가정교사 이야기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형편이 좋지 않던 차에 숙식이 가능한 가정교사 자리를 발견한다. 면접을 보러 간 자리에서 아이들의 큰아버지로부터 몇 가지 석연치 않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녀는 해보기로 한다. 석연치 않은 이야기란 전임 가정교사가 죽어서 후임을 찾고 있었다는 것과, 무슨 일이 생겨도 절대 자신에게 연락하지 말라는 것이다. ‘굳이 왜 한다는 거야.’ 싶지만 이렇게 해야 괴담은 시작될 수 있으니까. 

 

가정교사는 저택으로 가는 길에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심취한다. 그뿐만 아니라 저택에서 만난 플로라는 총명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가정교사에게 잘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샘솟았다. 며칠 뒤 플로라의 오빠 마일스가 집으로 돌아온다. 학교에서는 더 이상 돌보아 줄 수 없다는 편지와 함께. 마일스도 플로라 못지않게 매력적인 아이였고 가정교사는 자신의 역할에 더욱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아이들을 돌보며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그녀 앞에 어느 날부터 밤낮없이 유령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커다란 저택을 맴돌며 그녀는 억척스럽게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 잠을 잃은 그녀는 날로 쇠약해졌지만 아이들에 대한 집착은 더욱 커져갔다. 

 

이야기는 가정교사와 단둘이 식사를 하던 마일스의 죽음으로 끝이 난다. 이후 저택에서 가정교사를 지켜보았던 그로스 부인은 가정교사가 간혹 자신이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보았다는 말과, 어느 날 그녀가 진흙에 축축이 젖은 발로 저택에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그날의 비극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지만, 아무래도 마일스가 죽은 원인이 가정교사에게 있는 것 같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김은한은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이야기의 출처를 밝힌다. "이 이야기는 저의 친구 더글라스의 여동생, 그녀의 가정교사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더글라스는 누구…?” 이 괴담의 원작은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이다. 간략하게 각색된 탓에 충분한 개연성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김은한의 입담으로 극장은 오싹하게 달아 올랐다. 

 

김은한은 가정교사 괴담을 시작하기 전에, 자신의 지난 공연에서 이야기했던 한 줄짜리 괴담을 들려주었다. ‘겨울이 끝나서 숙제를 할 수가 없었다.’ 맥락 없는 이 애매한 문장은 ‘괴담’이라는 이름표를 달면 공포가 된다. 한 줄짜리 괴담을 듣고 유일하게 반응했던 어린 관객과 그의 공포에 전염된 부모가 결국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온몸을 웅크리고 바들바들 떨었던 어린 관객은 무엇을 떠올렸던 것일까. 이제 그 괴담은 자리를 박차고 나간 두 모녀의 모습을 포함해 한층 더 미스터리 해진다. 공포는 겹겹이 확장된다. 공연을 보고 밤잠을 설치며 이야기를 곱씹는 나도 이 괴담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대체 마일스가 학교에서 했다는 무서운 이야기는 무엇이며, 아이들의 큰아버지는 왜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에게 연락하지 말라고 한 것일까. 김은한은 두 가지 미스터리를 남기며 괴담을 마무리 짓는다. 다시 극장에 서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언제부턴가 유용한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고. 유용한 관객이란 근사한 비평을 써줄 비평가, 자신에게 일을 줄만한 프로듀서, 기획자 등. 그리고 제대로 맞물리지 못한 나사는 끊임없이 겉돌며 자신을 마모시킬 뿐이라고 말한다. 무대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 그렇다는 듯이. 그는 공연 중에 언제든지 극장 밖으로 나가도 된다는 소리를 듣고서도 끝까지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들에게 말한다. ‘계속 이곳에 머물러 있으라고.’ 저주처럼 들렸다.

 

이제 두 가지 미스터리를 풀 수 있을 것 같다. 가정교사는 이상한 징후를 눈치채고도 저택을 맴돌며 자신의 일을 그만두지 않는다. 심신이 쇠약해지고 이성적인 사고가 불가능해진 그녀는 마일스와 피오나에게 집착한다. 김은한은 극장 혹은 연극계를 맴도는 자신에게서 이전에는 없던 어떤 징후를 발견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을 지속하고자 하는 자신의 욕망을 지켜보며 멈추지 않는 가정교사를 떠올렸을것이다. 맹목적으로 순수하고 성실했던 그녀를. 그로스 부인이 목격했던 광인을. 그는 비로소 자신을 타자화 하고 자신의 연극을, 극장을 바라보기 시작했을것이다. 집착은 처음부터 그의 것이 아니었던 연극의 숨통을 끊어버릴 수도 있다. 가정교사가 지키려고 했던 마일스의 죽음처럼 말이다. 그는 이제 자신의 연극을 별 반개짜리 연극이라고 못 박고, 관객에게 앞으로 평가할 연극들의 하향선을 제안한다. 

 

비슷한 맥락으로 괴담 속 '연락할 수 없는 큰아버지'는 죽은 작가들이다. 김은한은 주로 죽은 작가와 협업한다. 이번에는 헨리 제임스와 사무엘 베케트가 함께 했다. 죽은자들의 텍스트가 영감을 주고 그를 극장으로 이끌었지만 그 다음을 문의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마일스가 학교에서 했다는 무서운 이야기는 더글라스가 20년 전 일이라며 김은한에게 들려주었다던 괴담일 것이다. 그 저택(극장 혹은 연극계)에 들어간 가정교사(창작자)는 비단 두 명이 아닐 것이다. 지금도 계속해서 새로운 가정교사가 저택으로 들어가고, 비극은 반복되는  것이다. 중심을 잃는 순간, 연극의 유령을 마주하면서 같은 곳을 '겉돌며 맴도는 회전으로서' 연극하는 나는 마모될 것이다.(마모된 상태로 누굴 찌르지나 않으면 다행) 이제 김은한의 괴담은 은유이자 경고가 된다. 무섭다. 좀 더 무서운 이야기를 해볼까. 관습적으로 극장을 찾는 우리는 어떤가. 우리도 저택을 맴돌며 마일스에게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마일스는(연극은) 몇 번이고 되살아나 이곳저곳에서 이 비극을 이야기하며 우리를 희롱할 것이다. 

 

김은한의 발치에서 그의 얼굴을 밝게 비추는 조명은 역으로 그의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그대로 그가 말했다. 멈추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필자소개_채 민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계속 이럴 수 있다면 좋을텐데...

<겉돌며 맴도는 회전으로서> 포스터

<겉돌며 맴도는 회전으로서>

공연장소 삼일로창고극장

공연일정 2020/05/15~2020/05/17

공연시간 금 19:30, 토/일 15:30

러닝타임 50분

공연등급 전체 관람가

작가 헨리 제임스, 사무엘 베케트

연출 김은한

제작 매머드머메이드